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로 전직 (7)
며칠 후 소년 히어로가 발매되고, 그곳엔 이번 이벤트에 관한 홍보기사가 나갔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팬들도 걸려있는 상품 때문이 큰 덕분에 예상보다 많은 엽서가 편집부로 들어왔다.
엄청난 양의 엽서 박스.
그리고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회의실로 가져갔다. 물론 그런 그들은 데빌 바이러스의 담당인 코지마가 따라 들어갔다.
회실 문이 닫히고 안에선 많은 양의 엽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회의실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직원들이 모여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지켜봤다.
“와, 진짜 엄청나다. 저 많은 엽서가 다, 이번 대결에서 사용될 엽서야? 앙케이트 엽서랑 섞인 건 아닐까?”
“잡지에서 따로 엽서를 만들었잖아요. 그걸로 보낸 건데 헷갈릴게 뭐가 있어요.”
“아참, 그렇지. 그럼 진짜 저게 다 그 엽서들이 맞는 거야?”
“뭐, 대부분 워크맨을 노린 엽서겠죠.”
“그래도 저 정도면 경쟁이 정말 대단한 거지. 그나저나, 앙케이트보다 훨씬 시간 많이 들겠다.”
“당연하죠. 앙케이트야 임의적으로 뽑은 엽서들로 하는 거고, 저건 보시다시피 전수 확인이잖아요. 한 장도 놓치지는 않을 걸요? 완전 선거투표나 다름없어요.”
“지금 들어오는 우표도 계속 체크하나?”
“아닐걸요. 시간을 정해놔서, 그 시간이 1초라도 넘으면 카운트 안한데요.”
“우리가 했으면 시간 엄청 걸렸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글쎄요.”
그 말에 선배 직원이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라니, 그럼 저 짓을 하고 싶다고?”
“그냥은 아니지만, 듣기론 이거 작업하는 대신 제법 보너스를 받은 모양이에요. 저 직원들.”
“보너스?”
“에이, 받아봐야 얼마나······.”
그 말에 후배가 선배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리자 깜짝 놀랐다.
“진짜?”
“네에. 아까 저 사람들 휴게실에서 대화하는 거 살짝 들었어요.”
그때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얼마인데?”
“야, 나도 알려줘.”
“뭐야, 뭐?”
그때 부편집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버럭 소리쳤다.
“일 안 할 거야!”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직원들이 어둠속을 밝히자 흩어지는 바퀴 떼처럼 후다닥 움직였다.
*
이즈미가 전화기를 들고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전화기 너머의 코지마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 ······아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진행 상태나 알려줘 봐요.”
- 현재는······, 박빙입니다.
순간 이즈미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도 자신이 가볍게 압도할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박빙이라니.
“······정확한 지금 스코어나 말해 봐요.”
- 회의실에 나오기 전까지 본 바로는 나카야 선생님이 13표 앞서고 있었습니다.
“13표요? 얼마나 확인했는데요?”
- 2/3 정도입니다.
잠지 주춤한 이즈미가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의외의 결과라 쉽게 받아들여지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 아가씨.”
그러자 이즈미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난 괜찮아요.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아가씨······.”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괜찮다니까.”
“······.”
“그보다 나 원고 할 거니까 준비 좀 해줘요.”
“좀 쉬시고 난 뒤에. 아니면, 엽서 확인이 끝난 후에라도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기다리는 건 오히려 더 거북해. 그냥 원고나 할래요.”
“······알겠습니다.”
노인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곧장 그녀의 책상으로 007가방이라고도 불리는 플라스틱 서류가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거실에 준비 되어있는 책상위에 놓고는 세팅을 시작했다.
이즈미는 한곳에서 원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원고와 도구들은 하드케이스 가방에 넣어다니며 그때그때 세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팅이 끝나자 노인이 말했다.
“끝났습니다. 아가씨.”
“수고했어요, 구로다.”
그렇게 대답한 이즈미가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처음부터 콘티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는 해도, 머릿속에는 몇 화 분량의 계획이 온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화를 받고나서 머릿속의 콘티 내용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곧장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그렇게 원고를 한참 작업해 나가고 있던 그때 소파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노인이 서둘러 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뭐라고 대답한 노인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끊었다.
그림을 그리던 이즈미가 멈칫하더니, 노인을 슬쩍 바라봤다.
노인이 그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즈미가 노인의 표정을 살폈다.
노인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라 정확하게 알기 힘들어서 이즈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25표차이로 아가씨의 만화가 이겼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즈미의 표정이 곧 풀어졌다. 그리고는 미묘하게 안도하는 얼굴이 되어서는 다시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내가 이길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표차는 마음에 들지 않군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는 전화를 들었다.
*
- 내가 이겼어. 뭐 예상된 결과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여오는 이즈미의 음성을 들은 토끼녀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 왜? 말이 없어?
“몇 표차인데요?”
토끼녀의 질문에 이즈미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 ······25표.
“간발의 차이네요.”
- 25표면 크지.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 말에 잠시 조용하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 그래, 결과가 의외라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겼다는 건 잊지 마. 그리고 전에 말했던 것도.
“5판 3선승제요?”
- 그리고 네가 지게 되면 2편안에 마무리 짓는 거.
“제가 이기면, 계속 연재를 하게끔 해준다는 거.”
- 그래.
토끼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럼······.”
- 전화 끊지 마!
“······.”
- 내가 먼저 끊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토끼녀가 곧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상 결과를 듣고 보니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어시가 없는 상태로 작업 중이라 화실에서 먹고 자면서, 쌓아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잠도 서너 시간만 자고 있다.
그나마도 스토리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황.
그러다보니, 한 주 만에 얼굴이 퀭한 상태였다.
상대는 써니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건 그림만큼은 천재라고 불리는 여자다.
거기다 재력에 엄청난 인맥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이긴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번 대결을 받아들인 건, 애초에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강제로 연재를 종료하게 되면 다시는 만화를 그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원고를 완성했다.
첫 번째는 어떡하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즈미가 평소처럼 자신을 깔보고 있을 때 먼저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첫 번째 승리로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게 되면 의외로 쉽게 결판을 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25표차로 져버렸다.
덕분에 상대에게 경각심만 일깨워준 꼴이 되었다.
토끼녀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
며칠 후.
도쿄 시내의 카페에 모인 팬들은 잡지가 나오자마자 두 만화를 비교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한주 전과는 달리 반응이 일방적이었다.
“이번 주 데빌 바이러스는 정말 대단하던데?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림은 진짜, 놀랍더라.”
“그러게. 이정도면 뭐, 크래시 킹이랑 비교하는 게 무리일 듯싶은데.”
“맞아. 나도 이번 주에 나온 데빌 바이러스는 정말 엄청나더라. 연출도 그렇고, 솔직히 너무 대단한 장면이 많아서 넋 놓고 봤다니까. 그에 반해 크래시 킹은 저번 주보다 임팩트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 정도면 보나마나 데빌 바이러스의 완승이려나?”
“그렇겠지. 크래시 킹이 나름 괜찮기는 해도 경력이 짧아서 그런지 좀 어설프잖아. 공백이 컸던 것 같아.”
“어째 생각보다 싱겁게 결판이 나겠어.”
“그래도 뭐, 데빌 바이러스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좋아.”
“그건 그러네.”
“뭘 좋아하는 거야? 너무 일찍 끝나면 이벤트가 사라진다고. 워크맨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인데.”
“아서라.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거의 복권수준이야.”
“그래도 희망이 사라지는 것 보다는 낫지.”
“그야 그렇지만.”
그들의 대화를 근처에서 엿듣던 고상한 복장의 여자, 이즈미가 파르페를 떠먹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급세단이 앞에 멈춰 섰다.
뒷좌석에 탄 이즈미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구로다. 거기로 가요. 지하가 있는 곳.”
“네. 아가씨.”
노인이 대답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
“이젠 슬슬 정리해야하지 않겠니?”
이즈미의 말에 퀭한 눈으로 그녀를 보던 토끼녀가 입을 열었다.
“아직 승부가 끝난 건 아닌데요.”
“어머, 이번 주 표차 얘기 못 들었니? 두 배 넘게 나는 거.”
“······.”
“그냥 힘 빼지 말고 이제 마무리를 준비하는 게 좋잖아.”
“······.”
“여기서 포기하면 연재원고료도 넉넉하게······.”
“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포기······ 안했다고?”
“네.”
나지막한 토끼녀의 대답에 이즈미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가볍게 웃었다.
“너, 생각보다 고집이 세구나.”
“······.”
“그래, 마음대로 해. 그래봐야 쓸모없는 발버둥이지만.”
이즈미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며 다시 말했다.
“너, 이번에 지고 나면 앞으로 절데 이쪽 세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해줄 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말은 잘해.”
그렇게 말하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토끼녀가 머리를 푹 숙였다.
분하긴 하지만, 솔직히 본 실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그냥 원고료나 받고 물러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후회도 밀려왔다.
혼자 비어있는 원고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이젠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천천히 문이 열리며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누구죠? 여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저기, 여기가 크래시 킹을 그리고 있는 작가님이 화실이 맞나요?”
그 말에 토끼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오셨죠?”
“아, 전 주간루머라는 잡지의 기자인 미네 아츠코라고 하는데요.”
“주간루머요?”
“네. 뭐, 연예인 관련 사건을 주로 다루는 그런 잡지에요.”
“그런데, 그곳에서 왜 여길······?”
“아, 네. 전해달라는 물건을 부탁받아서.”
그 말에 토끼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물건이요? 누가요?”
“그건 직접 보시면 되죠.”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와서는 종이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이건 뭐죠?”
“그것도 직접 보시면 되죠. 그럼 전 물건 전달했으니까, 이만.”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몸을 돌려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끼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봉투를 열어봤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 한 장.
머신건 잭의 세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엔 ‘Fighting’이라고 적혀있다.
순간 토끼녀가 깜짝 놀랐다.
“써니······?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