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72화 (372/425)
  • 머신건 잭 - 링크 (5)

    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

    신기하게도 잭과 파스만 빛나고 있었다.

    파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엄마, 제니······.”

    눈앞에서 헤어져버린 탓이 아쉬움이 너무 컸다.

    잭은 그 모습을 그저 말없이 바라봤다.

    “······.”

    “그래도 살아났으면 됐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한 파스가 표정을 고치고는 잭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내게 물어봤자······.”

    “우리 둘만 온 거야?”

    “뭐 그런 모양이군.”

    그때 이제는 익숙해진 음성이 들려왔다.

    [플레이어로 지정되었습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두 사람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냥 겉보기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플레이어? 도대체 무슨 말이지?”

    “뭐 알게 될 테지.”

    잭은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평소처럼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런 잭 덕분인지 파스의 긴장감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주위가 밝아졌다.

    두 사람의 주변은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한 정글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해 있던 그들에게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시작합니다.]

    그 말에 파스가 깜짝 놀랐다.

    “시작하다니, 뭘 시작해?”

    “······.”

    곧 그들 주변의 숲속 어둠속에서 많은 숫자의 붉은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들이 생겨났다.

    ······.

    * * *

    “키도 선생님. 여기 지문 묻었잖아요.”

    “뭐?”

    “조심해서 보세요.”

    “아니,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그보다 다음페이지 어디 있어?”

    니시다가 흥분한 키도를 말렸다. 그리고는 지로 쪽을 턱짓했다.

    “식자가 떨어져서 아카기 씨가 다시 수정작업 중이에요.”

    “아, 그래. 그나저나 이거 내 지문 아니라니까.”

    “맞다니까요.”

    “니시다. 너 이 자식. 왜 날 모함하는 건데?”

    “모함이 아니죠. 진실인데.”

    “그래, 뭐. 내가 수정할 테니까······. 아카기, 그거 좀 보자.”

    그 말에 지로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데, 일단 수정부터요.”

    “내가 할게. 내가 할 테니까, 일단 내용만 좀 보자.”

    “······저 인쇄소에 가서도 할 일이 있습니다만.”

    “그래, 따라갈게. 가서 도와줄 테니까.”

    그 말에 근처에 있던 미치코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말했다.

    “키도 선생님이 왜요? 그건 제가 할 일인데.”

    “됐으니까. 페이지를 좀 줘봐.”

    키도가 길길이 날뛰자 지로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머지 페이지를 넘겨주었다.

    * * *

    숲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흉측한 모습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다.

    잭이나 파스도 이런 종류의 괴물들은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수십 여 마리의 괴물들이 단체로 달려들자 잭의 머신건이 불을 뿜었다. 동시에 파스의 불꽃 회오리 화살도 함께 쏘아져 나갔다.

    전신이 근육질에 번들거리던 괴물들이 공격을 받자 몸들이 찢겨져 나가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들은 흡사 좀비와 같이 몸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달려들었다.

    파스와 잭은 후퇴하면서 놈들을 하나하나 침착하게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모두 쓰러지자 [클리어!]라는 음성이 들린다.

    그와 동시에 다시 두 사람의 몸이 부서지듯 흩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어둠의 공간.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동료를 소환합니다.]

    이번엔 그들 주변에 빛이 일더니 몽과 조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당황한 두 사람.

    “으악! 여긴 어디야?”

    “어? 잭! 파스!”

    “너희들은 왜 여기로 온 거야?”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악, 진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그때 몽과 조크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몽의 주변에 기계들이 둘러싸더니 곧 커다란 기계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조크는 묵직한 포를 단 소형탱크에 탑승한 채로 나타난다.

    포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조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거 멋진데!”

    그러자 몽도 탑승한 로봇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리쳤다.

    “엄청 부드러워! 대단해!”

    갑자기 두 사람이 태도를 바꾸자 잭과 파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다음 맵으로 이동합니다.]

    * * *

    “와, 이거 게임이야? 정말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모르겠네.”

    키도가 감탄하자 곁에 있던 니시다도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텐겐 선생님의 스토리는 재미있어요. 저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에스퍼는 이제 식상한 소재이긴 하지.”

    “식상한 이야기라면 몰라도, 소재가 식상한 건 아니죠. 오히려 근성 열혈 남자의 이야기 같은 게 식상하지.”

    “또 시비냐?”

    “시비는 키도 선생님이 하셨고요.”

    “······.”

    그때 미치코가 키도를 툭툭 건드렸다.

    “왜?”

    “왜라뇨. 이제 같이 수정하셔야죠.”

    “수정?”

    “아까, 해주신다면서요. 거기다 인쇄공장에도 같이 가주신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랬다고?”

    그 말에 미치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니시다를 쳐다봤다.

    “니시다 선생님도 들으셨죠?”

    니시다가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거 보세요. 키도 선생님은 오늘 하루 우리 일을 도와주셔야 해요.”

    “······.”

    그때 지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뭐. 됐어요. 이건 저희 일인데요.”

    “어머, 선배. 그럼 안 되죠. 약속인데.”

    니시다도 거들었다.

    “그럼요.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고요.”

    “어머나, 역시 니시다 선생님은 정말 옳고 바르신 분이라니까.”

    그 말에 키도가 투덜거렸다.

    “뭐야, 그럼 난 그르고 바르지 않다는 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바르다고 할수없잖아요.”

    미치코의 말을 들은 니시다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말 되네요.”

    “그쵸?”

    키도가 인상을 썼다.

    “끄응.”

    * * *

    전화 너머의 지로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반응이 갈수록 폭발적입니다. 이야기의 재미와 그림의 퀄리티, 연출 때문에 도쿄의 만화관련 행사장엔 머신건 잭의 코스프레가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조금 걱정은 했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네요.”

    -독자들의 팬레터도 예전에 비해 더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독자엽서엔 머신건 잭이 좀 더 많은 페이지를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있고요. 물론 그건 안 될 이야기입니다만. 아무튼 그 정도로 폭발적입니다.

    이번 머신건 잭 링크의 경우엔 미래의 유행을 조금 가져와서 쓴 내용이다.

    내가 살던 시절에는 한물 간 소재일지도 모를 내용이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다.

    조만간 드래곤볼Z가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 스카우터와 함께 전투력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그게 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는 시대니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드래곤볼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인기가 폭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뭔가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 치트 키를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절, 아예 게임을 기반으로 한 만화냐 영화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엄청난 쇼크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건, 반응이 생각보다 더 좋아서 화실도 분위기가 좋으니까 뭐.

    -스토리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도 더 기대가 돼서 저도 매번 흥분하며 원고를 받고 있습니다.

    “콘티는 작업 되는대로 빨리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젠 팩스가 생긴 덕분에 콘티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식자를 뽑아놓을 수 있기 때문에 일이 더 수월해졌다고 들었다.

    아직은 컴퓨터가 발달한 시기가 아니라 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 이렇게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사는 게 덜 바빠지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지로와의 통화를 끊고 나자 이대봉이 소파에 앉아 삼삼삼 커피를 홀짝이며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

    “피도 눈물도 없어서.”

    “뭔 소리야?”

    “내가 일등 하는 게 그렇게 배 아프니? 그런 필살기는 좀 더 뒤에 꺼내도 되었잖아. 아직 잭의 여행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 말에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툭 끼어들었다.

    “뭐라는 거야? 너 때문에 스토리를 바꾸라는 거냐?”

    “누가 바꾸래? 조금 늦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지. 그냥 희망사항. 그런 말도 못하니?”

    “미친. 비싼 커피 마시고 헛소리 할 시간에 스토리나 더 연구해.”

    “흥, 그래도 나 위층에 올라가서 쓸 거야. 안 그래도 조금 있으면 기우도 올 거니까 같이 스토리 작업 할 거야. 류타니 너도 같이 스토리 안 쓸래?”

    그 말에 열심히 먹칠을 하던 류타니가 깜짝 놀라더니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 아니오. 전 갠찬스무니다.”

    “너도 빨리 독립해야 잖아.”

    “아직 마니 부족하무니다. 도그니무는 좀 더 처은처니 새아그를 하고 이서서.”

    “에이, 너는 한국까지 와서 왜 이렇게 느긋해?”

    “오빠는 왜 열심히 하는 류타니를 그렇게 다그쳐?”

    박소미가 끼어들자 이대봉이 혀를 찼다.

    “쯧쯧, 나 같은 야생마가 되려면 홀로 들판에 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헛소리하고 있어. 네가 무슨 야생마야? 들판의 양아치겠지.”

    “야, 실버!”

    어시들이 모두 낄낄거리며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고 있는데, 선희가 작업을 중단하가 내게 다가왔다.

    “이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자신의 콘티노트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콘티를 봤다.

    네 명이 새로운 정글 맵에서 거대한 양의 뿔을 가진 사자모양의 괴물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쓰러진 괴물에게 조크가 포를 겨누자 몽이 막아서는 장면이다.

    선희에겐 연재분량보다 훨씬 앞서간 이야기를 글로 넘겨주었는데, 끝난 부분에서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몽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싸움이 끝나고 나서 몽이 기억을 떠올렸거든.”

    “기억?”

    “그래, 기억 안나? 머신건 잭 초반에 얘들이 들렀던 마을 중에 ‘푸른 오아시스’라는 마을 있었잖아.”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마을에서 몽을 따르던 고양이 기억나?”

    잠시 생각하던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응.”

    “기억나지? 그 고양이 머리에 있던 흉터도.”

    “그럼 이 괴물 머리에 있던 흉터도 같은 거?”

    “그래.”

    “그럼 여기는 그 오아시스야?”

    “그래. 이 마을도 파괴되었거든.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맵으로 지정되던 거야.”

    그제야 납득한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초반에 짧게 등장했던 에피소드의 마을이라 선희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 선희라면 확실히 기억했을 것 같은데, 요즘엔 이야기에 빠진 모양인지 자주 뭔가를 깜빡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데?”

    선희가 묻자 내가 쓰고 있던 노트를 내밀고는 페이지를 넘겨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부터가 다음 콘티부분이야.”

    “나 읽어볼래.”

    “그래.”

    선희가 내게서 노트를 뺏어가듯 가져간다.

    “나도 같이 봐.”

    언제 왔는지, 화실로 들어온 경희가 선희에게 달라붙었다.

    요즘 경희도 머신건 잭에 재미를 붙였는지, 선희가 그린 콘티를 다 읽었던 모양이다.

    곧 글을 읽던 경희가 소리를 빽빽 질렀다.

    “꺄악!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거였어? 오빠가 미쳤나보다 이런 이야기라니.”

    저 녀석이?

    그 말을 들은 어시들이 낄낄거리며 웃으며 날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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