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74화 (374/425)
  • 씨앗을 뿌리다 (2)

    이대봉은 우선 옆 건물에 있는 분식집에서 어묵과 떡볶이, 그리고 만두를 잔뜩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대봉을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좁고 음침한 계단을 올라갔더니 더 음침한 복도가 나온다.

    낮이라고는 하지만, 구조의 문제인가.

    위를 보니 형광등이 있긴 하지만 낮엔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천장에 뭐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이대봉이 문 앞에서 손짓했다.

    “여기야. 일루 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낡은 책상에 팔토시를 낀 사람들이 몇 보인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외모들이다.

    평균 30대 중반은 되어 보인다.

    “나 왔어요오.”

    평소 화실에 들어올 때도 저런 식으로 인사하는데, 여기 사람들과도 친분이 그만큼 좋은 모양이다.

    그 중 30대 중후반, 어쩌면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이대봉을 보며 반갑게 말했다.

    “어. 대봉이냐? 어서 와라.”

    다른 사람들도 이대봉을 보며 반가워했다.

    “어서와, 우리 대봉이.”

    “대봉이가 왔구나. 우리 대봉이가 왔어.”

    어깨춤을 추며 추임새까지 넣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이대봉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버럭 소리쳤다.

    “아이 정말, 그렇게 리듬 타면서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고 제임스로 불러 달라고.”

    “닭살 돋게 무슨 제임스.”

    “맞아. 대봉이가 훨씬 친근하고 좋구만.”

    “솔직히 저 얼굴에 대봉이는 좀 그렇지. 이왕이면 이영하라거나, 이국영으로 짓지.”

    그 말에 사람들이 낄낄거렸다.

    “맞네. 그 얼굴이면 장국영한테도 절대 안 꿀리지.”

    “이 미친 인간들아, 그만 좀 해!”

    그때 가장 먼저 인사말을 건넨 남자가 이대봉과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렇게 말하며 내게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환기가 되지 않는지 담배 냄새 때문에 코랑 목이 간질거린다.

    표정을 관리하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누구? 친구? 좀 어려보이네.”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쳐다보자 내가 머리를 꾸벅하며 인사했다.

    “내 동생. 구경하고 싶대서. 그리고 이렇게 보여도 올해 26살이야.”

    그 말에 꽤나 놀라더니 날 빤히 훑어본다.

    마치 어시장에 놓인 고등어가 된 기분인데.

    “오, 그래? 갓 스물 넘었나 싶었는데.”

    “어려보이긴 하지.”

    그런데 왜 자랑스럽다는 표정이야?

    “커피 줘?”

    “응. 줘, 줘. 두 잔.”

    “야, 그럼 너만 줄 거라고 생각했냐? 나 그렇게 인색한 사람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한쪽 구석에 놓인 싱크대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가 커피를 타면서 실실 웃었다.

    “왜 웃어?”

    이대봉이 묻자 그가 여전히 웃으며 이대봉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너도 올해부터는 계란 한판이네? 그렇게 아직 20대라고 주장하더니, 너도 이젠 우리랑 같은 30대잖냐.”

    그 말을 들은 이대봉이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아악! 그만해! 안 그래도 요즘 거울 보면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아서 속상하니까.”

    “남자 녀석이 주름 정도에 웬 호들갑이야?”

    “중요하거든!”

    이대봉이 버럭 하자 주변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너 친동생이 있었냐? 몰랐네.”

    “그만큼 가깝다고.”

    “아.”

    곧 사람들의 관심이 내게서 멀어졌다.

    뭐 그쪽이 나에겐 더 좋지만.

    “그거 먹을 거야?”

    소파 테이블에 놓아둔 검은 봉지를 보며 묻자 이대봉이 바깥쪽으로 턱짓하며 대답했다.

    “어. 요 앞에서 산거야.”

    봉지를 확인한 남자가 인상을 팍 썼다.

    “뭐야? 떡볶이랑 오뎅이야? 이런 건 물리도록 먹었는데. 너는 요즘 돈도 잘 번다면서 너무하는 거 아니냐?”

    “돈 버는데 보태준 거 있어? 사주면 감사하게 먹을 일이지.”

    그 말에 라이트박스에 위에서 열심히 연필로 그림을 그리던 남자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대봉이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해라.”

    “알고 있어.”

    “짜식이.”

    “잘생긴 대봉이가 참아라. 쟤 그래도 네가 오면 가장 좋아하는데.”

    “진짜야?”

    그 말에 봉지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콧방귀를 꼈다.

    “지금은 아니야.”

    “의리가 없네, 의리가.”

    “배고픈데 의리 따위 개나 줘라지.”

    그 말에 이대봉이 피식 웃고는 손가락을 탁 튕기며 오버했다.

    “좋아, 기분이다. 짜장면 집에 연락해서 탕수육 시켜.”

    “정말이지?”

    “당연하지.”

    “한개만 시킬 거냐?”

    “대짜로 네 개!”

    “오오, 갑자기 대봉이가 멋지게 보인다.”

    “나도, 나도.”

    이대봉이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얘도 같이 왔는데 쪼잔 하게 보이면 안 되잖아.”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와, 동생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 쪼잔 한 대봉이가 탕수육이라니.”

    쪼잔 하다고?

    한 번도 이대봉이 쪼잔 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하긴, 이렇게 먹성 좋아 보이는 아재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면 그럴 법도 하다. 아마 술도 꽤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건 이대봉이 들어오고 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의 분위기는 밝고 좋다. 딱히 못난 사람도 안보이고.

    남자가 내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커피 마셔요. 삼삼삼으로 했는데, 괜찮죠?”

    삼삼삼이 유행인가?

    뭐 익숙해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에이, 형. 내 동생이니까 편하게 말해. 너도 다 친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해라. 높임말 따위 필요 없으니까.”

    “저 미친놈이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어.”

    “그럼 탕수육 취소하던가.”

    “아이고, 제가 미쳤나봅니다. 미스터 제임스, 네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이대봉이 팔짱을 끼고는 날 보며 히죽 웃었다.

    “들었지?”

    “어.”

    얼떨결에 친분력이 200퍼센트 상승해버렸다.

    덕분에 처음만난 사이임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하다.

    잠시 후 탕수육이 도착하고 그것을 먹으며 이야기하다보니 더 친해졌다.

    그러다보니 결국 서로 이름 정도는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좀 놀라운 사실을 두 가지 알게 되었다.

    주로 대화를 하던 40대 초반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이름이 김영호였는데, 그의 나이가 32살이라는 사실.

    이대봉이 30살이니까 두 살 차인데, 외모로만 보면 열 살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실버도 올해 31살인데 그런 실버와 비교해도 한참 들어 보일 정도다.

    하긴, 80년대는 정말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긴 하다.

    내가 살던 시절보다는 보통 5살 정도 더 어리게 생각해야 할 정도로.

    아무튼 이 형은 나이 서른에 애가 벌써 10살, 7살이란다.

    일찍 결혼하고 군대 36개월, 애를 둘이나 키우면 저렇게 늙어버리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가 이곳이 대표라는 점이다.

    그저 다 같은 복장에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있길래 그냥 직원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바쁜 거 보니까 보기 좋네.”

    이대봉의 말에 헛웃음을 지은 김영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일만 많지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때 다른 직원이 식어버린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끼어들었다.

    “맞아. 그림은 더럽게 복잡한데, 돈은 안 되니까.”

    그러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돈 되는 건, 지들이 다 하고 까다롭고 돈 안 되는 것만 보내잖아.”

    “그래도 우리가 돈, 시간 대비 잘 뽑아주니까 이런 일감이라도 보내주는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솔직히 우리야 까놓고 말해서 이거 포기하고 다른 일하면 되지만, 걔네들은 우리 없으면 이거 맡길 곳도 없어.”

    “포기하고 다른 일 한다고? 뭘 할 건데? 그림쟁이가 다른 일 하는 게 쉬울 것 같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에이, 이런 얘기 하지말자. 갑갑하다.”

    “그래. 대봉이, 네 얘기나 해봐라. 요즘 일본에서 꽤 잘나간다며?”

    그때 김영호가 웃으며 말했다.

    “야, 잘나가는 정도가 아니야. 얼마 전에 일본에 가서 독자들에게 사인도 했다더라. 본인 말로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고 구라를 까긴 했지만.”

    그 말에 이대봉이 어깨를 들며 인상을 썼다.

    “구라 아니거든. 진짜야!”

    “그래, 그래. 진짜라고 해 두자.”

    “사진도 찍었어. 나중에 가져올 거니까.”

    “오, 사진도 찍었어?”

    “그래. 나 몇 년 있으면 보기 힘들걸?”

    “제발 그래줘라. 너 제대로 성공해서 평생 너 자랑하며 살게.”

    “나도.”

    어려운 현실이어도 사람들은 유쾌하기만 하다.

    “그런데 윤환이 너는 어때? 너도 대봉이처럼 스토리작가라며. 일은 좀 많냐?”

    “뭐라는 거야?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아.”

    이대봉이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가리며 놀라더니 날 돌아본다.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저렇게 떠들기 좋아하는 이대봉이 마냥 숨길수가 있겠나 싶었다.

    아무튼 이대봉의 요란스러운 반응 때문에 김영호가 관심어린 시선으로 날 돌아봤다.

    “대봉이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진짜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대봉이 저놈보다 더 많이 벌었다니, 그게 말이 되냐? 그 정도 되려면 ‘지옥의 외인구단’ 스토리작가 정도는 되어야 할 걸?”

    “맞아. 아니면 대봉이처럼 일본에서 활동하거나.”

    그렇게 말하다가 나와 이대봉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는 곧 표정이 변했다.

    “어? 설마 그런 거야?”

    “진짜! 대봉이처럼 일본에서 활동한다고?”

    그때 이대봉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 표정을 살핀다.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더니 곧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와, 뭐야? 이거 알고 보니 거물이네, 거물.”

    “거물은 좀 그렇지. 당장 대봉이도 일본에서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면서.”

    “맞아. 대봉이 저놈 말만 믿어서야 되겠어?”

    그러자 이대봉이 다시 버럭 했다.

    “전에 연재잡지 보여줬잖아. 내가 스토리 쓴 만화. 거기서 인기 엄청 좋다니까.”

    “알았어, 그래. 하지만 일본말로 쓰여 있어서 알 수가 있어야지. 거기다 무슨 판타지 음식만화라며. 그런 게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야야, 그래도 대봉이 너무 몰아세우지 마.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니까.”

    “음, 뭐. 그야 그렇긴 하지.”

    “그래 대충 거물로 인정.”

    “뭐야? 왜 대충 인정하는 건데!”

    이대봉이 짜증을 부리며 말하자 놀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다시 사람들이 낄낄거렸다.

    하긴, 이대봉은 놀리는 맛이 좀 있긴 하지.

    “그나저나 너도 대봉이랑 같은 잡지야?”

    “어.”

    “오, 그래? 뭔데? 나도 대봉이 이 녀석 때문에 소년 히어로라는 잡지 꽤 봤는데.”

    “뭐야? 뭔데?”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내게 다시 쏠렸다.

    내가 대답하려는데, 이번에도 이대봉이 나섰다.

    “들으면 놀랄걸?”

    “야, 넌 좀 입 다물어.”

    “그래. 괜히 기대심만 올려서 윤환이 무안 주려는 거 아니야?”

    “저 놈은 은근히 못된 구석이 있다니까.”

    “아무튼 마음을 곱게 써야지.”

    “이씨, 아니라니까. 진짜 놀랄걸!”

    그렇게 버럭 소리치더니 곧 입 꼬리를 슥 끌어올렸다.

    “어? 저놈 왜 저렇게 사악한 미소를 지어?”

    “뭐해? 뜸들이냐?”

    “빨리 말해봐.”

    사람들이 나와 이대봉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때 이대봉이 승리자의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삼사라, 머신건 잭.”

    “······.”

    “······.”

    모두 멀뚱거리는 표정이다.

    역시 업계가 조금 달라서 모르는 모양이다.

    뭐 잘 알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곧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삼사라?”

    “머신건 잭?”

    “써니 만화? 그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다시 쏠렸다.

    그러더니 짜기라고 한 것처럼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진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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