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소년 빅뱅 (1)
소년 히어로 편집부.
점심시간 휴게실에 모인 직원들이 담배를 뻐끔거리며 잡답을 나누고 있었다.
“써니 선생 이번 에피소드는 꽤 감성적이던데.”
직원 한명이 입속의 연기를 길게 뿜으며 말하자 곁에 있던 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게. 기존 작품에 비해서 굉장히 정적이고.”
“아무래도 스토리를 본인이 직접 썼으니 당연하겠지. 18살이잖아, 18살.”
“19살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겨우 한 살 차인데. 아무튼, 대학교 1학년이라는 감성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르지.”
“대학교 1학년이라니, 풋풋하다.”
“그런데 뭔가 묘한 느낌이네.”
“뭐가?”
“데뷔가 꽤 되었고, 명성이 제법 있는데, 이제 겨우 대학교 1학년이라고 하니까.”
그 말에 모두 공감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땐 그냥 난파(여자 꼬시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나도 그랬어.”
“혈기 왕성한 시기 아니냐. 거기다 고등학교 입시지옥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한 거고.”
“그런데, 써니 선생은 이미 인기 작가잖아. 고등학교 때부터 활동 시작했다고 했지?”
“아카기 씨가 다른 출판사에서 일할 때 담당 만화가 자료 때문에 한국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들었어.”
“대단한 우연이다.”
“그 정도면 인연이야, 인연.”
“그렇긴 하겠다.”
“그런데 그거 들었어?”
“뭐?”
“메갈로폴리스 인 캣 말이야. 그거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작사가 몇 군데 있다는 모양이더라고.”
“진짜? 이제 겨우 에피소드 몇 개 안 나왔는데?”
“어. 꽤 이름 있는 감독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하더라고. 린타로 감독도 공공연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써니라고 말할 정도고. 거기다가 건담의 토미노 감독도 그러는 모양이고.”
“와, 거장감독들이 그런다고?”
“그래. 그 양반들 요즘 신작에 목말라 하는 모양이라, 더 그런 것 같고. 듣기론 그런 감독들뿐만 아니라, 은하영웅전설의 다나카 요시키도 스스로 팬이라고 자주 언급한다고 하던데.”
“그 인간, 전에는 타카하시 루미코 팬이라고 그렇게 난리더니.”
“뭐, 팬이 여럿인 모양이지. 뭘 그걸 따지냐?”
“여자 작가만 팬이라고 하니까, 그러지.”
“너도 참.”
어이가 없는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어쨌거나 늘 잡지에 실리는 작품이라 실감하지 못했는데, 대단한 인기구나.”
“당연하지. 요즘 써니 작품에 영향 받은 작가들도 대거 만화가로 등단하고 있으니까.”
“그건 나도 들었어. 그래서 요즘 신인이 작품 들고 찾아오는 일이 예전보다 부쩍 늘었잖아. 듣기로는 소년점프랑 비슷한 숫자라고 하던데.”
“그건 좀 오버다. 그래도 소년점프랑 비슷한 건 말이 안 되지.”
“글쎄. 확실한 얘기는 아니니까.”
“아무튼 대단하구나. 써니 선생은 어린나인데도 벌써 일본 만화계에 그런 영향력이라니. 거기다 한국인인데 말이지.”
“보통이라면 한국인이라는 게 문제가 되었을 텐데, 써니 작품은 그냥 초월해버린 분위기고.”
“대단하지.”
“그러게.”
“맞아.”
“응.”
그렇게 말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급 우울해졌다.
그들 중 한명이 말했다.
“갑자기 넌 왜 그래?”
“너랑 같은 이유.”
“너도?”
“당연하지.”
“넌?”
“아, 괴롭다.”
서로 축 늘어진 어깨로 한숨을 쉬었다.
“우리 선생님도 좀 분발하셨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렇다고 써니만큼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분발한다고 될 일이겠냐? 이건 타고난 능력의 차이라고.”
“하긴, 우리 선생님도 요즘 잠 3시간 밖에 못 자는데 그런 양반한테 더 노력하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지.”
그때 휴게실 창밖으로 지나가던 지로의 모습을 보던 직원들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아카기 씨는 앞으로 탄탄대로겠다. 그만한 실력자를 담당하고 있으니.”
“써니뿐이 아니잖아. 스토리작가인 텐겐은 어떻고. 요즘 그 사람에게 스토리 받고 싶다는 만화가가 한둘이 아닌데.”
“그게 되겠냐? 애초에 써니 작품만 하는 모양이던데.”
“이번 메갈로폴리스 인 캣도 그런 오빠의 영향을 받았는지, 써니의 스토리 솜씨도 엄청 늘었고.”
“뭐, 잡지 전체가 영향을 받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부럽다는 눈빛으로 지로를 바라봤다.
그렇게 지로가 휴게실이 있는 복도를 지나쳐가자 곧 코지마가 그곳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직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래도 저 친구 보면서 제가 삶의 활력을 느껴.”
그 말에 다른 이들도 동감이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선생님이야 저 친구 담당인 나카야 선생에 비하면 온순하고, 얼마나 좋은데.”
“내가 나카야 선생 담당이었으면 대머리가 되고 말았을 거야.”
“대머리뿐이겠어? 아마 위염으로 쓰러지고 말았을 거야.”
코지마는 직원들이 자신을 보며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곧 코지마에게서 ‘삐삐’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의 허리춤에 있던 호출기가 울린 것이다.
그가 번호를 확인하더니 곧장 전화기를 들고는 다이얼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저 친구 진짜 고생이 너무 많아.”
그 말에 지로가 통화중인 코지마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카야 선생님의 호출입니까?”
“그럼 누구겠냐? 요즘 나카야 그 선생 툭하면 호출하는 모양이더라.”
“전에는 만나 주지도 않았다면서요? 그럼 더 좋아진 거 아닙니까?”
“좋아져?”
그렇게 말하더니 낄낄거리며 웃었다.
“차라리 안 만나 줄때가 좋았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땐 그래도 몸은 편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한데. 그리고 전화하면 거의 절반이 잔소리라더라.”
“잔소리요?”
“그래. 너야 늘 바빠서 모르겠지만, 여기 직원들 다 코지마 저 친구 불쌍하다고 난리다. 담당 만화가 잘 못 만나서 점점 말라간다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해 많이 야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요즘 살 많이 빠졌어요.”
“아니지, 전혀 달라. 너는 일이 바쁘니까, 그런 거고. 저쪽은 그 여자한테 시달려서 그런 거니까.”
“그 정돕니까?”
“그렇다니까. 특히 요즘엔 연재가 잘 안 풀리는지 히스테리가 극에 달해서 엄청 괴롭히는 모양이더라고.”
야지마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과장되게 부르르 떨었다.
지로가 다시 코지마 쪽을 돌아봤다.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곧 전화기를 끊고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뛰어나간다.
곧 출판사 건물 밖으로 나간 코지마가 택시를 탔다.
급한 마음에 문을 닫자, 택시 운전기사가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문 닫지 마세요. 고장 납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사과한 코지마가 목적지를 말했다.
잠시 후.
커다란 저택 근처에 택시가 멈추더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택시에서 내린 코지마가 문 앞으로 다가가자, 그곳에 이즈미 주변을 따라다니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코지마 씨.”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네.”
그렇게 대답한 코지마가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야외 잔디가 있는 마당이었다.
그곳 가운데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 비치 썬 베드에 이즈미가 선글라스를 낀 채 수영복차림으로 누워있었다.
노란색의 비키니 차림으로.
멈칫한 코지마가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사방으로 굴렸다.
그때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코지마 씨.”
코지마가 화들짝 놀랐다.
“아, 네.”
“출판사 요즘 분위기가 어때요?”
“분위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회사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어떠냐고요.”
“그,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뭐야? 담당이면서 그런 것도 몰라요? 관심이 없나?”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건가요?”
“······.”
뭘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실은 회사에서 직원들 사이에 돌고 있는 이즈미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전혀 모를 리 없었다.
제멋대로, 안하무인, 미치광이 재벌 아가씨 등등······.
그거 말고도 본인이 들으면 미치고 펄쩍 뛸만한 이야기들이 제법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담당으로서 그런 것을 알려줘 봐야 좋을 게 전혀 없으니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다만, 간혹 들려오는 건 있다.
“혼자 작업이 가능한 천재작가라는 이야기는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건 너무 들어서 지겹고.”
그렇다면 별로 할 이야기는 없다.
거의 유일한 칭찬이라고 보면 되니까.
“이번에 몇 등이라고 했죠?”
“아, 네. 14위······.”
그렇게 말하며 코지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도 또 길길이 날뛸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네?”
“눈을 왜 그렇게 감고 있냐고요?”
“아, 네. 죄송합니다.”
곧바로 눈을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찔한 노란 비키니차림의 이즈미를 보고는 다시 화들짝 놀라 시선을 휙 돌렸다.
“어딜 보는 거예요? 내가 앞에 있는데.”
“저기······, 그게. 나카야 선생님 차림이······.”
“이게 뭐요. 코지마 씨는 수영장이나 바닷가 안 가요? 거기서도 정장입고 물에 들어가나?”
“그건 아니지만. 여긴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니······.”
“저기 수영장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슬쩍 머리를 돌려보니 진짜 마당 한쪽에 수영장이 있다.
개인 수영장 치고는 상당히 크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엊그제 완성되었어요.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내가 요즘 수영장 갈 기분이 아니라 이걸로 만족해야지 뭐.”
“······.”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자, 이즈미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아, 진짜. 홀딱 벗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호들갑 그만 떨고 내 얼굴 좀 보고 얘기해요.”
“아, 네.”
시선을 돌리기는 했지만, 눈동자는 그녀의 머리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이즈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담당 편집자 씨, 귀엽네.”
“······네?”
“아니 그건 됐고, 이제 나도 슬슬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코지마가 경직되었다.
그리고는 곧장 신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코지마와 눈을 마주친 이즈미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머리위에 걸쳤다.
“이제 중단해야 할 것 같아서.”
“저기, 다시 그리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완전한 완결을 내신다고 약속 하신 것 같은데.”
“누가 그만 그린다고 했어요?”
“네? 방금 중단하신다고······.”
“소년 히어로에서 중단하겠다고요.”
“네?”
코지마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럼 다른 출판사로 옮기겠다는 건가요?”
“그래요.”
“······.”
코지마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게 된다면 이젠 더 이상 담당이 아니니까.
이즈미의 담당을 맡은 뒤로 제대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이렇게 그만둬야 하다니.
그에게는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절 부른 건 그것을 통보하시려고······.”
“그런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다른 것이라면······?”
“당신 새로운 출판사에서 일해 볼 생각 없어요?”
“네?”
“그 출판사 내가 만들 거거든. 어지간하면 여기서 자리를 잡아보려고 했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어서. 그러니까 거기서 일 해볼 생각 없어요? 월급은 뭐 대충 두 배 정도 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