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 거리지 마라 (1)
이대봉이 어디서 들었는지, 화실에 들어오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 작은아버지 찾았다며?”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식당 근처 여관에 있더래.”
전해 듣기론 쓰레기 같은 방 안에서 반쯤은 해골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거의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쇠약해 졌다고 링거까지 맞았단다.
뭐, 나름 가족 상봉의 감동적인 장면도 있었다는 모양이지만.
“그래?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네? 그나저나 어떻게 찾았대?”
“어떻게는, 그 뿔테아저씨 덕분이지.”
“오, 진짜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 사람.”
그 말에 이번엔 어시들도 궁금한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사람 정체가 공무원이라면서요?”
김기철이 묻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뭐,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확인한 적은 없지만.
“그때 싸움도 엄청났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 혹시 그 뭐더라, 안······.”
“안기부?”
“네, 안기부요. 거기 사람들 아닐까요?”
그때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안기부 사람들이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사채꾼들 일이나 간섭하게. 거기다 지금 같은 시국에.”
“그럼,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모르지.”
그런 내게 이대봉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윤환이 너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아니야? 혹시 네 인맥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거나.”
그럴 리가.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없어. 애초에 한국에서 거의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인맥이 있을 리 없지.”
내 말에 머리를 끄덕이던 이대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윗사람 중에 네 팬이 있다거나······. 이젠 너도 일본에선 꽤 알려졌으니까.”
“설마. 너무 나간 거 아니야?”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실버도 피식 웃었다.
“하긴, 일본에서도 출판사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너나 선희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때 경희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공무원인 사람은 미령이 아빠뿐인데. 설마 미령이 아빠가 그쪽 사람이라거나.”
“에이, 설마요.”
박소미의 말에 경희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생각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겠죠?”
“당연하죠.”
“그런데 미령이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죠?”
차미정의 말에 모두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미령이도 아빠가 공무원이고 바쁘단 말만 했지, 무슨 일을 한다고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그냥 어디 구청이나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을까 정도의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뭔가 갑분싸한 분위기에 모두 눈알을 굴리고만 있었다.
그때 화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저 왔어요!”
미령이였다.
얼마 전까진 어린애같이 말하더니, 2학년이 되고부터는 많이 어른스럽다.
높임말도 잘하고.
대견하네.
어쨌거나, 갑자기 등장한 미령이 때문에 모두 화들짝 놀랐다.
그 때문에 생글거리며 들어왔던 미령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응? 모두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런 미령이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말에 모두가 수긍하는 지 머리를 끄덕였다.
“뭐가요?”
미령이의 말에 모두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짜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 *
소년 히어로 편집부 직원들이 휴게실에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단연 그 주제는 갑작스럽게 데빌 바이러스가 연재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직원 중 한명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연재를 끝내다니.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군.”
“오늘 아침 비상회의도 그것 때문이지?”
“아마 그럴걸? 그리고 오늘 편집장님 표정 봤어? 엄청 살벌하던데.”
“말도마라, 우리 팀장님도 회의실에서 무슨 얘기가 오간건지, 계속 인상만 쓰고 있었다니까.”
“야아, 그 여자가 진짜 미쳤구나. 어떻게 그렇게 뒤통수를 치냐? 편집장님 혈압으로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점프에도 비슷한 만화 있지 않았어? 예전에?”
“아, 쿠루마다 선생님 말이구나. 지금 세인트 세이야 연재 중이신. 지금은 뭐 히트작으로 돈을 긁어모으시는 모양이더만.”
“그 쪽은 그렇게 개과천선했네.”
“미소년 캐릭터를 빵빵하게 등장시켜서 여성 독자들에게도 엄청 어필해서 성공했잖아. 애니메이션도 잘 나온 모양이라, 책 판매가 엄청 늘었다고 하더라고.”
“그나저나 요즘 소년점프 굉장하지?”
“엄청나다 뿐이냐? 지금 점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고 불리고 있는데. 얼마 전까진 근육맨이랑 북두의 권이 인기를 이끌었고, 지금은 드래곤볼이랑 시티헌터가 강세잖아.”
“역시 소년점프구나. 요즘엔 연재중인 만화가 거의 다 인기작뿐이라니까. 부럽다, 부러워.”
그때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야, 우리는 어떻고, 이제 3대 소년지라는 말은 사라졌잖아. 우리까지 4대 소년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보니 우리가 진짜 엄청나구나. 새삼스럽지만 대단하네.”
“그나저나 크래시 킹도 대단하다. 그 난리를 겪고도 요즘 승승장구 하고 있으니까.”
“음, 데빌 바이러스를 내어주고 크래시 킹을 얻은 건가? 그럼 남는 장사네.”
“생각해보니 말 된다.”
“야야, 무슨 체스의 말이냐? 너무 심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
“나카야 선생님. 마지막 두 페이지만이라도 고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즈미의 집에 찾아온 코지마가 사정했지만, 그녀의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진짜. 이미 완결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고치긴 왜 고쳐요?”
“제대로 끝내지 않으셨잖습니까. 두 페이지만 고치면 연재는 이어갈 수 있습니다.”
코지마의 말대로, 이야기가 마지막 두 페이지만 고치면 문제는 없었다.
그 말은 돌려 말하면 그 두 페이지 만에 갑자기 완결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원고를 그리던 이즈미가 마지막 순간에 결국 완결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코지마는 그런 그녀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회의에서도 내일까지 시간을 줬으니까.
하지만, 이즈미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지 요지부동이었다.
“애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두 끝났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느긋한 모습으로 차까지 마셨다.
그 모습을 보던 코지마가 인상을 썼다.
“아니, 그럼 왜 잘 나가다가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급하게 완결을 낸 겁니까?”
코지마가 열을 내자 찻잔을 내려놓은 이즈미가 그를 휙 돌아봤다.
“급하게 낸 게 아니라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었다고요.”
“누가 봐도 급하게 완결 낸 만화가 맞잖아요! 아닙니까?”
계속 흥분한 채 말하는 코지마에게 결국 이즈미도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리고 당신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따지는 게 많아요!”
“담당이니까요! 그리고 계속 지켜봐 왔던 담당으로서, 선생님 말씀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이 남자가 진짜!”
“선생님! 저랑 회의를 해요! 그리고 지금이라도 스토리를······.”
코지마의 말허리를 자르며 버럭 소리쳤다.
“구로다!”
“네, 아가씨!”
“이 사람 당장 쫓아내요!”
“서, 선생님!”
“괜히 불러들였어. 진짜.”
“회의 하면 된다니까요. 시간이 없어요!”
“구로다!”
이즈미가 소리치자 머뭇거리던 노인이 코지마에게 다가갔다.
“저기, 코지마 씨.”
“······선생님.”
“나가라니까.”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던 코지마가 힘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 노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쏘아보던 이즈미가 곧 팔짱을 끼며 외면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
테고시에게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키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제멋대로구만, 그 여자.”
“그 때문에 오늘 편집부에서도 시끌시끌했습니다.”
“그랬겠지. 그렇게 갑자기 사전 통보도 없이 끝내버렸으니. 뭐, 내가 만화가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사도 그런 식으로 일을 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 영,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니시다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만화가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연재를 끝내버리면, 독자를 실망시키는 일이니까요.”
“어, 자네 아직 안 갔어?”
“······.”
“그리고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 여자가 옳다고 하는 건 아니야. 제대로 말뜻을 이해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쯤은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인상을 쓰며 뭔가 말하려 하던 그때 테고시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코지마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다고 나카야 선생님 설득하러 간 모양이긴 한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코지마? 그 여자 담당이야?”
“네.”
키도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여자 설득해서 뭐하게. 그래봐야 또 저렇게 느닷없이 연재를 중단시킬 텐데.”
“그래도, 담당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만약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겠냐!”
“만약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아무리 만약이라도 난 그런 몰지각한 일 안해! 니시다, 저 녀석이라면 모를까.”
키도가 니시다를 힐끔거리며 낄낄거렸다. 그러자 니시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절대 그럴 일 없는데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 네 담당 예전에 너 땜에 마음고생 엄청 했다는 거 모를까봐?”
“······왜 또 지나간 일을 들먹입니까?”
니시다가 버럭 했지만, 키도는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때 간식이 든 쟁반을 들고 나오던 키도 부인이 그들이 앉아있던 소파 테이블로 다가와서는 그것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덕분에 세 사람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였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키도는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가 싹 사라졌다.
분명 부인의 기분이 좋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여, 여보. 갑자기 왜······?”
“마음이 아프네요.”
부인의 말에 키도가 멈칫했다.
“뭐?”
“평소 그 아가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의 당신 모습은 정말 실망이에요. 어른이라는 것을 자각하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가져왔던 쟁반을 들고는 다시 부엌으로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니시다를 돌아봤다.
니시다는 그런 키도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다시 테고시를 돌아보자, 그가 서둘러 받은 원고를 챙겨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바쁘실 테니까 저는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어시들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서둘러 화실을 빠져나갔다.
테고시의 그런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키도가 다시 어시들을 돌아보자, 어시들도 서둘러 머리를 푹 숙이며 작업에 열중했다.
“······.”
* * *
제멋대로 신공이 또 나오는구만.
이젠 갑작스런 연재중단이라니.
방금 지로의 전화로 이야기를 다 전해 듣고는 혀를 찼다.
요즘 데빌 바이러스의 성적이 엉망이라는 소리는 들었고, 실제로 만화도 엉망이 되었지만, 그거야 일시적인 멘붕상태라는 것 때문이니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하던 크래시 킹이 소년 히어로까지 진출해서 데빌 바이러스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그렇게 몇 번 더 혀를 차고는 다시 머신건 잭의 스토리 작업에 집중했다.
그런 사람에 대해 내가 고민하는 건 에너지 낭비니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성준희가 뭔가 이야기를 하더니, 곧 나를 불렀다.
“윤환아.”
“어?”
“전화 받아.”
“누구? 아키기 씨?”
“아니, 다른 사람.”
“누구?”
“데빌 바이러스 그린 만화가.”
이즈미가?
그 여자가 갑자기 또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