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44화 (344/425)

몰락한 작은집 (3)

그때 정리하던 경희도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유미가 우리 집에?”

“응.”

“엄마가 데리고 왔어.”

“어떻게?”

“장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고 하던데.”

엄마가 시장 근처 골목에서 울고 있던 유미를 만났다고 한다.

아무튼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경희가 화실을 서둘러 정리하고는 나와 선희까지 화실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화실 대문까지 완전히 잠근 뒤,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경희가 엄마에게 물었다.

“유미는 어디 있어?”

“너희들 방에.”

“그래?”

경희가 제 방으로 들어가려하자 엄마가 손을 잡고 말렸다.

“아까까지도 울더니, 방금 잠든 모양이야. 깨우지 마.”

“유미가 울었다고? 정말?”

경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래.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말도 못 붙이겠더라.”

“아.”

머리를 끄덕인 경희가 다시 덧붙였다.

“유미 쟤, 밥은?”

누나가 대답했다.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밥부터 먹였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밥은 세 그릇이나 비우더라. 애가 얼마가 굶은 건지.”

“뭔가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인데, 말을 안 하더구나. 걱정이다.”

엄마가 누나의 말을 이어받자, 경희가 누나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오늘······.”

경희가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와 누나에게 말했다.

디테일은 좀 줄여서.

당연히, 이동환이 협박을 당하는 모습은 빼고.

아무튼 그 집, 가장이라는 작자가 또 사고를 친 게 아닌가하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다.

짧은 정보만으로도 엄마는 작은집에 대한 사정을 대번에 눈치 챈 표정이다.

“그럼 남매만 집에 있는 거니? 서방님이나 동서는?”

“실버오빠가 그러던데, 작은아버지는 집에 안 계시데. 그리고 작은어머니는 그 식당에 있는 방에 누워계신다는 모양이야. 이번 일로 쓰리지신 것 같아.”

“······저런. 그럼 내일이라도 직접 가봐야겠다.”

“나도 같이 가.”

누나까지 나서자, 경희도 같이 가겠단다.

선희는 내 눈치를 슬쩍 보고는 머뭇거린다.

“너도 가고 싶으면 가도 돼.”

“그래도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뭐 있어.”

실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뭐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좀 묘하기는 하지만, 이럴 땐 내가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씁쓸한 느낌이다.

물론 가족들의 입장에선 내가 아닌 본체였다고 해도 별로 다를 건 없을 것이다.

본체 녀석도 작은집 식구들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니까.

아무튼 내 말에 선희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갈래.”

“그래, 그럼 같이 가보자. 그래도 작은집 사정이 그런데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안 그러니, 윤환아.”

엄마도 내 눈치를 슬쩍 보신다.

요즘엔 저런 모습을 한 번도 안 보이셨는데, 역시 이런 문제만큼은 내가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이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마음 가는대로 하셔. 내 신경 쓰지 말고.”

“얘는, 누가 신경 쓴다고.”

“그 , 빚을 대신 갚아주자는 얘기는 하지 마. 그건 반대니까.”

“당연하지. 네가 어떻게 번 돈인데.”

“걱정하지 마, 윤환아. 그건 나도 반대니까.”

그런 누나의 말에 경희도 동조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오빠. 예전에 아빠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사이잖아. 그리고 우리 어릴 때는 엄청 친했잖아, 오빠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어린 시절은 본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일 뿐이니까.

어쩐지 또 씁쓸해진다.

가끔 이렇게 내가 오기전의 일이 대화의 중심이 되면 변두리에 서서 구경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는 일.

“그래. 그럼 됐어.”

내 말에 가족 전부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만 선희 표정이 약간 미묘하다.

설마 내 이런 기분을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다음날 아침.

“윤환아 아침밥 됐으니까, 일어나서 씻어.”

누나의 말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려다가 멈칫했다.

이유미가 부엌에서 엄마를 돕고 있는 모습을 봐서다.

얼굴을 보니, 그래도 푹 잔 모양이네.

어깨를 으쓱 한 후, 욕실로 들어가 씻은 뒤 부엌에 있는 탁자로 갔다.

가족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그중 한 자리엔 이유미가 앉았다.

“너 화실에 출근하고 나서 유미랑 같이 가기로 얘기가 됐어.”

“그래?”

그렇게 말하며 이유미를 슬쩍 봤더니, 내 눈을 피하고 있다.

얘는 기억하고 있을라나? 전에 지들 가족이 모여 우리를 비웃던 거.

뭐, 피해자는 기억해도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불편한지 한 번도 내 쪽을 쳐다보는 일 없이 오로지 음식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묵묵하게 식사를 할 뿐이다.

가족들은 그런 이유미를 힐끔거릴 뿐이다.

선희야 뭐, 오로지 밥 말고는 관심 없는 모습이고.

아무튼 아침을 먹고 나서는 난 곧장 화실로 향했다.

화실에 들어가고 나서 어시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실버가 가장 먼저 출근했겠지만, 4일간의 예비군훈련 때문에 아직은 한동안은 저녁에만 출근한다고 한다.

뭐, 출근이라고 해봐야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저녁 먹고, 노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출근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한다.

원고작업은 안 해도 어시들의 그림을 봐주기는 하니까.

이거, 따로 보너스라도 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출근을 하면서 선희가 없으니 돌아가며 한마디씩 던지기는 한다.

“작은 선생님은요?”

“어? 오늘 쉬세요? 작은 선생님?”

“선희는 오늘 안 나온 거니?”

“선희 누나는 없어?”

성준모, 꼬맹이 녀석까지.

“선희 언니는 어디 있어?”

간만에 미령이도 놀러 와서는 저렇게 선희를 찾고 있다.

이 녀석, 언제 이렇게 인기가 많았었지?

*

화실정리랑 청소를 어시들과 함께 한 뒤 같이 퇴근을 했다.

오늘은 남아서 할 것도 없고, 가족들이 돌아왔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일찍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갔더니 껌껌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이렇게 썰렁한 집을 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아니, 이곳에 온 뒤론 경험한 적이 없었구나.

적막한 어둠을 형광들이 밝히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인데 늘 가족이 벅적거리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그때 정적을 깨며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벌써 퇴근했네?

“어. 그런데 왜 집엔 안 오고 전화를 해? 아직 거기야?”

-여기 병원이야, 오빠.

경희의 말에 깜짝 놀랐다.

“병원? 거긴 왜?”

-작은 엄마 상태가 너무 나빠서, 병원으로 옮겼어. 방금 정신을 차리셔서 엄마랑 지금 얘기나 누고 계셔.

그 말에 곧 안도하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래? 그럼 거기 가족들이 다 있는 거네?”

-아니, 엄마랑 나, 이유미만 여기로 왔고, 언니랑 선희는 동환이 오빠랑 식당에 있어.

“식당? 거긴 왜?”

-장사 때문에.

“장사? 거기 사람 별로 없다지 않았냐?”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더라고. 그것도 인근에 있는 구청공무원들이 잔뜩.

“공무원들이?”

-응. 평소엔 찾아온 적 없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대.

“음식이 유명한 곳인가?”

내 말에 경희가 웃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듣기론 식당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던데. 거기다 동환이 오빠는 식당에서 일 배운지 몇 달 되지도 않았대.

그렇다면 이상하긴 하다.

물론 자주 가는 식당이 오늘 쉰 덕분에 몰려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인근에 다른 식당이 없을 리도 없고.

-그래도 언니가 음식은 잘 하잖아. 뭐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럼 유미랑 선희가 홀 서빙을 하는 거야?”

-선희야 뭐 부엌에서 집어먹기나 하겠지. 아참, 아까 전화하니까, 상식이 오빠랑 대봉이 오빠도 왔다고 언니가 말했어.

“음,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데 오빠는 저녁밥 먹었어? 나라도 집에 가서 차려줄까?

“아서라. 그냥 거기서 있어. 밥 정도는 혼자 차려먹을 수 있으니까.

-응, 알았어. 그럼 조금 있다가 집에 갈게.

“그래. 알았다.”

뭐 그럭저럭 가족들이 잘 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리고 저녁은 뭐로 먹을까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있으려니 궁금해서 안 되겠다 싶어서.

곧장 집 밖으로 나선 뒤 택시를 잡았다.

*

여기가 그 식당인가?

골목으로 들어와 식당 입구를 기웃거렸다.

간판도 없는 골목의 허름한 식당.

방금까지 손님들이 많았던 모양인지 박상식과 이대봉, 그리고 이유미가 빈자리에 놓여있는 그릇들을 치우느라 바쁘다.

부엌 안쪽엔 누나가 있는 모양이고.

선희는 어디 갔나 봤더니, 부엌 쪽에 얼핏얼핏 보인다.

설거지를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밖에서 식당 안을 기웃거리고 있던 그때 뒤쪽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렸다.

“어? 너, 여기서 뭐하냐? 감시해?”

돌아봤더니 실버다.

집에 들러서 옷은 갈아입고 왔는지, 평상복이다.

“형은 또 여기 왜 왔어?”

“그냥. 궁금해서. 혹시 또 뭔 일 있나 싶기도 하고.”

아마도 그 사채업자라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겠지.

아무튼, 이 양반도 참, 남의 일에 열심이네.

“어? 저 녀석들, 여기서 뭐하는 거지?”

박상식과 이대봉을 본 실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돌아본다.

“그건 본인들한테 물어봐야지.”

“녀석들 진짜.”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는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손님들인가 싶었는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자들인데, 모두 인상도 그렇고 반팔셔츠의 무늬도 요란한 게 보통의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몸이 힘이 들어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어째 곁에 있는 실버는 느긋해 보인다.

사내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왜소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키는 160정도 되려나?

넙대대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

그리고 코 옆에 작은 점이 찍혀있어, 기억하기 쉬운 타입의 얼굴이다.

그런 그가 이대봉을 알아봤는지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심봉이. 설마 했는데 진짜 네가 여기 있다니, 깜짝 놀랐다.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었냐?”

“너야말로 여기에 눌러 살 모양이구나.”

“뭐, 이젠 여기가 고향보다 더 익숙해서. 그리고 이젠 고향에 가봐야 만날 사람도 없고. 그러는 넌 여기서 뭐해? 설마 만화 같은 걸 그리고 있을 리는 없고.”

그렇게 말하다가 실버의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설마, 진짜야? 너 정말로 만화를 그린다고?”

“그리긴 하는데, 만화가는 아니지.”

“아······. 그럼 똘마니 같은 거?”

“무식한 놈, 똘마니가 뭐야? 어시스턴트야, 어시스턴트.”

“어시······ 뭐? 그게 뭔데?”

“아무튼 중요한 직책이야. 만화가에 버금가는······.”

실버가 약을 다 파네?

의외다.

아무튼 그 말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점박이가 뒤쪽에 있던 나를 힐끔 봤다가 다시 관심을 끊고는 실버에게 말했다.

“저기, 전에는 뭐. 네가 우리 애들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긴 했다고 하더라만, 미안해서 어쩌냐? 아무래도 오늘은 결판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네가 이번엔 좀 물러나줘야겠다.”

“······나도 간섭할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나랑 제일 친한 사람이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

“에이, 그럼 남이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그렇게까지 나설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그런 녀석도 아니고.”

“그러게. 난 원래 그런 놈이 아니지.”

뭐야? 이거.

싸움 날 분위기네.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얼맙니까?”

“어? 뭐야? 네 똘마니 아니야?”

“망할 녀석. 우리 보스다. 보스.”

“뭐? 보스? 너 이런 애 밑에서 일하냐?”

이것들이 뭐라는 거야?

내가 깡패두목이냐?

아무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점박이가 날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쪽이 이 집 빚을 대신 갚아주기라도 하겠다고······요?”

실버의 표정을 살피며 애매한 표정으로 물었다.

“금액부터 일단 압시다.”

“······뭐 좋수다.”

그렇게 말하더니 뒤쪽을 보며 말했다.

“양철아, 얼마냐?”

덩치가 큰 깍두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오늘까지 말입니까?”

“그래, 이자까지 다 쳐서.”

그 말에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열심히 뒤적거린다. 그리고는 곧장 입을 열었다.

“에, 그러니까, 음······. 얼마냐 하면······.”

“이리 내놔 봐. 이 멍청한 놈아!”

그렇게 말하며 수첩을 빼앗은 점박이가 곧 입을 열었다.

“오늘까지 이자를 다 계산하면 모두 천 구백 팔십 이 만원. 거의 이천만원이네.”

지금시대에선 거금이 맞지만, 그렇다고, 내 입장에서 보자면 큰돈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은집을 위해서 내놓기는 좀 그런 돈이긴 하지. 그래도 실버를 싸우게 만들 정도로 큰돈은 아니고.

실버도 동생들 때문에 끼어들었으니, 내가 해결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

“저기, 그 돈 내가······.”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제가 한 말씀 끼어들어도 될까요?”

더운 날씨임에도 반듯한 흑갈색 정장을 입은 검은 뿔테의 남자가 이마를 흰 수건으로 닦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누구세요?”

내 질문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저는 공무원입니다만, 정확한 건 밝힐 수 없는 입장이라, 죄송합니다.”

뭐라는 거야?

이 인간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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