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85화 (385/425)
  • 우리는 남이 아니에요 (1)

    핑크걸이 출간되고 난 뒤 결국 앙케이트 순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위라고!”

    순위를 확인한 핑크걸의 편집부 직원들이 대부분 경악했다.

    물론 최상위권 순위가 나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대충 3-5위 정도가 예상범위였다.

    하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1위라니.

    “이 순위 확실한 거예요?”

    “그럼요. 천장을 골라서 확인한 거 맞아요. 특히나 이번호에선 엽서가 많았고요.”

    “다 확인해보면 다를 수도 있지.”

    “편집부로 온 엽서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많다니까요.”

    “꼭 와르다의 별 때문이라고 확신하긴 어렵잖아요.”

    편집자 중 한 명이 계속 불만을 얘기하자, 모두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한명이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와르다의 별 때문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엽서랑 팬레터가 평소보다 더 많이 왔고, 지금 분류하시는 직원 말로도 대부분 와르다의 별 작가님에게 온 거라던데.”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아직 다 확인한 것도 아닌데.”

    대화에 끼어든 여자 편집자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갓파와 닮았다고, 직원들 사이에선 갓파녀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그녀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편집자임에도 누구도 그녀에게 별다른 반대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미쯔다쇼텐의 임원 중 한명의 친척이라는 여자였다.

    입사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편집부의 직원들이 그녀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이유였다.

    그때 직원 중 한 명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나섰다.

    “아무튼, 이번 앙케이트 순위에 변화가 많긴 하네요.”

    “그 변화가 대부분 별로 반갑지 않아서 문제죠.”

    다시 갓파녀가 불쑥 말하자, 모두 서로 눈치를 보기만 했다.

    “어쨌건 카와다 씨가 너무 부럽네. 그 정도 지원이라면 앙케이트를 뒤집는 거야 뭐, 큰일도 아닐 테고.”

    “저 얘기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에 미치코가 순진한 표정으로 나타나 끼어들었다. 그러자 당황한 사람들이 서둘러 흩어졌다.

    미치코는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를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를 빤치 쳐다보던 갓파녀가 입을 실룩거리더니 곧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와르다의 별, 앙케이트에서 1위했다면서요? 축하해요.”

    갓파녀의 말에 미치코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 정말요?”

    “몰랐어요? 여기 직원들 다 아는데, 본인만?”

    살짝 비꼬는 듯한 말이었음에도 미치코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는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몰랐죠. 방금 인쇄공장에 갔다가 오는 길이라.”

    “어머, 역시 이번에 나온 핑크걸에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순위가······.”

    “네? 순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어요?”

    묘한 표정이 되었던 미치코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 핑크걸 문제가 아니고요. 소년 히어로 때문에.”

    “아, 이번에도 히어로 쪽 일이었군요. 정말 바쁘시네요.”

    “네. 그렇죠. 아무래도 그쪽일도 어느 정도 해야 하거든요. 제가 그쪽 보조일도 맡아서.”

    “어느 정도라고 하기엔 좀 긴 것 같은데. 본분은 이쪽 일이 아닌가.”

    이제야 뭔가 대화의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낀 미치코가 얼굴을 굳혔다.

    “·······.”

    “아, 참. 카와다 씨는 히어로 쪽에 계시는 아카기 씨와 친분이 있다고 하셨죠?”

    “네.”

    “부럽다. 그쪽이랑 인연이 있어서.”

    미치코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갓파녀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지만, 직원들이 그녀를 조금 어려워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유가 어쨌건 평소엔 대화도 거의 없었던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건, 선을 넘은 행위였다.

    “저기······.”

    미치코가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뗐을 때였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요즘은 부러우면 대놓고 면전에서 저런 말을 하나 봐요. 그리고 그런 말을 듣고도 참다니, 나나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인내심이네.”

    그 말에 편집부 직원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핑크걸 편집부로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한동안 소식이 없던 이즈미였다.

    미쯔다쇼텐에선 소년 히어로에서만 주로 활동했지만, 워낙 별난 만화가로 유명했던 탓에 많은 이들이 그녀를 알아봤다.

    하지만, 미치코와 이야기하던 여자, 갓파녀는 그렇지 않았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소문을 알려줄 만큼 친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신데 함부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다른 부서 직원인가?”

    갓파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이즈미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흥미롭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튼 갓파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때 이즈미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어머, 그건 상식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나보구나. 날 모르는 걸 보니까.”

    갓파녀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 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쪽이······ 누구신데요? 다른 부서 편집장?”

    “어머, 나 같은 사람은 성격이 엄청 모나서 그런 짓 못해요.”

    “그럼······, 누구신데요? 설마, 만화가세요?”

    그 말에 이즈미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예전에요. 물론 지금은 아니고. 물론 핑크걸에서는 만화를 낸 적도 없고.”

    “혹시 작품이······.”

    “다 망해서, 알려줄 만 한 건 없는데. 그리고 요즘엔 만화도 그만 뒀고.”

    “그럼 여긴 어쩐 일로······.”

    “여기에 있는 카와다 씨에게 볼 일이 좀 있어서.”

    그제야 갓파녀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그렇다면 자신이 굳이 긴장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느낀 것이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일반인이 아무 때나 들어와서 개인용무를 보는 곳이 아닌데요. 그리고 저 아까 상당히 기분 상했는데, 그거 사과하세요.”

    “사과라니, 상식이라니까. 그리고 만화가 그만뒀으니, 일반인?”

    “일반인 맞죠. 이제는 만화가도 아니시라면서요.”

    “음, 그 말을 들으니까, 맞는 말 같기는 한데. 흠.”

    이즈미가 잠시 자신의 턱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갓파녀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때 편집부로 정장차림의 중년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갓파녀가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끼어있었다.

    “외삼촌! 여긴 왜······?”

    그 말에 외삼촌이라 불린 중년의 뚱뚱한 사내가 힐끔 보더니 손을 옆으로 휘적거렸다. 빨리 자리로 돌아가라는 듯한 제스처.

    그런데 그때 갓파녀의 시선을 따라 얼굴이 돌아간 이즈미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이 여자분 외삼촌이셨구나. 어쩐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중년인이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상황파악이 안 된 갓파녀가 마침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젠 만화가도 아니라면서, 편집부에 멋대로 들어왔어요. 그런데다가 예의 없이 말을 해서 제가······.”

    그 말에 외삼촌이라 불린 중년사내가 깜짝 놀랐다.

    “뭐?”

    그렇게 말하더니 갓파녀를 붙들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즈미에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얘가 아무것도 몰라서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다 용서가 되는 세상인가요?”

    “네?”

    “모르면 배우던가, 그게 싫으면 그만두던가.”

    그제야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당장 퇴사처리 하겠습니다.”

    “네? 갑자기 왜요?”

    “넌 좀 입 다물고 나가 있어.”

    “······.”

    “나가라고!”

    화들짝 놀란 갓파녀가 자신의 외삼촌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이즈미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즈미는 고개를 비스듬히 눕히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갓파녀의 얼굴이 붉게 변하더니 곧 표정이 일그러지며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던 그녀의 외삼촌이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

    “뭐, 그건 됐고. 개인 적인 일이니까, 그쪽 분들이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쿠로다.”

    그때 근처에서 존재감 없이 있던 노인이 다가와 남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어느새 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던 편집장도 이즈미의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이즈미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여긴 뭐, 얘기 할 곳 없어요?”

    “아, 네. 누추하지만 회의실로 가시겠습니까?”

    “누추하면 됐어요.”

    “······네.”

    “카와다 씨는 나랑 얘기 좀 해요. 위에 괜찮은 휴게실이 있다고 하던데.”

    임원들만 사용하는 장소라는 걸 알아들은 미치코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잠시 후.

    임원들의 휴게실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이즈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주주라는 게 생각보다 더 좋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많이 사둘걸. 전엔 가격도 상당히 쌌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렇군요. 이번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분이 있다고 하더니.”

    “어머나, 진짜였나 보네.”

    “뭐가요?”

    “아마쿠다리(낙하산)이요.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여자랑 같은 종류네. 누구랑 이어졌을까나.”

    하지만 말과 달리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

    하지만 미치코가 별다른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자, 이즈미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 모습을 보던 미치코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게는 무슨 일이신지.”

    선배인 지로라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즈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미치코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묘한 표정으로 웃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나온 신작이 인기가 좋다고 들었어요. 제목인 와르다 뭐라고 하던 것 같던데.”

    “와르다의 별이에요.”

    “아, 맞다. 와르다의 별. 그런데 그거 신작을 그린 사람이 써니 선생님의 어시분이고, 이전에 그렸던 만화가의 남편이라면서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요. 그 정도야 뭐 기본이죠.”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런 이즈미를 보며 미치코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사실은 왜?”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가시방석 같네.”

    “······.”

    이즈미는 말없이 계속 바라보는 미치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수다나 떨자고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적거렸다.

    “여긴 대화할 만한 사람들이 너무 없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카와다 씨가 생각나서 찾아갔던 거예요. 나이도 뭐 비슷하니까.”

    그 말에 미치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갑자기 불러내서는 수다나 하자니.

    몇 번 오며가며 본 게 전부인데,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는 미치코가 두 살 많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즈미가 엉뚱한 말을 했다.

    “이제 나도 여기 회사랑 관련자이니까, 같이 가도 되겠죠? 뭐 나이도 비슷하니까, 친구처럼 지내면서.”

    “가다니 어딜요?”

    “어디긴요, 한국이죠.”

    그 말에 미치코가 화들짝 놀랐다.

    “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이즈미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관광 말고 업무적인 일로 말이에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