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소년 빅뱅 (2)
도쿄 외곽도시에 있는 중견 만화잡지사의 편집부.
창문을 열어 놨음에도 실내는 담배연기로 인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크게 퍼지고 있었다.
“선생님!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 선생님!”
편집자가 소리치며 전화기의 훅 스위치를 정신없이 두들겼다.
대화중에 전화기가 끊어진 모양이었다.
“선생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지만 전화기는 이미 끊어진 상황.
다시 다이얼을 신경질적으로 돌렸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 더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그가 전화기를 끊고는 곧바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동료선배가 다가와서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선배의 질문에도 가방을 챙기며 책상 위를 간단하게 정리하며 말했다.
“망할, 연재 2화만 더 연재하고 마무리하겠답니다.”
순간 멈칫한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진짜? 갑자기 왜?”
“말을 안 해요, 말을. 그래서 직접 찾아가보려고요. 도대체 왜 이러는 지.”
“혹시 그 동안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요.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전혀 이런 말이 없었다고요. 아니 오히려 앞으로 진행할 새로운 에피소드까지 정했는데. 네임도 내일까지 완성해서 보여주기로 했고요.”
“그럼 하루사이에 갑자기 마음이 변한거야? 지금 앙케이트 순위 2위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려?”
그 말에 머리를 번쩍 들며 짜증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진짜.”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편집실을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편집부로 들어오며 그 모습을 돌아보던 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쟤, 왜 저래?”
“담당인 야마데라 선생님이 2화만 더 연재하고 끝내겠다는 통보를 받았답니다.”
그 말에 팀장이 화들짝 놀랐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그게 말이 돼!”
“저한테 왜 그러세요. 진짜.”
“지금 그게 중요하냐? 무슨 상황이냐고!”
“저야, 모르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짜증이 치밀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 저렇게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담당 만화가만 중요하다고 해도 저런 모습을 보며 화가 치민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이건 자신의 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젠장.”
팀장은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편집장실로 뛰어갔다.
야마데라의 만화 ‘더티 플레이어’는 지금 이곳 출판사의 간판 만화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담당의 말대로 연재가 중단된다면 자신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편집장실로 가는 그의 얼굴색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여러 잡지사들에서도 이 일로 시끄럽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출판사의 가장 핵심적인 만화가를 중심으로.
그런데 그 상황은 소년 히어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연재를 끝내시면 안 되죠!”
-······.
“아니, 설명을 못해주겠다고 말씀하시면 어쩝니까? 이제 겨우 앙케이트에서도 자리를 잡았는데. 단행본 5권 이상 내는 게 꿈이라고 하셨잖아요.”
-······.
“그건 말이 안 되죠!”
-······.
상대의 말을 듣던 편집자가 멈칫하더니 곧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설마, 다른 잡지사로 가시는 겁니까?”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몇 마디 하던 음성이 갑자기 끊어져버렸다.
“서, 선생님!”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뚜 하는 소리뿐이었다.
몇 번 훅 스위치를 몇 번 두드리고 나서는 곧장 전화기를 거칠게 끊어버렸다.
그가 화난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자 근처를 지나다가 그 모습을 발견한 야지마가 그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팀원인 편집자가 전화기를 사정없이 끊을 정도면 큰일이라는 것일 테니까.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설마 토마츠 선생님 일이야?”
그의 물음에 직원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연재 끝내고 싶답니다.”
그의 대답에 야지마가 깜짝 놀랐다.
“뭐? 갑자기 왜? 무슨 일인데. 몸이 안 좋으시데?”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스토리를 마무리 하겠대요.”
“왜?”
“마음에 안든 답니다.”
“마, 마음에 안 들어? 요즘 앙케이트 순위 올라가고 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뭘 떠올렸는지 곧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설마, 너도 그런 거야?
야지마의 말에 직원이 멈칫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말고 또 있어요?”
“아니, 우리 편집부는 아니고, 빅 히어로랑, 스피릿 히어로 쪽에서도 어제 너 같은 일이 있어서. 거기다 다른 출판사 쪽에서 들리는 소문도 있었고.”
“네? 그게 사실입니까?”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그거 때문에 팀장이상 회의가 있었던 거야. 그런데 벌써 우리 편집부까지 이런 일이······. 설마 하긴 했는데.”
그렇게 말하던 야지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곧장 그에게 말했다.
“너는 일단 토마츠 선생님에게 가봐. 정확한 사정도 알아보고. 난 편집장님에게 가볼 테니까.”
“네.”
그렇게 대답한 직원이 어깨에 가방끈을 걸치고는 서둘러 편집부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야지마도 편집장을 찾았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
작업 중이던 키도가 머리를 번쩍 들고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테고시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이미 토마츠 선생님은 연재중단을 선언하신 것 같고요.”
“엥? 그 친구 요즘 성적 좋다며?”
“네. 그래서 담당도 더 황당한 거죠. 힘들게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그래, 어디래?”
“네?”
“그 친구, 채 간곳 말이야. 출판사.”
“······그건, 위쪽에서도 모르는 모양이에요.”
키도가 혀를 찼다.
“쯧, 그렇게 사람 빼앗기다가는 어쩌려고. 그런 건 빨리 알아내야지.”
“솔직히, 출판사들 중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분위깁니다. 그래도 다들, 선은 지키고 있었는데.”
“이미, 구정물을 퍼트리며 시작한 싸움이야. 어설프게 대처하다가는 타격이 클걸? 특히나 소년 히어로는 짧은 시간 만에 큰 성장을 해서, 내실을 제대로 다지지 못했으니까.”
“저희도 이젠 제법 작가 군이 튼튼한데요?”
테고시의 말에 키도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렇다고 생각해?”
“아닙니까?”
“지금 여기 중심엔 유난, 아니 텐겐이랑 써니가 있어. 그건 알지?”
“네.”
“만약 그 둘 중 단 한명이라도 이곳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그야······.”
뭔가를 말하려던 테고시가 곧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을 못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에 키도가 낄낄거렸다.
“그래, 말하고 싶지 않겠지. 그리고 새삼 내실 어쩌고 말한 것도 우습게 느껴질 거고.”
“······.”
“네 생각대로야. 소년 히어로는 걔들이 알파이자 오메가야. 팀 스포츠로 치자면 원맨팀에 가까워. 실력 있는 작가들이 많긴 하지만, 걔들이 빠지면 다시 삼류잡지로 돌아가 버리지. 어때? 내 말 틀렸나?”
“······.”
“거 보라고.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요.”
“얼굴에 써있다니까.”
“······.”
키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테고시가 인상을 썼다.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울어?”
“······선생님.”
“이봐 테고시.”
“네.”
“너무 걱정하지 마.”
“왜요?”
“어차피 떠날 녀석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떠나게 되어있어.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써니 팀이지. 그런 보통의 작가들이 아니야.”
“써니 작가님은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써니는 괜찮아.”
그 말에 묘한 안도감이 생긴 테고시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때 키도가 다시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써니는 텐겐을 따라 움직일 테니까.”
“네? 그럼 텐겐 선생님은요?”
“그야, 뭐. 떠나고 싶으면 떠날지도 모르고.”
“서, 선생님!”
그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전히 장난이 심하시군요, 키도 선생님은.”
그 말을 들은 키도가 슬쩍 돌아보더니 한쪽 입 꼬리를 실룩거렸다.
“진짜, 요즘엔 너무 막 찾아오는 거 아니야? 부른 적도 없는데.”
“사모님께서 차 마시고 싶으면 언제라도 환영이라 하셨거든요.”
키도의 말에 니시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자 키도는 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엔 팔짱을 끼며 싱글거렸다.
“그런데 어쩌냐?”
“왜요?”
“우리 집사람이 지금 여기 없거든.”
“시장에 가셨습니까?”
“아니, 친정에.”
그 말에 니시다가 주춤하더니, 곧 소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어? 이봐. 갑자기 소파엔 왜 앉아? 안가?”
“오늘은 그냥, 키도 선생님 찾아 온 걸로 하죠.”
“뭐?”
“잠시 놀다가는 걸로 하면 되잖아요.”
그 말에 키도가 어이없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가라고 해도 갈 니시다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관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장난이 심하다니, 뭘 말하는 거야?”
“텐겐 선생님이요. 안 떠나는 게 당연하다고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에게도 연락이 왔었거든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와 테고시가 깜짝 놀랐다.
“진짜? 그래서 떠나기로 약속했고? 언제 연재 끝낼 건데?”
키도의 말에 니시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진행되는 겁니까? 제가 떠나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말고. 난 그래도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진짜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니, 니시다가 헛바람을 켰다.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합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물론, 아까 선생님 말씀대로 텐겐 선생님이 떠난다면 모를까. 물론 키도 선생님이야 그때도 남으시겠지만요.”
“뭐야? 누가 그때도 남는데?”
“아닙니까?”
“안 남을 거거든.”
그 말에 제일 당황스러워하는 이는 바로 테고시였다.
“저, 저기 선생님. 그래도 그렇게 결정을 해버리시면······.”
“자네는 빠져. 이건 중요한 문제니까.”
“아, 선생님. 진짜······.”
테고시의 그런 모습이 제일 재미있는 건 구경중인 어시들이었다.
그들이 세 명의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을 때, 테고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시들을 쏘아봤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어시들이 다시 원고에 집중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어깨를 들썩이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네는 뭘 근거로 유난이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설마 아카기, 그 친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담당인 아카기 씨도 떠나지 않을 이유가 되겠지만, 다른 이유가 또 있거든요.”
“그게 뭔데?”
“지금 만화가들을 모으고 있는 출판사의 문제라서요.”
그 말에 키도가 멈칫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 출판사 어딘지 알아냈어?”
“어딘데요?”
키도와 더불어 테고시도 니시다에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출판사 이름은 정확히 몰라요.”
그 말에 키도와 테고시가 동시에 표정을 찌푸렸다.
“뭐야, 너 지금 장난 하냐? 출판사도 모르면서 뭔 헛소리야!”
“출판사는 모르지만, 거길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는 알거든요.”
“······뭐? 누군데?”
“누군데요?”
키도와 테고시가 동시에 물었다.
그러자 니시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답답하다는 듯 버럭 했다.
“빨리 말하라고! 누군데!”
어시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니시다를 주시했다.
그러자 뜸을 들이던 니시다가 입을 열었다.
“나카야 씨.”
“뭐? 나카야? 나카야 이즈미? 그 부잣집 정신 나간 아가씨?”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