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66화 (366/425)

날아오르라 제임스 (6)

눈을 뜬 이대봉이 한참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평소에도 여행을 돌아다녀서 생소한 환경엔 익숙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랐다.

누운 채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아······ 여기, 호텔이었지? 아야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제 밤늦게 멋진 야경에 취해, 양주를 홀짝거리다 잠든 탓이다.

너무 감상적인 성격을 탓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혼자 쓰기엔 미안할 정도로 넓고 고급스러운 방.

커튼을 젖히자 방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창밖을 쳐다봤더니 깊고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도쿄시내.

야경과는 또 다른 매력에 반했다.

“와, 좋다, 좋아.”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런데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이대봉이 대답하자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푸른색의 호텔 직원 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비닐로 쌓인 옷들을 내려놓았다.

“그게 뭔데요?”

“새로 준비한 옷입니다.”

말끔한 바지와 셔츠, 그리고 속옷까지.

모두 새 옷이다.

이대봉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거 공짜에요?”

그렇게 대답하던 직원이 반사적으로 풋 하며 웃었다가 곧 표정관리를 했다.

“······네.”

“와, 안 그래도 새 옷 한 벌 사려고 했었는데, 잘됐네.”

그렇게 말하며 옷을 살펴보더니 다시 한마디 했다.

“이거, 엄청 유명한 옷 아니에요?”

“그렇게 유명한 건 아닙니다.”

“뭐, 그래도 일본산이니까, 고급이지.”

“······그런가요?”

“잘 입을게요.”

“네······.”

그렇게 말하며 다시 풋 하며 웃은 여직원이 입을 열었다.

“식사는 어떻게······. 이곳으로 보낼까요? 아니면 식당에서 드시겠습니까?”

“밥이요? 밥도 그냥 공짜로 줘요?”

“······네.”

“이거 운이 좋네. 그래도 밥은 식당에서 먹어야죠. 어디에요?”

“15층입니다.”

“네. 금방 갈게요.”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방을 빠져나갔다.

“욕실, 욕실이 어디냐!”

이대봉이 방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고급스러운 욕실 문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여직원이 가져다준 옷을 입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속 거울을 보며 옷과 얼굴을 살폈다.

“디자인 좋다. 누군지 센스가 좋네. 그리고 사이즈도 딱 맞고. 어떻게 알았지? 자고 있을 때 잰 건가?”

아무튼 거울을 보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때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5층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려서자 넓은 식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방금 자신의 방을 찾아왔던 여직원이 이대봉에게 다가왔다.

“저를 따라오세요.”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이대봉이 물었다.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원하시는 자리가 있으세요?”

“아뇨. 그냥 안내 받을게요.”

“네, 그럼 따라오세요.”

이대봉은 여직원을 따라가며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봤다.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님에도 식당 안에는 직원들 외엔 손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점심부터 장사를 시작하나?

여긴 엄청 비싸겠지?

언제 기회가 되면 윤환이네 화실 사람들이랑 같이 왔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발걸음을 멈춘 여직원이 말했다.

“여깁니다.”

“어?”

도시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떡 하니 놓여있는 고급스러운 식탁.

잘은 몰라도 이곳이 가장 좋은 자리라는 건 눈치 챌 수 있었다.

“우와,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네. 여기 가장 비싼 자리 맞죠?”

“······.”

“밥은 얼마나 기다리며 돼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여직원이 멀어졌다.

곧이어 몇 명의 남자 직원들이 다가와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팅이 끝나자마자 요리접시를 든 직원들도 나타났다.

빵과 스프나 놓이고, 곧이어 메인 요리가 놓였다.

접시 중앙에 작은 스테이크 조각과 소스, 그리고 뭔지 모를 잎사귀 하나.

그런데 고기의 모양이 너무나 익숙하다.

“어? 이거······.”

깜짝 놀란 이대봉이 머리를 쭉 내밀어 고기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그거다.

설마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요리.

사실, 지금 눈앞에 있는 음식은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신작 ‘드래곤 수프’에 등장하는 첫 번째 요리 ‘골드카우 스테이크’와 같은 모양이었다.

물론 흑백으로 그려졌으니 컬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설정에선 약간의 황금빛이 도는 고기라고 설명해 두었다.

언젠가 애니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컬러판으로 나올 때를 대비해 구체적인 설정을 잡아두기도 했다.

그런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황금색은 뭐로 표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시각적으로는 완벽하다.

이대봉은 조심스럽게 고기를 잘라 포크로 쿡 찍어 입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와, 이거. 진짜 대단하네. 상상은 했지만 이런 맛이 나는구나.”

이대봉이 고기 맛에 감탄하며 말했다.

여기엔 특별한 소스가 들어가는데, 이대봉의 지식과 상상이 뒤섞인 독특한 소스였다.

소스 레시피는 만화에 공개되어있지만, 정작 이대봉 본인은 맛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이런 소스를 정말로 만들 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정말로 만들다니,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게 또 맛이 있다. 상상한 것보다 더 맛있게 구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재료는 실제로 없는 향신료라 구체적으로 상상해 설명은 해두었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때요? 맛은 만족하세요?”

갑작스러운 여자의 음성에 깜짝 놀란 이대봉이 고기를 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얀색의 요리사복장을 한 사람이 어느 샌가 그의 곁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여자였다.

여자를 보고는 여전히 입을 오물거리던 이대봉이 고기를 삼키고 나서야 말했다.

“이거, 그쪽이 만든 거예요?”

“제 이름은 후지타 카나라고 합니다. 그냥 카나라고 불러주세요.”

“엉? 일본에선 친하지 않으면 이름 부르는 거 아니잖아요.”

이대봉의 말에 카나가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부터 친해지면 되죠.”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카나 씨.”

금방 납득한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때문에 깜짝 놀란 카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저도 그냥 제임스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요. 막 불러요 막. 이런 요리도 만들어 주셨는데. 제가 누나라고 불러드릴까요?”

그 말에 멈칫하던 카나가 곧 크게 웃었다.

“아니요, 제가 더 어린데 그러실 필요는 없고요. 그냥 편하게 부르는 정도는 어떨까 싶은데. 그냥 이름 정도 부르는 사이라도 좋고요.”

“에이, 이왕지사 이렇게 말 나온 거 그냥 친하게 지내요. 나도 그게 편하거든.”

아이처럼 웃는 이대봉을 보며 카나가 긴장했던 어깨에 힘을 빼며 웃었다.

“그럼 그럴까요?”

“그러라니까.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대봉이 친해졌다는 의미로 포크를 입에 문 채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농담을 던졌다.

평소라면 남자가 이렇게 자신을 대하면 화를 내었을지 모르지만, 이대봉은 달랐다.

카나는 그저 이 상황이 너무 좋은 뿐이었다.

그녀도 곧바로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나 21살인데, 나 그렇게 늙어 보여?”

그 말에 이대봉이 움찔하더니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아, 그런 뜻은 아니고. 그냥 농담이야, 농담. 난 나이 많은 아저씨잖아. 한국에선 29살이고, 일본 나이로 28살이야.”

“어머, 그렇게 나이 많아요? 제가 막 부르면 곤란하겠는데?”

정말 의외였다.

카나는 이대봉이 많아도 24-5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대봉이 그런 카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에이, 또 왜 그래. 농담이라니까. 역시 나이 차이가 많아서 싫은 건가?”

“아니, 좋아. 7살차이 쯤이야.”

카나의 말에 이대봉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래. 위 아 더 월드, 세계는 하나라는데. 다 친구지 뭐.”

“그럴까?”

“그래, 그래. 편하게 불러. 막 불러.”

“알았어. 제임스.”

“그래, 그래. 카나야.”

생각보다 성격이 맞는다는 생각에 카나가 즐거워했다.

“그래, 맛은 어때?”

“아참, 아까 그거 물어봤었지. 깜빡했다.”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여전히 고기를 씹으며 대답했다.

“어서 말해 줘. 궁금해. 원작자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맛있어.”

“그래도 네가 생각한 것과 다른 맛이 나면 곤란하잖아.”

“비슷해, 비슷해. 그리고 맛은 더 훌륭하고.”

그 말에 카나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는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다. 너무 다르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그런데 이거 어떻게 맛을 낸 거야? 내 설명만으로 그게 구현이 되든?”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일주일동안 매달려 만든 거야. 금색도 먹을 수 있는 금가루를 사용했고.”

“뭐? 그럼 이게 정말로 금이야?”

열심히 입안으로 고기를 찍어 나르던 이대봉이 손이 멈칫했다.

“맞아. 하지만 가격은 얼마 안 하니까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도 돼.”

“금인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냐? 와, 이럴 줄 알았으면 슬쩍 긁어서 모아둘걸.”

그 말에 카나가 어이없이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아니, 생각한 거랑 너무 달라서.”

“생각한 거랑 달라? 뭐가?”

“실은 어제 네 사인회에 가서 널 봤거든. 그리고 첫 인상이······.”

그렇게 말하던 카나가 머뭇거렸다.

“내 첫인상이 왜? 문제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야.”

“역시 첫인상이 좋았구나.”

“······뭐, 그런 거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여기 사장님에게 인사라도 해야 되는데.”

“인사는 왜?”

“고급 호텔방에서 공짜로 재워주셨잖아. 인사는 당연한 도리지.”

그 말에 카나가 다시 웃었다.

“뭐, 후원인데 당연한 거지.”

“당연하긴, 내가 뭐라고. 거기다가 원래 준비한 호텔방보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줬잖아. 몇 번이고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됐어. 그런 마음이면.”

“에이, 마음만으론 알 수가 있나, 언제 기회가 되면 인사는 꼭 해야겠어.”

“그럴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럼 좋지만.”

“그건 그런데, 부탁이 있거든.”

“뭔데?”

“이거 말이야, 호텔 메뉴로 추가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그 말에 이대봉이 크게 웃었다.

“난 또 뭐라고. 그거야 네 마음이지.”

“그래도 네가 만든 레시피잖아.”

“괜찮아, 괜찮아. 나야 뭐 상상력으로 만든 레시피고, 그냥 만화에서 등장하고 사라질 운명의 레시피를 현실에 구현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지.”

그 말에 카나가 손뼉을 쳤다.

“고마워. 그럼.”

“그래.”

두 사람이 그렇게 웃고 떠들던 그때였다.

“왜 레스토랑을 닫아뒀나 했더니, 제임스 씨 때문이었어?”

이대봉과 카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는 흰색 정장차림의 여자, 바로 이즈미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엔 평소처럼 정장 차림의 노인이 따라오고 있었다.

“카나, 오랜만이다.”

“이, 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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