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64화 (364/425)
  • 날아오르라 제임스 (4)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드래곤의 인기는 대단했다.

    시작과 동시에 공동 2위가 되며 파란을 일으키더니, 한 주 만에 진심의 남자를 밀어내고 단독 2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계속 2위를 유지하더니 오늘 우리의 머시건 잭을 밀어내고 결국 1위까지 해버린 것이다.

    이걸 두고는 편집부에선 기적과도 같은 이변이라며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철옹성과 같던 머신건 잭을 밀어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거기다 드래곤 수프 덕분인지 잡지 판매량도 평소보다 10만부 정도 늘었다고 들었다.

    이미 백만 부를 훌쩍 넘어가는 상황에서 10만부가 얼마나 대단하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소년 히어로가 초창기 판매부수가 10만부에 훨씬 미치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드래곤 수프가 1위를 차지한 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그동안 머신건 잭이 너무 오랫동안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머신건 잭을 넘어서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반짝 뿐인 영광일 지라도.

    물론 드래곤 수프가 반짝 히트하고 사라질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손을 놓고 그저 보고만 있는 건 아니거든.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선희와도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 에피소드는 정해진 이야기고 몇 화 이내로 마무리 지을 참이고, 새로운 이야기는 다음에 등장할 예정이다.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어떠냐면, 뭐 자신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저 새로운 앙케이트 챔피언을 축하해줄 뿐이다.

    “내가 세상의 왕이다!”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실버가 날뛰며 좋아하는 이대봉을 보며 인상을 썼다.

    “야, 이 미친놈아. 오버 좀 작작해라. 왕이 무슨.”

    “윤환이랑 선희를 이겼잖아. 그럼 왕이나 다름없지. 넌 이겨봤어?”

    “뭐야?”

    “부러우면 너도 독립하든가. 설마 지금 생활에 계속 만족하는 건 아니겠지?”

    “만족하는데? 뭐가 문제냐? 월급 잘 나와, 보너스 꼬박꼬박 줘. 단행본 판매가 좋으면 추가 성과급까지 주는데. 대기업에서도 이정도 대우는 못 받아.”

    그 말에 이대봉이 콧방귀를 꼈다.

    “창작을 해야지, 창작.”

    “창작은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돼. 나는 원래 기능직이라, 그런 건 관심 없어.”

    그런 실버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대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넌 야망도 없니?”

    “뭔 야망?”

    “만화로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별로, 난 이미 이 배에 탄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해서. 그리고 방금 말했듯이 난 기능직이라니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을 뿐이지,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가는 머리 아파서 싫어. 난 지금 만족하고 있다.”

    처음 알았다.

    실버가 지금에 만족하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실버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대부분 어시들은 틈나는 대로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거나, 따로 연출이나 스토리 공부를 하는데 반해 실버는 그림 그리는 거 아니면 신문이나 책을 보는 게 일상이니까.

    그리고 그때가 가장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역시 미자 때문이지?”

    “너 이 자식 남의 부인 이름을 함부로 부를래?”

    “아, 미안. 아무튼 미자 씨 때문이 맞지?”

    “뭔 소리야? 왜 미자 씨 때문인데?”

    “너 나중엔 미자 씨 어시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만화로 성공하면 멋지게 사표 던지고 거기 가서 도와주려고.”

    그 말에 실버가 피식 웃었다.

    “내가 그렇고 싶어도 못하게 할 걸?”

    “응? 왜?”

    “왜긴 날 위해서지.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크음. 아무튼 네 말은 틀렸다.”

    “뭐야? 너 미자 씨랑 얘기 이미 했었구나.”

    “그런 적 없어.”

    “방금 네 입으로 그랬잖아.”

    “증거 있어?”

    “너희들 들었지?”

    하지만 어시들은 두 사람의 싸움이 일상적인 일이라 그런지 그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자신의 편을 찾지 못한 이대봉은 날 쳐다봤지만 나도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튼 지금은 실버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서.

    어쨌거나 실버가 계속 남아주겠다고까지 말하는데.

    사실 실버는 이미 화실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본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시들의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치프어시의 역할도 하고 있으니까.

    덕분에 선희와 난 화실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무튼 언제까지라도 실버가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다행이다.

    물론 다른 어시들도 남아주면 고맙지만, 대부분은 만화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차미정이 이대봉에게 말했다.

    “제임스 오빠, 전화.”

    “어? 내 전화?”

    “어. 야지마 씨. 혹시나 싶어서 전화해본 거래.”

    이대봉이 차미정에게서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네, 제임스입니다.”

    -······.

    “정말입니까?”

    -······.

    “네, 당연히 가야죠. 무조건.”

    -······.

    “네. 감사합니다!”

    흥분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더니 날 휙 쳐다본다.

    “왜? 일본에서 오래?”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바보냐? 형 입으로 말했잖아.”

    “아, 그런가?”

    그렇게 말하고는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뭐야? 중요한 말 하려는 거 아니었어? 그냥 일본에 가는 게 끝이야?”

    “아, 참. 깜빡했네.”

    “네가 붕어냐? 그 몇 초 사이에 잊어버려?”

    실버의 잔소리에도 그저 웃을 뿐이다.

    이대봉이 실실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인회 때문에 와 달래.”

    “사인회?”

    “어. 죽이지?”

    이대봉이 양쪽 어깨를 교대로 실룩거리며 좋아한다.

    그러자 이제까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어시들도 머리를 들었다.

    박소미가 물었다.

    “오빠, 그럼 일본사람들에게 사인해주는 거야?”

    “당연하지.”

    “단독 사인회?”

    “그건 아니고. 작화 담당인 무카이 선생님이랑 같이 할 거야.”

    “오, 멋진데.”

    “그렇지? 이참에 내가 한글로 멋들어지게 사인을 해줄 참이야.”

    그 말에 실버가 피식 웃었다.

    “되게 웃기겠네.”

    그 말에 이대봉의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넌 또 뭐가 불만인데. 내 사인이 왜 웃겨?”

    “너, 사인은 분명 제임스로 쓸 거 아니냐?”

    “······그야 당연하지. 제임스니까.”

    “그런데 그걸 한글로 써?”

    그제야 다른 어시들도 납득했는지 머리를 끄덕거렸다.

    “뭔가 폼이 나지는 않네.”

    “그러게. 한글로 제임스라고 쓰면 좀 이상한 느낌이긴 하겠다.”

    모두가 그렇게 떠들어대자 이대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런가?”

    “너 그동안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사인 연습한 거 아니냐?”

    “아, 아니거든.”

    “딱 보니 맞구만.”

    “······.”

    “너, 영어로 제임스 철자 모르지?”

    “······알아.”

    “뭔데? 말해봐.”

    “제이······.”

    그때 화실에 경희가 들어왔다.

    그런 경희를 이대봉이 반겼다.

    “아, 경희구나. 이제 오는 거니?”

    “뭐라는 거야. 장보고 오는 건데. 이거.”

    그렇게 말하며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어 보여준다.

    “야, 갑자기 왜 말을 돌려? 다시 말해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있잖아, 윤환아. 들어봐.”

    갑자기 날 보며 말하자 실버가 짜증을 부렸다.

    “아, 저 자식은 꼭 저렇게 피해가네.”

    “윤환아. 나 일등석으로 표를 보내주겠다고 하더라.”

    “뭐? 일등석? 퍼스트 클래스?”

    “역시 우리 윤환이는 영어도 잘해.”

    “누구랑 다르게 말이지.”

    실버가 슬쩍 끼어들자, 그를 째려보던 이대봉이 다시 나를 보며 웃었다.

    “아무튼 일등석이라니 그거 무지 비싸겠지?”

    “엄청 비싸지. 나도 아직 이코노미 밖에 안 타봤거든.”

    “일반석말이지? 윤환이 너랑 선희도 일반석밖에 안 타봤다는 거지?”

    “뭘 그렇게 강조하고 그래.”

    내 말에 히죽거리던 이대봉이 다시 양쪽 어깨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역시 새로운 왕의 탄생이라는 건가?”

    “망할 저 자식, 얄밉게 말하네.”

    그렇게 버럭 소리친 실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자 어시들이 그를 말렸다.

    “형, 진정하세요.”

    “놔, 저 자식은 3일에 한 번씩은 처 맞아야 된다니까.”

    그 말을 들은 이대봉이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북어냐!”

    * * *

    며칠 후.

    도쿄시내의 유명 서점.

    이곳은 소년 히어로 출신의 만화가들이 주로 사인회를 여는 곳으로, 오래전에 만화가 써니가 사인회를 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장소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서점은 옆의 점포까지 사들이고 건물을 증축하는 등 확장을 거듭해, 지금은 일본 최고의 서점이 되어 있었다.

    특히나 이곳은 만화부스가 가장 유명했다.

    그곳의 중앙에 있는 분수대 실내 광장에서는 지금 사인회가 한 창 준비 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이어진 사람의 행렬.

    정확히는 이번 사인행사를 찾은 이들이 줄을 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긴 줄을 위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번 행사에 참가한 출판사 측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네요.”

    “그러게. 처음 여기에서 사인회를 한다고 했을 땐 좀 과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맞아요. 무카이 선생님이나 제임스 선생님의 인지도는 좀 부족하니까요.”

    “역시 돌풍의 주역이라 그런 건가? 이번 연재하는 동안 인기가 엄청났으니까.”

    “아마도 그런 모양이에요. 새로운 왕의 탄생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때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 새로운 왕의 탄생이라. 듣기 좋은데?”

    야지마가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그를 반겼다.

    “아, 야지마 팀장님.”

    “어서 오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원래는 더 일찍 나오려고 했는데, 제임스 선생님 때문에.”

    그 말에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

    “제임스 선생님이요? 왜요? 어디 아프세요? 설마, 일본음식이 너무 안 맞으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야.”

    “네? 반대요?”

    “어제 과식을 하셨거든. 이번 기회에 많이 먹어봐야 한다고······.”

    그 말에 직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음식 전문가답네. 그래, 지금은 어떠신데요? 괜찮으세요?”

    “방금도 화장실에 가셨어. 아침에도 호텔에서 뭔가 많이 드신 모양이라. 그래도 소화력은 좋으신 모양이더라.”

    그 말에 모두 웃었다.

    그때, 중앙 홀에서 직원이 마이크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곧 사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드래곤 수프의 작화를 담당하신 무카이 하지메 선생님이 입장하시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곧 무카이가 중앙에 긴장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쭈뼛거리며 나오는 그를 보며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우리 무카이 선생은 너무 낯을 가린다니까. 나한테 버럭 하는 용기만 있어도 좋을 텐데 말이지.”

    그 말에 다른 직원들이 웃었다.

    그리고 그때 마이크를 든 직원이 다시 말했다.

    [자 그림 사인회를 시작합니다.]

    그때 줄서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제임스 선생님은요?”

    그 질문에 마이크를 내려놓던 직원이 다시 들고는 대답했다.

    [제임스 선생님은 조금 늦으신다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마이크를 내려놓던 그때였다.

    사인회가 열리던 무대 한쪽 편에서 바지를 끌어올리며 뛰어오는 남자가 소리쳤다.

    “저 왔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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