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59화 (359/425)
  • 주간소년 빅뱅 (6)

    뭐라는 거야? 내가 한국판 소년 빅뱅에 연재를 하라고?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이즈미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었다.

    “그게 아니면 접는 거고요.”

    그렇게 말하며 여유롭게 웃더니, 소파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낀다.

    “내가 연재를 하지 않으면 잡지 창간 일을 아예 접는다는 그런 뜻입니까?”

    “뭐, 그렇죠. 애초에 목적이 그거니까.”

    나와 선희가 연재를 해주면 창간호를 만들겠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곤란한데요. 선희도 이미 작업량이 많아서 추가로 연재하는 건 어렵고.”

    물론 가능은 하겠지만, 그 많은 일을 부담하게 되면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런 짓을 내가 시키겠냐고.

    하지만 이즈미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만 해주면 되요. 써니 선생님은 안 해도 되고.”

    나만?

    “난 스토리만 담당하는 거 몰라요? 저 만화는 안 그리는데.”

    그런데 이즈미가 내 말을 듣고는 호기심을 보인다.

    “오, 그리지 않는다는 건, 그릴 줄은 안다는 건가요?”

    “별로 재능은 없어요. 그래서 스토리만 쓰는 거니까.”

    “그래도 궁금하네. 그쪽이 그린 그림.”

    “모르는 게 나을 겁니다. 시원찮거든요.”

    내 말에 살짝 웃던 이즈미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건 뭐, 됐고. 그냥 그쪽은 스토리만 해주면 돼요.”

    “난 한다고 안했는데요?”

    “딱 보니까, 여기에서도 가장 여유 있어 보이던데. 안 그래요?”

    그렇게 보이기는 하겠지.

    스토리작가라는 게 보기에 따라선 엄청 여유로워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뭐 따지고 보면 여유가 많은 것이 맞긴 하지만.

    그러나 문제는 이즈미와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궁금해서 슬쩍 물었다.

    “그렇다 치고, 그림 그림은 누가 그리는데요?”

    “그건 내가 하면 되니까.”

    이 여자가 진짜.

    본인 스토리 작가로 날 쓰려는 거구나.

    어이가 없어 이즈미를 빤히 쳐다보는데, 그때 작업 중이던 선희가 벌떡 일어났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선희에게 쏠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벌떡 일어났던 선희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이즈미를 바라보더니 곧 그녀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갑작스런 선희의 행동에 움찔한 이즈미가 눈알을 사방으로 굴렸다. 그리고는 선희가 오는 반대방향으로 엉덩이를 끌며 소파 구석으로 갔다.

    “왜, 왜 그래요?”

    이즈미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선희에게 말했다.

    그 때문인지 선희가 걸음을 멈추고는 선 채로 이즈미를 내려다봤다.

    물론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한 채로.

    선희가 입을 열었다.

    “당장 나가.”

    “뭐?”

    “당장 나가. 다시는 여기 오지 마.”

    “뭐라는 거야!”

    “절대 오지 마.”

    “······.”

    당황하는 이즈미 앞에서 선희가 작은 주먹을 옴팡 쥐더니 천천히 들어올린다.

    내 눈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이즈미에겐 좀 다른 모양이다.

    “······이 여자가 진짜. 이게 무슨 행패야?”

    “어서, 나가.”

    선희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즈미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곧 노인을 쳐다봤다.

    그리고 구원요청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구, 구로다!”

    “저, 저기 써니 선생님, 고정을 하시고······.”

    벌떡 일어난 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선희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특유의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오빠에게 더 이상 접근하면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그 말에 이즈미가 콧방귀를 뀌며 벌떡 일어났다.

    “흥, 웃겨! 어, 어떻게 할 건데?”

    “궁금하면 해 봐.”

    “뭐?”

    “접근하면 어떻게 될지.”

    “······으.”

    선희의 저런 모습은 정말 처음 봤다.

    뭐랄까, 칼춤 추는 무당의 신들린 모습 같은 느낌이다.

    표정도 없고, 목소리의 높낮이조차 없으니 무슨 여자 터미네이터 같은 느낌이다.

    나도 솔직히 좀 무섭다.

    이거, 선희를 화나게 하면 안 되겠는데.

    아무튼 그런 선희의 눈빛에 당황한 이즈미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눈동자와 입술에 지진이 일었다.

    콧등까지 실룩거리던 이즈미가 선희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는 곧바로 뒤쪽에 있는 노인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버럭 소리쳤다.

    “쿠로다!”

    “네, 넷! 아가씨!”

    “그냥 돌아가요!”

    “아, 네!”

    노인이 서둘러 이즈미의 앞으로 가서는 현관문을 열었다.

    입을 앙다문 이즈미가 그 문을 통과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돌아보며 말했다.

    “두고 봐. 언젠가 당신들이 우리잡지에 들어오고 싶어서 사정하게 만들 테니까!”

    “아니야.”

    “뭐?”

    “그런 일 없어.”

    “······.”

    부들부들 떨던 이즈미가 곧바로 휙 돌아서며 나가버린다.

    그러자 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 쪽을 돌아보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서둘러 이즈미를 따라 나갔다.

    그런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선희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숨소리를 죽이고 지켜보다가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자 모두 축 늘어졌다.

    선희의 저런 모습을 처음 봤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때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나온 경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카야 선생님은?”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못 들었어?”

    내가 묻자 경희가 웃었다.

    “워크맨으로 음악 듣고 있었거든. 글렌 메데이로스. 노래가 너무 좋아. 그런데 시끄러웠다니, 왜?”

    “아니다, 아무것도.”

    “······?”

    그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업 중이던 선희가 머리를 번쩍 들며 불쑥 말했다.

    “그거 나 줘.”

    선희의 그런 모습에 화실 식구들이 모두 쳐다봤다.

    멀뚱거리던 경희도 선희를 보더니 자신이 들고 있는 쟁반을 내려다봤다.

    쟁반위엔 쿠키가 한 접시 놓여있다.

    경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래. 너 먹어.”

    그렇게 말하며 접시를 선희 책상위에 놓았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모두의 시선이 몰려있자, 경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쿠키 더 있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안 봐도 되는데.”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어색하게 웃었다.

    * * *

    며칠 후.

    키도의 화실.

    “일본과 한국, 소년지를 동시에 창간호 발간할거라고?”

    키도가 깜짝 놀라 묻자, 테고시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확정이 된 거야?”

    “며칠 후엔 정말로 책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출판사도 꾸려진 모양이고. 한국에서도 광화문 쪽에 출판사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광화문? 거기가 어딘데?”

    “서울이요,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는 곳.”

    “난 그런 거 몰라. 유난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밖엔.”

    “별로 자랑이 아닌데요.”

    테고시가 키도 눈치를 보며 작게 말했다. 하지만 키도는 모른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 아가씨, 진짜 일을 제대로 쳤네. 일본은 그렇다 쳐도 한국은 괜찮은 건가?”

    “안 그래도 출판사들 사이에서도 화제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렇겠지. 만화잡지 창간호를 내려고 해도 쉽지 않을 텐데, 한국과 동시라니. 그 정도면 돈도 엄청나게 들 거고.”

    “듣기론 한국에서 TV광고까지 한다고 하더군요.”

    키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TV광고까지?”

    “네.”

    “정말 괜찮은 거야? 한국에선 일본회사가 직접 나서는 거 금지 아닌가?”

    “그 사실은 어떻게 아셨어요? 서울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시면서.”

    “유난에게 들었다. 됐냐?”

    “아.”

    “이 자식이? 지금 나 무시한 거 맞지?”

    “아, 아닌데요.”

    테고시를 노려보던 키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아가씨 크게 나가네. 회사는 괜찮나? 그 나카야 그룹이라는 곳. 이정도로 일을 크게 벌려도.”

    “출판사 몇 개 만들었다고 어떻게 될 곳은 아닌 규모일걸요.”

    “하기야, 나도 대충 들었는데. 요즘 부동산으로 꽤 재미를 보는 모양이긴 하더라.”

    그때 어시들 중 한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미국에도 진출했다고 뉴스에서 본 것 같아요. 거기서도 회사 몇 개를 사들였다고 하던데.”

    다른 어시도 끼어들었다.

    “영화에도 진출한다고 들었어요.”

    “그거 소니 아니었어?”

    “소니 말고, 나카야 그룹에서도 인수하려는 모양이더라고요.”

    “거기 그렇게 돈이 많아?”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부동산으로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은다고 하더라.”

    “하긴, 요즘 부동산가격이 엄청나게 뛰고 있으니까.”

    어시들의 대화를 들은 키도가 입을 떡 벌렸다.

    “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한국에 출판사 하나 만든 건 그 여자 용돈 정도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테고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용돈이라니, 그건 좀······.”

    “아무튼, 그 여자 정말 당찬데? 한국까지 진출하려 하다니.”

    “아무래도 일본 내에선 출판사들끼리 전쟁이 너무 치열하니까, 눈을 한국으로 돌린 거겠죠. 거기다 요즘 한국에서도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테고시의 말에 키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선점이라는 거군. 먼저 가서 깃발 꽂겠다는 거겠지.”

    “아마도 그럴 모양입니다. 한국이 아직은 해적판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니까. 자리만 잘 잡으면 꽤 큰 시장으로 성장할지 모르고요.”

    “나도 그 얘기 들었어. 유난이 앞으로는 일본을 위협할 나라가 될 거라고 하더라고.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유난이가 하는 말이니까 신빙성이 있더군.”

    그 말에 다시 어시들이 끼어들었다.

    “에이, 그건 아니죠. 한국이랑 일본이랑 얼마나 차이가 심한데.”

    “맞아요. 지금 일본이라면 미국도 곧 따라잡을걸요.”

    “태평양 전쟁 시작 땐 일본이 해군력 더 강했어요.”

    “맞아. 그래서 그 아쉬움 때문에 우주전함 야마토가 흥행한 거고.”

    “그때가 일본 전성기였는데.”

    그 말을 들은 키도가 버럭 했다.

    “뭐? 전성기?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어? 전쟁을 일으킨 게 자랑이냐? 군국주의가 그렇게 뿌듯해? 이 무식한 것들아!”

    키도의 반응에 깜짝 놀란 어시들이 머리를 푹 숙이고는 다시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콧방귀를 뀌더니 테고시를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건 사실이니까. 당장 우리 유난이나 써니만 해도 엄청나긴 하잖아. 거기다가 걔들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 실력도 만만치 않고. 그나저나······.”

    그렇게 말하던 키도가 묘한 눈빛으로 테고시를 돌아봤다.

    “왜요?”

    테고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키도가 낄낄거렸다.

    “너도 혹시 연락 받은 거 아니야? 월급 더 줄 테니 오라고.”

    그 말에 테고시가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닌데요!”

    “어? 혹시나 하고 던졌는데, 정말인가보네. 얼마나 더 준데? 두 배? 세 배?”

    “······.”

    반응을 보던 키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버럭 했다.

    “너, 설마 날 두고 떠나겠다는 거냐! 이렇게 잘나가는 만화가 담당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이제 좀 컸다고 돈 때문에 벌써 배신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월급이 좀 작긴 해요.”

    “야, 그래도 편집자로서의 자존심은 없어? 그깟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아?”

    “영혼이라니, 그건 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키도를 보던 테고시가 곧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선생님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뭐?”

    “하긴, 선생님의 그 성격을 감당할 편집자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 말에 키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지금 나 떠본 거냐?”

    “떠보긴요. 전 분명 아니라고 했는데요.”

    테고시의 말에 키도가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와, 진짜.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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