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43화 (343/425)
  • 몰락한 작은집 (2)

    경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예전에 윤환과 선희가 길에서 만났던 작은아버지의 큰아들인 이동환이었다.

    당시 고등학생 이던 그는 세월이 흘러 벌써, 22살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는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사채업자들로 보이고.

    그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지 대략 알만했다.

    또 작은아버지가 어떤 일을 벌였을 것이고, 덕분에 예전처럼 빚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해결해 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고.

    어쨌건 이동환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쌍둥이들을 쳐다봤다.

    “너, 너희들 여긴 어쩐 일로······.”

    경희가 이동환 곁에 있는 인상이 험한 남자들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냥 식당 찾다가······, 그런데 여기 혹시 오빠네 가게야?”

    “·······어, 그, 그래.”

    그렇게 대답한 이동환도 곁에 있던 남자들을 힐끔거렸다.

    “어이, 간만에 친척 상봉도 좋지만, 이쪽에 집중해 주지?”

    덩치의 말에 이동환이 목을 더 움츠렸다.

    그때 긴 얼굴이 선희에게 말했다.

    “이봐, 아가씨. 미안한데, 우리 좀 바쁘거든.”

    덩치의 말에 긴 얼굴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야, 그래도 예쁜 아가씨들한테 그렇게 험한 말하면 쓰나.”

    그렇게 말하더니 경희를 보며 누런 금이빨 두 개가 슬쩍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때 경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바쁜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선희의 팔을 끌었다.

    선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동환을 보며 그대로 경희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이동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만 숙이고 있었다.

    그때 덩치가 말했다.

    “쟤들 옷도 깔끔하고, 뭔가 돈 좀 있어 보이는데, 좀 도와달라고 하지 그러냐?”

    “······.”

    “왜? 네 아버지가 쟤들 집도 벌써 털어먹은 거냐?”

    그렇게 말한 긴 얼굴이 이동환의 얼굴을 살폈다.

    “······.”

    이동환이 긴 얼굴의 눈빛을 피했다. 그러자 긴 얼굴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정말인가보네. 키야아, 대단한 집안이구만, 아버지는 빚지고 도망쳐, 엄마는 화병에 쓰러져, 가만있자 네 여동생은 어디 갔냐?”

    “······.”

    “어이쿠, 하나뿐인 여동생이라도 살려보시겠다?”

    “제발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그러자 긴 얼굴이 이동환의 볼을 손등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더 주면 뭐, 갚을 수는 있고? 어?”

    “······네. 꼭 갚겠습니다.”

    “뭐라는 거야? 전에도 그렇게 말하고는 야반도주 한 놈들이.”

    그때 덩치가 끼어들었다.

    “야, 잔소리 말고 네 여동생이 있는 곳이나 불어. 아무래도 네 여동생도 일을 좀 시켜야겠다.”

    “야, 얘 동생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내년까지 참아.”

    “내가 아는 가게엔 미성······.”

    “야, 그놈의 입 좀 어떻게 해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거 모르냐?”

    긴 얼굴의 말에 덩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 깜짝했다.”

    “으이그, 쯧쯧. 이래서 형님이 항상 날 딸려 보내시는 거 아니냐.”

    “그건 그래.”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이동환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제, 제발 제 동생은······.”

    “야, 시간 끌어봐야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고 평생 노예처럼 살아야 돼. 그러니까 결정을 일찍 내리라고.”

    “이 새끼가 어디 부러져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덩치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동환의 눈빛이 공포로 물들었다.

    *

    밖으로 나온 경희가 선희 손을 붙잡고 빠르게 걸었다.

    “어쩌지? 어떡하지?”

    “······.”

    “이대로 가면 동환이 오빠, 무슨 일 생길 것 같은데······.”

    “······.”

    경희는 중얼거리듯 말하고, 선희는 그저 말없이 그런 경희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둘 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걸어가던 골목길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여자를 본 경희가 깜짝 놀랐다.

    “어? 너, 유미 맞지?”

    그 말에 유미라 불린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쌍둥이들을 번갈아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 너희들······.”

    그 말에 걸음을 멈춘 경희가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유미 너는 정말. 너희들이 뭐니? 언니라고 불러, 언니.”

    “······.”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경희의 말에 이유미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말했다.

    “너희들 여긴 무슨 일이야?”

    “언니라니까.”

    “난 너희들을 한 번도 언니라고 생각한 적 없거든. 너네 그 양아치도 마찬가지고.”

    순간 경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아치가 뭐니, 양아치가 그리고 우리 오빠는······.”

    “우리한테 뭐 빌어먹을 거 없는가 싶어서 찾아왔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도 지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돌아가.”

    “뭐?”

    이유미가 어이없어 하는 경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흥, 찢어지게 가난한 주제에, 그래도 옷은 반듯하게 입고 다니네. 요즘 공장이라도 다니는 모양이네. 그래봐야 그 양아치가 다 탕진해 버릴 테지만.”

    그렇게 독설을 내뱉고는 곧장 쌍둥이들을 지나치려 했다.

    그때 이유미의 팔을 선희가 붙잡았다.

    “아야! 왜 이래?”

    “가지마.”

    선희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이유미가 손을 냅다 뿌리쳤다.

    “이거 놔! 이래봐야 소용없다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나쳐갔다. 그러자 이번엔 경희가 말했다.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동환이 오빠는 그 사람들에게 잡혀있고.”

    그 말에 이유미가 발걸음을 멈췄다.

    “······!”

    “경찰에라도 연락해야하는 거 아니니?”

    경희의 물음에 부르르 떨던 이유미가 입을 열었다.

    “그, 그딴 짓.”

    “뭐?”

    “소용없어······.”

    쌍둥이들도 악덕사채업자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잘 알고 있다.

    자신들도 어렸을 적에 짧게나마 겪어봤기 때문이다. 물론 어지간한 건 오빠인 이윤환이 무서운 사람들과 상대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제자리에 서서 부르르 떨고만 있는 이유미를 보며 경희가 말했다.

    “유미야 우리들이랑 같이 갈래? 한동안만이라도······.”

    “됐어.”

    “그래도.”

    “됐다니까. 내가 거지 소굴에 왜 들어가!”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야, 이유미. 너희 집에 가면 안 된다니까!”

    “······상관하지 마!”

    “쟤를 정말 어쩌지?”

    그렇게 걱정스럽게 얘기하는데, 그때였다.

    “너희들, 여기서 뭘 하고 있냐?”

    거칠지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봤더니 군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쌍둥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실버 오빠.”

    “여기서 뭐하냐?”

    “아, 그게······. 실은 친구들이랑 만나고 나서 식당을 찾다가······.”

    “아직 밥 안 먹었냐?”

    “아니 그보다······.”

    경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금 있었던 일을 실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실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러니까, 네 사촌이 그런 일을 겪고 있단 말이지?”

    “응. 어떡하지? 경찰에라도 연락할까?”

    “그래봐야, 어차피 소용없을 거다.”

    “하지만······.”

    “일단 내가 가볼 테니까, 너희들은 그냥 화실로 돌아가라.”

    그 말에 경희가 화들짝 놀랐다.

    “실버오빠는 뭐하려고?”

    “그냥, 어떤지 보려고.”

    “봐서 뭐하게.”

    “아무튼 그냥 돌아서, 빨리 가라. 여기는 얼씬 거리지 말고. 선희 데리고 얼른.”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억지로 밀어내고는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경희가 선희를 데리고 서둘러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 * *

    경희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난 뒤 택시를 타고 달리다 쌍둥이들을 발견했다.

    “저기 앞에 세워주세요.”

    택시비를 지불 한 뒤 조수석에서 내리자마자 쌍둥이들이 날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오빠!”

    “어딘데?”

    “저쪽.”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여기서 기다릴게.”

    “그냥 돌아가.”

    “기다릴래.”

    선희까지 저렇게 말하니 뭐.

    “알아서, 해. 하지만 따라오지는 마라. 알겠지?”

    그 말에 쌍둥이들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실버만 아니라면, 사채 때문에 어찌되건 그쪽 집안과는 상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인간들일지 몰라도, 어쩌면 쌍둥이에게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쨌건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사촌이니까.

    나야 한번밖에 본적 없고, 그나마도 좋은 기억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쌍둥이들을 뒤로한 채 골목길로 들어가려는데, 그때 커다란 덩치의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복을 입은 실버다.

    “으그, 뭣 하러 쓸데없이 윤환이까지 불렀어?”

    실버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난 반사적으로 실버의 모습을 살폈다. 혹시라도 싸우지 않았나 싶어서.

    그런데, 옷도 멀쩡해 보이고, 얼굴도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별일 없었어?”

    내 물음에 멀뚱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뭐? 별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였냐?”

    “걱정돼서 하는 소리지.”

    그때 경희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오빠, 정말 아무 일 없었어? 괜찮아?”

    “너까지 왜 그래. 날 뭐로 보고. 괜찮아. 별일 없었어. 그냥 조용하게 얘기만 했으니까.”

    “얘기? 아까 그 깡패아저씨들이랑.”

    “어. 뭐, 생긴 건 완전 무식해 보이던데, 의외로 말은 잘 통하던데. 아무튼 그냥 조용히 돌아갔다.”

    “정말? 만만해 보이지 않던데?”

    “아니던데? 말 잘 통하던데?”

    “그럼 다행이지만.”

    경희도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뭔가 다시 생각났는지 실버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동환이 오빠랑, 유미는?”

    경희의 말에 실버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네 사촌 오빠라는 녀석은 있었지만, 여자애는 없던데?”

    “뭐? 아까 분명히 그쪽으로 간 것 같았는데?”

    “그럼 뭐,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갔겠지. 아무튼 대충 괜찮아졌으니까, 이젠 돌아가자.”

    “하지만 또 그런 일이 생길 텐데.”

    “뭐, 어쩌겠냐. 사챈데. 그건 그 집안에서 해결해야지.”

    맞다.

    나도 우리 가족일이라면 모를까, 그런 화딱질 나는 친척이라는 작자들이 싸지른 똥에는 절대로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까.

    “······.”

    하지만 경희는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눈치다.

    정말, 경희 쟤는 너무 정이 많아서 큰일이다.

    그런 경희를 보면서 내가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실버 형 말이 맞아. 우리가 끼어들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젠 돌아가자.”

    내 말에 경희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응, 그래.”

    “선희 너도 가자.”

    선희도 머리를 끄덕였다.

    “응.”

    *

    화실에 돌아온 뒤 어시들이 모두 퇴근 한 후.

    쌍둥이들이랑 화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누나가 화실에 왔다.

    “이제 마무리하고 들어갈 건데, 뭐 하러 왔어.”

    “윤환아.”

    누나가 갑자기 묘한 표정으로 날 불렀다.

    “왜?”

    “집에 유미 와 있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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