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49화 (349/425)

귀찮은 녀석 (2)

“서, 선생님이 왜 준호랑?”

나소정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나준호라 불린 남자애가 날 돌아봤다가 다시 나소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누나, 아는 사람이야?”

하지만 나소정은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날 보며 물었다.

“준호랑 아는 사이였어요?”

“아니, 오늘 처음 만났어. 정확히는 만난 지 몇 분 안 되었고.”

“네?”

더 황당해한다.

그리고는 나준호 쪽을 돌아본다.

둘 다 나 씨 성을 가졌으니 대충 남매거나, 아니면 사촌쯤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때 나소정이 나준호에게 말했다.

“너 써니 선생님 좋아하지?”

그 말에 나준호가 깜짝 놀랐다.

“엇! 설마 이분이 써니 선생님!”

그러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써니 선생님은 여자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써니 선생님이 아니고, 그분 오빠이신 이윤환 선생님. 아, 넌 그렇게 말하면 알겠구나, 텐겐.”

“텐겐?! 설마 삼사라랑 머신건 잭의 스토리 쓰신 스토리 천재?”

스, 스토리 천재?

표정관리가 잘 안 된다.

“맞아.”

“······.”

나준호가 날 휙 돌아본다.

야, 그런 얼굴로 날 보지마라.

여기서 도망가고 싶으니까.

그때 나소정이 말했다.

“몇 분 되지도 않았다면서 왜 원고를 같이 하세요?”

“아, 난 몰랐어. 스튜디오D 애들 원고였는지.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그거 작업 저희가 마저 할 테니까, 그만두세요.”

그렇게 말한 나소정이 서둘러 테이블 위에 있던 원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준호에게 잔소리를 늘어놨다.

“네가 도와준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냥 넌 공부나 해,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리고 아빠 아시면 불호령 떨어질 거야.”

음, 남매로군.

“방학이니까, 좀 도와주려고 했는데, 어제 친구들이랑 너무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됐어. 됐으니까, 같이 사무실로 가서 마무리하자.”

“다른 사람들은?”

“밤샘작업하고 난 뒤라서 지금 모두 자고 있을 거야.”

그렇게 원고를 챙기고 나자 나소정이 내게 인사했다.

“선생님도 바쁘실 텐데,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

“어? 그냥 누나 혼자가면 안 돼? 나 여기서 텐겐 선생님이랑 잠시만이라도 얘기를 좀······. 아야!”

나소정이 나준호의 귀를 잡아당기자 비명을 지른다.

“야, 시끄럽고. 넌 오늘 나랑 같이 이거 마무리해야 돼. 지금 시간이 없단 말이야. 제때 원고를 보내야 한다고.”

“그래도······.”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날 힐끔거리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귀를 잡힌 채로 머리를 살짝 숙이다 다시 비명을 지른다.

“아야야!”

그 상태에서 인사를 왜해?

아무튼 두 사람의 호들갑을 보면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도와줄게. 같이 가자.”

“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도 바쁘실 텐데.”

그때 손을 뿌리치며 잡혔던 귀가 해방이 되자 나준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누나는 왜 그래? 선생님이 도와주시겠다는데.”

“그게······.”

나준호가 곤란해 하는 나소정을 밀어내며 말했다.

“같이 가요 선생님.”

“그래요.”

“아이고, 선생님. 말씀 낮추세요.”

“그래. 알았어.”

“헤헤.”

다방을 같이 나온 우리들은 곧장 도로변으로 나갔다.

나소정이 도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타면 돼요.”

버스정류장 표지판을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버스 타려고?”

“저기, 걸어가기엔 좀 멀어서요.”

“그게 아니라 작업시간이 부족하다며.”

“그러니까, 버스를······.”

“그냥 택시 타자. 요금 얼마 안하니까.”

기본요금이 600원 쯤 이던가?

“그럼 그 돈은 제가 낼게요.”

그런 나소정을 말렸다.

“됐어. 너희들 원고료 많지도 않잖아. 이런 건 내가 내야지.”

“그래도 그 정도는 제가 낼 수 있어요.”

“그래, 알고는 있는데. 내가 낼게. 다음엔 네가 내라.”

그렇게 말하며 흰색의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얘들 표정이 묘하다.

나준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 이거 스텔라에요.”

“그래?”

그러고 보니 이대봉의 차가 스텔라였지.

“기본요금이 800원이에요.”

응? 내가 알고 있던 금액이랑 다르네?

“기본요금이 올랐나?”

뭐 그래도 상관없지만.

“아니요. 이건 중형이라 포니보다 더 비싸요. 그리고 요금도 더 많이 나오는데.”

나준호가 열심히 얘기하는 사이 택시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알았으니까, 어서 타라.”

“아, 네.”

“죄송해요.”

“저 앞자리에 타면 안돼요?”

“얘, 준호야.”

“그래. 그게 편하면.”

“아싸.”

나소정은 미안해하며 뒷자리에 올라탔고, 나준호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조수석에 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소정이 사과를 하자 내가 손을 휙휙 내저었다.

“별 것도 아니니까, 그런 걸로 사과하지 마. 그보다 빨리 위치 알려드려야지.”

내 말에 나소정이 화들짝 놀라며 택시기가에게 도착할 장소를 알려준다.

그런데······.

“어? 저희 화실 전에 거기 아니야?”

“아, 저희 옮겼어요. 얼마 전에.”

“오, 그래?”

돈을 좀 벌었나보다.

내가 알기론 큰돈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이시기의 일본원고료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으니까.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난 뒤 주변을 돌아봤더니 한산한 동네다.

뭐, 굳이 화실이 좋은 위치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두 사람을 따라 도착한 건물 앞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에 비해 건물도 상당히 낡아 보이는데.

일단 따라 들어갔다.

뭐, 실내는 다르겠지.

그리고 3층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혀 예상 밖의 실내모습에 조금 놀랐다.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낡은 실내였다.

물론 들여놓은 책상이나 의자, 책장 같은 것들은 깔끔하지만.

그래봐야 전에 쓰던 것들인 것 같고.

“어째 화실에 전보다 더 낡은 것 같은데. 여기 비싼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이제 저희도 돈을 버니까 제임스 오빠 신세는 그만지려고 결정한 일이에요.”

“······아.”

그렇다면 이야, 기특한 거고.

그나저나 그럼 번 돈을 몽땅 털어서 이런 곳을 얻고, 거기다 여러 명이 남는 원고료를 나누면, 좀 빠듯할 텐데.

어쩐지 아까 택시비를 좀 부담스러워 하더니.

쯧.

하긴, 만화는 연재보단 단행본이 진짠데, 아직 단행본도 나오지 않았으니.

아, 그러고 보니 외전격 만화라서 그런지 편집부에선 단행본 출간을 좀 꺼려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음.

이거, 마음이 좀 그러네.

“역시 화실이 너무 지저분하죠?”

나소정이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한 얼굴로 물었다.

이런,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아니, 기특해. 그렇지만, 사정이 좀 어려워진 것 같아보여서 마음이 좀 그래서.”

“에이, 아니에요. 저희들 괜찮아요. 저희 힘으로 이만한 화실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그러면 다행이지만.”

“에이, 누나는. 지금 사정 너무 안 좋잖아.”

“야, 너.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귀를 잡으려했지만 이번엔 나준호가 슬쩍 피해버린다.

“철수 형이 그만두고, 동규 형이랑 용우 형 군대 가는 바람에 세 명밖에 안 남아서 그런 거고.”

“야!”

뭐? 그런 일이 있었나?

이대봉이 아무런 말도 안 해서 몰랐는데.

“대봉이 형에게 말 하지. 발 넓은데.”

“요즘 제임스 오빠 바쁘기도 한 것 같아서, 쓸데없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거기다 그 오빠 요즘 보기도 힘들고.”

툭하면 여행병이 도지는데다가, 최근엔 드래곤 수프 연재 준비 때문에 바쁘긴 하지.

“그리고 우리 일이잖아요. 우리가 해결해야지.”

“그래서 날 부려먹는 거냐?”

“뭐래는 거야? 네가 하겠다고 나선거지.”

“형, 누나들이 불쌍하니까 그런 거지.”

“흥. 그런 거면 관두던가.”

“그러고 싶은데, 우리 누나 우는 모습은 보기 싫거든.”

“이게 뭐라는 거야! 죽을래!”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번쩍 들었다가 곧 멈칫하더니 날 힐끔거리고는 어색하게 웃는다.

오, 보기보다 한 성격 하는구나.

“기우랑 정미는 어디 있어?”

박기우는 스토리 담당이고, 이정미는 인물 펜선 담당이다.

“저쪽 커튼 뒤에요.”

나소정이 가리킨 곳엔 두 개의 커튼이 보인다.

“대충 칸막이 치고, 간이침대 두 개 뒀어요.”

“고생들 하고 있네.”

“고생은요.”

“그런데, 철수는 왜 그만뒀어?”

변철수는 배경 담당으로 기억하고 있다.

꽤 실력도 있고, 손도 빨라서 나중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소정이 말했다.

“스카우트이요.”

“스카우트?”

“네. 손이 빠르고 배경 잘 그린다고 김명훈 화실에서 데려갔어요.”

“그래?”

대본소 쪽으로 빠진 건가?

하긴, 손이 빠르고 인정만 받으면 돈은 제법 받을 테니.

뭐, 각자 사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런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나준호는 인상을 팍 썼다.

“그래도 그건 아니죠. 같이 하자고 모였는데, 그렇게 의리 없이 빠져나가버리면. 가뜩이나 사람도 부족한데. 그 때문에 요즘 연재도 아슬아슬하고. 그러다보니까 모두 힘들기만 해서 분위기도 안 좋아요.”

“야, 왜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래?”

“그냥 뭐, 그렇다고.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괜히 걱정하시게.”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게 뭐있어. 아, 그보다 지금 급하다며 원고 마무리해야지.”

“아, 맞다.”

깜짝 놀란 나소정이 서둘러 원고를 꺼냈다.

나준호도 원고 한 장을 붙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방에서 했던 것처럼 열심히 지우개질이랑 먹칠도 한다. 간단한 스크린 톤도 부치고, 집중선 같은 것도 그렸다.

“어? 선생님도 잘하시네?”

나소정이 내 쪽을 슬쩍 보며 웃더니 다시 작업을 한다.

나준호는 경험도 부족할 텐데 꽤나 능숙하게 펜선을 입히고, 작업을 마무리해갔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흘렀을 때 박기우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이제 일어났냐? 안 피곤해?”

“어? 서, 선생님!”

깜짝 놀란 박기우가 우리 모습을 보더니 눈을 껌뻑거렸다.

“지금 뭐하세요?”

“뭐하긴 작업 중이지. 바쁘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우연히 만났어. 준호.”

“준호를 아세요?”

“아니, 오늘 처음 만났어?”

“그럼······?”

“말 그만 시켜. 나 지금 바쁘다.”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박기우가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원고에 매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쪽 커튼이 젖혀지더니 머리가 뒤집힌 이정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설명할 틈 없다.”

“네?”

“원고 바빠.”

“아, 네.”

그렇게 대답한 이정미도 곧장 우리와 합류했다.

잠시 후.

“후아. 끝났다!”

“나도.”

원고를 모두 마무리 했는지 박기우와 나소정이 말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자, 대기하고 있던 나준호가 서둘러 완성된 원고들을 챙겨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원고 부치고 올게요!”

그 모습을 보며 모두 한숨 돌렸다는 모습으로 축 늘어진다.

나소정이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제때 마무리했어요.”

“오버하지 마라. 내가 도와준 거라고 해봐야, 뒤처리 약간인데.”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그나저나 선생님께 저희가 작업비 드려야하는데.”

“됐어.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그렇게 말하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저녁시간이다.

“너희들 밥 먹어야지? 근처 고기 집에나 갈까?”

“정말이요!”

“고기 오랜만인데.”

“고기는 저희가 살게요.”

“나중에 사.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빨리 나가자. 배고프다. 준호에겐 메모남기고. 고기 집 안내해봐.”

“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