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50화 (350/425)
  • 귀찮은 녀석 (3)

    실내에 연기가 자욱하다.

    인근에서 가장 맛있다며 자랑하더니, 삼겹살이 꽤 괜찮다.

    하지만, 애들에게 꽤 괜찮은 거 먹이고 싶었는데.

    “비싼 거 사준다니까.”

    내 말에 나준호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에이, 이거도 감지덕진데요, 뭐.”

    “맞아요. 저희도 고기 먹은 지 오래돼서. 삼겹살이라도 저희는 행복해요.”

    “왜?”

    “제임스 오빠, 오면 가끔 먹거든요. 그런데 요즘 도통 오지 않으셔서.”

    그 인간한테 애들에게 자주 좀 들러보라고 압력을 넣어야겠네.

    “고기 먹고 싶으면 우리 화실로 놀러와. 언제라도 사줄 테니까. 그리고 화실에도 밥도 먹고.”

    “정말 아무 때나 가도 돼요?”

    나준호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정말이죠?”

    “나 먹는 걸로 사기 치는 그런 사람 아니다.”

    그 말에 애들이 웃었다.

    “어쨌거나. 정말 괜찮으세요? 저희 그림 도와주신데다가 이렇게 고기까지 사시고.”

    “올 땐 택시도 타고 왔어. 스텔라 택시. 중형이라 엄청 안락하더라고.”

    그 정도는 아니더만.

    하기야, 내 기준으로 말하면 안 되지.

    나야 미래의 자동차까지 다 경험했으니.

    아무튼 나준호가 싱글벙글 떠들자 나소정이 머리를 쥐어박는다.

    “넌 좀 가만히 있어.”

    “아, 왜?”

    그 모습을 보던 팀 리더인 박기우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오늘 너무 돈 많이 쓰신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맞아요. 오늘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너희들, 지금 나 무시하는 거 맞지? 나 얼마나 잘 버는데.”

    너희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벌고 있단다.

    하지만, 뭐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말하자니 좀 못난 것 같기는 해서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애들이 내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그것보다 선생님 시간을 뺏은 것 같아서, 그게 더 걱정이라서요.”

    박기우.

    나이는 24살. 나랑 겨우 한 살 차인데도, 나를 너무 어려워한다.

    그냥 형이라고 부르랬더니, 우리 어시들이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단다. 족보가 꼬여서 개족보가 된다나 어쩐다나.

    족보는 무슨.

    어이가 없긴 했지만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손목시계를 슬쩍 보여주며 웃었다.

    “나 시간 많아. 그러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 안 그래도 오늘 바람 쐬러 나갔다가 준호 만난 거니까.”

    “어? 그런데 왜 절 도와주겠다고 하신 거예요?”

    나준호가 입에 삼겹살을 넣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 동종 업계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고.”

    그런데 어쩐지 녀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솔직히, 선생님 실력은 좀······.”

    “내 실력이 뭐.”

    내가 머리를 쭉 내밀며 말하자, 나준호가 몸을 뒤로 밀며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마음이 중요한 건데.”

    “야, 말을 하다말아? 그러니까 뭐, 형편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녀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헤.”

    “어? 웃어? 진짠가 보네?”

    그때 나소정이 화들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야, 너는 왜 그렇게 예의가 없니?”

    “사실이 그렇잖아. 솔직히 선생님 뒤처리 실력이 좋다고 하긴 그러니까.”

    나소정이 날 한 번 더 힐끔거리고는 대답했다.

    “그래도.”

    남매가 돌아가면서 뼈를 제대로 때리는구만.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찌푸렸다.

    “소정이 네가 더 나빠.”

    “네?”

    나소정이 화들짝 놀랐다.

    “끼어들려면 빨리 했어야지. 저 녀석이 날 갈가리 찢기 전에. 그런데 넌 오히려 끼어들어서 두 번 죽였어.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네? 저, 전 그게 아니라요.”

    애가 어찌나 놀랐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농담이야, 농담. 그걸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네?”

    내 말을 듣고는 눈물까지 살짝 글썽거린다.

    이거 여자애 우는 거 보니까, 내 마음이 영 그러네.

    괜한 얘기를 했나?

    애들도 너무했다는 듯 날 쳐다본다.

    “······.”

    그런데 그때였다.

    고기 집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젊은 남자들인데, 거기에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나소정이 놀란 얼굴로 작게 말했다.

    “어? 철수 오빠네.”

    “정말.”

    나소정 말대로 남자들 사이에 화실을 그만 뒀다던 변철수가 끼어있었다.

    그럼 같이 온 사람들은 친구······라고 보기엔 나이대가 달라 보이는 사람도 여럿 끼어있다.

    스카우트가 되었다더니 그쪽 화실 사람들인가?

    나소정이 조그맣게 말했다.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말에 박기우가 그쪽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그냥 둬. 괜히 신경 쓰일 텐데.”

    “그래도, 아는 체는 해야지.”

    “아냐, 기우 형 말이 맞아. 그냥 둬.”

    나준호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누나를 말린다.

    아깐 배신자니 어쩌니 농담인줄 알았는데, 표정 보니까 진짜 감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네.

    하여튼 그렇게 말하던 애들이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난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해라. 난 신경 쓰지 말고.”

    그 말에 서로를 돌아보더니, 그냥 고기만 집어먹기 시작한다.

    그때 인상을 쓰던 준호가 소주병을 들었다.

    그런 녀석의 소주병을 빼앗고는 내가 한잔 따라줬다.

    녀석이 두 손으로 받더니 한 번에 들이킨다.

    “얘, 살살 마셔. 취할라.”

    내가 살던 시절이랑 달라서 소주 도수가 제법 높다고 들었다.

    이 시대로 와서는 술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크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셔. 그리고 술은 취하는 맛에 마시는 거고.”

    “어린 녀석이.”

    “이거 왜이래. 나도 이제 어른인데.”

    “알았어, 알았어. 그래, 니 똥······, 크음.”

    나소정이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콜라를 마신다.

    다시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나준호가 낄낄거리다가 ‘아얏!’하며 움찔한다.

    아무래도 꼬집은 모양이네.

    그런데 갑자기 들어온 변철수가 신경 쓰였는지 모두가 그쪽으로 신경 쓰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나도 은근히 그러고 있고.

    자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저쪽 대화가 잘 들려서 더 신경 쓰인다.

    “철수 너, 그림은 잘 그리는데, 속도는 좀 더 올려야겠어. 요즘 원고 느리다고 선생님이 얼마나 닦달하는지, 나 힘들다, 진짜.”

    “그래, 철수 씨. 선생님도 철수 씨 능력 높이 사서 힘들게 데려오신 거잖아요.”

    “죄송합니다.”

    “뭐, 우리에게 죄송할 건 없고.”

    “맞아. 다 같이 고생하는데. 그래도 단체생활이니까.”

    어째 분위기가 안 좋네.

    변철수 표정도 안 좋고.

    아무래도 화실에서 무슨 일 있었나?

    “이거 마시고 내일부터 다시 힘내면 되지.”

    “내일은 무슨, 조금 있다가 다시 야간작업 들어가는데. 술은 조금만 마셔. 철수가 지금 작업이 제일 많이 밀렸다고.”

    “제가 도울게요.”

    남자 한명이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넌, 임마. 네 일이나 신경 써. 먹칠하나 똑바로 못하는 놈이.”

    “······.”

    “그나저나, 일용이 형도 그렇고, 갑준 형도 그렇고, 요즘 너무 신경질 적이지 않아요?”

    “씨발, 어쩌겠냐? 일은 밀리지, 선생은 쪼아대지. 그러니까 만날 날카롭지.”

    “그건 선생님 때문이죠. 대본소 만환데 뭘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잘 그리라고 그러는 건지.”

    “그래서 스카우트 한 거잖아. 앞으로 연재만화 쪽으로도 노린다잖아.”

    “아, 전에 만화공장 그 성인만화잡지 말하는 거죠? 그거 작년에 창간한 잡지죠?”

    “그래. 거기 이름 있는 만화가들 잔뜩 들어갔잖아. 우리 선생도 거기 들어가고 싶은 거지. 지금 멤버들 언젠가는 싹 갈아치울 거야.”

    “아 씨발, 그럼 우리는 B팀 되는 거예요?”

    “B팀이 될지, 아니면 그냥 해체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

    그 말에 저쪽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 소주를 들이키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철수는 좋겠다. 그때 확실하게 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게요. 대본소 쪽에서 보면 그렇지만, 연재라면 괜찮을 거니까요.”

    “부럽네. 부러워.”

    “······.”

    여러 명의 인간들이 이런저런 푸념을 하다가도 곧 변철수를 돌려 까는 분위기다.

    그 덕분에 변철수의 표정도 좋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을 테고.

    그것을 힐끔 보고 있는 여기 애들 표정도 마찬가지다.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저놈의 텃세를 이겨내지 못하며 자리를 잡을 수 없을 테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던 박기우도 답답한지 소주잔을 입에 가져간다.

    박기우랑 변철수는 동갑내기 친구라 더 그렇겠지.

    그런데 그때 변철수의 시선이 우리 쪽에 닿았다.

    순간 애들을 보고 놀랐는지 눈이 커진다. 그리고 곧 내 눈과도 마주쳤다.

    변철수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변철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왜? 화장실 가게?”

    “화장실, 밖에 있어. 주인아줌마한테 열쇠 받아서 가야 돼.”

    “아뇨. 집에 일이 있어서요. 저기 이건 제 몫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러자 다른 동료들이 그를 막았다.

    “아니, 괜찮아. 우리가 산다고 했잖아. 넌 안 내도 돼. 그리고 별로 먹지도 않았잖아.”

    “아뇨.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놓고는 바로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자신의 생활을 들킨 게 신경 쓰인 모양이다.

    이정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가자, 나소정도 따라 일어설 것처럼 움찔거리더니 곧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응? 뭐지?

    변철수랑 이정미 사이에 뭔가 있는 건가?

    하지만, 묻기도 뭐해서 그냥 눈알을 데굴거리고 있는데, 그때 방금 변철수가 있던 자리에서 또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하, 그 새끼. 혼자 또 빠져나가는 꼬라지 봐라. 하여튼, 단체 생활이라는 걸 몰라요.”

    “그러게. 저 놈, 스카우트 됐다고 은근 우리 깔보고 있다니까. 평소에도 밥맛없더니. 그러기에 우리끼리 오자니까 쓸데없이 왜 불러?”

    “야, 선생이 쟤한테 신경 좀 쓰라고 하는데, 어떻게 우리끼리만 오냐? 전에도 우리끼리만 어울린다고 한소리 들었는데.”

    “씨발, 특별대우야? 속도도 존나 느려서 폐만 끼치는데.”

    “나중을 위한 거잖아, 나중. 전에 다른 화실에 있는 형들에게 들었는데, 앞으론 대본소보다는 연재만화가 뜰 거라더라. 일본은 이미 대본소 만화 사라진지 엄청 오래됐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한국이랑 일본은 다르죠. 일본이야 잡지도 많으니까 그렇겠지만. 거기다 대부분 독자들은 사는 것보다는 빌려보는데 익숙하잖아요.”

    “너 요즘 보물성 잘 팔리는 거 몰라? 얼핏 들었는데, 내년엔 순정잡지도 나온다더라.”

    “어? 그래요?”

    “그래. 이젠 슬슬 잡지 쪽으로 대세가 넘어가는 중이야.”

    그 말에 모두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 씨발. 나도 당연히 몇 년 고생하면 문하생 열 명 정도 두고 대본소 작품 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러니까, 그림만 그리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좀 살펴.”

    “그나저나, 형 얘기 듣고 나니까 더 짜증나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도 아니고, 그 새끼. 재수 없네. 이참에 좀 괴롭혀서 제 발로 나가게 만들어버릴까요?”

    “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웃자, 몇몇도 따라 웃는다.

    “미친 놈. 뭔 헛소리야.”

    “그렇잖아요. 우리같이 오랫동안 구른 사람들만 피해보는 거니까.”

    “······야, 그래도.”

    아 이놈들이 진짜.

    뒷담화를 듣고 있으려니 짜증이 밀려온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얘기를 듣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버럭 소리쳤다.

    “아, 그 새끼들,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좆같이 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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