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41화 (341/425)
  • 드래곤 수프 (2)

    뭔가 드래곤이 동강동강 된 채로 커다란 냄비에 푹 삶아지고 있는 게 연상이 된다.

    수천명분, 아니 만 명 정도는 충분히 먹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하고도 압도적인 수프의 느낌이랄까.

    음, 그래도 드래곤의 머리가 담겨있는 거라면······, 좀 무섭기는 하다.

    아무튼 제목빨 어그로는 정말 신선하긴 하네.

    내가 이대봉을 힐끔거리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인지 입을 씰룩거리고 있다. 하지만, 일단 콘티를 읽어보는 게 먼저다.

    주인공은 식당에서 일하는 일종의 견습생.

    식당의 주 메뉴는 각종 수프다.

    배경은 일본이 아니라, 현대의 유럽 어딘가 같긴 한데, 정확한 설명 따윈 없다.

    하긴, 특정 나라라고 정하면 조사가 많이 필요할 테니 그런 것은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은 걸 테지.

    물론 여행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어차피 한국 한정이고.

    일본이야, 몇 번 가긴 했지만, 일정이 빡빡해 제대로 여행다운 여행은 못해 봤을 테니.

    하지만 일반 독자의 겨우 그런 세세한 것들이야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그냥 유럽 어딘가가 배경이다.

    그 정도면 되는 거지.

    아무튼, 그런 잡생각은 털어버리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무튼 주인공은 식당에 일하면서 열심히 사는 성실한 아이.

    나이는 16살.

    이름은 마리오.

    아, 주인공도 이탈리아 쪽 느낌이긴 한데.

    아무튼, 식당에서의 대화를 봐도 요리밖에 모르는 순진한 느낌의 소년이 분명하다.

    중원요리왕 때처럼 사기꾼 기질에 이기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그런 점에서는 초반 매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고.

    그래도 엄청 성실하다는 인상이 있어서 힐링물이라면 괜찮은 느낌이긴 한데.

    아무튼 그런 소년이 새벽에 혼자 요리연습을 하기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역시 성실하고 근면한 느낌.

    그런데 문 앞에서 허기에 쓰러진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곧 죽을 것 같던 노인에게 가게에서 연습 중이던 재료를 사용해 그를 배불리 먹인다.

    한 끼만으로 30년은 젊어진 것처럼 쌩쌩해진 노인.

    모처럼 포만감을 느낀 노인이 마리오에게 수다를 떨어댄다.

    대사가 익살맞으면서 묘한 매력이 있다.

    중원요리왕의 연재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중국무협에 등장하는 고승이 약 빨고 대사치는 느낌에 가깝다.

    약간은 난해한 듯 떠들긴 하지만 자세하게 뜯어보면 꽤 의미가 있는 그런 말을 주절거리는 것도 특징.

    아무튼 묘하게 이질감 없이 연출을 잘해낸다.

    그동안 중원요리왕을 통해 스킬을 성장시킨 이대봉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어쨌건 한참동안 장황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노인이 마리오에게 선물을 건네준다.

    삼각형 모양인 달걀크기의 투명한 보석이 달린 낡은 줄 목걸이.

    그림은 발로 그렸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지만, 나름 설명으로는 끝이 날카롭고, 동물의 이빨처럼 보인다고 쓰여 있다.

    음, 이대봉은 역시 스토리만 써야겠다.

    아무튼 보석을 살피는 동안 노인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마리오는 그 일을 하나의 해프닝처럼 받아들인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정확히 노인을 만났던 그 시점에 노인에게 받은 목걸이가 빛을 뿌리며 주변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주변은 완전히 다른 세상.

    그것도 상당히 낯선 숲이다.

    처음 보는 나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이 돌아다닌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당연하게도 주인공은 겁 없이 숲을 돌아다니고, 그러다가 마을을 발견.

    외지인이었지만, 언어가 통하는 신기.

    물론 그것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의 힘이겠지.

    그러다가 그들에게서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그것의 고기를 먹으면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요리사를 꿈꾸는 마리오라 힘이라는 말에는 무관심했지만,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다 다시 목걸이가 빛을 내더니, 다시 현실의 가게로 돌아오게 된다.

    전형적이면서도 익숙한 전개의 이 세계 요리 만화다.

    이런 거라면 2018년에도 한참 유행중이긴 했었는데.

    음.

    안정적인 진행에 자연스럽기까지 하고.

    흔한 설정이지만, 이 시대에선 그렇지 않지.

    물론 중원요리왕이라는 만화가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대봉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신선하긴 하다.

    아무튼 대략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어 있다.

    스토리 진행은 이대봉 특유의 흥미로운 연출로 재미가 있다.

    초반의 느낌만으로 본다면 내가 살던 시절에도 통할지 모르겠다. 대사만 조금 더 세련된다면.

    “어때?”

    이대봉이 내 얼굴을 살피며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당히 좋아. 재미있어.”

    “진짜!”

    이대봉이 몸을 부르르 떨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너한테 이정도 말을 들으니까 자신감이 팍 생긴다.”

    그 반응에 화실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버를 힐긋 봤더니, 표정 관리하는 걸 봐서는 저 양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고.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한 거야?”

    “음, 가장 큰 건 너지.”

    “나라고?”

    이런 스토리를 이대봉과 나눈 적이 있었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대봉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전에 중원요리왕 콘티 보면서, ‘현실 사람이 건너가면 더 재밌겠는데.’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그걸 다음 이야기로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뒀거든.”

    “내가 그렇게 말했어?”

    “뭐, 직접은 아니고 중얼거림으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모양이다.

    어쨌건 그런 말까지 기억해두고 다음 스토리를 준비했다니,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은 요즘 판타지 만화나 소설에서 따온 거고.”

    “그럼 연재중인 중원요리왕은?”

    이대봉이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이제 슬슬 완결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어? 완결? 그런 낌새가 전혀 없던데? 거기다 요즘 이야기도 재미있고.”

    “안그래도 더 연장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는 들었어. 하지만, 정한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할 생각이야. 절대미각 손소노와의 대결이 끝나면.”

    손소노는 절대미각을 가지고 있는 요리천재.

    그러니까 중원요리왕에서 최종보스나 다름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인물과의 대결이 코앞에 와 있긴 하니까 그렇게 마무리 한다면 가장 좋은 완결이긴 하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가 그걸 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예상보다 더 대박이라 작가 스스로 무리해서 이야기를 연장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출판사에서 더 연장하도록 설득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나마 지금 연재하고 있는 소년 히어로의 경우는 그런 분위기가 좀 덜하긴 하지만.

    물론 그것도 편집장이나 출판사 사장이 쿨 한 성격이라 그런 거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아, 그 손소노랑 대결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결말은 당연히 주자웅이 이기는 거 맞지?”

    박소미의 물음에 이대봉이 썩소를 날린다.

    “글쎄?”

    “지면 이야기가 안 되잖아.”

    “마지막에 뭔 짓인들 못할까.”

    “미친 거 아니야?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독자들에게 엄청 항의 받을 걸? 차기작도 욕먹을 거고.”

    “음. 그런가?”

    “꼴을 보니 주자웅이 이기며 마무리하겠구만.”

    실버의 말에 이대봉의 주둥이가 삐죽 튀어나온다.

    하긴, 저렇게 원작자가 스포일러를 당해버리면 짜증이 날 법도 하겠지.

    “그런데 드래곤 수프라는 이 이야기 말인데. 제목대로 드래곤으로 수프를 만드는 이야기야?”

    “그게 최종 미션이지.”

    “뭐? 드래곤 수프? 제임스 오빠, 그게 제목이야?”

    박수미의 물음에 이대봉이 히죽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때? 제목 괜찮지?”

    “뭔가 먹음직하다기보다는 좀 무섭다는 느낌인데? 커다란 날개달린 뱀으로 만든 거니까.”

    “뭐라는 거야? 별미중의 별미인데.”

    “그거야 스토리 속에서나 그렇지.”

    그때 차미정이 끼어들었다.

    “딴 이야기긴 한데요. 전 요즘 그거 재밌던데. 미스터 아짓코.”

    얼마 전에 지로가 보내준 책으로 미스터 초밥왕으로 유명한 데라사와 다이스케의 초기작이며 출세작이다.

    초밥왕의 기본 틀이 여기서 다져졌다고 보면 된다.

    올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을 시작하기도 했고.

    “아짓코는 좀 시시하지. 내 스토리에 비하면.”

    “아무튼, 나오기도 전에 큰소리는.”

    실버의 이죽거림에도 이대봉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번엔 다를걸? 윤환이도 이미 인정했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힐긋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나는 아짓코가 시시해 보일 정도로 재밌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네 반응만 봐도 알아.”

    사실은 이대봉의 말이 맞다.

    아짓코 보다는 훨씬 재밌다.

    솔직히 아짓코는 내 기준으로 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신작은 생각이상으로 흥미가 있다.

    그동안 중원요리왕이 중위권이상의 성적을 내긴 했지만, 특별히 위협적이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좀 긴장해야 될 것 같다.

    이대봉이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뭔가 의견 같은 건 없어? 아주 작은 거라도.”

    “어디서 숟가락을 슬쩍 얹어?”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주둥이를 내밀었다.

    “너도 참 냉정하다, 진짜. 친한 사이에 도움을 좀 줄 수도 있지.”

    “그냥 네 힘으로 써, 평가를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란 말이다.”

    그 말에 이대봉이 혼자 뭔가 중얼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실버를 노려봤다.

    “그런데, 실버 네가 왜 그렇게 난리야? 윤환이도 아니면서 되려 생색네고 있어.”

    “생식?”

    “그래, 생색. 맞잖아.”

    실버가 화를 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화실 보스니까, 내가 대신 나선거지. 너 같은 빈대는 내 선에서 퇴치하면 되는 거고.”

    “비인대에?”

    “아니냐?”

    “아니거든.”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를 악물고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보스라고 했지? 보스. 역시 스스로 깡패라고 인정하고 있구나.”

    “뭐야!”

    화실이 소란스러워 지려는 분위기라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이거 단편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나?”

    내 말에 이대봉이 말싸움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안그래도 그거 담당인 야지마 씨에게 들었어. 신작 준비 중이면 단편을 준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리고 작화 담당인 무카이 씨도 내 스토리를 다시 해보고 싶다고 했거든. 어쨌거나 나도 네 반응을 보고 확신이 생기면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지.”

    “그럼 단편 구상은 지금부터?”

    “그렇긴 한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는 해. 단편으로 임팩트를 주는 게 어려우니까.”

    이대봉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나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다음 편을 만들어 보면 어때?”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

    “그래. 제목이 드래곤 수프니까, 드래곤의 고기를 얻는 장면도 괜찮고. 본 스토리에는 안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흐음.”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사극에 등장하는 노인들처럼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곧 종이에 낙서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혼자 중얼거리며 한참을 적어나가던 이대봉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담당에게 연락 좀 할게.”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전화기를 들고는 일본말로 떠들었다.

    “야지마 씨 부탁합니다. 네, 제임스요.”

    그렇게 말 하더니 잠시 기다린다. 그리고는 상대가 전화를 바꿨는지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턱을 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은 꼭 국제전화를 여기서 쓰더라.”

    그 말에 주변의 어시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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