하이테커 (3)
소년 히어로 편집부.
평소처럼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이곳에 서류봉투를 든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올백머리에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 그리고 콧등에는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남자였다.
들어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를 편집부 직원 중 한명이 발견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한 그가 다가가며 물었다.
“원고를 가지고 오셨어요?”
편집부 직원의 말에 주춤하던 반창고 남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혹시 작가 지망생?”
“네.”
편집부 직원이 반창고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일단 외모로 보면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인다.
일단 지망생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만화만 괜찮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편집부 직원이 반창고 남자에게 물었다.
“여긴 처음이에요?”
“아, 네.”
“다른 곳도 들러보고 오신 건가요? 이를테면 점프 같은 곳이라거나.”
“점프라면 뭐 여러 번······.”
“아.”
결국 그곳에서 밀린 케이스라는 거다.
그래도 점프에서 밀린 것만으로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곳은 업계 최고이니까.
아마도 이런 저런 곳도 들러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를 한 번 더 살폈다.
그런데 묘하게 반창고 남자가 눈에 익다.
그런 그를 빤히 보던 직원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저기, 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아, 아뇨. 전 초면인데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는 곧장 자리에 그를 안내하고는 앉자마자 직원이 말했다.
“이름이 뭐죠?”
“미, 미우치. 미우치 다카오입니다.”
긴장을 했는지 자신의 이름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전, 미카미라고 합니다.”
“원고 주시겠어요?”
“아, 네. 여기.”
반창고 남자가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직원이 원고를 꺼냈다.
연필로만 데생이 되어있는 원고였다.
“펜으로 완성한 건 없어요?”
“아, 네. 아직은요.”
“펜선 정도는 작업해 오시는 게 좋을 텐데. 그래야 만화의 느낌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반창고 남자가 사과를 하자, 직원은 곧 미간의 주름을 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뭐. 데생만 먼저 보죠. 그리고 이게 괜찮으면 다음엔 완성한 원고도 보고요.”
“네.”
뭔가 반응이 미적지근하긴 하지만, 원래 만화가들 중에도 별난 성격이 많으니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데생원고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유명만화가의 그림이 떠오르는 그림체였다.
바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만화인 ‘드래곤볼’의 그림체와 상당히 유사한 느낌.
주인공은 이구아나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전체적으로는 개그와 액션이 난무하는 만화다.
일단 스토리의 진행이 능숙하면서도 굉장히 센스가 뛰어나다.
만화가 지망생이라고 했지만, 프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그림을 보며 슬쩍 눈동자를 들어 올려 맞은편 반창고 남자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반창고 남자는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편집부 직원들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직원이 그쪽을 다시 돌아봤다.
“하이테커 정체가 뭐래?”
“야, 아카기 팀장님 성격 몰라? 절대 안 가르쳐줄걸?”
“요즘 편집부로 독자 전화 엄청 오잖아. 온통 하이테커의 정체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뿐이야.”
“그런 말 해봐야 씨알도 안 먹혀.”
“혹시 팀장님도 모르는 거 아닐까?”
“아닐걸? 텐겐 선생님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팀장님에게는 스토리를 다 알려준다고 하던데.”
“편집장님도 모른데?”
“그렇다고 하더라.”
“와, 너무하네. 조금만 알려주지. 내 조카도 그거 알려달라고 심심하면 우리 집에 전화를 한다니까.”
“요즘은 온통 머신건 잭의 이야기뿐이네.”
“그럴 수밖에 없지. 소년 히어로에서 가장 인기 만화잖아.”
“소년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미쯔다쇼텐 전체에서 가장 인기가 있어.”
“하긴.”
요즘 모였다하면 저 이야기다.
그런 직원들의 대화를 반창고 남자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다.
아무래도 이 반창고 남자 역시 하이테커에 대해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못 마땅하다.
적어도 잡지사에 처음 찾아온 만화가 지망생이 보여줄 태도는 아닌 것이다.
직원이 이마를 찌푸리며 그에게 말했다.
“저기, 미우치 씨?”
“······.”
“미우치 씨.”
그제야 깜짝 놀란 반창고 남자가 다시 눈앞에 있는 직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미우치 씨, 여기에 집중해 주시면 좋겠는데.”
직원이 불편하다는 듯 말하자, 반창고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저기 만화를 그린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얼마나 되셨어요?”
“아, 음······.”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입을 열었다.
“데뷔한지는 대충 10년이 넘었······.”
“데뷔요?”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10년이라면 이런 능숙한 데생도 납득이 가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머리를 끄덕인 직원이 다시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이만한 수준이면 그림도 그렇고 스토리 전개도 나쁘지 않다.
아니, 둘 다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신인이라면 당장 데뷔를 해도 스토리만 받쳐주면 소년 히어로의 상위권은 문제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반창고 남자는 이번에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이번엔 또 뭔가 싶어서 봤더니, 그의 시선이 아카기 팀장을 향해 있었다.
그는 지금 어제 받은 머신건 잭의 원고를 확인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그를 힐끔거리며 직원이 다시 불편한 음성으로 말했다.
“좀 산만하신 성격인가봐요?”
그 말에 반창고 남자가 다시 움찔하더니 다시 머리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
“······.”
하지만 어쨌거나 실력 있는 사람이니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혀를 쯧 하번 차고는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미······. 음 저기 죄송한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네?”
“미도치였나?”
“누구요?”
“그쪽 이름 말하는 거잖아요.”
그제야 눈치를 챈 표정이 되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한데 이름이 뭐였죠?”
“······글쎄요, 뭐였을까요.”
“네?”
편집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무리 긴장해도 이렇게 정신이 빠져 있나 싶어서였다.
이 정도면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근처를 지나던 편집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머리를 갸웃하더니,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반창고 남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토리야마 선생님 아니십니까?”
“아, 네?”
그렇게 대답한 반창고 남자가 눈알을 굴리며 죽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아, 아닌데요.”
“맞는 것 같은데.”
“······.”
반창고 남자가 편집자의 말에 몹시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하지 못한다. 그러더니 곧 포기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이런. 들켰네요.”
“역시, 제가 잘 못 본건 아니네요.”
그렇게 말한 편집장에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있는 만화가 지망생이 토리야마 선생이라고? 그 유명한 드래곤볼을 그린 만화가?
그림이 비슷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본인 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니 역시 토리야마 선생의 얼굴이 맞는 것 같았다.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겹친 직원이 굳어버렸다.
그런 직원을 슬쩍 돌아보던 편집장이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반창고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아, 네. 그냥, 지나는 길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를 바라보던 편집장이 맞은편에 앉은 직원과 그가 들고 있던 데생원고를 보았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저희 소년 히어로에 새로운 만화를 연재하시기 위해서······.”
“아, 그건 아니고요. 정말 지나는 길에 들른 거라······.”
“그럼, 저 원고는······.”
“아, 저거요? 몇 년 전에 그린 연습용 데생······.”
그렇게 말하던 반창고 남자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미간에 힘을 주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더니 곧 편집장에게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기, 그런데 여기 직원들도 하이테커의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에요.”
“하이테커요?”
“네.”
갑자기 뜬금없는 말에 편집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담당인 아카기 팀장이 비밀로 하고 있어서, 그보다 혹시 하이테커가 궁금하셔서 여기까지 일부러 오신······.”
“저, 절대로 그건 아니에요.”
편집장은 그가 하이테커의 정체가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아니시군요. 그럼 혹시 아카기 팀장에게 볼일이 있으신 건가요?”
“바쁘신데 일을 방해하면 곤란하죠.”
그 말에 맞은편에 앉은 직원이 ‘나도 바쁜 사람입니다만’라고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쪽으로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다시 반창고 남자가 말했다.
“뭐,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 하시고······.”
“아뇨. 이젠 가봐야 해요. 일부러 도쿄까지 온 거라.”
그렇게 말하더니 편집장에게 다가가 소곤거렸다.
“죄송한데, 여기 온 거 다른 분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혹시라도 점프 쪽에서 알게 되면 시끄러워서. 그리고 직원 분도.”
그 말에 편집장과 직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곧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반창고 남자가 직원 손에 들려있던 원고를 다시 돌려받았다.
그리고는 지로가 앉아있는 자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곧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은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가 모습을 감추자 직원이 편집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결국 하이테커 때문에 일부러 저렇게 변장하고 오신 겁니까?”
“그런 모양이네.”
“저 선생님 도쿄에 오는 거 엄청 싫어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러게. 나도 좀 놀랐다.”
“전에 듣기론 텐겐, 써니 선생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던데. 그냥 전화를 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방금 봤잖아. 저런 성격에 대놓고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었겠어?”
“아니, 오히려 이게 더 힘들고 귀찮은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그나저나 요즘 머신건 잭의 인기가 엄청나네요. 토리야마 선생님까지 이런 기행을 하게 만드는 걸 보면.”
“그러게. 나도 꽤 많이 놀랐어.”
“그런데 아카기 팀장님한테도 말하지 마요?”
“아니, 말해야지.”
“어? 방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카기는 예외지.”
“왜요?”
“그래야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생길 테니까.”
“아.”
그제야 직원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