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34화 (334/425)

라이벌로 전직 (4)

이대봉의 말에 멈칫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아서.

“형 말은 그러니까, 그 두 사람, 친분이 있다?”

내 질문에 이대봉이 팔짱을 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친분이야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

그 말에 실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방금 관계가 있다며.”

“관계가 있다고 했지, 친분이 있다고는 안 했잖아.”

“친분은 없고, 그냥 관계는 있다?”

내 말에 실버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그 아가씨,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고 했잖아. 그런 사람이 다른 만화 도용하는 사람과 그렇게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거든.”

그 말에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걸 어떻게 장담 하냐? 네가 무슨 독심술사도 아니고.”

“아까도 말했지만 해적질 하는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니까 그러네.”

“너 이 자식!”

실버가 이번엔 진짜 화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이대봉이 빠르게 뒷걸음치며 거실 쪽으로 나간다. 실버가 반응에 따라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대봉이 그래도 달리기는 상당히 빠른 편이라 도망에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 굴욕적인 것에 자신감이라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대봉이 실버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툭, 하면 무력행사야!”

“넌 좀 맞아야 돼!”

“시끄러 이 깡패야!”

“뭐야!”

실버가 버럭 소리치자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빠져나간다.

역시 범상치 않은 속도.

저렇게 겁내면서 왜 자꾸 명을 재촉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신발은 좀 신고 나가지.

실버가 이대봉의 신발을 집어 들고 밖을 쳐다봤다.

잔디 밖으로 나간 이대봉의 표정이 그 모습을 돌아보며 울상이 되었다.

* * *

“아유, 짜증나!”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갑자기 이즈미가 손짓으로 빨리 오라는 손짓 때문에 달려 온 덕분에 아직 호흡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노인이 물었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래요.”

“쓸데없는 말이라니요?”

노인의 물음에 호들갑을 떨던 이즈미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태연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뭐, 구로다는 몰라도 돼요. 어쨌든 차 좀 준비해줘요. 작업은 잘 하고 있는지 봐야겠어요.”

그 말에 노인이 알아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차가 도쿄시내에 있는 고층빌딩 앞에 멈춰 섰다.

잠시 후 이즈미와 노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는 중앙의 입구로 들어가려했다. 그러자 푸른 제복차림의 젊은 경비원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두 사람을 막아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새로운 사람인가요?”

“네?”

“나 지금 들어가야 하는데.”

“하지만 곤란한데요.”

그때 중년의 경비원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젊은 경비원을 붙들고는 뒤로 끌어 당겼다.

길이 열리자 중년의 경비원이 이즈미에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라서요.”

그때 주변에서 다른 직원들도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이즈미에게 머리를 숙인다.

순간 젊은 직원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이즈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뭐, 됐어요.”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곁에 있던 노인이 그녀를 따라 갔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직원 중 한명이 서둘러 안내소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고는 빠르게 말했다.

“비상! 아가씨 오셨어요!”

이즈미와 노인은 엘리베이터를 지나치고는 비상구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3층에 다다르자 문을 열고 나가서는 복도를 쭉 걸어가 끝에 있는 문에 다다랐다.

곧바로 문을 열자 각종 물건들이 쌓여있는 곳 끝에 밝은 불빛이 보인다.

그녀와 노인이 그곳으로 다가가자 두 사람을 알아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이즈미에게 인사를 하는 여자.

바로 토끼녀였다.

“작업실이 좀 불편하지?”

“아니에요. 이렇게 작업공간을 마련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즈미가 그녀 주변을 둘러봤다.

토끼녀 책상 맞은편에 있는 네 개의 책상은 비어있었다.

“어시들은?”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주 4회거든요.”

“하긴, 그 정도면 주간연재는 문제없겠네. 출판사에 따로 괜찮은 전문 어시들을 불러달라고 했는데 실력은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일반적인 배경이 아닌데도, 디테일하게 잘 뽑아내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일거리를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러자 토끼녀도 같이 웃었다.

“도쿄에 상경한 지 몇 년 됐지?”

“네. 4년이에요.”

“이젠 슬슬 자리 잡을 때도 됐잖아.”

“네.”

“예전에 내 원고 펑크 날 뻔 했을 때, 네 도움이 컸던 거 아직도 기억해.”

“뭘요. 그때 나카야 씨가 원고료를 많이 주셔서, 그 돈으로 사무실도 얻고 어시들도 받아서 만화도 시작했었죠.”

“처음엔 오리지널 작품을 했었다고 했지?”

“네.”

“그때 얘기 좀 자세하게 해줄래. 궁금한데.”

이즈미의 말에 토끼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인기가 없어서 일찍 연재가 끝나게 되었어요. 그림은 괜찮은데. 스토리 센스가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림 흉내에 강점이 있어서, 그때 담당이 삼사라와 비슷한 만화를 그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말하며 멈칫하던 토끼녀가 곧 이즈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즈미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결국 그 좀비 닌자인가 그거 나온거야?”

“좀비 사무라이요.”

“아 맞다. 좀비 사무라이.”

“네. 맞아요.”

“그때 인기 좋았지?”

“네. 예상 밖으로 반응이 좋아서, 저도 좀 많이 놀랐었어요. 하지만, 써니의 쳐 놓은 덫에 걸려서, 결국 후반의 이야기가 꼬여버렸고,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죠.”

“출판사에선 더 이상 연락이 없었고?”

“네.”

“그랬구나.”

이즈미가 동정의 눈빛을 보내자, 토끼녀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담당편집자의 권유로 시작된 연재였고, 삼사라 덕분에 꽤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삼사라로 인해 망해버렸다.

결국 사무실을 운영할 돈이 없어서, 그곳에서 나왔고, 인형 아르바이트로 겨우 연명해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 뒤 사인회 사건으로 그녀는 만화를 다시 그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이즈미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

스토리와 전개방식 모든 것을 이즈미가 결정한 것이지만, 불만은 없었다.

화실도 이즈미가 구해줬고, 어시비도 이즈미가 지불하고 있으니, 그녀로선 부담도 없다.

지금은 그저 만화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

그렇게 토끼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때 이즈미가 손뼉을 쳤다.

“아, 참. 깜빡했네.”

“······?”

“오늘 찾아온 용건 말이야.”

“용건이요? 뭔데요?”

“스토리를 좀 수정하려고. 크래시 킹.”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뭘 수정하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즈미를 바라봤다.

“데빌 바이러스의 복제 캐릭터들 말이야.”

“아, 네.”

“그거, 비중을 좀 더 높였으면 해서.”

“더 말인가요?”

“그래. 슬슬 머신건 잭의 캐릭터들 비중을 줄여주면 좋겠거든.”

그렇게 말하며 스토리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내고 난 뒤 이즈미가 웃으며 물었다.

“어때?”

“아. 그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토끼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솔직히 이즈미가 말한 이야기는 뭔가 산만하면서 지루한 느낌이었다.

“재미없어?”

“그건 아니구요. 뭐랄까, 기존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으니까.”

“······난 이게 더 좋은데.”

“생각해보니까 새로 바꾼 이야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

그렇게 말하더니 이즈미는 용건이 끝났다는 듯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럼, 나머지는 잘 부탁해.”

“아, 네.”

그리고 이즈미가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잠시 후 비상구 문이 열리며 이즈미와 노인이 1층 홀로 나왔다. 그런데 홀 입구 쪽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복장을 보니 직원들인 모양.

그리고 그곳에서는 중년 남자의 화난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가씨가 도대체 어디로 가셨다는 거야?!”

“분명 아까 저쪽으로 가셨어요.”

“그러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으면 어딘가에서 연락이 왔어야지. 제대로 전달은 했고?”

“네. 층마다 다 연락했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냐고?”

“저희도 그건······.”

“하필이면 한창 바쁠 시간에······.”

“한창 바쁜 시간에 찾아와서 제가 미안하네요.”

“뭐라는 거······. 아, 아가씨!”

갑작스런 이즈미의 등장에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이사님 오랜만이에요.”

이즈미의 인사에 이사라 불린 남자가 순간 굳었다. 그리고는 곧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동안 건강하셨······.”

“그런 얘기 들을 정도로 나이가 많진 않은데.”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번들거리는 중년의 머리가 눈앞에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즈미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곧장 정문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그런 그녀 주변으로 뛰어가 자리를 잡고 정렬해서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 * *

소년히어로 편집부.

“데빌 바이러스, 3위!”

한 직원이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진짜?”

“와, 몇 주 전만해도 중위권도 10위 밖이지 않았나?”

“요 근래에 계속 성적이 올랐지. 저번 주엔 7위였던가?”

“6위였어.”

“그런데 이번 주는 다시 3위라고?”

“그래. 그것도 2위인 진심의 남자랑 별로 표차이가 나지 않아.”

“역시, 그 만화 때문인가? 크래시 킹.”

“그럴 거야. 지금 크래시 킹의 관심이 높거든. 그림도 상당히 유사해서 진짜 두 작가가 한 작품에서 연재를 하는 느낌이니까.”

“그거 사방에서 욕을 그렇게 먹는다더니, 그래도 인기는 좋은 모양이네.”

“팬들은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이야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꽤 볼만은 하더라고.”

“나도. 솔직히 평범한 내용이지만, 묘하게 그림이랑 내용이 어울려서 은근히 팬들도 제법 보는 모양이고.”

“이 작품 때문에 다른 잡지사에서도 이벤트로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모양이던데. 덕분에 우리 잡지에서도 소년츠바사에 더 이상 항의를 하지 않는 것 같고. 사실 머신건 잭이나 데빌 바이러스가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피해는 무슨, 데빌 바이러스는 오히려 이렇게 인기가 상승하고 있잖아.”

“그러게. 그럼 가장 큰 수혜는 데빌 바이러스가 얻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때 데빌 바이러스의 담당인 코지마가 편집부로 들어왔다.

“어이, 코지마! 3위래 3위!”

“아, 네.”

“이번엔 진짜 톱이 되는 거 아니야?”

“좋겠다. 코지마! 부럽다!”

“나도!”

그렇게 말하며 선배 직원들이 웃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코지마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외부에서 연재중인 다른 잡지의 만화 때문에 오른 성적이니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효과가 얼마나 갈수 있을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런 그의 걱정은 한 주가 지나자 현실이 되었다.

앙케이트 용지를 확인한 직원이 편집부에 들어서며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데빌 바이러스, 7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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