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63화 (363/425)

날아오르라 제임스 (3)

며칠 후, 야지마가 무카이의 화실을 다시 찾아왔다.

“네임이 완성됐다고?”

“네. 읽어봐요.”

그렇게 말한 무카이가 야지마에게 네임노트를 내밀었다.

평소처럼 한국에서 보내온 제임스의 네임 복사본을 기반으로 만든 건데 어째 내미는 손이 조심스럽다.

“왜, 그래?”

“이거 정말 내 모든 걸 쏟아 부었거든.”

그제야 무카이의 눈 밑이 까맣게 변해있다는 것을 야지마가 눈치 챘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내 얼굴 따윈 신경 끄고 어서 읽어보기나 해요.”

“아, 그래.”

야지마가 얼떨떨한 효정으로 네임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쭉 다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연출이······ 정말 좋다.”

“정말?”

“그래. 네 말대로 쏟아 부은 모양이네.”

“그렇다니까.”

“이 정도면 좋아. 제임스 선생님의 네임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특히, 전쟁장면은 실제 원고를 봐야 하겠지만, 네임대로면 꽤 웅장하게 보일 것 같아서 좋고.”

그 말에 무카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이대로 연재해도 되겠네요.”

“그 전에 제임스 선생님에게 먼저 보내고.”

“네임을 제임스 선생님에게요?”

“그래.”

야지마가 머리를 끄덕이자 무카이가 당황했다.

“갑자기 왜? 이제까지 내게 맡겼었잖아. 혹시 제임스 선생님이 부탁한 겁니까?”

“맞아.”

“혹시 내가 연출력을 못 미더워 하시는 건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무카이가 말하자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니고, 확인을 좀 하고 싶다하셔서.”

“확인? 무슨 확인?”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거겠지.”

“전에는 그런 적 없었잖아.”

“뭐, 어쩌면 텐겐 선생님에게 보여주려는 건지도 모르지.”

“테, 텐겐 선생님? 진짜?”

“그래. 듣기론 이번 스토리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모양이더라.”

하지만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무카이는 그대로 얼어붙어있었다.

“무카이, 왜 그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카이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혹시 써니 선생님도 볼 수 있겠네.”

“써니 선생님?”

“그래, 남매잖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

“결국 텐겐 선생님이 보는 것보다 써니 선생님이 보는 걸 더 신경 쓰고 있구만.”

야지마의 말에 버럭 했다.

“아, 아니거든!”

“괜히 빼지 않아도 돼. 써니 선생님이 좀 귀엽게 생기셔야지. 안 그래도 가끔 돌아다니는 써니 선생님 사진이 팬들 사이에서 비싸게 팔린다는 소문도 있고.”

“난 순수하게 실력으로 써니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

“그래, 알았어. 그렇다고 해두자.”

“뭘 그렇다고 해둬. 진짜 아니라니까!”

그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피식 웃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다. 넌 순수하다. 됐냐?”

“······.”

“아무튼 부담스럽다는 거지?”

“당연하지! 텐겐 선생님이랑 써니 선생님이 본다는데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럼, 부담스러우니까 그건 곤란하다고 얘기할게.”

그러자 갑자기 무카이가 야지마의 어깨를 붙들었다.

“부담스럽다고 했지, 안한다고는 안했어.”

“어? 그럼 할 거야?”

“그래, 목숨을 걸어보겠어.”

퀭한 눈에서 다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 모습을 본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그래. 하지만, 마음만 그렇게 해라, 진짜 목숨은 걸지 말고. 이번 작품은 정말 오래오래 연재했으면 좋겠으니까.”

“그래, 이번엔 담당이 세 번 이상 바뀔 때까지 연재하겠다는 각오로 할게.”

무카이의 다짐에 야지마가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망할 녀석.”

* * *

이대봉이 화실에 들어오면서 꽥 소리를 질렀다.

“윤환아! 윤환아!”

“아이고, 시끄럽다! 귀 안 먹었어, 그만 소리쳐!”

“아, 거기 있었구나.”

소파에 앉아있던 날 발견한 이대봉이 히죽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항상 여기에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왜 날 찾아?”

“이거 보여주려고.”

그렇게 말하며 히죽거리더니 들고 온 가죽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내서 내 앞에 불쑥 내밀었다.

“뭔데? 원고?”

“아니, 콘티. 내가 야지마 씨에게 원고 완성 전에 콘티복사본 볼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수락하고는 보냈더라. 그리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너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가져왔지.”

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형도 이참에 팩스 하나 구입해라. 언제까지 귀찮게 일일이 다 소포로 받을 건데.”

실은 우리도 얼마 전부터 팩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어시들도 사용법을 이해하느라 조금 고생중이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이전보다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앞으로는 여기 와서 부탁하면 되지.”

“그냥 한 대 사. 돈도 많이 벌면서.”

“너보다야 하겠니?”

“그래도 팩스 정도는 문제없잖아.”

“그건 그런데······.”

“뭐가 문젠데?”

“아직 그런 신문물을 재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래.”

“신문물?”

“내가 기계에 좀 약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이대봉은 형광등도 제 손으로 갈 줄 모른다고 할 정도니.

운전면허시험도 실기를 20번 도전해서 힘들게 붙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지금이야 본인 말대로 하자면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이대봉에게서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에 들어 있는 종이들을 꺼냈다.

복사된 콘티를 보며 물었다.

“콘티가 상당히 보기 좋게 되어있네. 무카이 선생님이 꼼꼼한 성격인 모양이야.”

“전에 몇 번 복사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땐 안 그랬는데, 이번엔 다르더라.”

“그럼 형이 본다고 보기 좋게 만든 모양이지.”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예전에 그렸던 만화에 비해 연출력이 상당히 발전한 느낌이다.

“연출이 예전에 비해 굉장히 좋아진 것 같은데.”

“그렇지? 무카이 선생님도 노력파니까. 듣기론 선희의 팬이라고 하더라고. 너희들 만화를 많이 연구하는 모양이더라.”

“그래?”

그러고 보니 선희의 연출스타일이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대봉의 어설픈 연출을 상당히 잘 보정해서 스토리가 확 살아나는 느낌이다.

덕분에 이야기가 술술 눈에 들어온다.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장면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대봉은 가끔 콘티에서 소설 같은 묘사를 할 때가 있는데, 이게 좀 애매해서 그림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장면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나름대로 잘 해석했고, 그 느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특히나 훌리안의 등장 씬이 인상적이다.

황량한 들판에 부는 바람, 그리고 언덕에서 훌리안이 등장하는 모습은 영화의 장면처럼 멋들어졌다.

그리고 언덕 아래에 보이는 전쟁터의 모습.

펜터치에서 어떻게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콘티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한 전장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가볍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훌리안의 등장을 기점으로 나름 심각해지는 분위기라 기존의 팬들이라면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잃는 것 이상의 새로운 팬을 유입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복사된 콘티를 살펴보고 났더니, 우리도 분발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잘해야 한다.

최근 선희도 나름 연출이라든가 그림에 변화를 주며 스스로 발전해나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니까.

물론 순위야 아직 1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기잡지 연재만화들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다가 선희책상 아래에 있던 백설기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평소처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선희가 손을 아래로 뻗어 뭔가를 먹인다.

평소 좋아하는 멸치인 모양이다.

그 모습을 아무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그런 내 시선을 이대봉의 얼굴이 가로 막았다.

“왜 그래?”

이대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뭐?”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내가보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백설기 보고 있었냐?”

“······.”

“그 정도로 별로야?”

“뭐?”

“딴 짓 하고 있으니까.”

“그건 아니고,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생각?”

“어. 생각보다 콘티가 괜찮아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어. 백설기는 그냥 눈에 들어온 거고.”

“스스로를 돌아봐?”

이대봉이 묘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낄낄거렸다.

“왜 웃는데?”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

“이번엔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온 모양이다.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정도면.”

내가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형 말대로야. 나도 이제부턴 제대로 분발해야겠어.”

“야, 넌 그럼 안 되지.”

“안되다니?”

“이미 잡지 내 1위잖아. 그런데 거기서 또 뭔 분발을 더 해?”

그때 실버가 입을 열었다.

“야, 우리 윤환이랑 써니가 소년 히어로 1위로 만족할 것 같냐? 얘네 들은 애초에 목표가 너랑은 차원이 다른데.”

“나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를 만들고 싶은 건 똑같아.”

“막연한 기대 말고, 진짜 목표 말이야. 멍청한 놈아.”

“이씨, 진짜! 나도 진짜야!”

그때 선희가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너도 보려고?”

내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대봉의 콘티가 어떤 식으로 작업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콘티와 데생을 슥 훑어보더니, 별다른 반응도 없이 그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반응을 본 이대봉이 물었다.

“왜, 별로야?”

그러자 다시 펜을 집어든 선희가 머리를 슬쩍 끄덕이더니 작업에 열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낄낄거렸다.

“작화 선생인 봤으면 충격 받았겠는데?”

이대봉은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이 번만큼은 선희도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다음날 이대봉은 전화를 걸어 ‘써니 선생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라고 했단다.

뭐 작화를 담당한 무카이가 좋아했다니, 그걸로 된 거겠지.

* * *

드래곤 수프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실린 소년 히어로가 발간되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독자엽서와 팬레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의 앙케이트 순위에서도 뜨거운 반응의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드래곤 수프! 야지마 팀장님!”

직원이 A4용지를 들고 오며 부르자, 야지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위는······.”

“말하지 마! 그냥 종이 줘! 내가 직접 볼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주위로 다른 직원들도 모여들었다.

“나도 줘.”

“나도!”

“저도 주세요!”

야지마는 주변이 시끄러웠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긴장한 표정으로 종이를 확인했다.

보통 때처럼 순위를 아래부터 확인해나갔다.

최근 성적인 아래에서부터 확인하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렇게 확인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괜히 기대만 컸다가 생각보다 낮으면 실망할 테니까.

하지만, 아래서부터 확인하면 점점 기대가 올라가게 된다.

아무튼 손바닥으로 가린 채 하나씩 확인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위까지 확인하고도 등장하지 않자 슬슬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그렇게 6위까지도 등장하지 않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갑자기 순위가 뛰어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4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마른침을 삼킨 뒤 손바닥을 한 단계 더 들어올렸다.

그런데 4위에서 갑자기 2위가 보인다.

공동 2위.

그리고 그곳에 키도 선생의 ‘진심의 남자’와 ‘드래곤 수프’가 나란히 쓰여 있다.

순간 야지마가 멍한 얼굴로 얼어붙어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함성을 질렀다.

“이야아! 제임스 선생님 감사합니다! 무카이 선생 잘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