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35화 (335/425)

라이벌로 전직 (5)

“어? 정말?!”

“데빌 바이러스가 7위? 저번 주엔 3위 아니었나?”

“맞아요, 3위.”

“그런데 한 주 만에 7위? 이번 주엔 2위, 운 좋으면 1위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그 말에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크래시 킹의 영향이죠, 뭐.”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크래시 킹 때문에 성적이 좋아지고 있었잖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라니.”

“크래시 킹과 데빌 바이러스의 스토리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러네. 특히 이번 에피소드는 그냥 같은 이야기 같던데.”

그 말에 상대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겹치는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이 식상한 거예요. 솔직히 저도 좀 그렇던데.”

그 말에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런 문제도 있었구나.”

“네. 그래서 데빌 바이러스가 가장 타격이 컸죠.”

“그럼 머신건 잭은?”

“뭐, 일단 세계관이 데빌 바이러스니까 스토리는 상관없잖아요. 그냥 비슷한 캐릭터가 다른 세계관에서 활동하는 거니까.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고. 결국 머신건 잭에는 도움이 된 것 같고.”

“데빌 바이러스는 크래시 킹 덕분에 날아오르나 싶었는데, 이젠 오히려 독이 돼버린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 봐야죠.”

그런데 이번엔 다름 직원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비슷한 이야기 전개는 그렇다 치고. 오리지널은 데빌 바이러스인데 어째서 이야기는 크래시 킹이 먼저 나온 거지?”

그 말에 모두가 멈칫했다.

그리곤 서로를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어째서 그런 거죠? 설마 이번엔 데빌 바이러스가 베낀 건가?”

“에이, 설마. 나카야 선생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데.”

“그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하잖아요.”

“······.”

그때 그들의 시선이 편집부로 들어오는 코지마에게 쏠렸다.

그러자 코지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

이즈미가 전화기를 들고 버럭 소리쳤다.

“내가 표절이라고요? 누가 그래요?!”

전화기 너머에선 이즈미의 소리에 기가 죽은 코지마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표절이라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쪽 만화의 스토리가 더 일찍 나와서.

“그게 표절이라는 뜻이잖아!”

- ······.

작가로서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 표절이다.

그리고 그런 의심을 받으니 기분까지 더러워져서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크래시 킹의 스토리를 썼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곧 대화의 내용을 바꿨다.

“그나저나 앙케이트 순위까지 떨어졌다면서요. 도대체 그건 또 어떻게 된 일이죠?”

- 저기 그건······.

“답답하게 하지 말고 말을 해봐요.”

그녀의 재촉에 코지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스토리가 겹친 덕분에 독자들이 식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식상요? 확실해요?”

- 뭐, 정확하게는 장담하기 힘듭니다만, 여기 직원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담당인 코지마 당신 생각은 어때요?”

다시 뜸을 들였다가 곧 입을 열었다.

- 같은 생각입니다.

“······으, 진짜!”

이즈미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 일단 저쪽 만화부터 어떻게든 항의해서 연재를 멈추게 하는 게 가장 좋긴 합니다만. 아시다 시피 전혀 항의가 먹히지 않아서.

“그건 내게 맡겨요.”

- 네? 하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는 다이얼을 돌리려다 멈칫했다.

“구로다!”

“네, 아가씨.”

“거기 출판사 전화번호 뭐죠?”

“어디 말입니까?”

“소년츠바사요!”

*

“네? 연재를 마무리하라고요? 하지만 전엔 분명히 계속 연재를 해도 된다고······.”

- ······.

“하지만······.”

- ······.

“모, 모리나가 씨!”

토끼녀가 소리쳤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순간 토끼녀가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전화기를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때 작업 중이던 남녀 어시들이 그런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리고는 서로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방금 들었어? 연재 마무리하라는 거.”

“어. 맞아.”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당연히 우리도 끝이지. 너 아는 화실 없어?”

“있기는 한데, 다 티오가 찼어. 넌?”

“나도 연락해보진 않았지만, 자리는 거의 없을 거야.”

“어쩌지?”

“아, 진짜. 아쉽네. 여기 화실은 거지같아도, 돈은 다른데 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주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원래 화실에 남아 있을걸.”

“나도. 두 배 준다는 말에 혹해서 왔더니. 이렇게 금방 끝날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오늘부터라도 연락해봐야지, 뭐. 너도 혹시 자리 남는 곳 발견하면 나 연락 줘. 알겠지?”

“나도, 나도.”

“쉿, 우리 쳐다본다.”

토끼녀가 수군거리던 그들을 돌아보고 있자 움찔하더니 다시 원고작업에 몰두했다.

잠시 어시들을 쳐다보던 토끼녀가 곧바로 전화기를 다시 들어서는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 네. 나카야가(家)입니다.

“죄송한데, 나카야 이즈미 아가씨 계신가요?”

- 어디신가요?

“전 미가미 에이코라고 하는데요. ‘크래시 킹’을 그리고 있는.”

그 말을 하자 잠시 뜸을 들인 상대방이 다시 말했다.

- 죄송합니다만. 지금 아가씨는 외출중입니다.

“언제 쯤 돌아오시죠?”

-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녁에 전화를 걸어도 될까요?”

- ······그건 곤란하겠군요. 아가씨에겐 아무하고나 연결할 수 없거든요.

“그럼, 무선전화기 번호라도······.”

- 죄송합니다. 그건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그럼.

전화기가 끊어져 버렸다.

자신의 이름을 밝혔는데도, 곤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 이즈미가 언제든 곤란할 땐 전화를 걸어도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처음엔 방금 전화를 받은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몇 번의 전화를 더 걸어보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 * *

이대봉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재미있게 됐네.”

“재밌다니, 뭐가?”

내 질문에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잖아. 이거 완전히 자승자박이지. 이거 전에 윤환이 네가 뭐라고 했었지?”

“팀킬.”

“아, 맞다. 그거. 아무튼 우리 윤환이는 단어도 참 재밌게 써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는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진짜 관계가 있다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니잖아.”

“확실하다니까 그러네. 윤환이 너는 은근히 이런 거엔 둔하다니까. 선희야 저도 내 의견이랑 같지?”

그 말에 선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그림을 그린다.

“쟤도 널 닮아서 둔해.”

“난 대봉이 오빠 생각이랑 같아.”

한쪽 구석에서 경희가 백설기에게 생선 대가리를 먹이려는 준모를 말리며 말했다. 그 순간 틈을 발견한 백설기가 후다닥 준모의 손아귀를 벗어나 도망쳤다.

“어디가? 이거 먹어야지!”

“준모야, 백설기 너무 괴롭히지 마.”

“고양이는 생선 좋아하잖아.”

“그렇기는 한데. 생선대가리는 좀 그렇지.”

경희가 준모를 타일렀다.

어느덧 준모도 이젠 의젓한 국민학생인데, 어쩐지 백설기에 대한 장난기는 예전이나 다름없다. 그 덕분에 늘 거만하고 게으른 백설기가 준모만 있으면 몸이 날래다.

“경희는 그래도 뭔가 다르네. 역시 스토리 작가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어. 물론 네 오빠는 빼고.”

“맞아, 우리 오빠는 그런 거에 좀 둔감하지.”

경희가 이대봉의 의견에 동조하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

내 동생 맞아?

“솔직히 스토리도 좀 노골적이었잖아. 은근히 데빌 바이러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거 보면.”

나도 그 때문에 솔직히 의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무작정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팬들도 당연히 지루해하지. 솔직히 이거 스토리도 부자아가씨가 썼을 것 같아. 예전에 좀비 사무라이는 그래도 제법 이야기적 센스는 있었는데. 이건 솔직히 그림만 요란하지. 내용은 텅 비었거든. 역시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하는 거야, 이야기가.”

하긴, 한국 만화의 전성기도 스토리 작가들이 활약하던 시기였으니.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에도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던 만화가들만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그 만화가의 작품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물론 만화책엔 만화가의 이름만 덩그러니 있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

“부자아가씨 속 좀 끓겠다. 다시 상황이 꼬이고 있으니.”

“형 말대로 두 사람이 진짜 관계가 있고, 스토리도 나카야 씨가 썼다고 하면, 크래시 킹은 조만간 연재가 끝나게 될 것 같은데. 이젠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그럴까?”

“필요에 의해 연재를 시작했으니.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네 말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결국 버려질지도.”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혀를 찼다.

개인적으로는 크래시 킹을 그린 여자에게 좋은 감정은 없어서, 솔직히 어떻게 되든 관심은 없지만.

그리고 다음 주가 되자 크래시 킹에 변화가 있었다.

갑자기 스토리가 급전개 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실에 찾아와 지로가 보내준 소년츠바사를 보던 이대봉이 예상대로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이대로 끝내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는 거 보니까.”

“난 다르게 봤는데.”

내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했다.

“어떻게?”

“캐릭터를 정리하는 것 같아서.”

“그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가 아니야?”

“글쎄. 중요한 캐릭터만 가지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끌고 가겠다는 뜻 아닐까?”

“독자적인 이야기?”

“어. 솔직히 그동안 난 크래시 킹을 보면서 너무 캐릭터가 많아서 산만했거든. 그리고 솔직히 머신건 잭의 캐릭터랑 닮긴 했지만, 이질감이 때문에 보는 내내 어색하기도 했고. 나라면 이렇게 진행 시키지 않았을 텐데, 하는 부분도 상당히 많았고.”

그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네 말을 듣고 보니 좀 그렇기는 했던 것 같다. 뭔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묘한 이질감. 억지로 캐릭터들을 뒤섞어서 진행도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고.”

“뭐, 결과론적인 말일 뿐이지만. 아무튼, 제목에 있는 킹 이외에 모두 정리를 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것 같은데.”

“음, 듣고 보니······. 그럼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건가? 두 사람 관계가 있다는 거.”

“글쎄.”

저번 주까진 나도 이대봉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헷갈린다.

그때 실버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무튼 아는 체는 혼자 다 하더니.”

“아닌데, 분명 관계가 있는 것 같았는데.”

“네가 형사 콜롬보냐?”

“이상하네.”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했다.

* * *

다음주.

전화기를 든 이즈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한 달 안으로 연재 종결하라고 말한 거 맞아요?”

- ······.

이즈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내가 쓴 거 아니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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