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소년 빅뱅 (3)
니시다의 대답에 키도와 테고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시다. 그거 확실한 정보야?”
“거의요.”
키도가 한쪽 눈을 과도하게 치켜뜨며 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거의? 지금 장난해?”
“맞아요,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면 곤란합니다.”
키도와 함께 테고시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니시다가 묘한 표정으로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든 100%는 없는 겁니다. 금도 99.99%잖아요.”
“갑자기 거기서 금 얘기가 왜 튀어나와? 헛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말해.”
“오오타게에게 들었어요. 그거.”
“오오타케? 네 담당?”
“네.”
“그 친구가 어떻게 아는 건데?”
“다른 출판사에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서 들었답니다.”
“무슨 얘기?”
“그게······.”
니시다가 다시 뜸을 들였다.
그러자 키도가 인상을 팍 썼다.
“또 뭐하는 거야? 지금.”
“뭔가 이런 분위기 좋군요.”
“뭐?”
“이렇게 주목받는 거요. 어쩐지 중독되겠는데?”
니시다가 눈을 감으며 지금의 분위기를 정말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키도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대화를 듣고 있던 어시들도 작업을 멈추고 머리를 슬쩍 들어 올리고는 니시다의 말에 집중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쏠리는 분위기를 느끼고는 니시다가 그제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담당하던 만화가가 갑자기 연재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랍니다.”
그 말에 니시다를 제외한 모두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키도는 어이가 없어 콧방귀까지 뿜었다.
“뭐야, 다 아는 얘기잖아. 그거 말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띄운 거야? 어이가 없구만.”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요.”
니시다의 말에도 키도는 어림없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자네 말은 그거 아니야? 그 부잣집 아가씨도 연재 끝낸다고 했다. 뭐 그런 거. 나도 그 얘기는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 아가씨야 전에도 그만둔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던 적이 있잖아.”
“······.”
이즈미도 이미 연재를 끝내겠다는 얘기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그건 키도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즈미야 원래 유별난 여자여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이유라면 됐어. 실제로 연재 그만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출판사를 차린다고 추측하는 건 이상하지.”
키도의 말을 테고시가 이었다.
“맞아요. 그건 좀 억지 같습니다. 어쨌건 그런 변덕스러운 나카야 선생님 때문에 코지마 씨가 곤란한 모양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을 본 니시다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키도가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
“겨우 그런 말도 안 되는 추리를 하고 확신한 거였어?”
“말도 안 되는 추리는 아닌데요.”
“또 이런다. 자네는 다 좋은데, 억지스러운 말을 너무 많이 해.”
“다 좋아요? 그것만 빼면? 그럼 자주 와도 될까요?”
“말꼬리 잡지 말고.”
그 말에 니시다가 웃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인정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하지만 하나 더 있어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하지만 이번엔 키도도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말해 보든가.”
“오오타케가 코지마 씨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답니다.”
“전화통화?”
키도가 그렇게 되묻고는 있었지만 표정엔 그다지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네. 조용하게 말해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내용상 월급을 두 배로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조금 호기심을 보였다.
“월급을 두 배로 줘? 만화가가 편집자에게 할 말이 아닌데?”
“그러니까요. 그게 이상하잖아요.”
“그래도 그것만으로 확정하긴 힘들지. 그 여자 개인적으로 가진 회사도 몇 개 된다니까, 거기에 취직시키려는 건지도 모르잖아. 자기 담당이라고 떠나기 전에 챙기는 거겠지.”
“그건 아니에요.”
“어떻게 알아?”
“같은 일을 맡긴다고 했다니까.”
“얼핏 들었다더니, 꽤나 자세하게 들었네. 네 담당은 남 전화 엿듣는 취미 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 말에 키도도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뭐 그렇고. 그럼, 그 여자 정말로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거야?”
“꼭 차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죠.”
“그럼?”
“전에도 뭐,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요. 다른 출판사에 있던 만화가와 대결도 하고. 거기 나카야 씨 가문의 회사 계열사랑 관계있다는 얘기도 있었고.”
니시다의 말이 맞다.
이즈미에 대한 건 자세히 모르지만,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출판사를 이미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거기다 만화가들을 뽑지 않고, 굳이 연재중인 만화가들을 빼가는 건 더 이상하고.”
“새로운 만화잡지가 나온다고 해도 인기작가의 작품이 없다면 곤란하겠죠. 그런 곳에서 앙케이트 1위 해봐야 의미도 없을 거고.”
“하긴, 그 여자 성격이라면 만족하지 못하겠지. 혼자 노는 놀이터니까.”
“그렇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일뿐이지 사실은 아니잖아.”
“우리가 무슨 살인사건 조사하는 경찰입니까? 이 정도면 거의 맞지.”
그때 테고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건 니시다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테고시의 말에 키도가 그를 돌아봤다.
“야, 너. 이 상황에서 니시다 편을 드냐? 나 담당 아니었어?”
“네?”
“여기서 편이 왜 나와요? 당연한 반응이지.”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테고시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번에 어시들 쪽을 돌아봤다.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해?”
“······네.”
“니시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납득이 되는데요.”
“맞아요.”
“거 보세요.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니시다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런 니시다를 돌아본 키도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고 치고.”
“뭘 그렇다고 쳐요? 맞는 말인데.”
“그럼 자네는 거기 출판사로 옮길 거라는 거군.”
“아까도 말했지만, 저 옮긴다는 말 한적 없거든요. 자꾸 저를 보내시려 하시네.”
“돈 많이 준다고 해? 페이지 당 얼마?”
키도의 기습 질문에 니시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만 오천 엔이요.”
“오, 엄청 파격적인데. 역시 잘 판단했구만.”
“안 간다니까!”
* * *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내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때요? 그 정도면 최고 대운데.
“······.”
할 말이 생각 안나서 가만히 있었다.
-왜 말을 안 해요? 부족해서 그래요? 페이지 당 2만 엔인데? 거기다가 단행본 판매수익도도 더 준다니까.
이 여자는 정말 예상이 안 된다.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출판사 차렸다고 옮기라니.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냐고.
그보다 이름이 뭐랬지?
소년 빅뱅이라고 했나?
나름 거창한 이름이긴 하네.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돈을 더 주겠다는 제안은 고맙긴 한데, 갑자기 왜 출판사를 차린 겁니까? 연재 잘 하고 있다가.”
-그건 개인사정이에요. 그나저나 대답은······.
“그냥 거절할 랍니다.”
-왜요? 돈이 부족해요.
“이미 제안한 돈도 큽니다만.”
-그럼 이유가 뭔데요?
“이건 돈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반대로 제가 물어보죠. 나카야 씨는 돈 때문에 만화 그렸어요?”
-난 아니에요. 돈이 목적이었다면 시간 낭비니까.
금수저 티를 팍팍 내는구만.
-하지만, 그쪽은 돈 목적 맞잖아요.
“네. 맞아요. 처음엔 백프로 그랬고.”
-지금은 몇 프론데요?
“절반쯤?”
-나머지 절반은 뭔데요?
“글쎄요.”
그러고 보니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네.
돈 말고 뭐지?
명예?
한국만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 따윈 아니고······.
-거봐. 본인도 모르잖아요.
“그러네요. 뭘까요?”
-모르겠으면 옮기면 되는 거지.
“그건 억지고요.”
-말장난 하지 말고!
“방금 말했다시피 거절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말이 없다.
당연히 그 정도 제안이라면 넘어갈 줄 알았던 걸까?
-내가 일부러 직접 전화한 거 알아요?
“그랬습니까?”
-저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에요.
이 여자는 진짜.
뭐든 자기중심적이다.
-조만간 일본 최고의 소년지를 만들 거예요. 그땐 받아달라고 해도 이쪽이 거절이에요.
“······.”
-반응도 없어요?
“네? 반응이요? 제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데요?”
-됐어요!
버럭 소리치더니 전화가 끊어져버렸다.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머리를 들었더니, 화실식구들의 시선이 죄사 내게 쏠려있다.
실버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이번엔 출판사를 차린 거냐? 그 여자.”
“그런 모양이야. 돈도 많이 줄 테니 넘어오지 않겠냐고.”
“얼마?”
“페이지 당 2만 엔. 그리고 단행본 판매수익도 더 준다고.”
그 말에 화실 식구들의 반응이 컸다.
“어? 그럼 지금보다 8천 엔 더 높잖아요. 거기다 단행본 수익을 더 준다면 금액이 엄청나겠어요.”
“우와, 우리 선생님 배포 크시네. 일 년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차이 일 텐데.”
“일 년이 뭐야, 한 달만 해도 엄청나지. 거기다가 진짜는 단행본인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신생 잡지사가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니죠. 나카야 선생님 집안이 재벌가라면서요. 거기서 출판사 하나 제대로 못 밀어주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다른 출판사보다 훨씬 유리할걸요.”
“그래도 의리가 있는데, 함부로 옮기는 건 그렇죠.”
“에이, 그래도 돈이 그렇게 차이나면 다르지.”
갑자기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이 시작되었다.
누구하나 질세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느라 뜨겁다.
그때 이대봉이 화실로 들어오더니 이런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뭣 때문에 이렇게 시끄러워?”
그런 그에게 한참 토론 중이던 박수미가 대충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자 이대봉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네.”
“오빠는 어떤데?”
“나라면 우리 윤환이 결정에 동의하지.”
“선생님 결정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잖아.”
“상관없어.”
“뭐야, 오빠는. 자신의 생각을 물어본 건데.”
“그러니까, 윤환이 결정이 내 생각이라니까.”
그 말을 들은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놈 입에서 나오는 것 중엔 발전적인 건 없다니까. 그냥 없는 인간 취급해야지.”
“야, 넌 또 뭐가 불만인데?”
또 둘이 싸우기 시작한다.
어시들의 토론으로 시끌벅적한 것도 모자라 두 사람이 또 싸우기 시작하니까, 화실이 정신없긴 하다. 그러나 평소에도 가끔 있는 일이라,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그 때문에 소란스럽던 실내가 조금은 조용해졌다.
전화를 받은 성준희가 내게 말했다.
“스튜디오 D에서 온 전화야.”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준호에요.
“어. 그래. 요즘 거긴 어떤데?”
-요즘엔 괜찮아요. 제임스 형도 자주 들러서, 많이 도와주시고.
잔소리를 했더니, 그래도 자주 들러보는 모양이다.
내가 슬쩍 이대봉을 돌아봤다.
여전히 실버와 말씨름중이라 정신이 없다.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뭔데?”
-저희 일본잡지사에서 연락 받았어요.
“오, 그래?”
이제까진 삼사라 멀티버스 하나에만 연재중이고, 그나마도 연재가 띄엄띄엄 이었는데, 인정을 받은 모양이다.
“좋은 소식이다. 그래 어딘데?”
-주간소년지라고 하던데······.
주간소년지면 일본에서도 그리 많은 잡지가 아니다. 그리고 주간소년지를 운영할 정도면 회사는 괜찮을 테고.
역시 나쁘지 않은 소식.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나준호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주간소년 빅뱅이라고 했어요.
“빅······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