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65화 (365/425)
  • 날아오르라 제임스 (5)

    갑작스러운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2층에서 그 모습을 본 야지마가 뜨억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곧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설마 저런 황당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야지마가 그 상태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옷이라도 제대로 하고, 천천히 나오시지. 저게 도대체······.”

    야지마의 주변에 있던 직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직원 중 한명이 야지마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와, 저 분이 제임스 선생님이세요?”

    “어, 응.”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지 못한 채 그냥 대답했다.

    “진짜, 저 분이세요?”

    “그렇다니까.”

    자꾸 묻는 직원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이 의외의 말을 던졌다.

    “엄청 미남이시네. 연예인 아니에요?”

    “······뭐?”

    “만화가, 스토리 작가들을 통틀어도 저런 얼굴은 처음 봐요.”

    “······.”

    야지마가 머리를 천천히 들어 다시 이대봉의 모습을 쳐다봤다.

    아까와는 달리 이미 바지를 잘 추슬러 입은 상태로 무대에 도착해 있었다.

    하얗고 반들거리는 피부에 오뚝한 콧날,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눈빛.

    달려온 덕분에 머리가 흐트러져 있긴 했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대봉이 잘 생겼다는 게 새삼스럽다.

    이대봉이 그 머리를 슬쩍 쓸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던 장소에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마치, 꽃미남 가수의 공연장에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

    “······어?”

    순간 야지마가 황당해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히 줄서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웅성거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곁에 있던 직원들의 감탄 섞인 음성이 들린다.

    “와, 얼굴 진짜 잘 생겼다. 남자가 봐도 감탄스럽네.”

    그때 2층에서 일하던 서점 여직원들도 모여들었다.

    “저 사람 누구래? 오늘 연예인?”

    “아니, 만화가라는 모양이야.”

    “만화가?”

    그때 다른 여직원이 끼어들었다.

    “만화가는 저쪽이고, 저 미남은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래.”

    여직원들이 2층의 난간에 붙어 이대봉을 보며 흥분해 있다.

    그때 아래에선 진행요원이 그를 자리로 안내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곧 중앙 홀의 분위기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도 이대봉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는지 오히려 사람들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부린다.

    그러자 이번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실내를 흔들었다.

    그 때문일까, 사인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일반인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야지마가 있던 2층뿐만이 아니라 3층과 4층의 난간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덕분에 진행요원들이 바빠졌다.

    사람들의 통제가 쉽지 않자, 이번엔 출판사 직원들도 나서고 더불어 서점의 직원들까지 합세했다.

    잠시 동안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직원들의 발 빠른 조치로 곧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을 몇 번 해본 노련한 직원들이 꽤 많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중앙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직원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아직은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금방 표정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반응이 생각보다 좋군요. 자 이제 사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소리와 함께 줄서있던 사람들이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줄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무카이 앞으로는 몇 사람 서지 않고, 대부분이 이대봉의 앞에 줄을 선 것이다.

    그나마 무카이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었다.

    이대봉이 잘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야지마가 자신의 머리를 다시 감쌌다.

    “이, 이런.”

    설마, 이렇게까지 극대 극으로 나누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누구도 아닌 무카이였다.

    그는 자신 앞에 있는 몇 안 되는 남자들과 이대봉 앞으로 길게 늘어진 줄을 비교하고는 절망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이대봉 근처에 서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이다.

    야지마는 서둘러 내려가서는 무카이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 뒤로 다가가 조그맣게 귓속말을 했다.

    “어차피, 두 사람 다 사인을 받는 거잖아. 너무 상심하지 마.”

    그러자 무카이가 묘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사, 상심 안하는데요.”

    누가 봐도 심각하게 상심하고 있는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야지마가 쓰게 웃었다.

    “그,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때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사인을 받기위해 줄을 섰던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감격한 얼굴로 사인을 받으며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가 말했다.

    “죄송한데······, 악수해도 돼요?”

    “당연하죠.”

    이대봉이 밝게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가 손을 자신 쪽으로 휙 당겼다.

    그러자 방심하고 있던 이대봉이 끌려 나갔다.

    얼떨결에 딸려갔던 이대봉을 양 볼을 여자가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다짜고짜 키스를 하려고 하자 놀란 직원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저지했다. 그리고는 곧장 사인회장에서 끌려 나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그러려고 한 건 아니고요! 그냥 저도 모르게······. 제가 미쳤었나봐요!”

    여자가 질질 끌려 나가자, 그 모습을 보던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정말 양심도 없어.”

    “그러게.”

    그때 어떤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

    그 말을 들은 여자들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무카이의 표정이 더 울상이 되었다.

    “너무······ 부럽다.”

    작게 소곤거리듯 말했지만 야지마도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

    사인회는 성공적이었다.

    사인회는 처음 2시간 정도를 계획하고 시작되었지만,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4시간 이상을 진행하다 결국 중단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그날 서점에 있던 모든 소년 히어로가 완판 되었고, 두 사람의 전작인 중원요리왕의 단행본도 엄청난 양이 팔려나갔다.

    다음에도 사인회를 하자는 희망이 있었지만, 무카이 시간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좌절되었다. 물론 이대봉만 있어도 좋다는 게 서점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대봉이 반대했다.

    “무카이 선생님이 빠지면 그건 더 이상 드래곤 수프가 아니죠.”

    결국 서점의 아쉬움에도 다음 사인회는 무산되었다.

    “저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임스 선생님.”

    “네. 다음에 또 봬요.”

    무카이가 택시를 타고 멀어지자 곧 이대봉 앞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섰다.

    제복차림의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뒷문을 직접 열었다.

    “······?”

    “타시죠, 제임스 선생님.”

    “저요?”

    “네.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출판사에서 나오신 건가요?”

    “아뇨. 엠파이어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엠파이어 호텔이요? 뭔가 잘 못 아신 것 같은데.”

    그때 이대봉이 있던 곳으로 야지마가 달려왔다.

    서점의 관리자들과 얘기하느라 늦게 온 것이다.

    아무튼 야지마가 다가와서는 기사에게 물었다.

    “호텔에서 오신건가요?”

    “네. 직접 제임스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담당이신 야지마 씨도 같이요.”

    “저도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택시타고 가면 되는데.”

    “호텔이 바뀌었습니다.”

    “네? 호텔이 바뀌다니요?”

    “저희가 준비한 방이 부족할 것 같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연락을 받자마자 온 겁니다. 그러니까 어서 타시죠.”

    “무슨 일이지?”

    야지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곧 이대봉에게 말했다.

    “그럼 가시죠. 선생님.”

    “네.”

    이대봉은 그저 싱글벙글하며 세단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곧바로 야지마가 조수석에 타자 곧 차가 출발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이대봉이 야지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텔에서 왜 절 데려가는 겁니까?”

    “이번 사인회 이벤트를 후원하는 곳이 엠파이어 호텔이거든요.”

    “어? 출판사에서 하는 행사가 아니구요?”

    “네. 원래는 저희가 조촐하게 마련하려고 했습니다만, 호텔 측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럼, 1등석 비행기 표도 호텔에서 준비한 거예요?”

    “네. 맞습니다.”

    이제야 왜 이윤환과 이선희는 일반석이고 자신만 1등석인지 이해를 한 것이다.

    설마 호텔에서 사인회를 후원할 줄이야.

    “무카이 선생님도 후원은 받으셨겠죠?”

    “아니요, 제임스 선생님만 받으셨습니다.”

    “저 혼자 만요?”

    “네.”

    혼자만 받았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한국인이고 거리가 멀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보통 호텔에서 후원하는 게 흔한 일인가요?”

    “그럴 리가요. 저희도 처음 겪는 일인데요.”

    “그래요? 그럼 윤환, 아니 텐겐이랑 써니도 그런 적이 없다는 거예요?”

    “네. 그땐 저희 출판사에서 직접 진행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히죽 웃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뭔가 이겼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이겨요?”

    “네. 걔들도 못 받아본 후원을 받았으니까요. 역시 사람 팔자는 모르는 거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혼자 낄낄거리자 그 모습을 보며 야지마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혼자 낄낄거리던 이대봉이 곧 웃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흔하지도 않은 호텔의 후원이 왜 자신에게 온 것일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이니 자신은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탄 승용차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

    뒷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이대봉이 호텔을 올려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으아, 이게 제가 묵을 호텔입니까?”

    야지마도 그런 이대봉 곁에서 같이 올려다보며 놀란 눈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 아마도 그런 모양인데요.”

    그렇게 두 사람이 호텔건물을 올려다보고 감탄하고 있던 그때, 입구 쪽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며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저희 호텔에 오신 걸 환영해요, 제임스 선생님.”

    정장차림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이대봉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이대봉이 들었던 고개를 내리고는 여자를 보며 놀란 표정이 되었다.

    “여기 호텔 주인 되세요?”

    그 말에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배시시 웃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전 여기 호텔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의 비서입니다.”

    “아, 네.”

    그런데 여자가 곧 야지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부터는 저희가 선생님을 모실 테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 네.”

    “모셔다 드리도록 하세요.”

    여비서의 말에 운전기사가 머리를 꾸벅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호텔에서 편히 쉬십시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아, 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네.”

    그렇게 대답한 야지마가 다시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자, 여자가 이대봉에게 말했다.

    “제임스 선생님, 그럼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에.”

    이대봉은 기분이 좋은지 어깨를 실룩거리며 여자를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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