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80화 (380/425)
  • 실버의 도전 (1)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듣는 노래가 바로 올림픽 주제가인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다.

    라디오를 틀어도 나오고, TV를 켜도 나온다.

    길거리에서도 자주 듣는데, 이 노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 것 같다.

    하기야, 이제 5개월 정도 뒤면 올림픽이 열리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원래는 이거 말고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가 올림픽 노래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도중에 외국에서 활동하는 코리아나의 노래로 바뀐 것이다.

    그보다 ‘아침의 나라에서’를 부른 여가수가 내가 막 이곳으로 떠나오던 2018년 후반에 ‘아모르파티’라는 트로트를 유행시키던 가수였다니.

    꽤 재미있다.

    물론 이런 사실이야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 말을 못하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런데 선희는 그런 내게 또 묘한 눈으로 쳐다봐서 꽤 긴장했었다.

    아무튼, 올림픽이라는 국가 차원의 행사 때문인지, 방송에서도 매일같이 외국손님에 대한 예절이라든가, 공공화장실의 청결, 그리고 서비스 등의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이다.

    아무튼, 나라전체가 외국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한국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일본에서는 소년점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시절엔 그야말로 전설적인 만화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니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지금은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드디어 성인이 되어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

    지금의 일본 만화는 폭발적인 성장을 해나가는 시기이며, 그 영향은 곧 한국에도 미치게 될 것이다.

    아,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이즈미가 한국에 런칭 한 만화잡지 소년 빅뱅은 지금 휴간상태가 되었다.

    처음엔 나름 공격적으로 기존 작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시작한 소년지였고, 인기도 상당히 좋았다.

    가격도 1,200원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

    TV 광고에 옥외광고, 서점광고까지 하며 꽤나 성공적인 분위기였다.

    덕분에 창간호부터 시작해 한동안은 매진사례가 이어지면 큰 성공을 이어나갔다.

    물론 일본에서 시작한 소년 빅뱅의 경우는 한국만큼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중견잡지 정도의 판매부수로 시작하며 앞일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잡지가 시작된 지 4개월 정도 흘렀을 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일본출판사, 저질 만화로 한국을 잠식하다.]

    한눈에 봐도 자극적인 기사.

    그런데 이게 내가 살던 시절의 인터넷 찌라시 기사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 현재 가장 강력한 매체인 TV의 저녁 보도고발 뉴스로 뜬 것이다.

    이 뉴스가 나오고 난 뒤는 뭐, 뻔 한 전개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단체들이 또 만화잡지를 학교 운동장에서 불태우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보통은 어린이날에 이런 행사(?)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좀 더 일찍 화형식이 치러졌다.

    뉴스에서는 마이크를 든 여자가 ‘불량 저질 일본만화’가 어쩌고 하면서 소리를 지리고 있는 모습도 나왔다.

    일본만화라니.

    회사가 일본 건 맞지만, 연재중인 만화가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물론 초반엔 이즈미가 잠깐 연재하긴 했었지만, 이내 관심을 잃었는지 몇 편 연재하다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죄다 한국만화가들의 만화로 채워진 잡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뉴스에서 애매하게 말하는 바람에 갑자기 잡지에 연재된 것도 일본만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긴, 일본만화라고 하는 것의 기준이 묘할 때도 있다.

    써니가 그리는 만화처럼 한국인이 그리고 있지만, 일본에서 연재를 하고 있는 건 어쩌면 일본만화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연재를 하고 있던 스튜디오D 애들도 갑자기 일거리가 뚝 끊어져 버렸으니까.

    힘들게 시작한 작품이었으니 애들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휴간이라고는 해도 솔직히 폐간이나 다른 없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아무튼 애들의 사정이 다시 급속하게 나빠진 건 큰 문제였다.

    몰랐다면 모를까, 걔들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떡하든 다시 길을 터주고 싶었다.

    기존 연재작품을 따로 모아, 일본의 지인들에게 부탁도 해봤다.

    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로 니시다였다.

    -제가 전에 연재를 하던 잡지산데, 주간 파이어라고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주간 파이어는 니시다의 말대로 예전에 에스퍼 존을 연재하던 곳이었다.

    중간에 전무라는 사람이 소년 히어로 쪽으로 스카우트 하는 바람에 연재가 중단된 그곳.

    내가 알기론 니시다가 7년 이상을 그곳에서 연재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 편집장에게 복사된 원고를 보여줬더니, 꽤 관심을 가지더군요.

    그나저나 니시다에게 부탁한 기억은 없는데.

    담당인 지로와 키도에게는 부탁했지만.

    어쨌거나 일부러 이렇게까지 해주니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니시다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니시다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뭘요. 텐겐 선생님이 인정한 작품이 연재 처를 찾지 못한다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잖아요.

    “제가 뭐라고요.”

    어쨌건 니시다의 추천 덕분에 조만간 그쪽에서 편집자를 이곳에 보낸다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스튜디오D에 이 소식을 전했다.

    -진짜요?

    “그래. 그쪽 출판사 편집자와 이야기는 잘 해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감사합니다. 선생님.

    리더인 박기우의 음성이 밝았다.

    연재가 중단된 상황이라 모두 충격에 빠져 있었을 텐데,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힘을 냈으면 했다.

    *

    아침 출근 시간.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실버가 화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곧 박소미가 소리쳤다.

    “실버 오빠, 축하해!”

    그 말을 이어 다른 이들도 각자 실버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축하해요! 형.”

    “축하합니다! 실버 씨.”

    “축하해! 실버 형.”

    나도 마찬가지.

    갑작스러운 말에 실버가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떠올랐는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바로 정미자의 임신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미자언니 만나서 들었어. 3개월이야?”

    박소미의 말에 실버가 벌게진 얼굴로 질문을 외면하며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일단 아침엔 커피 한잔 마시고 시작했을 텐데.

    박소미와 같이 웃던 차미정이 곧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미자언니, 이젠 원고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그 때문에 미자언니가 걱정하던데. 연재는 쉴 수가 없다면서.”

    “왜요? 임신 중에는 안정이 가장 중요한데.”

    “그건 알지만 연재만화를 그리는 입장이잖아. 거기다 일본잡지에 연재중이니까.”

    아마 쉰다면 최소 10개월 이상 쉬어야 할 것이다.

    한참 연재중인 만화가 그런 장시간 동안 연재를 쉴 경우 그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물론, 만화의 인기가 엄청나다면 또 다르겠지만.

    당연히 정미자의 만화는 아직 잡지 내에서도 중간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끝내야 한다는 거다.

    열린 결말이 될 수도 있고.

    그걸 생각하면 무작정 희소식이라고만 하기에도 애매했다.

    “담당인 카와다 씨는 뭐래요?”

    차미정의 질문에 박소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리고는 곧장 고개를 돌려 실버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실버는 별다른 말도 없이 그냥 원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

    실버도 비슷한 것을 걱정한 것일까.

    그저 입을 닫은 채로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화실 공기가 어색해졌다.

    그런데 그때 이대봉의 음성이 들렸다.

    “저 인간, 진짜! 얼굴 좀 펴라! 세상 걱정 혼자 다 짊어졌니?”

    보통은 오후, 혹은 점심쯤에 오던 인간이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대봉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실버가 대신 그린다고 했대.”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실버 오빠가 대신 그려요? 미자 언니 만화를요?”

    “정말이에요?”

    박소미와 차미정의 질문에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더라. 어제 나도 미자네 화실에 놀러갔다가 들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실버를 슥 보더니 낄낄거리며 웃었다.

    “역시 우리 실버, 남편으로서 의무를 다 하고 있었구나. 대견하긴.”

    그 말에 여자 어시들이 꺅 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남자 어시들도 무안해 하며 헛기침을 하고.

    나 참, 실버랑 이대봉으로 인해 화실분위기가 극과 극으로 변하다니.

    아무튼 그런 장난에도 실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대해선 실버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구나.”

    미리 예상해?

    실버가?

    실버는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이대봉을 쏘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지.”

    “너 이런 일이 있을까봐 예전부터 미자그림을 따로 연습한 거잖아.”

    “······.”

    처음 듣는 얘기다.

    정미자의 그림을 따로 연습하고 있었다니.

    하기야, 결혼을 한 이상 아이를 가지게 되면 마땅히 만화를 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실버가 대신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실버가 데생을 한다니.

    실실 웃던 이대봉이 날 보며 말했다.

    “콘티는 계속 미자, 아니 미자 씨가 그릴 것이고, 실버는 그것을 기반으로 데생과 인물터치까지 하겠다는 모양이야.”

    그 말에 실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대봉이 소파에서 일어나고는 거실 문 쪽으로 물러났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액션을 취하며.

    그런데 실버는 그런 이대봉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잠시만 얘기할 수 있겠냐?”

    “나랑 둘이서?”

    “어. 위에서.”

    “그래.”

    머리를 끄덕이자, 실버가 마루를 통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이대봉이 머리를 쭉 내밀어 실버를 확인하다가 곧장 내게로 후다닥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쟤 지금 화난 거 같은데.”

    “그야 모르지.”

    “나 때문인가?”

    “어쩌면.”

    “아씨, 너 나 때문에 곤죽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곤죽이 되면 형은 사망이지.”

    “컥!”

    깜짝 놀란 이대봉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이대봉을 뒤로하고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실버는 2층 테라스의 난간에 팔을 턱하니 걸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버의 저런 모습은 생소한 느낌이라 조금 걱정이 되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

    “미자 씨 일 때문이면 쉬어도 돼. 형이 부인을 돕겠다는 건 당연한 일인데.”

    “쉬지는 않을 거다.”

    “쉬지 않겠다고?”

    “그래. 안 그래도 요즘 노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 말에 내가 웃었다.

    “놀다니, 형이 언제 놀았다고 그래. 다른 어시들 그림도 봐주잖아. 그건 노는 게 아니지. 그리고 형이 비정상적으로 인물 펜 터치가 빠르니까 여유가 있는 것뿐이고.”

    “너는 참······, 보통은 여유가 있다고 일거리를 더 주는데. 너는 너무 일을 안 시키는 게 문제라니까.”

    “지금도 충분히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접어. 그런데 쉬지 않는다면 미자 씨 연재 만화 데생이랑 같이 하겠다는 거야? 만만치 않을 텐데.”

    “알고 있다. 인물 펜 터치야 뭐, 오랫동안 하던 일이라 익숙한데······. 역시 데생은 어려울 것 같아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건, 남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서.”

    하기야, 처음 만화에 입문했던 일도 해적판 만화를 베끼는 일이었고.

    여기서도 선희의 데생에 펜 터치를 입히는 것이니.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다.”

    “부탁?”

    “그래.”

    그렇게 말하며 잠시 망설이는 모습이다.

    오늘 실버의 생소한 모습을 자주보네.

    실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데생을 가르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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