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60화 (360/425)
  • 뜻밖의 소식

    미치코가 인사를 하며 화실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오늘은 분주하네요? 새로 온 어시 분들인가요?”

    그 질문에 내가 피식 웃었다.

    “아뇨, 스튜디오D 친구들입니다.”

    “아, 삼사라 멀티버스 잡지에 연재 중이신 분들이구나. 제목이 ‘라바나’ 맞죠?”

    “네. 맞아요. 잘 아시네.”

    “저, 라바나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너무 가끔 연재되어서 많이 아쉬웠는데. 아무튼 라바나의 작가님들이시구나.”

    미치코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모두를 돌아보자, 내가 먼저 박기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친구가 리더인 박기우고요······.”

    그렇게 스튜디오D의 멤버들을 소개했다.

    소개할 때마다 애들도 미치코에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새롭게 멤버가 된 석경화도 쑥스러워하며 인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나준호 쪽을 가리키며 말하려는데 녀석이 안 보였다.

    “어? 준호는 어디 갔어?”

    “저,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언제 다가왔는지 싱글거리며 내 옆에 있었다.

    나준호가 이번엔 미치코를 보며 넙죽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나준호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카와다 미치코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어휴, 부탁이라니요, 오히려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인데요.”

    녀석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넉살 좋게 웃으며 인사하자 미치코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네.”

    “언제, 저희 화실에도 한 번 놀러오세요. 제가 딴 건 몰라도 커피는 기가 막히게 타거든요.”

    이 녀석, 미치코에게 호감이 있는 모양인지 상당히 껄떡댄다.

    그 때문에 나소정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선생님 방해하지 말고 선배님들 작업이나 도와.”

    “누나는 진짜.”

    “누나말씀 들어라,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불쑥 끼어든 날카로운 실버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넵!”

    그렇게 대답한 나준호가 곧장 김달부 쪽으로 다가가 원래하던 대로 그의 작업을 보조했다.

    그 모습을 본 미치코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실버 씨, 어쩐지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살벌하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개인적인 일이에요.”

    “아, 네.”

    미치코의 말대로 지금 실버는 상당히 날카로운 상태였다.

    류타니 말로는 며칠 전에 실버가 정미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퉜다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요 며칠간 실버는 저런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분위기 때문에 묻기도 어려워서 그냥 두고 볼 뿐인데, 그런 분위기를 미치코도 느낀 모양이었다.

    곧장 미치코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분들이 왜 여기서 일하고 계세요? 연재 그만두시고 여기서 일하고 계시는 건 아니실 테고.”

    “특훈 중이에요.”

    “특훈요?”

    “네. 저 친구들 조만간 신작연재를 시작할 거라서요.”

    내 말에 미치코가 깜짝 놀랐다.

    “어? 정말이요? 어디에서요? 빅 히어로? 아니면 영 히어로?”

    “다른 출판사에서 할 겁니다. 주간소년 빅뱅.”

    미치코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빅뱅······? 설마 이번에 창간하는 그 소년지요?”

    “네.”

    “아, 그렇구나.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단행본도 나오지 않는 월간지에 연재한다고 들어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타 잡지에 연재한다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다른 직원이라면 모를까, 미치코의 경우는 출판사가 자신의 외삼촌이 운영하는 곳이라 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 성준희가 원고를 챙겨 미치코에게 넘겨주었다.

    원고를 받은 미치코가 확인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원고 확실히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죽가방에 원고를 챙겨 넣었다.

    그런데 그때 이대봉이 화실에 들어왔다.

    이대봉은 미치코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 카와다 씨. 안녕!”

    “안녕하세요, 제임스 선생님.”

    “미자네 화실은 다녀왔어요?”

    “네. 방금 들렀다가 왔어요. 원고도 받았고요.”

    “반응은 어때요? 신작.”

    “앙케이트 반응은 순조로워요.”

    얼마 전 정미자가 핑크걸에 연재 중이던 만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초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연재가 거듭되면서 인기가 하락하는 바람에 다섯 권 만에 일찍 마무리 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쉰 뒤 다시 신작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전 작품보다 반응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이젠 걱정을 덜었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더니, 실버를 슬쩍 쳐다본다.

    보통 때라면 그런 눈빛을 보고 버럭 했을 실버였는데 역시나 오늘은 반응이 전혀 없다.

    그런 실버를 보며 이대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자가 돈 많이 벌어서 정말 좋겠다. 누구도 정말 좋겠네.”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실버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실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어시들이 이대봉에게 눈치를 줬다.

    “응? 왜?”

    실버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한 탓인지 이대봉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박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대봉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팔을 끌고 거실 쪽으로 나갔다.

    “어? 왜이래?”

    “입 다물고 그냥 따라오기나 해.”

    “어, 어.”

    이대봉이 끌려 나가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실버에게로 갔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미치코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짝하고 쳤다.

    “아, 참. 중요한 소식이 있는데 깜빡했다.”

    “중요한 소식이요?”

    “네.”

    그렇게 대답한 미치코가 두 손을 모으고는 빙그레 웃었다.

    “정미자 선생님에게 축하할 만한 소식을 들었거든요.”

    “축하할 만한 소식?”

    “결혼이요, 정미자 선생님이 결혼하신데요. 꺄악!”

    미치코가 몸을 배배꼬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화실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실버를 향했다.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그런데 실버는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뭔가 분이기가 싸해진다.

    그냥 싸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실버가 저렇게 며칠 동안이나 꿍한 상태로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은 싸울 수도 있는 문제인데, 실버가 유난을 떨고 있다고.

    하지만, 미치코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그 싸움이라는 것이 심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어시들과 스튜디오D 애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화실로 다시 들어온 이대봉도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미치코가 말을 이었다.

    “실은 정미자 선생님께서는 숨기고 싶으셨던 모양이더라고요. 저도 화실에 갔다가 우연히 전화통화를 들었거든요. 저기, 제가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미치코가 웃으며 손을 휘적거리다가 멈칫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며 조용하게 물었다.

    “저기, 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

    나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이대봉이 실버 쪽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실버는 머리를 들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저기 실버······.”

    “입 다물어.”

    “어.”

    이대봉이 움찔하며 다시 물러섰다.

    그때 실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펜을 내려놓고는 머리를 들었다.

    실버는 주변을 슥 돌아본 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음이 복잡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때 이대봉이 말했다.

    “아니, 괜찮아. 복잡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나 결혼한다.”

    “그러니까 결혼······, 뭐?”

    이대봉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결혼한다고. 미자 씨랑 다음달에.”

    그 순간 화실 전체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실버가 했던 말을 떠올리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금방 화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축하해요, 실버 오빠!”

    “형, 축하해요!”

    어시들의 축하와 박수소리, 그리고 환호까지.

    미치코도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실버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정미자의 결혼상대가 실버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표정이다.

    이대봉이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물었다.

    “방금 내가 환청을 들은 것 같은데, 넌 어때?”

    “나도 그런 기분인데.”

    “그렇겠지? 이게 실버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아닌데. 안 그래?”

    “그렇지.”

    내가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인상을 쓰며 조그맣게 말했다.

    “환청 아니다.”

    “또 환청이 들리고 있어.”

    이대봉의 말에 실버가 버럭 했다.

    “아니라고! 결혼한다니까, 결혼!”

    그제야 이대봉이 깜짝 놀랐다.

    “진짜! 너 진짜, 미자랑 결혼한다고?!”

    “그래.”

    “쭉 같이 살면서, 애도 낳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그래, 그거 맞으니까 그만 지껄여.”

    “그럼, 그 싸웠다는 얘기는 뭔데?”

    그 말에 실버가 멈칫했다.

    “혹시 결혼 때문이었냐?”

    “······.”

    “설마 준비가 안 되었다느니, 본인은 부족하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해서 미자가 화를 냈고, 결국 그게 싸움으로 번졌다거나.”

    그때 내가 이대봉의 말을 막았다.

    “혼자 소설 좀 적당히 써. 설마 그렇겠냐?”

    “야, 쟤 얼굴이나 좀 보고 얘기해.”

    이대봉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쩐 일인지 실버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있었다.

    어?

    이대봉이 넘겨짚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나?

    이대봉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엇, 너 설마 진짜로 그렇게 말했니? 저거 바보 아냐?”

    “뭐!”

    “어이그, 저런 밥통 같은 녀석에겐 미자가 아깝다!”

    “죽고 싶냐!”

    다시 화실이 시끌벅적 해졌다.

    *

    한 달 후.

    근처 예식장에서 실버와 정미자, 두 사람의 결혼식이 열렸다.

    “어머, 언니 너무 예뻐요.”

    “누나, 축하해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정미자를 보며 어시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뭐여? 얼굴 좀 펴! 신랑이 왜 그렇게 주눅이 들었어?”

    “하하, 실버 형 저런 얼굴 처음이네.”

    “오빠, 행복한 표정을 지으라고!”

    턱시도를 입은 거인의 어색한 표정을 보며 놀리기도 한다.

    하객들은 대부분 이대봉의 인맥이 주를 이뤘고, 일본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키도와 니시다, 그리고 지로와 미치코를 포함한 편집자도 몇 명.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미치코가 지로에게 말했다.

    “너무 부럽다. 안 그래요, 선배?”

    “······.”

    “왜 말이 없어요?”

    “뭘 바라는 거야?”

    “글쎄요.”

    미치코가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쳐다봤더니, 지로가 내 시선을 피한다.

    미치코는 날 보며 씽긋 웃어 보인다.

    흐음, 두 사람도 역시 그런 건가?

    미쯔다쇼텐의 사장으로부턴 꽤 큰 축의금도 왔다.

    돈을 관리하는 건 이대봉이었는데, 금액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0이 두 개는 더 붙은 거 같은데? 다시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형이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부러우니까, 그러지! 부러우니까!”

    결혼식이 마무리 될 때 쯤, 정미자가 던진 부케를 받은 주인공은 누나였다.

    “어이그, 입 찢어지겠다.”

    내 말에 박상식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요즘 누나랑 박상식도 사이가 많이 진전 되서 결혼을 약속한 모양이니까.

    물론 그 때문에 엄마도 대놓고 박상식을 ‘우리사위’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다니고 있으니까.

    아무튼 결혼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요란한 장식을 한 이대봉의 자동차를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 당연히 신혼여행은 제주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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