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르라 제임스 (1)
“어? 너 오늘까지 쉬는 날 아니었어?”
이대봉이 화실에 들어오며 실버에게 말했다.
실제로 이대봉의 말대로 원래 실버는 오늘까지 쉬는 날이었다.
“시끄러. 모두 바쁜데 나만 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뭐라는 거야? 결혼한 네가 그걸 왜 신경 써? 그저 이럴 땐 미친척하고 쉬는 거지.”
“내가 너냐?”
“그래도 예쁜 신부를 혼자 두고 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음흉하게 웃는다.
그때 박소미가 혀를 찼다.
“제임스 오빠.”
“응? 왜?”
“오늘 미자언니도 화실로 출근했어. 그쪽도 원고 바빠서 놀고 있을 수 없다고.”
“아······, 그랬니?”
나도 그 얘긴 아침에 실버가 출근할 때 들었다.
아무래도 만화가라는 직업은 쉬기가 어려우니까. 거기다 연재하는 곳이 일본이니 더 그렇고.
물론 독자들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한주 쉴 수는 있지만, 본인들이 용납을 못하는 이유도 있으니 더 그렇다.
“옛날 신랑처럼 발바닥이라도 때려줬어야 되는데.”
이대봉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다.
“형이 때리게?”
“그야······.”
그렇게 말하며 실버를 힐끔거렸다.
살벌한 실버의 눈빛을 보던 이대봉이 어색하게 웃었다.
“난 힘들지만, 윤환이 너라면.”
“날 왜 끌어들여?”
아무리 나라도 실버를 건드리는 건 사양이다.
저 인간은 정말 인간병기 같아서 괜히 그런 짓을 하려다간 처맞을게 뻔 하니까.
그때 실버가 이를 슥 드러내며 이대봉에게 말했다.
“그럼 네가 내 목에 방울을 달아보면 되겠네.”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흠칫 몸을 떨었다.
“자자, 그런 얘기는 관두고 다른 얘기하자.”
이대봉이 어색하게 웃더니 실버의 시선을 피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곧 뭔가를 생각하더니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저기, 나 요즘 벼랑에 내몰렸어.”
갑자기 측은하게 보이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벼랑? 혹시 드래곤 수프?”
“응. 그거. 처음엔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 계속 순위가 떨어지고 있어서.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어.”
나도 그 얘기는 지로에게 전해 들었다.
드래곤 수프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며, 이대로 가면 단행본 두 권 내기도 어려울지 모른단다.
처음엔 괜찮은 반응이었는데.
“초반의 신선함이 떨어졌대. 너도 그러니?”
“형은 어떤데?”
“솔직히 나도 좀 그런 느낌이야. 지금 흐름은 전작이랑 별로 달라진 것 같지도 않고. 윤환이 네 의견을 듣고 싶은데, 어때?”
솔직히 나도 요즘 드래곤 수프를 보면서 예전에 연재하던 중원요리왕에 비해 재미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턱을 긁적이며 짧게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짧은 이야기로 봤을 땐 괜찮았는데, 이게 장편이 되니까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어떤 문제?”
“주인공인 마리오의 캐릭터 성도 예전에 비해 좀 모자라고, 스토리도 예전에 비해 그리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까 단순한 판타지 세계의 음식 이야기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거든.”
“그래도 실제 존재하는 음식처럼 레시피도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그거야, 중원요리왕도 그랬지.”
“그럼 또 뭐가 문제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캐릭터가 평범해. 너무 심심해서 어떨 땐 좀 심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당장 캐릭터는 바꾸기 그런데.”
“당연히 그렇겠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글쎄, 음.”
잠시 생각하다가 멈칫했다.
“주인공만의 필살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필살기? 싸움만화가 아닌데, 필살기가 어디 있니?”
“아니,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무기 같은 거. 주인공만이 가지고 있는.”
“음식에 대한 재능은 있지.”
“그런 평범한 거 말고.”
잠시 고민하던 이대봉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거 말고는 딱히······.”
“그럼, 역시 전설의 레시피를 가진 사람이나, 책 같은 걸 찾는 건 어때?”
그 말에 이대봉이 피식 웃었다.
“무협처럼? 최강의 무공서나 기인을 만나는 기연 같은걸 말하고 싶은 거야?”
“그래. 전설의 무공을 전설의 레시피로 바꾸는 거지. 그 레시피가 있다면, 흔해빠진 동물의 요리도 엄청난 요리가 될 수 있다. 뭐 이런 거.”
내 말을 들은 이대봉의 표정이 점점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변해갔다.
“전설의 레시피라······, 꽤 괜찮은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특별하지 않으니까, 뭔가 목적을 만드는 것도 괜찮지.”
“목적?”
“그래. 전설의 레시피를 얻어서 요리를 만들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큰일. 가령 어떤 마을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전염병이 돌아 모두 죽을 지경에 몰렸다거나.”
“해독약 같은 거? 그런 건 좀 단순한 느낌인데.”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 이를테면.”
그 얘기를 들은 이대봉이 생각에 잠겼다.
뭔가 새로운 것이 떠오르는 표정인데.
잠시 후 진지한 표정의 이대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어때? 전설의 레시피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쉽게 구하면 재미가 없잖아. 그러니까 좀 색다른 방법을 사용해보면 어때?”
“어떻게?”
“그러니까, 그 레시피를 얻기 위해서는 몇 명의 전설 장인을 만나서 그들이 던지는 힌트를 조합해야 한다는 식.”
“오, 그럼 그 장인들은 그 레시피의 일부를 얻은 사람이라는 설정을 하면 괜찮겠다.”
그 말에 이대봉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런 거 괜찮다. 그 레시피의 마스터의 후인이 여럿이었고, 그들이 이어받은 기술을 통합하면 그 레시피가 나오는 거.”
“그 방법을 사용하면 절대요리가 나온다는 거군.”
“절대····· 요리라. 그거 괜찮은 말이다. 마음에 들어.”
이대봉이 서둘러 메모지에 글자를 써나간다.
방금 대화했던 내용들을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로 휘갈겨 쓰고 있다.
그러더니 다시 쓰는 걸 멈추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걸로는 좀 부족한 느낌인데.”
“이유가 부족해서 그런 걸 거야.”
“아, 그래. 이유. 그런 절대요리 레시피를 얻어야 할 진짜 이유가 필요하잖아.”
“이 레시피를 노리는 자가 또 있는 거지. 그가 이 레시피를 얻으면 세상이 위험해 진다거나.”
“아무리 절대요리 레시피라도 그건 좀 오버 아닌가?”
“뭐, 어때. 그래야 흥미진진하지. 좀 더 그럴듯한 설정을 더 붙여보면 되지. 레시피에 숨겨진 또 다른 힘, 뭐 그런 거.”
“또 다른 힘? 음식 레시피에 무슨 짓을 해야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겠냐?”
“상상을 하라고, 상상. 그냥 현실적이니 않네, 말도 안 되네, 그런 한심한 소리 할 생각 하지 말고.”
내가 투덜거리자, 이대봉이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곧 생각에 빠진다.
그때 경희가 우리 앞에 커피 한잔씩 놓더니 소파에 털썩 앉는다.
우리들의 대화가 흥미진진했던 모양인자 턱을 괸 채로 쳐다보고 있다.
그때 이대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레시피를 변형하면, 음식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건 어때? 아니면, 몬스터에게 음식을 먹여 악마로 만든다거나.”
“그거 좋다. 소년지니까 꽤 먹힐지도 모르고.”
“그렇지?”
이대봉이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한다.
“이건 어떨까? 제복이 드래곤수프니까 결국 가장 강력한 재료는 드래곤이고, 절대 레시피로 드래곤 수프를 만들면, 드래곤의 힘을 얻을 수 있다거나.”
“드래곤의 힘을 얻어? 그럼 혹시 입에서 불도 뿜는 거야?”
“그것도 괜찮지. 그리고 보물을 찾는 능력이 개발되거나 하는 것도 좋고.”
“좋아, 좋아. 뭔가 제대로 모험물로 이야기를 키울 수 있을 것도 같네.”
이대봉이 좋아라하며 다시 메모를 해 나간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경희도 끼어들었다.
“드래곤 수프를 얻기 위한 전쟁이야기는 어때? 드래곤 수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전재를 깔고. 아직 드래곤 수프는 주인공이 만들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니까.”
“초반에 우연히 드래곤으로 수프를 만드는 장면은 있어.”
“에이, 그냥 몸을 조금 좋게 해주는 게 전부였잖아. 그건 제대로 된 드래곤 수프가 아니지. 그리고 오빠들 대화가 아직 스토리에 적용된 게 아니니까, 그 전설의 레시핀지 뭔지가 나오기 전에는 그냥 그런 수프일 뿐일 테고.”
그 말을 들은 나와 이대봉이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동시에 머리를 끄덕거렸다.
“괜찮은 이야기네. 드래곤수프 전쟁이라니.”
“그렇지?”
경희가 히죽 웃으며 열을 올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드래곤 수프를 먹은 인간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거지. 드래곤 수프는 용기가 있어야 먹을 수 있고, 두 번은 먹을 수 없는 특별한 수프. 5천 년 전에 대륙 최고의 미녀 마법사가 만든 수프로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만 갈 수 있는 곳에 숨겨져 있어. 한 사람당 한번 이상 먹을 수 없으며, 능력은 하나씩만 생기지. 물론, 별다른 효과를 못 보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사람만 능력 하나씩을 받을 수 있는 거지. 가령 불을 다룰 수 있게 된다거나, 몸이 강력한 드래곤의 비늘에 보호된다거나.”
뭔가 원피스의 고무고무 같기도 하고, 마블의 X맨 같기도 하다.
어쨌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다.
이대봉은 벌써 마음에 들었는지 헤벌쭉한 얼굴로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세계관이 무한정 확장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산을 타고 넘을 것 같으면, 일단 그 부분을 지적하며 다시 정리하고, 그러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다시 그것에 대해 파고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아이디어가 상당히 많이 나오자, 메모를 확인하던 이대봉이 흥분했다.
“이거 너무 재미있다. 당장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도 다시 만들고.”
그렇게 말하며 메모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다 고마워. 내가 조만간 부대찌개 제대로 대접할게.”
“그걸로 부족한데.”
“10인분, 10인분!”
“양만 늘린다고 되겠냐!”
“나 그럼 가볼게!”
이대봉이 흥분한 채로 서둘러 화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이대봉을 보던 실버가 혀를 끌끌 찼다.
“하여튼 저 놈은.”
그렇게 말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왜 그래?”
“음, 저놈 저런 표정으로 좋아하는 거, 오랜만이라서.”
“저런 표정? 뭔가 특별한 게 있어?”
“음, 너 예전에 저 녀석 처음 만났던 곳이 전상길 선생 화실이었지?”
“어. 맞아. 그런데?”
“그 전상길 선생, 만화가 데뷔 때 그림이 형편없었다는 거 알고 있냐?”
“뭐, 그렇겠지. 데뷔 때니까.”
“아니, 그냥 신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만화가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그림이었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게 왜?”
“그때 대봉이 저놈 스토리로 데뷔를 했거든. 원래라면 절대로 출판이 안 될 그림이었는데, 스토리가 너무 좋아서 히트를 쳤었다. 대본소 출판사가 거액을 주고 차기작까지 계약할 정도로 큰 성공을 했지.”
“······.”
“그런데 그 데뷔작을 이대봉이 저런 표정으로 만든 거라고. 내가 그때 봤기 때문에 알아. 저 놈 오랜만에 발동이 걸렸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팔짱을 끼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너희들이 잠자던 괴물을 깨워버렸는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더니 실버가 얼굴을 다시 찌푸렸다.
“에이, 이런 말은 내 성격에 안 맞네. 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