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42화 (342/425)
  • 몰락한 작은집 (1)

    - 들었다. 제임스 선생, 신작 준비 중이라며.

    담당에게 들었는지 전화기 너머의 키도가 호기심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어. 준비 중인 스토리 봤는데, 꽤 재밌어.”

    - 오, 그래? 어느 정도냐?

    “형이 긴장해야 할 정도?”

    - 뭐?

    그렇게 대답하더니 호탕하게 웃더니 농담처럼 말했다.

    - 그 정도야? 이거 살짝 무서운데?

    “어. 그래서 나도 머신건 잭에 더 집중하고 있어. 선희도 더 퀄리티 높인다고 야단이고.”

    - ·······.

    갑자기 말이 없네?

    “여보세요?”

    - 음, 듣고 있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 네 말이 농담이 아니구나 싶으니까. 너도 너지만, 써니, 그 애까지 그런다니까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구나. 아니, 마지막 건 농담이고.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꽤 놀란 건 맞는 모양이고.

    - 네 말대로라면 정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데?

    “조만간 단편이 나갈 거니까, 직접 판단해.”

    - 크음,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아, 그보다 말이지, 그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 크래시 킹 말이다.

    “연재 끝났다는 거, 이야기는 들었어. 어설프게 끝나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며?”

    만화가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연재종료가 되었으니, 독자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을 수밖에.

    대결에서 졌기 때문에 연재를 중단하긴 했다는 모양이지만, 그건 작가가 원한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강제로 시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독자들은 거의 다 크래시 킹의 작가를 욕한다고 들었다.

    억울하겠네, 그 여자.

    - 음, 반응 보니 그 뒷이야기는 못 들었나 보구나.

    “뒷이야기? 뭔가 더 있어?”

    - 크래시 킹, 그거. 다시 연재 시작하는 모양이더라.

    “어? 진짜?”

    오, 역시 판권 계약이 허술했던 모양이네. 금방 연재처가 옮겨지는 걸 보면.

    혹시 그 문제가 없다면 다른 곳에 연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아무래도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니까.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어디로 옮겼는데?”

    - 소년 히어로.

    “뭐? 정말?”

    - 그래. 방금 우리 담당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고. 재밌지 않냐? 그 건방진 아가씨 표정이 궁금하네.

    그렇게 말하며 키도가 껄껄 웃었다.

    나도 사실 궁금하긴 하네.

    - 1차전도 흥미진진했는데, 드디어 우리 잡지 내에서 2차전에 벌어지겠구만. 이번엔 상품 또 안 걸고 하려나?

    “그런데, 누가 크래시 킹을 잡아온 거야? 다른 잡지사에서도 노렸을 텐데.”

    - 아, 그거? 듣기론 편집장이 직접 손을 쓴 모양이던데.

    “소년 히어로 편집장?”

    - 그 양반 은근히 수완도 좋다니까.

    키도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 * *

    “아우, 진짜! 소년 히어로에서 그걸 왜 받아요?”

    이즈미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코지마가 어깨를 움츠렸다.

    크래시 킹 연재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즈미가 담당인 코지마를 집으로 부른 것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자신을 부른 적이 없었던 터라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왔더니 대뜸 얼굴을 보자마자 저런 소리를 하니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건 편집장님 결정하신 일이라.”

    “그러니까, 왜 편집장님이 그런 결정을 했냐고요?”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품이라서, 그런 결정을 하셨다고······.”

    “경쟁력? 그거야 나랑 대결하면서 주목받은 거지, 뭐가 경쟁력이 있어요?”

    “충분히 재미가 있던······.”

    그 말을 하다가 이즈미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즈미가 한숨을 푹 쉬더니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묻었다. 그리고는 소파를 손으로 쓸었다.

    “아무튼,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마음에 들지 않아.”

    이즈미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딴 잡지에서 다시 연재하는 게 뭔 대수라고. 잘 해보라지.”

    그렇게 말하더니 눈을 치켜뜨며 맞은편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에 닿은 코지마가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 몸을 움츠렸다.

    그런 그를 보던 이즈미가 눈을 껌뻑거리다 곧 입을 다시 열었다.

    “뭐해요?”

    “네?”

    “아직 안가고 뭐하냐고요.”

    그 말에 코지마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 * *

    드래곤 수프의 단편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 세계에 가서 운 좋게 드래곤의 꼬리 일부를 얻고, 그것으로 수프를 만들어 먹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특유의 재치 있는 진행으로 기대하는 팬들이 꽤 많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드래곤 수프는 크래시 킹이 새로운 연재로 묻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크래시 킹이 소년 히어로에 연재되는 건 큰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첫 연재의 이야기는 상당히 괜찮았다.

    소년츠바사에서 마지막에 나왔던 장면에서 바로 연결되었는데, 그게 또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앙케이트 반응도 들었는데, 순위가 5위까지 올라온 모양이다.

    데빌 바이러스의 순위가 10위권 언저리라는 걸 생각해보면 2차전의 시작은 확실히 크래시 킹이 더 순조롭다.

    - 데빌 바이러스는 분위기가 하락세 같습니다. 요즘 독자들이 보내오는 엽서의 반응도 좋지 않구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크래시 킹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쪽은 반대로 분위기를 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연재가 중단된 채 시간을 많이 끌었다면 감각을 잃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재가 다시 빠르게 결정된 이유도 컸겠지.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도, 연재 중단상태로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기란 어려울 테니까.

    그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소년츠바사에 있는 원고는 어쩝니까? 그거 받아왔어요?”

    - 안 그래도 협의를 해봤지만, 그쪽에서 넘기지 않을 모양입니다.

    “그럼 단행본은요? 포기하는 겁니까?”

    어중간하게 잘린 채로 단행본을 만들려면 좀 찝찝할 텐데.

    - 그 부분은 다시 재작업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본 줄기는 같지만 상당히 수정할 모양이고요. 그건 단행본판에서만 나올 겁니다.

    “아, 그렇군요.”

    많이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단행본도 확실하겠고, 또 앞부분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도 벗어날 수 있겠네.

    아무튼 지로에게 대략적인 소식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역시 내 말대로 재능이 있는 여자였네. 전에 삼사라 베끼고 그럴 땐 밉상이더니. 그래도 지금은 열심히 하니까, 뭐. 그런 마음도 사라졌어. 이제는 용서를 해야지. 뭐 어떡하겠니?”

    이대봉의 말에 실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뭔데, 용서를 하고 말고를 결정해?”

    “선희랑 전화도 주고 받았다잖아. 윤환이도 별 말 없고. 그런데 네가 왜 그걸 따지니?”

    “그러니까, 두 사람이 결정하는 거라고. 네가 아니라.”

    “내가 두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는 거지.”

    “네가 대리인이라도 되냐?”

    “나 정도면 대리인 자격 있지.”

    “미친, 놀고 있네.”

    저 두 사람은 어째 대화가 죄다 저런 식인지.

    아무튼 이대봉의 말대로, 선희와 통화도 했겠다, 후기에 그런 글도 썼으니. 굳이 더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나저나 애매해진 건 이즈미, 그 여자인데.

    얼마 전엔 주간 루머에 인터뷰기사도 나온 모양이고.

    미네 말로는 주간루머 사상 판매부수 신기록을 세웠다는데.

    아마도, 나카야 그룹의 외동따님에 대한 기사라 그랬던 모양이다.

    물론 인터뷰 사진에 얼굴을 빠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클래식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사진을 보니, 그 여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긴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인터뷰 내용이 좀 부실해서 실망은 했지만.

    *

    다음날.

    머신건 잭의 콘티를 살피다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선희자리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는 시계를 봤다.

    슬슬 저녁시간이 되어가고 있는데.

    여름이라 밖이 아직은 훤하긴 하지만.

    아무튼, 쌍둥이들은 잘 놀고 있으려나?

    방학이라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만난다고 하면서 나가긴 했는데.

    요즘은 길거리에서 시위 같은 게 많으니까, 약간 신경이 쓰이긴 한다.

    본인들은 문제없다고 하지만, 아직 내 눈엔 어린애들이라.

    뭐 경희라면 걱정이 없으려나?

    그때 문을 열고 이대봉이 들어왔다.

    “아, 더워! 에어컨, 에어컨!”

    헉헉거리며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에어컨 앞에 섰다. 그리고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했다.

    “어? 왜 평소 듣던 잔소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실버의 책상 쪽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 실버는 어디 갔어?”

    “아직 출근 안했어요.”

    김기철의 대답에 어리둥절하던 이대봉이 류타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류타니는 있는데? 혹시 땡땡이 친 거야?”

    “오늘 예비군훈련이잖아. 마치면 바로 온다고 하던데?”

    내 말에 이대봉을 손뼉을 짝하고 쳤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집에 안 가고 바로 온데?”

    “여기가 시원해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역시 실버답네.”

    “에어컨 앞에서 배를 까고 있는 형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가 들어온 현관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뭐, 이젠 어린애들도 아닌데.

    * * *

    “아, 베고파.”

    “나도.”

    경희와 선희가 열심히 눈을 번뜩이며 골목길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지하상가를 돌아다닌 탓인지 금방 배가 꺼졌다.

    그리고 친구들과 헤어진 뒤, 골목을 돌며 식당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허름한 식당 하나가 보이지 선희가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기.”

    “오, 국밥. 그럼 저걸로 할까?”

    “응.”

    “좋아, 출발!”

    경희가 좋아라하며 손을 번쩍 들고 나서 곧바로 선희를 붙들었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부터 잡고 앉으며 벽 선풍기를 틀었다.

    “어우, 여기 엄청 덥다.”

    그렇게 말하며 메뉴를 확인하려는데 어째 식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살벌한 느낌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젊은 남자를 앞에 앉혀두고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남자는 잔뜩 기가 죽었는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맞은편의 덩치 큰 남자가 걸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아버지가 진 빚이면 당연히 아들이 갚아야지. 안 그래?”

    “그럼. 당연하지.”

    곁에 있던 긴 얼굴의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잘은 모르지만, 사채 문제인 모양이었다.

    분위기를 보던 경희가 선희를 슬쩍 잡아끌었다.

    “저기, 우리 그만······, 나갈래? 다른 식당을 찾아보자.”

    그렇게 말하며 팔을 당겼지만, 어쩐 일인지 선희가 꿈쩍하지 않았다.

    “야아, 나가자.”

    “······.”

    살벌한 남자들 때문에 얼어붙은 것인가 싶어서 선희를 슬쩍 봤더니, 깡패처럼 생긴 남자들 앞에 앉아있는 젊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 저러나 싶어서 경희도 얼떨결에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랬는데, 어째 익숙한 얼굴이었다.

    머리가 부스스 하고 잔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긴 하지만, 분명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금방 그 얼굴을 떠올렸다.

    “어? 동환이 오빠?”

    그 말에 머리를 숙였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는 슬쩍 돌아본다.

    그리고는 경희와 눈이 마주쳤다.

    “······누, 누구?”

    “누구긴, 나 경희잖아, 경희. 여긴 선희.”

    “······큰집 쌍둥이?”

    “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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