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79화 (379/425)
  • 써니를 찾아라 (4)

    곧바로 대문이 닫혔다.

    박태구는 멱살이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히자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하지만 곧 상대의 손이 떨어졌고, 갑갑했던 목이 해방되었다.

    숨을 몰아쉬고는 잔뜩 찌푸렸던 눈을 떴다.

    “······.”

    눈앞의 커다란 먹구름 같은 그림자를 보고는 다시 움찔하고 놀랐다.

    용기를 내서 상대를 올려다봤다.

    처음 보는 인상이 더러운 남자였다.

    “내 말이 맞지?”

    괴물 같은 남자의 뒤에서 또 다른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괴물의 뒤쪽을 보고 싶지만, 강렬한 시선에 전신이 옭아매어진 기분이라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게 공포에 떨고 있는데, 괴물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낮게 깔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 뭐하는 놈이야?”

    “네, 네?”

    “얘네들 쫓아 왔다며?”

    그렇게 말하며 괴물이 옆으로 물러서더니 턱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눈앞을 가득 채우던 먹구름 같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긴장한 박태구가 괴물의 턱짓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히죽거리는 남자와 무표정한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써니로 믿고 있는 바로 그 이선희였고, 곁에는 그녀를 태우고 운전했던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였다.

    기생오라비가 웃으며 운전을 하는 시늉을 했다.

    “운전하는데 계속 쫓아오는 택시가 신경 쓰이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했거든? 그런데 역시나, 여기 골목까지 따라 들어오지 뭐야. 그래서 미행하는 차라는 걸 확신했어.”

    그렇게 말하며 뭐가 좋은지 입을 가리며 웃어댔다.

    역시 기생오라비답게 여성스러운 웃음이다.

    아무튼, 걱정하긴 했는데.

    택시운전사가 너무 대놓고 쫓아가서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걸린 모양이었다.

    기생오라비의 말을 들은 괴물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박태구를 내려다봤다.

    “자, 설명해봐라.”

    괴물의 무서운 눈빛, 그리고 그가 묻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머뭇거리자 다시 기생오라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면 말을 하려나?”

    “네? 다리요?”

    “역시 허리를 꺾는 게······.”

    “흐헙!”

    흠칫하고 놀란 박태구가 괴물 앞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나쁜 마음을 품고 따라온 건 절대 아니고요!”

    “그러니까 설명해 보라고.”

    아무래도 일본식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일본 깡패인 야쿠자의 집인 모양이었다.

    야쿠자는 일본도로 사람을 벤다는 얘기도 들었다.

    잘못하면 살아서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박태구가 서둘러 실토했다.

    “저는······, 그저 이선희 씨가 써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싶어서.”

    “뭐? 써니?”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살려주세요!”

    그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박태구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지만 그냥 바짝 엎드리고만 있었다.

    곧 기생오라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얘, 뭐야. 재미있는 애네.”

    그렇게 말하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실버, 네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살려달라는 걸 보면.”

    “네 녀석이 쓸데없이 다리를 부러뜨리네, 허리를 꺾네, 어쩌네 하며 겁을 준 탓이잖아.”

    “그래도 네가 그렇게 위압적이니까, 먹힌 거지. 그나저나, 선희 너 쟤랑 아는 사이였어?”

    곧 이선희라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쟤, 잘 몰라.”

    “몰라? 처음 보는 거였어?”

    “며칠 전에 한번 만났어. 더럽고 음침한 곳에서.”

    “뭐? 더럽고 음침?”

    아이고, 저렇게 말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이젠 죽었구나 싶었지만, 박태구는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거, 거긴 더럽고 지저분하긴 하지만, 제가 있는 동아리 방이었습니다! 결코 무슨 위해를 끼치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을까?

    “동아리방?”

    “네!”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기생오라비가 다시 말했다.

    “선희 넌, 왜 사람 오해하게 말해? 하마터면 실버가 저 녀석 불구로 만들 뻔 했잖아. 그치?”

    그러자 이번엔 괴물이 대답했다.

    “아니. 그럴 생각 없었다.”

    “어? 방금 너 주먹을 꽉 쥐지 않았었어? 너 많이 착해졌구나.”

    “불구가 아니라 그냥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박태구가 움찔했다.

    “아. 그랬구나.”

    마치 장난처럼 말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박태구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바닥에 더 바짝 엎드렸다.

    기생오라비가 다시 말했다.

    “선희야. 쟤랑 그 더럽고 음침한 동아리방에서 무슨 얘기를 했어?”

    “······음.”

    설명을 잘 하라고! 안 그러면 이번엔 진짜 저 괴물에게 죽을지 몰라!

    박태구가 그렇게 속으로 소리쳤다.

    그런데 여전히 이선희는 계속 ‘음’ 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때 기생오라비가 다시 말했다.

    “아니다. 너에게 설명을 듣는 건 좀 그러니까······.”

    그때 엎드려있던 박태구의 뒷덜미를 괴물은 크고 우악스러운 손이 움켜쥔다. 그리고는 그를 번쩍 들어 올려 세웠다.

    “······!”

    괴물이 박태구에게 얼굴을 쭉 내밀었다.

    움찔 놀란 박태구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어깨를 덥석 잡았다.

    마치 어깨위에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에서 등장하는 헐크의 힘이 느껴진다.

    박태구가 바짝 쫄자,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괴물은 입을 열었다.

    “자, 네가 얘기해 봐라. 처음부터 아주 자세하게.”

    “자, 자세하게요?”

    “그래. 어떻게 선희랑 만났고, 왜 그 더럽고 음침한 곳에 불렀는지.”

    “음침까지는 아니고요······.”

    “어서!”

    “네, 넵!”

    부동자세로 소리친 박태구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쭉 듣던 기생오라비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가와서는 박태구의 어깨에 팔을 툭 걸치며 말했다.

    “이야, 너.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마음에 들었어. 정말로.”

    “······.”

    * * *

    밖에서 뭐하는 거지?

    궁금해서 일어서려 하는데, 그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이대봉이 처음 보는 남자와 들어왔다.

    그것도 어깨동무를 하고는.

    이대봉이 날 보며 히죽 웃더니, 크게 소리쳤다.

    “윤환아, 손님 왔어어~!”

    아까 무슨 일이 있는지 억지로 실버를 데리고 나가더니, 느닷없이 손님이라니.

    무슨 상황인지는 전혀 감도 못 잡겠다.

    그때 이대봉과 함께 들어온 남자가 내 쪽을 보며 머리를 넙죽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제 갓 스물이 넘어 보이는 외모다.

    대학생인가?

    “제 이름은 박태구라고 합니다. 이선희 씨랑 같은 학교 2학년······.”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일단 선희랑 경희가 다니는 대학교 학생이라는 건 알겠는데······.

    쓸데없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취미는 만화보고, 그리는 거라거나. 키는 170이 조금 안된다거나. 군대는 홀어머니에 독자라 면제를 받았다는 것까지.

    점점 횡설수설하는 느낌인데.

    이 녀석 뭐야?

    내가 황당해 하는 사이 어시들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곧 박태구라는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대봉이 신나하며 말했다.

    “얘, 아까 선희랑 오는데, 택시타고 우리를 뒤쫓아 왔다니까. 완전 드라마 같았다니까.”

    “어머, 진짜에요? 설마 우리 선생님 쫓아온 건 아니죠?”

    그 말에 박태구가 눈을 크게 뜨더니, 혼잣말로 ‘역시 그랬어.’라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렇다니, 뭔 소린가 싶었는데 곧바로 이대봉이 며칠 전에 일을 이야기했다.

    선희를 만화동아리로 불러서 써니가 맞는지 물었다는 모양이다.

    박소미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어머, 대단하다. 그림을 보고 우리 선생님인 걸 대번에 눈치 챈 거예요?”

    “네! 써니가······, 아니 써니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라는 걸 소년 히어로에서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땐 삼사라라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중간에 봐서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머신건 잭이 나오고 나서 팬이 돼는 바람에.”

    “그래서 그림의 특징을 잘 알게 되었구나.”

    “네.”

    “와, 신기하네. 한국에선 해적판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써니 선생님을 일반인이 아는 경우는 드문데.”

    그렇게 김기철이 말하자, 이번엔 차미정이 끼어들었다.

    “아니지. 저 분, 아마추어 만화동아리 활동하고 있다잖아. 그럼, 반쯤 걸친 거지. 저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지 않았어요?”

    날 쳐다보며 묻길래 머리를 끄덕였다.

    “뭐, 애매하긴 하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아무튼 김기철의 말대로 그림의 특징까지 세세하게 알아볼 정도면, 진짜 팬이긴 한가보다. 하지만 이렇게 화실까지 따라온 걸 보면 사생팬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얘기를 들어보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사람이 어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여야 말이지.

    “자, 그럼 써니라는 건 확실해졌지?”

    이대봉의 말에 박태구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삼사라랑 머신건 잭 스토리 작가에 대해선 알고 있어?”

    “아, 네. 텐겐이라고. 그분도 한국 사람이라고 알고 있어요.”

    “오, 잘 아네. 그리고?”

    “그것 말고는 잘······. 그런데 혹시 그 분도 알고 계세요?”

    이대봉이 화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잘 알고 있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네? 정말이요?”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의 시선을 따라 같이 이리저리 살핀다.

    그리고 이대봉의 시선이 내게 닿자, 박태구의 시선도 날 향했다.

    “······.”

    “쟤야, 쟤.”

    그렇게 말하며 웃더니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희의 오빠.”

    “······.”

    박태구가 날 보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 * *

    다음날.

    박태구는 오늘 수없이 없는 날이었지만, 일찌감치 동아리방으로 나왔다.

    들어가자마자 코고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나, 게임으로 밤을 샜는지, 세 명의 친구들은 조그마한 간의침대에 서로 얽힌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분명 만화동아리지만, 친구들은 그저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들을 내려다보던 박태구가 테이블 위에 널린 과자봉지랑 음료수 병들을 주섬주섬 치웠다.

    대충 정리가 되자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어제 일을 떠올려 보았다.

    설마설마하며 따라갔다가 진짜 그녀가 만화가 써니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오빠가 스토리작가인 텐겐이라는 것도 알았다. 거기다 그를 실제로 만나기까지 했다.

    그들의 화실을 견학했고, 같이 일하는 형, 누나들과도 알게 되었다.

    물론 괴물 같은 실버 형이 무섭기는 했지만.

    어쨌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천금 같은 경험까지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가장 뜻 깊은 하루였다.

    거기다 써니의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까지.

    이름이 이경희라고 했던가.

    써니와는 달리 쾌활한 성격이었는데.

    아무튼 꽤 즐거운 하루였다는 생각을 하며 턱을 괸 채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야, 뭐야? 너 언제 왔냐?”

    “저 놈 왜 저래. 헤벌쭉한 얼굴이야?”

    “미친 거지. 요즘 써니의 정체를 밝힌다면 그렇게 설치더니. 정신 줄을 놓아버린 모양이야.”

    언제 깼는지 뒤집어진 머리를 한 친구들이 박태구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전생에 사이좋은 부부 아니었을까? 언제나 행동을 같이 하는 걸 보면.”

    박태구의 말에 셋은 모두 서로를 돌아보더니 곧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엑! 말도 안 돼!”

    “맞아! 부부라니. 그건 좀 아니지!”

    “그나저나 부부라면 둘이잖아.”

    “뭐, 한명은 정실부인에 한명은 첩실이었겠지.”

    “뭐?”

    “으악! 상상만 해도 역겹다! 퉷! 퉷!”

    “우웩!”

    세 명이 순식간에 간이침대에서 튀어나가려고 몸부림들을 쳤다.

    그 순간 흔들리던 간이침대가 폭삭 주저앉았다.

    “으아악!”

    “아야야!”

    “꾸엑!”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박태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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