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로 전직 (6)
버럭 소리를 지른 이즈미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흥분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은 그녀가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잠시 그렇게 앉아있던 이즈미가 소파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곧 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구로다!”
그때 거실 한 켠에 서있던 노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네, 아가씨.”
소파에서 일어선 이즈미가 소파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다른 걸로 교환해요. 촉감이 마음에 안 들어.”
“그건 어제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고······.”
“어쨌건 오늘은 마음에 들지 않아. 어제 들어온 그걸로 바꿔요. 뭔지 알죠?”
그 말에 노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노인이 나가고 나자 곧 남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소파를 들고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파의 가격은 그들의 연봉으로도 구입할 수 없는 최고급이니까.
아무튼 그런 와중에 이즈미는 창가 쪽으로 가서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몸을 까닥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잠시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직원들은 새 소파를 가져다놓고 있었다.
직원들이 나가자 그곳에 앉은 그녀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구로다.”
“네. 아가씨.”
“걔, 전화번호 뭐예요?”
“누구 말씀이십니까?”
“크래시, 그거.”
“카미야 선생님 말씀이시군요.”
“이름 따윈 모르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무슨. 아무튼 번호나 알려줘요.”
이즈미의 말에 노인이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서는 빠르게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조용한 지하의 화실.
정적이 흐르는 그곳에선 삭삭거리는 펜의 움직임 소리만 작게 들여오고 있었다.
원래 있던 여러 개의 책상은 이제 하나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곳엔 여자 한명이 퀭한 몰골이 그림에 몰두해 있었다.
곧 전화벨이 울렸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깜짝 놀란 여자, 토끼녀가 멈칫 하더니 전화기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수화기를 들고는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네.”
- 왜 이렇게 늦게 받는 거야!
다짜고짜 소리치는 소리에 멈칫했다.
그리고는 상대가 누군지 이해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 어? 여보세요?
“네, 듣고 있어요.”
- 전화기가 끊어진 줄 알았네.
상대방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어쩐 일로······.”
- 몰라서 물어?
“모르겠는데······.”
- 너 진짜······. 크음, 아무튼 연재 끝내라는 얘기 출판사로부터 못 들었니?
“그건······, 들었는데요.”
- 들었는데요? 그런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 정말 연재 끝낼 거 맞아?
“······.”
- 어? 너 또 왜 이렇게 뜸 들여? 정말 끝낼 거 맞아?
“······죄송한데요.”
토끼녀의 말에 상대의 거친 음성이 약간 누그러졌다.
- 죄송? 그래 너 입장에선 뭐, 죄송하겠지. 지금 결과가 이 모양이니까. 내 만화 순위 엉망이니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
“그게 아니라, 연재요.”
- 뭐?
“이거 끝내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음성이 잠시 끊어졌다. 그리고는 곧 거친 숨소리와 함께 짜증 폭발 직전의 소리가 넘어왔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끝낼 생각이 없다니. 너 지금 나랑 농담이라도 하자는 거니!”
- 농담 아니에요. 저 이거, 절대로 그만둘 수 없어요. 그리고 상황이 나빠진 건 솔직히······.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카야 씨 때문이지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 뭐야!
“스토리가 중복되게 된 것도 나카야 씨 잘못이고.”
- 너, 정말······.
부드득 거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질 정도로 화가 난 느낌이었다.
- 네가······, 그건 네가 스토리를 잘 못 연출한 덕분이잖아. 콘티를 내가 짠 것도 아니고. 난 그저 스토리만 넘겨줬지. 그렇게 연출하라고 한 적도 없었고. 그러니까 네가 문제······.
“솔직히 연출 쪽은 제가 더 좋았죠. 그건 인정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 하. 뭐?
어이가 없어하는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아마도 얼굴색도 변해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화난 얼굴을 직접 본적은 없으니 정확하게 떠올리는 건 어렵다.
- 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니?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서 일까?
어쩐지 더 용기가 생겨났다.
“따지는 게 아니라 진실을 얘기하는 거죠. 솔직히 제가 아니었으면 성적이 다시 오를 일도 없었을 거고. 결국 다시 인기가 떨어진 건 나카야 씨 때문인데.”
- ······너, 진짜.
“그리고, 솔직히 나카야 씨가 빠르게 그리고 그림에 대한 센스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뿐이죠. 만화가 그림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 너, 미친 거야? 지금 내게 훈계 따윌 할 처지라고 생각해?
하지만 토끼녀의 말을 끝나지 않았다.
“지금 저를 강제로 연재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도 저를 시기해서 아닌가요?”
- ······.
“제 만화가 더 나아서······.”
- 그만!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후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다시 차분해진 음성이 들렸다.
- 좋아, 알았어!
그 말에 토끼녀가 멈칫했다.
“알다니, 뭘 말인가요?”
- 네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겠다고.
“······.”
- 그러니까, 네 실력이 더 낫다고 말하는 거잖아.
“······네.”
- 말은 정말 잘하네. 어이가 없긴 하지만, 뭐,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해보자고.
“뭘요?”
- 누가 나은지 대결로 결판을 내자는 거야.
“······.”
갑작스런 제의에 토끼녀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멈칫했다.
그러나 전화기 속에선 말이 계속 이어졌다.
-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너한테 그런 말까지 듣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러니까, 대결을 해보자고.
토끼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곧 연재를 끝내야 하는데요?”
- 그거 연장 시켜줄 테니까. 그리고 대결 방법은 내가 만들겠어. 그러니까 넌 그 잘난 만화나 계속 연재해봐. 그리고 곧 내가 끝장을 내주겠어.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 전화가 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았더니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 너, 왜 네 마음대로 전화를 끊어! 내가 먼저 끊어야 돼!
“네, 그러세요.”
토끼녀가 그렇게 말하자 곧 전화기가 끊어졌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토끼녀가 곧 이를 악물었다.
*
며칠 후.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직원들이 모여 떠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다니까. 진짜 승부래.”
“뭐야?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잡지가 아예 다른데?”
“편집장님이 소년츠바사 쪽 편집장이랑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더라. 그리고 승부하는 방법은 엽서로 한다더라. 앙케이트는 좀 이상하니까.”
“엽서? 양쪽에 지지하는 곳으로 엽서를 보내라고?”
“그게 아니라, 이쪽에서 하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우리 편집부로 보내는 거지. 누가 재미있는지 써 달라고 하는 거고. 크래시 킹이 재밌으면, 크래시 킹이라고 쓰고. 데빌 바이러스면 데빌 바이러스라고 쓰면 되는 거지.”
“그거 귀찮아서 참여 하겠어?”
“상품을 걸었데. 그거 보내주는 사람, 10명 뽑아서 워크맨 준다고.”
그 말에 다른 직원이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랐다.
“와, 편집장닌 통 크시네. 잡지 전체도 아니고, 단순 이벤트에 그만한 상품이라니.”
“뭐라는 거야? 우리출판사에서 주는 게 아니야.”
“그럼, 누가 주는데? 소년츠바사?”
“아니, 나카야그룹에서.”
“나카야······ 그룹? 설마, 나카야 선생님 집에서?”
“그래. 원래는 100명 뽑아서 TV, 냉장고, 워크맨, 이런 엄청난 걸 걸었는데, 편집장님이 너무 과하다고 말린 모양이야. 그래도 이번 이벤트가 잡지사 홍보론 꽤 괜찮아서, 단번에 승낙하신 모양이고.”
“이야, 역시 대단한 재벌가의 아가씨구나. 나카야 선생님.”
“그러니까.”
“그런데, 왜 만화가를 하는 거래? 그런 사람이.”
“취미라잖아. 취미.”
“취미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죽어도 이해 못하겠어.”
“그러게.”
“그나저나, 엽서 많이 오면 그거 때문에 일이 늘어나는 거 아니야?”
“어? 맞네. 젠장, 그렇게 되면 퇴근이 또 늦어지는 거잖아.”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던 팀장 한명이 다가와서 말했다.
“그건, 나카야그룹 쪽에서 직원을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감독할 만한 직원 한명 정도면 되니까. 물론, 그건 담당인 코지마랑 신입 중 한명이 할 거고.”
“어? 정말이요? 그럼 뭐 다행이지만.”
그때 직원 하나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쪽에다 엽서를 바로 보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형평성에 어근난다고. 여기 와서 직접 손으로 확인하는 거지.”
“그래도 솔직히 나카야 선생님에게 유리한 거 아닙니까? 그쪽에서 보낸 직원들이면 더.”
“그래서 감독한다잖아.”
“담당이 하잖아요. 거기다 신입은 힘도 없고.”
“코지마 녀석, 그래 보여도 그런 걸로 속일 놈은 아니지. 그리고 뭐 양심까지 팔면서 속이면 방법은 없는 거고.”
“······.”
* * *
두 사람이 대결을 할 거라는 소식을 지로에게 전해들은 화실 사람들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했다.
“와, 부자 선생님 대단하네요. 그런 자존심 대결이라니. 이걸 그냥 만화소재로 써도 재밌겠는데.”
“대결을 위해서 얼마나 큰돈을 사용하는 거예요?”
차미정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듣기론 워크맨 10대가 걸렸다고 하더라. 그것도 매주.”
“와, 엄청나다. 우리도 보내면 안 돼요?”
“뭐, 아카기 씨에게 부탁해서 원고 보낼 때 같이 보내보면 되겠지.”
“아싸, 아싸싸. 나도 보낼래!”
경희까지 엽서 보내는 것에 동참하겠다며 좋아라한다.
그런데 선희도 선을 슬쩍 든다.
그 모습을 보며 경희가 인상을 썼다.
“너는 왜?”
“나도 워크맨 갖고 싶어.”
“너 갖고 있잖아.”
“신형이라고 해서.”
“네 돈으로 사! 돈도 많으면서.”
그때 다른 어시들이 끼어들었다.
“경희 씨도 돈은 많잖아요. 키도 선생님이랑 같이 전에 원고 하셨을 때 많이 받았다던데.”
“에이, 그게 언젠데요. 그리고 그 돈은 모두 엄마 줘서 저 빈털터리에요. 그리고 요즘엔 키도 오빠가 일감도 안 주고.”
“이번 이벤트는 결과도 정말 궁금하네요. 전혀 다른 잡지에서 연재중인 두 만화 중 누가 이길지.”
“저는 개인적으로 크래시 킹이요.”
김기철의 말에, 이번엔 김달부가 끼어들었다.
“저는 데빌 바이러스. 제가 그림쟁이라 그런지 그림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어요.”
“전, 크래시 킹.”
“저는 데빌 바이러스.”
어시들끼리도 표가 갈리는 분위기다.
그때 실버를 쳐다보며 물었다.
“실버 형은 누구에게 투표할거야?”
“그딴 만화들엔 관심 없다.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애초에 그딴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