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78화 (378/425)
  • 써니를 찾아라 (3)

    헉헉거리며 동아리방 앞에 도착한 박태구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친구들이 보인다.

    그들은 박태구를 확인하고는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그리고는 곁눈질을 했다.

    박태구가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보인다.

    여자는 턱을 괸 채로 무심한 눈빛으로 책을 보고 있다.

    뭔가 했더니 동아리 친구들과 만든 복사된 동인지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일 년에 두 번 찍는 만화회지다.

    물론 제대로 된 만화라고는 박태구가 그린 짧은 만화가 전부고, 대부분은 잡다한 낙서가 전부일 뿐이지만.

    아무튼 박태구가 그린 만화를 넘기고 있으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여자의 그런 모습을 보던 박태구가 흠칫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서 순간 예전에 보았던 잡지 속 사진이 오버랩 된 것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사진 속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다.

    물론 잡지 속 흑백 사진의 여자는 사인을 하고 있느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때 동인지를 보던 여자애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자 박태구와 시선이 마주쳤다.

    “······”

    조그마한 얼굴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엄청나게 예쁜 여자다.

    순간 박태구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미녀라서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진짜 써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박태구가 긴장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

    무심한 음성으로 말하는 여자.

    얼굴에도 전혀 표정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반말로 인사를 하자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곤란하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여자가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는 다시 말했다.

    “나, 가봐야 하는데. 그림 돌려줘.”

    “······.”

    당황한 박태구가 곧 표정을 수습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

    “혹시 만화가 써니 아닙니까?”

    “맞아.”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냥 대번에 대답해 버렸다.

    그 순간 박태구는 물론 친구들까지 경악했다.

    “저, 정말 써······.”

    여자가 박태구에게 손을 뻗었다.

    “얼른 줘.”

    차가운 눈으로 여자가 다그치자 놀란 박태구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 다그쳤다.

    “줘, 어서. 나 바빠. 가야돼.”

    “아, 네.”

    얼떨결에 대답한 박태구가 가방을 열어 뒤적거리고는 곧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자 여자는 그것을 채가듯 가져가더니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동아리 문을 열고 나가려했다.

    그런 그녀에게 박태구가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

    멈칫한 여자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자, 박태구가 다시 움찔했다.

    냉기가 풀풀 풍겨오자 놀라 눈알만 데굴거렸다.

    “정말로 써니가 맞······.”

    “응. 맞아.”

    그렇게 대답한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친구들이 테이블 앞으로 푹 쓰러진다. 그리고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후우우. 그러게. 날씨가 봄에서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는 줄 알았다니까.”

    박태구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저, 정말이었어. 정말로 우리학교에 써니가 있었다니.”

    박태구의 말에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친구들이 힘겹게 머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고는 혀를 찼다.

    “쯔쯔, 저 바보 녀석.”

    “이놈도 참 순진하다니까.”

    “이건 순진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거지.”

    “그런가?”

    두 사람의 말에 박태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가?”

    “아까 그 여자 표정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표정이라니?”

    “그냥 여기 있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 말이야. 억지로 붙잡아 두려고, 숨겨뒀던 간식까지 다 갖다 바쳤다고.”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는지 울상이 되었다.

    “간식?”

    “그래, 임마. 뽀빠이, 꼬깔콘, 죠리퐁, 인디안밥, 새우깡, 바나나킥까지 모조리 다 먹어치우더라. 그 작은 몸에 그게 다 어디로 사라졌나 몰라.”

    “진짜 먹기 위해서 태어난 여자 같더라.”

    두 친구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박태구가 테이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 있는 쓰레기통이 과자봉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그걸 다 혼자 먹었다고?”

    박태구가 놀란 얼굴로 묻자 한 친구가 입을 떡 벌리며 자신의 입에 뭔가를 마구 집어넣는 행동을 과장스럽게 하며 말했다.

    “말도 마라. 내 생전에 그렇게 과자를 입으로 무식하게 빨아들이는 여자는 처음 봤다.”

    “여자? 흥. 남자도 그런 인간은 못 봤어.”

    “어떻게 아껴둔 비상식량인데.”

    그 말에 다른 친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말하지 마, 눈물 나오잖아.”

    “그냥 저놈 벤치에서 얼어 죽게 놔뒀어야 했어. 네가 괜히 벽보 얘기를 해 주는 바람에 우리 피 같은 과자만 싹쓸이 당해버렸다고. 이건 업보야 업보!”

    “저놈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내가 잘못했어. 머리가 좋은 내가 사과할게.”

    둘이서 쇼를 하자 박태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지랄들을 해라.”

    그때 친구 중 한명이 박태구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고인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 여자가 한 말은 진실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거야.”

    그 말에 박태구가 발끈했다.

    “아니. 분명히 그 여자 써니가 맞아. 딱히 거짓말을 하는 느낌도 아니었고.”

    “바보 같은 녀석아. 아니라니까. 그 여자는 자신을 이런 돼지우리 같은 곳에 불렀다는 사실에 분노한 거야. 그래서 우리 과자를 모조리 작살낸 거고.”

    그 말에 곁에 있던 친구가 격하게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박태구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말했다.

    “여기에 온 게 화난 이유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써니가 맞다니까.”

    “시끄러워, 이 망할 놈아. 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역시 우리 같은 놈들은 예쁜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분하지만 맞는 말이야.”

    친구들의 말에 박태구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친구 한명이 말했다.

    “네 돈으로 과자 채워놔. 안 그러면, 동아리에서 영구제명이다.”

    “야, 기껏 과자 때문에 그런다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

    “너무한 건 네가 여자를 끌어들여 과자를 절단 낸 거지.”

    그 말에 박태구가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어. 그거 내가 채워놓을게. 그러니까 됐지?”

    “그럼 뭐.”

    “그래.”

    그때 박태구가 뭔가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버럭 소리쳤다.

    “아차차!”

    “왜 그래? 놀랐잖아.”

    “이름이 뭐래?”

    “이름?”

    친구 둘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넌 알아?”

    “난 모르지.”

    두 사람의 말에 다시 물었다.

    “그럼 무슨 과래?”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맞아. 그런 건 네가 물었어야지.”

    “······.”

    순간 박태구가 자신이 머리통을 두 손으로 벅벅 긁었다.

    멍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물어볼 정신도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를 다 뒤지고 다녀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건 내가 알아.”

    문이 열리며 동아리 친구가 들어오며 말했다.

    아까 박태구에게 여자가 찾아왔다는 걸 알려준 그 친구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박태구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원래 아는 사람이었어?”

    “그건 아니고.”

    그 말에 다른 친구들이 입을 열었다.

    “쟤가 저런 미인이랑 개인적으로 알 리가 없지.”

    “맞아. 불가능한 일이지.”

    “이 새끼들아! 불가능이라고 단정 짓지 마!”

    “불가능하지. 그건.”

    “맞아. 그건 뭐 사실이니까.”

    “이 새끼들이!”

    흥분한 녀석이 버럭 소리친다.

    곧 싸움이라도 벌어진 분위기라 박태구가 친구를 말렸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자자,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봐.”

    그 말에 씩씩거리던 친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턱을 바짝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이름은 이선희.”

    “이선희? 방금 왔던 그 여자 이름이 이선희야?”

    “저기, 이선희면 가수이름이잖아. J에게. 그거.”

    “제이~ 스치는 바람에~.”

    “야, 요즘엔 ‘알고 싶어요.’지. J에게는 옛날 거고.”

    “아, 맞다. 그 노래 가요톱10에서 5주 1위 했었지.”

    “아, 시끄럽네. 이놈들.”

    짜증을 부리던 친구에게 박태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 뭐. 실은 여기 들어오다가 건물을 나가는 거 봤거든. 그런데 지나가던 친구 녀석이 그 여자를 보더니 ‘어, 이선희다’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럼 무슨 과야?”

    박태구의 물음에 친구가 팔짱을 꼈다.

    “그 놈이 자기과라고 하더라고.”

    * * *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을 빠져나온 선희가 곧장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대학교 정문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경희가 늦게 마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곧장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 근처에서 ‘빠앙!’하는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더니, 익숙한 형태의 자동차가 선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낀 잘생긴 남자가 내렸다.

    “안녀엉, 선희야아!”

    손을 흔든 남자는 실버었다.

    선희도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곧장 조수석에 올라탔다.

    “왜?”

    “내가 왜 왔냐고?”

    “응.”

    “네 오빠가 걱정된다고 어찌나 갈구는지. 어쩔 수 없이 왔······,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우리 선희 편하게 화실로 모셔가려고 온 거지. 고맙지?”

    “응.”

    “그럼 출발하자아!”

    그렇게 소리치며 기어를 넣고는 바로 출발했다.

    그때 자동차가 있던 자리로 뛰어온 남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곧장 손을 흔들었다.

    “택시! 여기요, 여기!”

    남자의 앞에 흰색이 스텔라 택시가 멈춰 서자 곧장 조수석에 탔다. 그리고는 곧바로 소리쳤다

    “저 차, 따라가요!”

    그리고 택시가 출발했다.

    * * *

    차가 멈추더니,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 여자가 내렸다. 그리고 바로 커다란 대문이 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박태구가 택시에서 내렸다.

    곧장 택시비를 지불하고는 두 남녀가 들어간 건물을 올려다봤다.

    오래된 일본식 주택.

    뭔가 그녀가 써니라고 밝혔던 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나저나 같이 들어간 남자와는 어떤 관계일까?

    연인? 남매?

    만약 연인이라면······. 그건 쬐금 아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런 사실이야 자신이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가 써니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 할 뿐이었다.

    박태구가 대문 앞으로 다가섰다.

    초인종이 보이긴 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당장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대문을 벌컥 열린 것이다.

    깜짝 놀란 박태구가 서둘러 물러서려는데, 문 안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림자의 주인이 박태구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곧장 그를 대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악!”

    우악스러운 힘에 이끌려간 박태구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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