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0화 (390/425)
  • 하이테커 (2)

    “배신자? 설마 하이테커가 배신자라고?”

    이대봉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일종의 프로메테우스 같은 역할이려나?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많이 다르지만.”

    “돌연변이들의 희망이 신들의 배신자라니. 좀 놀랐다.”

    “그런 자세한 사정은 아직 자세하게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야.”

    “왜?”

    “독자입장에서는 늘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니까.”

    내 말에 이대봉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늘어진다고?”

    “어.”

    “난 재미있는데.”

    “형이 재밌다면 끝인가? 독자들이 더 중요하지.”

    “나도 독자야, 왜 이래?”

    “책을 구입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야, 출판사에서 공짜로 주니까, 그런데 우리 윤환이 그거 땜에 삐졌어요?”

    “······.”

    그때 다른 어시들도 끼어들었다.

    “저도 재밌는데요. 그거 나중에라도 좀 풀어주세요. 솔직히 하이테커 이야기도 너무 궁금했거든요.”

    “저도요. 거기다가 하이테커가 천재리더 일거라 생각했는데 신이었다니, 그것도 좀 충격적이에요.”

    “그래. 그건 나도 찬성이다.”

    실버까지 나선다.

    이렇게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라면 뭐.

    “알겠어.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준비해 볼게.”

    뭐, 아직은 설정만 잡은 상황이라 정확한 스토리를 짜 둔건 아니지만.

    그때 다시 선희가 연습장을 들고 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이건 어때?”

    연습장을 받아들고는 그림을 살펴봤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내 의견을 꽤 잘 반영한 그림이었다.

    아니 이정도면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보고는 대번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거, 좋다. 마음에 들어. 이걸로 하자.”

    그러자 선희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응.”

    * * *

    “이놈 진짜, 너무하는구만.”

    키도가 소년 히어로를 보며 투덜거리자 어시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가요?”

    “이놈 말이야, 이놈.”

    그렇게 말하며 펼쳐진 잡지를 어시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고는 책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것을 본 어시들이 피식 웃었다.

    “머신건 잭 말이세요? 갑자기 새삼스럽게.”

    “맞아요. 머신건 잭이야 이젠 뭐, 부동의 1위니까.”

    “솔직히 지금의 머신건 잭은 이기기 힘들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 정도면 소년 점프에 들어가도 빅3에 들어갈걸요.”

    어시들의 말이 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지금 머신건 잭 얘기를 하는 줄 알아?”

    “그러면요?”

    “유난 말이야, 유난. 이놈의 스토리는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니까.”

    그제야 어시들이 이해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들이 생각해도 써니와 텐겐 콤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정말 놀라운 게 많았으니까.

    “이번엔 또 뭐로 정신이 번쩍 드셨는데요?”

    “뭐긴, 하이테커 때문이지. 너무 궁금하게 만들었잖아. 유난 이놈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는 캐릭터를 대사만으로 이렇게 매력이 넘치게 만드는 건지, 정말 대단한 놈이라니까.”

    그 말에 어시들이 웃었다.

    “선생님, 그래도 그렇게 너무 시기하시면······.”

    “맞아요. 이젠 그 남매 선생님들을 놓아주세요. 너무 집착해도 몸에 좋지 않아요.”

    “이번에 2등 탈환하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건데. 그리고 단행본 판매량도 엄청 늘었고.”

    “시기라니, 누가 시기를 해?”

    그때 화실의 문이 열리며 불청객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시들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시기 아니에요?”

    특유의 짜증나는 말투.

    키도는 돌아보지도 않고 누군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기 아니야. 조금 부럽기는 해도.”

    이젠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잔소리 하고 싶지도 않았다.

    불청객은 바로 니시다였다.

    니시다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저도 부럽습니다. 분하지만 저도 하이테커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빠졌거든요.”

    “너도 그랬냐?”

    “네. 하이테커의 묘한 포지션도 좋구요.”

    그 말에 키도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묘하다니?”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번엔 어시들이 끼어들었다.

    “어? 아군 아니에요?”

    “저도 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니시다 선생님이 잘 못 아신 거 아닌가요? 하이테커 엄청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 말에 니시다가 어시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들도 평소 써니 선생님 작품 팬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모두가 머리를 끄덕였다.

    “팬 맞아요.”

    “당연이 팬이죠. 이제까지 나온 건 다 샀는데.”

    “전 단행본 평균 세 번 이상씩은 봤어요.”

    그 말에 이번엔 키도가 인상을 썼다.

    “진심의 남자에나 그 정도 열정을 쏟아봐라.”

    “에이, 이건 일이잖아요. 그쪽은 취미생활이고.”

    “맞아요. 둘은 서로 다르지.”

    어시들의 말을 듣던 키도가 버럭 했다.

    “그 말이 더 슬프다, 이것들아!”

    키도의 반응에 어시들이 입을 꾹 다물자 니시다가 혀를 찼다.

    “쯧, 그렇게 팬들이라면서 하이테커의 포지션도 잘 모를 수 있어? 충분히 상위 존재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후퇴시켰던 포판전투, 기억 안나?”

    그 말에 어시들이 키도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돌연변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럼, 톤고로전투에선 왜 그런 큰 피해를 감수하고 싸웠는데?”

    “그거야······.”

    “어?”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

    어시들이 혼란 속에 빠지자 니시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들이 하이테커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 말에 어시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 의심이긴 한데, 하이테커는 단순한 천재인간이 아닌 느낌이고.”

    “그럼 누군데요?”

    “천재는 맞는 거 아니에요?”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니시다 선생님의 의견은요?”

    “내 생각엔 말이지, 뭐랄까 그 존재들이랑······.”

    그때 키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이봐, 니시다.”

    그 말에 상념에 잠겼던 니시다가 깨어나며 말했다.

    “네?”

    “자네, 이번에 써니연구회의 회장직이라도 맡았어? 자네 만화에나 그만큼 신경 써.”

    그 말에 잠시 멍한 정신을 바로잡더니 곧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제 만화는 그저 일이라서요.”

    니시다의 대답에 키도가 조금 놀랐다.

    자존심 강한 니시다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탓이다.

    어시들도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서로 킥킥거리며 웃었다.

    한숨을 크게 푹 쉰 키도가 니시다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니시다.”

    “네.”

    “자네는 요즘 원고 안 해?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야?”

    “별로 자주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데요.”

    “일주일에 두 번이면 자주지.”

    “세 번인데.”

    “······.”

    “뭐, 사모님께서 자주자주 놀러오라고 하셨잖아요. 사모님이 주시는 차도 너무 맛있고.”

    그 말에 키도가 콧등을 찌푸렸다.

    “내 말은 끔찍할 정도로 듣지 않더니, 우리 집사람 말은 정말 잘 듣는구나.”

    “에이, 왜 그렇게 말을 하세요. 여기오고 나면 영감도 잘 떠올라서 스토리 진행도 좋아서 그러는 건데.”

    “내가 방해되니까 그러지.”

    “저는 좋다니까요.”

    그 말에 키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고 있다는 거, 스스로는 알고 있냐?”

    “그런가요?”

    “저거 봐, 저거 봐.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키도의 말에 어시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처음 인상을 구겼다.

    “역시 모두 한편이라 이거군요. 너무하네. 다음에는 우리 어시들도 데려올까?”

    “이런, 미친! 우리 작업 방해하려고 작정했냐?”

    “그럼 우리 화실로 놀러 오시던가요. 저는 뭐, 환영입니다만.”

    “너처럼 한가한 줄 알아? 우리 애들 얼마나 바쁜데.”

    키도의 말에 어시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몇몇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어? 너희들 왜 울어?”

    “선생님이 드디어 저희들이 하는 고생을 알아주셨으니 까요.”

    “맞아요. 피도 눈물도······, 아니 뭐 조금 냉정하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말에 키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욕하는 건지 미묘한 느낌이라.

    그것을 보며 니시다가 다시 웃었다.

    “선생님, 어시들 너무 힘들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 그림이 원래 좀 어렵잖아.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퀄리티는 제 쪽이 더 높습니다만.”

    “······.”

    “그럼에도 어째 저희 화실이 더 여유가 있는 것 같군요. 하긴, 우리 어시들 손이 좀 빠르긴 하죠.”

    그 말에 어시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은근히 자신들의 실력을 까 내린 탓이다.

    선임 어시인 난바 코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도 한번 니시다 선생님 화실에 놀러가요.”

    그러자 다른 어시들도 입을 열었다.

    “맞아요. 한번 견학해요, 선생님.”

    “그쪽 어시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저도요!”

    갑자기 어시들의 뜨거운 반응에 키도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니시다는 만족스럽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반응이 이렇군요.”

    키도가 그런 말을 하는 니시다를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봤다.

    “네놈 목적은 날 흔들어서 2등이 되겠다는 거구나.”

    “키도 선생님을 이기는 게 무슨 목적이 되겠어요. 써니 선생님이면 또 모를까.”

    “희망은 누구나 높게 가질 수는 있지.”

    “희망이라도 크게 가지는 게 좋죠.”

    그때 키도부인이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차를 들고 화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먼저 니시다 앞에 차를 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키도 선생님은 자신의 만화를 가장 사랑한답니다. 그저 일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죠.”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키도를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슬쩍 웃었다가 다른 이들을 힐끔거리더니 곧 헛기침을 했다.

    “부인도 참. 쓸데없는 말을······.”

    그런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차를 입에 가져가 조금 마시고는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

    “역시 키도 선생님에겐 못 당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는 이만 가보려고요. 좀 더 힘을 내 봐야 할 것 같아서. 이래서야 키도 선생님도 못 이길 테니까.”

    “뭐라는 거야? 건방지게.”

    키도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곧 니시다가 돌아서며 말했다.

    “뛰어난 어시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키도 선생님을 못 이긴다는 건 제가 무능한 게 맞으니까요.”

    그 말에 어시들의 표정들이 모두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어시들이 키도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저희도 더 힘내요!”

    “맞아요!”

    “저, 배경 그리다가 죽어 볼랍니다!”

    “아키라, 배경 퀄리티 넘어 봐요!”

    그런 어시들의 뜨거운 반응에 키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자기 말에는 꿈쩍도 안하던 인간들이 니시다의 도발엔 금방 반응을 했으니.

    그런 모습을 본 니시다가 이빨을 슬쩍 드러내며 웃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니시다가 그렇게 말하며 멋지게 다시 돌아서며 나가려하던 그때였다.

    언제 왔는지 키도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다 마시고 가세요.”

    “아, 넵!”

    화들짝 놀란 니시다가 그렇게 대답하며 서둘러 소파로 다가와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팔짝 뛰었다.

    “우왓! 뜨뜨뜨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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