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38화 (338/425)
  • 라이벌로 전직 (8)

    “이젠 거의 승부가 났구만. 이 정도 차이면 세 번째 앙케이트 결과야 보나마나지.”

    실버가 소년츠바사의 신간을 손가락으로 툭 튕기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인상을 썼다.

    “걔는 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거지?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이대봉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실버가 미간을 찌푸렸다.

    “넌 복사인간 편이냐?”

    “복사인간? 복제인간은 들어봤어도 복사인간은 또 뭐야?”

    “남의 그림 복사나 하니까 복사인간이지.”

    “그럼, 해적이나 다를 바 없네.”

    그 말에 실버가 눈을 번뜩였다.

    “옛날 얘기 자꾸 꺼내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이대봉이 실버의 책상 반대편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는다. 실버가 일어서려는 폼만 보여서 잽싸게 튀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형은 왜 자꾸 쓸데없이 실버 형을 자극하고 그래?”

    내 말에 이대봉이 실버 쪽을 힐끔거리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가는 걸 어떡하냐? 자제하려고 하는데도 어쩔 수가 없어.”

    뭐야? 알콜 중독, 뭐 그런 종류야?

    “그러니까, 형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거군.”

    간만에 놀러온 박상식의 말에, 이대봉이 인상을 썼다.

    “아니지. 이건 본능적인 방어라고 할 수 있어. 그것도 아주 짜릿한.”

    아슬아슬함이 주는 그런 짜릿함이라는 그런 것이려나.

    이대봉, 이 인간 변태가 틀림없다.

    이대봉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뭔 소리야? 죽고 싶어서 떼를 쓰는 거지.”

    “저 깡패가.”

    두 사람이 다시 투닥거리는 사이, 박상식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며칠 전에 그 루머라는 잡지의 기자가 왔었다며?”

    “어.”

    “왜 왔어? 또 너 보러?”

    “뭐?”

    이 인간이 뭐라는 거야?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이 사람들이.

    그때 그림을 그리던 선희가 머리를 들지 않은 채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부탁할게 있어서.”

    “뭐? 네가?”

    박상식의 말과 동시에 어시들의 시선도 순식간에 내게서 선희에게로 빠르게 이동했다.

    나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선희가 부탁할 게 있다니.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미네가 찾아왔을 때 간단한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후 선희가 나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따로 둘이서 만났던 걸까?

    “뭘 부탁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그런데 싱거울 정도로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비밀.”

    그 말에 실버에게 투덜거리던 이대봉이 끼어들었다.

    “비밀이면, 왜 말을 꺼내? 저 답답이.”

    “형은 진짜. 멀티 플레이어도 아니고.”

    내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했다.

    “멀티 뭐?”

    “하나만 하라고.”

    내 말을 이해했는지 이대봉이 실버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선희가 저런 말을 하는데, 쟤가 눈이 들어오겠냐?”

    하긴, 선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할 것이다.

    그나저나 선희가 미네에게 뭘 부탁했을까?

    평소 별다른 대면도 없었는데.

    뭐, 개인적인 부탁일수도 있으니 내가 너무 참견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며칠 후 이변이 일어났다.

    완전히 밀렸다고 생각한 크래시 킹이 완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연재를 한 것이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평범한 이야기가 진행될 분위기였고, 그렇게 연재가 마무리로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엄청난 악역으로 인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함으로 킹을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가고, 주인공과 흩어졌던 캐릭터들을 죄다 잔인하게 죽여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동안 주인공과 싸우던 빌런들까지도.

    주인공이 살아난 것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 학살이었다.

    이제까지 세계관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한 존재의 등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전개의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완전히 망하거나, 새롭게 도약하거나.

    애초에 벼랑 끝에 몰렸으니,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번 이야기는······, 완전 대박이다.

    주인공을 궁지에 완전히 몰아넣으며 이야기가 끝나자 든 생각은 ‘뒤편이 궁금하다’였으니까.

    그 때문에 화실의 어시들도 충격에 빠져버렸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란 건 이대봉과 실버였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한 주 만에 갑자기 사람이 달라져버린 것 같네. 어떻게 만화가 이렇게 대번에 이야기가 재밌어 질수가 있지?”

    그렇게 말하며 놀라던 이대봉이 곧 실버를 슥 돌아보며 실실 웃었다.

    잘생긴 이대봉이 간사한 표정을 짓는데, 묘하게 어울린다.

    “왜, 그렇게 재수 없게 웃어?”

    “이번엔 너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

    “뭘 인정해.”

    “내가 말했었잖아. 얘, 재능이 꽤 있다고.”

    그 말에 실버가 인상을 썼다.

    “너도 방금 예상 이상이라고 반응했잖아. 그러니까 무효지.”

    “에이, 그건 아니지. 그냥 인정해. 사람은 내가 더 잘 본다고.”

    “뭘 또 앞서나가고 지랄이야. 겨우 복사녀가 예상이상의 능력을 보여줬을 뿐인데.”

    “그래도 내가 이긴 건 맞지.”

    “미친 녀석.”

    “저거 봐, 저거. 또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 같은 소리 하네. 너나 우기지 마라.”

    “덩치는 그렇게 커서 밴댕이 속이라니까.”

    “죽고 싶냐!”

    두 사람이 그렇게 유치하게 싸우는 동안, 내 시선이 선희에게로 돌아갔다.

    선희가 소년츠바사의 신간을 들고 묘한 눈빛으로 읽고 있어서.

    그리고 문득 미네에게 부탁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눈빛을 느꼈는지 선희가 날 바라보더니 책을 조용히 내려놓고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입 꼬리를 살짝 올린채로.

    관련이 있긴 있구나.

    그래도 자신 입으로 비밀이라고 했으니 묻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하지만······, 역시 궁금하다.

    * * *

    며칠 후.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에 직원 한명이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역전이래요, 역전!”

    그의 말에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

    “역전? 정말?”

    “진짜, 정말로 뒤집은 거야?”

    “몇 표 차인데?”

    “그건 모르겠고. 간발의 차로 크래시 킹이 이긴 모양이에요.”

    “간발의 차? 그래도 데빌 바이러스의 팬 층이 제법 견고한 모양이네. 이번 이야기는 크래시 킹이 완전 이긴 느낌이던데.”

    “흐름을 완전히 뒤집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죠. 아무튼 절망적인 상황에서 역전이라니,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같은데.”

    “대단하지. 아무도 뒤집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나저나 자존심 강한 나카야 선생님이 반응이 궁금하네.”

    “그거라면, 저쪽.”

    직원 중 하나가 한쪽으로 턱짓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에 닿은 곳에는 코지마가 전화기를 들고 쩔쩔매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평소에도 비슷한 모습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했다.

    그 모습을 본 직원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분위기 보니까, 저쪽은 벌써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네.”

    “그러네요.”

    “아, 어째 불쌍하다, 쟤.”

    “너무하잖아. 저 친구 잘못도 아닌데.”

    “맞아요. 이벤트 자체를 나카야 선생님이 주도했잖아요. 그런데 담담에게 화풀이하면 안 되지.”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그리고 누군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솔직히 나카야 선생님, 담당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침마다 감사하고 있어요.”

    “나도.”

    “나돈데. 내가 나카야 선생님 담당이면 말라 죽었을 거야.”

    “윽, 어쩐지 상상이 돼서 무섭다.”

    “내가 말라 죽는 거?”

    “아니, 나카야 선생님의 살벌한 눈빛.”

    그 말에 다시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그들에게 누군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그런 거 감사하지 말고, 자네 담당 선생님들이 퇴출 안 되게 신경 좀 써.”

    누군가 했더니 부편집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도 직원 한 명이 코를 바짝 세우며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괜찮아요. 중위권은 지키고 있으니까.”

    “으이그 자랑이다. 자랑.”

    * * *

    갑자기 이즈미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 너무한 거 아닌가요?

    “뭘 말입니까?”

    -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이 여자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뭐라는 거야?

    어이가 없었지만 침착하게 물었다.

    “전후사정은 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 크래시 킹 말이에요.

    “그게 왜요?”

    내 대답에 전화기 너머에서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이 여자 진짜 왜 이래?

    - 정말 치졸하네요. 우리끼리 싸움에 끼어들다니.

    “끼어들다니, 뭔 소립니까?”

    - 이번 스토리, 당신 작품 아니에요?

    “아닌데요.”

    - 정말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이 여자가 진짜 미쳤나?

    갑자기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

    “도대체 뭘 근거로 그렇게 묻는 겁니까?”

    - 진짜 아니라는 거예요?

    “아니라고요. 몇 번 말해야 됩니까? 뭐 거짓말탐지기 검사라도 해야 됩니까?”

    - ······.

    잠시 그렇게 말이 없던 이즈미가 곧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일단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 진짜. 이 여자 뭐야?”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이참에 전화번호를 확 바꿔버릴까?

    뭐, 그래봐야 금방 다시 알아낼 테니 쓸데없는 일이겠지만.

    실버가 물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나더러 크래시 킹의 스토리를 쓰지 않았냐고.”

    “뭐?”

    그렇게 말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곧 크게 웃었다.

    “하긴, 갑자기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어지니 네가 떠올랐던 모양이네. 뭐, 이해는 된다만.”

    그때 어시들도 하나둘 끼어들었다.

    “솔직히 저희들도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요. 선생님이라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반전 시켰을 것 같아서.”

    “맞아요. 은근 진행 방식도 닮아서.”

    “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선생님이 썼다고 생각하면 대번에 납득.”

    어시들이 묘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만들 해요. 재미없어요.”

    “하긴, 선생님이 그 여자를 도울 이유는 없으니까.”

    “맞아요. 부처도 아니고.”

    “그건 부처가 아니라 바보지.”

    “그런가?”

    “1절만 합시다.”

    내 말에 어시들이 낄낄거리며 다시 원고작업에 열중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선희 쪽을 바라봤다.

    선희는 내 시선을 모른척하며 작업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내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그림에 열중했을 텐데.

    이 녀석.

    정말로 뭔가 있구나.

    그때였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성준희가 전화를 받더니 곧 선희 쪽을 보면서 말했다.

    “선희야. 전화.”

    응? 선희 전화?

    설마 스미레인가?

    선희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뭔가 작은 음성으로 말하더니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누구야? 스미레?”

    “아니.”

    “그럼 누군데?”

    “비밀.”

    “······비밀?”

    순간 어시들의 시선이 모두 선희에게 쏠렸다.

    전에도 비밀이라더니.

    시선을 성준희에게 돌렸다.

    누구냐고 입을 벙긋거렸더니,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응? 그럼 미네도 아닌 건가?

    그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여자뿐인데.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설마.

    선희를 돌아봤더니 평소처럼 그림에만 열중하고 있다.

    진짜 무슨 얘기를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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