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33화 (333/425)

라이벌로 전직 (3)

자그마한 여자 아이가 소리쳤다.

“야! 킹! 샷건!”

“젠장, 귀찮구만!”

샷건 모양인 킹의 오른팔이 불을 뿜었다.

그러자, 트럭으로 달려들던 좀비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나가떨어진다.

그중 머리에 산탄을 맞은 녀석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그렇지 않은 놈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탄이 부족해! 시동은 아직이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가만 있어봐. 지금 걸고 있으니까.”

“서둘러, 어서!”

“빨리! 빨리! 꺄악! 또 몰려와!”

킹과 애니가 소리를 질렀지만, 토미가 운전 중인 작은 트럭의 시동이 쉽게 걸리지 않았다.

그때 루카와 지나가 뛰어와서는 트럭에 올라탔다.

“너희까지 여길 오면 어떡해! 놈들이 더 몰려오잖아!”

킹이 버럭 소리쳤지만, 지나는 그런 킹을 보며 입술을 오므리고는 쪽 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런 순간에 왜 야박하게 그래? 서로 돕고 그래야지.”

그 말에 킹의 곁에 있던 애니가 콧방귀를 꼈다.

“흥, 이런 상황에선 같은 인간이 더 위험해.”

“어머, 어린 아가씨가 너무 험난한 인생을 사셨나봐.”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런 모습들을 보던 킹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버럭 했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 뭔 수다야!”

그리고는 다시 그의 오른손 샷건이 불을 뿜는다. 근처까지 온 좀비들이 다시 튕겨져 나갔지만, 샷건의 탄을 피한 놈 한 마리가 애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꺄악!”

그때 애니의 곁으로 다가온 루카가 날카로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좀비의 목이 뚝 떨어진다.

“엄마야!”

좀비의 머리가 품에 안기자 애니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헛소리!”

그 순간.

부릉 하며 트럭의 시동이 걸렸다.

그 순간 토미의 표정이 밝아졌다.

“됐다! 그럼 출발해 볼까?”

“폼 그만 잡고 빨리 달려!”

“어서, 어서!”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며 기어를 걸고는 액셀을 거칠게 밟았다. 그러자 트럭의 뒷바퀴가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회전하더니 힘차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음 편에 계속······.

만화를 읽고 나서 잡지를 덮었다.

제목은 ‘크래시 킹’

좀비 사무라이보다는 그래도 좀 낫구나.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튼, 이 만화.

지로의 말대로 우리만화인 머신건 잭과 데빌 바이러스를 제대로 섞어 만들었다.

잭과 같은 포지션의 캐릭터인 킹이라는 거한과 주변에 있는 토미와 애니.

두 캐릭터는 머신건 잭의 조크와 몽을 기반으로 만든 느낌이다.

거기다 다른 캐릭터인 루카와 지나는 데빌 바이러스의 미구엘과 마리나와 거의 비슷하다.

마치 두 개의 작품이 하나로 합쳐진 그런 느낌이다.

주 세계관은 데빌 바이러스 같은데.

이런 걸 보통 크로스오버라고 하지.

물론, 이걸 표절작가가 할 짓은 아니고.

동인지라면 또 모를까.

동인지라고해서 합법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저나 이 작가 이름이 뭐지? 전에는 대충 보고 넘어가서 기억나지 않는데.

“미가미 에이코? 전에도 이 이름이었나?”

내가 머리를 갸웃하며 말하자 선희가 그림을 그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세리자와.”

“응?”

“세리자와. 좀비 사무라이 작가 이름.”

세리자와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희가 그렇다면 맞겠지.

아무튼 기억력 하나는 정말 발군이다.

슬쩍 봤던 이름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척척 기억해내는 걸 보면.

그나저나, 미가미 에이코?

이거 익숙한 이름인데, 싶었다가 곧 떠올랐다.

바로 작년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이 ‘프로젝트 A코’의 주인공 이름이었다.

설마, 이게 본명은 아니겠지.

아, 그러고 보니 세리자와도 익숙하다.

고지라에 등장하는 캐릭터이긴 한데, 뭐 희귀한 이름은 아니니까 확실한 건 아니고.

“그 작가 젊은 여자라고 했었지?”

실버가 자신의 책상에서 턱을 괸 채로 날 보며 물었다.

“어. 맞아. 나이는 갓 스무 살 정도로 보였는데. 뭐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이번엔 머신건 잭이랑 데빌 바이러스까지 두 개를 한꺼번에 베꼈다는 거군. 그런데 좀 이상하네.”

“뭐가?”

“머신건 잭이야 전에도 전적이 있는데다가 요즘 잘 나가는 만화니까 그렇다 치고, 데빌 바이러스까지 베낀 건 의외니까. 차라리 진심의 남자나 에스퍼 존 같은 게 더 낫지 않을까? 소년점프 같은 메이저 잡지는 일부러 피하는 모양이니까.”

“글쎄, 진심의 남자는 장르가 전혀 달라서, 같이 묶기가 힘들어서가 아닐까? 에스퍼 존도 배경이 주로 우주니까, 어렵고.”

“그런가?”

그때 박소미가 끼어들었다.

“데빌 바이러스 그 작가 말이에요. 성격이 보통 아니라면서요.”

“그렇죠.”

“거기다 엄청 부자고.”

“네.”

“그럼 자신 만화를 저렇게 대놓고 베꼈으니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박소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즈미의 성격상 또 난리를 칠 것 같은데, 어째 이 여자가 난동을 부린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으니 그것도 좀 묘하다.

아니면, 원래 저런 것에 대해서만큼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성격인건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실버가 다시 중얼거렸다.

“이거 위험하네. 이야기가 묘하게 재밌어.”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야기가 박진감이 넘치고 재밌다. 연출도 괜찮고.

머신건 캐릭터와 데빌 바이러스 캐릭터가 묘하게 조화가 된 것도 나쁘지 않다.

뭐랄까, 머신건 하위호환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데빌 바이러스보다는 솔직히 더 재미가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거다.

이렇게 재미가 있다면, 좋아하는 팬들도 생길 테고, 그렇게 되면 출판사는 다른 곳의 항의를 받더라도 출판을 할 것이다.

돈이 되니까.

소년 히어로 측에서도 당연히 이 문제를 가지고 소년츠바사에 항의는 했다고 하지만, 역시 먹히지 않은 모양이고.

그래도 이 여자, 세리자와인지 미가미 에이코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재능은 있구나.

좀비 사무라이 때도 인기가 있었으니까.

물론 재능을 이런 곳에 쓰는 게 문제지만.

실버가 물었다.

“이번에도 스토리 수정할 거야?”

“뭐, 아직은 스토리까지 표절한 건 아니라서. 거기다가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안 걸려들지도 모르고.”

“거머리 같은 여자군. 또 이런 짓을 하다니. 하긴, 배운 게 도둑질이면 뭐.”

그때 전화가 울렸다.

차미정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일본어로 말한다.

출판사에서 왔나 싶었는데, 이즈미란다.

차미정에게서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이죠?”

- 어머, 아직 안 봤어요?

“뭘 말입니까?”

- 그거, 뭐지? 아, 크래시 킹.

“봤습니다.”

- 어땠어요? 기분이.

갑자기 이런 걸 왜 묻지?

“그쪽은 어떤데요?”

- 난 뭐, 기분은 좀 나쁘지만 그래도 재밌던데.

“확실히 이야기는 재밌더군요.”

-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 말이에요, 상황.

뭐라는 거야, 상황이 재밌다니.

“그게 뭐가 재밌는데요?”

- 당신 만화랑 내 만화를 동시에 베꼈잖아요. 그러니까, 재밌지.

미친 건가.

- 뭐랄까, 라이벌 만화를 같은 만화에 등장시킨 전략도 나쁘지 않고.

라이벌?

같이 등장시킨 전략이 나쁘지 않아?

뭔 소리야?

“크래시 킹이 마음에 드는가 보네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잘나가는 만화가 있으면 비슷한 그림체의 만화는 나오는 게 보통인데. 이런 걸로 일일이 화내는 것도 우습고. 그냥 받아들여야지.

기분이 좋은지 웃음소리도 약간 섞여 있다.

“그래도 이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베낀 거 아닙니까. 캐릭터 복장도 비슷하고. 그런데도 괜찮다는 건가요?”

- 신인인 것 같으니까, 뭐 우리 같은 기성들이 이해해야죠. 안 그래요?

“이해심이 많군요.”

- 제가 좀 그렇죠.

“그리고 신인이라고 했는데, 이 작가 첫 작품은 아닌데요.”

- 어머, 첫 작이 아니라고요? 정말 초짜 신인이 아니에요?

뭔가 놀라는 것이 과장되게 느껴진다.

이 여자, 오늘 따라 이상하네.

뭔가 계속 크래시 킹을 감싸는 것 같은데.

우리를 계속 의식하더니, 같은 만화에 등장하니까 오히려 반기는 건가.

“혹시 좀비 사무라이라는 만화는 압니까?”

- 좀비 뭐요?

“좀비 사무라이.”

- 좀비 사무라이? 어머, 제목이 그게 뭐야.

그렇게 말하며 또 웃는다.

“전에 나카야 씨가 있었던 소년매거진에서 연재했었는데, 몰라요? 시기도 비슷해서 알 것 같은데.”

- 아시겠지만, 난 다른 만화엔 관심이 없어서요.

“잘 모르겠는데.”

- 알잖아요. 왜 모른 척 하는 거예요.

“우리 만화엔 관심이 많잖아요.”

- 어머, 누가 그래요? 누가? 그쪽 만화엔 별로, 아니 저언혀~ 관심 없거든요!

왜 화를 내지?

아무튼 성격도 참.

“아무튼 그 만화를 그렸던 사람이 작가인 것 같아서요.”

- 이름이 다르잖아요. 그때랑은. 아!

그렇게 말했다가 스스로 깜짝 놀란다.

“그 만화 모른다더니, 그건 어떻게 압니까?”

- ······.

잠시 전화기 너머가 조용하다.

그리고는 허둥대는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구로다, 구로다가 알려줬어요. 구로다 맞죠?

그러자 갑자기 헉헉대는 소리와 함께 ‘마, 맞습니다. 아가씨.’라는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양반들이 날 바보로 아나.

이즈미가 당황한 듯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 아, 아무튼 두 작품을 같은 사람이 그렸다는 증거는 있나요?

“아니요. 없는데요.”

- 그럼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 여자 왜 이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같은 사람이 그렸다는 것 정도는 금방 눈치 챌 텐데.

아니,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지로도 금방 알아채고 내게 연락한 거고.

그나저나 이즈미, 이 여자 점점 수상하네.

그런데 스스로도 뭔가 상황이 꼬여가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 아무튼 기성답게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생각이에요. 젊은 여자가 귀엽잖아.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마지막에 말한 젊은 여자.

이것도 알고 있다.

처음엔 자신이 얼마나 관대한지 그것을 자랑하려고 전화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여자 왜 전화 한 거래?”

실버가 묻자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지. 그런데 은근 기분이 좋은 것 같던데.”

“기분이 좋아?”

“어.”

“한 만화에 같이 등장해서 뿌듯한 거 아니야?”

“그런가?”

“그럴 거야. 어쨌건 크래시 킹이라는 만화에선 동등한 느낌으로 나오니까.”

그때 다른 음성이 끼어들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라고 봐.”

누군가 했더니, 이대봉이다.

언제 온 거지?

이즈미와 한창 전화통화중에 왔던 모양이다.

“그 여자 성격으로 봤을 때, 단순히 베낀 만화에 같이 등장한다고 좋아하는 건 이상해. 그리고 겨우 신인일 뿐이잖아.”

그러자 실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또 뭘 안다고 나서냐?”

이대봉이 턱을 위로 치켜들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잘 알지.”

“뭘 아는데?”

“방금 대화하는 거 보니까 크래시 킹인가 하는 만화를 감싸는 모양이던데.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작가는 인정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건 나카야라는 여자도 마찬가지 일거고. 해적만화가 출신은 잘 모를 거야.”

그 말에 실버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자 곧장 내 뒤에 바짝 엎드린다.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또 실버의 역린을 건드리는 건지.

아무튼 뒤에 숨어서도 계속 떠들었다.

“아무튼, 나카야 이 여자, 분명히 관계있어.”

“관계?”

“그래. 크래시 킹, 이거 그리는 사람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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