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로 전직 (2)
이즈미의 말에 차가 멈추었다.
운전석의 노인이 물었다.
“내리시겠습니까?”
“그래요.”
그 말에 노인이 서둘러 내리려하자 그녀가 그를 만류했다.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내릴 테니까.”
“하지만, 아가씨······.”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차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는 토끼털 옷을 입은 여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젊은 여자는 푹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이 더 그랬다.
하지만 여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계없다는 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여자가 다가오는 여자의 기척을 느끼고는 돌아봤다.
그런데 이즈미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가 깜짝 놀라 담배연기를 들이키다 켁켁거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런 여자를 보며 이즈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 오랜만이네. 그 동안 잘 지냈어?”
“나, 나카야 씨.”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곧장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꾸벅 숙인다.
“안녕하세요.”
“어머, 그냥 편하게 앉아있어.”
“아뇨. 괜찮아요.”
“어머, 땀 좀 봐.”
그렇게 말한 이즈미가 돌아서더니 노인을 불렀다.
“구로다. 손수건 부탁해요.”
“네, 아가씨.”
노인이 서둘러 다가오며 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수건 한 장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이즈미가 여자의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 때문에 여자가 움찔거렸다.
“가만히 있어봐.”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그나저나 엄청 젖었구나. 하긴, 이렇게 따뜻한 날에 그런 걸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
머뭇거리던 여자가 다시 말했다.
“고, 고마워요. 나카야 씨.”
“딱딱하게 왜 그래? 우리 사이에. 이즈미라고 부르라니까.”
“그,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
여자는 여전히 긴장한 채로 이즈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토끼녀의 이마를 닦아주던 이즈미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어휴,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그건 좀.”
그 말에 토끼녀의 이마를 닦아주던 이즈미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곧 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럼 편한 데로 부르던가.”
“······네.”
하지만 토끼녀의 표정은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네?”
“아, 네. 늘 하던 거라서.”
“그래도 계절 봐가며 하지.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그나저나 이젠 만화 안 그려? 전에 그리던 그거, 뭐였지? 좀비 닌자였나?”
이즈미가 자신의 턱을 톡톡 건드리며 묻자, 토끼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좀비 사무라이요.”
“아, 그래. 그거. 좀비 사무라이. 그거 더 이상 안 그려?”
“그거 끝났어요.”
“아, 그랬구나. 난 몰랐어. 미안.”
“아뇨, 괜찮아요.”
“그럼 다음 만화는?”
이즈미의 질문에 토끼녀가 곤란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네. 그거 끝나고 나서, 출판사도 일을 안줘서.”
“왜?”
“그게, 아무래도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너무 흉내 낸데다가, 전에 사인회 사건 이후로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라.”
그 말에 이즈미가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년매거진 말고 딴 곳도 그래?”
“몇 군데 넣었는데. 처음엔 좋다고 하다가, 나중에 다시가면 거절당하고 그래요.”
토끼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즈미가 혀를 찼다.
“쯧쯧, 출판사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아무튼 그런 정보는 서로 잘 주고받는다니까.”
“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에요.”
“그래도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지?”
“······많이는 못 그려요. 집에 들어가면 피곤해서.”
그런데 그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보던 이즈미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지금 한 번 그려볼 수 있겠어?”
“네? 지금이요?”
“그래. 지금.”
이즈미의 말에 토끼녀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던 토끼녀가 근처 공원에 세워져 있는 시계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뭔가를 결심했는지 곧 머리를 끄덕였다.
“20분이면 끝나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하지만 이즈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기다리는 건 곤란해. 바로 결정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니니까.”
그 말에 토끼녀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표정을 굳히더니 얼른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토끼머리는 의자에 내버려 둔 채, 서둘러 근처 가게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곧 종이와 펜을 사들고 나온다.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온 토끼녀가 거기에 놓여 있던 토끼인형 머리를 치우고는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의자에 종이를 펼치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세도 좋지 않고 털옷을 입을 채였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연필을 움직여 나갔다.
종이위에서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즈미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이었기 때문에.
“어, 삼사라가 아니라, 머신건 잭이네.”
“네. 요즘엔 이걸 연재중이니까요.”
머리를 들지 않은 채 토끼녀가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그림을 이즈미가 자세히 살펴봤다.
삼사라 때처럼 머신건의 캐릭터들을 제대로 복제하고 있었다. 아직 메카닉 쪽은 부족해보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즈미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그림을 안 그린다더니, 이 정도면 충실하게 연습하고 있었네.”
“뭐, 그냥 집에서 할 일없을 때만 조금씩 하고 있어요. 이거 그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기도 해서. 하지만, 역시 부족해요.”
“혹시 해서 말인데, 내 만화도 가능해?”
“데빌 바이러스요?”
“그래.”
“네. 하지만 좀 어설퍼요.”
“그래도 한 번 보여줄래?”
머뭇거리던 토끼녀가 곧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러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미구엘과 히로인인 마리나가 같이 괴물과 싸우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최근에 연재를 했던 거라, 이즈미도 잘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평소였다면 자신의 그림을 복제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을 그녀였지만, 이번만은 무슨 일인지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토끼녀도 안심하며 더 열심히 그렸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자, 토끼녀가 입을 열었다.
“아직, 좀 많이 부족해요.”
그녀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지만 이즈미는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머, 부족하긴. 나도 깜빡 속을 것 같은데.”
칭찬인지, 비꼼인지 애매한 투로 얘기하자 토끼녀가 다시 긴장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이즈미가 웃으며 토끼녀를 바라봤다.
“나 좀 도와줄래?”
“네?”
“네 실력이 좀 필요해서. 어때?”
그 질문에 토끼녀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정말이세요?”
“당연하지. 설마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니?”
“아,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인상이 더럽게 생긴 중년의 남자였다.
그런 그가 토끼녀를 보더니 버럭 소리쳤다.
“야, 너! 아직 끝날 시간이 남았다는 거, 몰라! 이런 식이면 돈 못줘!”
그 말에 토끼녀가 이즈미를 돌아봤다.
이즈미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자 여자가 곧장 남자에게 말했다.
“그만 두겠어요.”
“뭐!”
하지만 토끼녀는 대답도 없이 근처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남자가 인상을 썼다.
“저게 미쳤나? 언제는 꼭 좀 써달라고 매달리더니.”
그렇게 남자가 투덜거리는 사이,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토끼녀가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중년의 남자를 지나쳤다.
“너!”
“오늘부터 시작할까요?”
그 말에 이즈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말한 이즈미가 노인을 돌아봤다.
“구로다.”
“아, 네.”
노인이 주머니에서 만 엔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집까지 택시타고 와.”
“집에 갔다가 목욕하고 갈게요.”
“그럴 거 없어. 집에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목욕탕이 있으니까.”
“네. 알겠어요.”
그렇게 대답한 토끼녀가 지폐를 받았다.
이즈미가 곧장 몸을 돌리자, 노인이 서둘러 달려가서는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즈미가 타자마자 다시 운전석으로 뛰어가 차에 올랐다.
곧 이즈미가 차에 앉은 채로 말했다.
“얼른 와.”
“네. 알겠어요.”
“구로다. 출발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곧바로 고급세단이 토끼녀에게서 멀어졌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뒷자리를 힐끔거리던, 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아가씨.”
“왜 그러죠?”
“왜 갑자기, 저분을······.”
“평소엔 짐승 보듯이 하던 내가 갑자기 왜 쟤를 집으로 불렀냐구요?”
“그렇습니다.”
그 말에 이즈미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뭐, 특별히 예전과 다르게 보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다른 만화가의 그림을 복제하는 짓 따위를 하는 애가 갑자기 좋아질 리는 없으니까.”
“그럼, 왜?”
“그냥, 재미난 게 떠올라서요. 저런 능력을 그냥 썩히고 있기는 아깝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보고는 다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 * *
신작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좋은 모양이다.
편집부 내에서도 달라진 그림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고.
곧 나올 설정집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높다고 한다.
뭐, 선희 본인도 만족스러워하니 여러모로 분위기는 좋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며칠 후.
지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가 이상한 얘기를 했다.
- 소년츠바사라는 잡지를 아십니까?
갑자기 소년츠바사는 왜 묻는 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주간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조그마한 출판사의 잡지라 자세한 건 미래에도 정보가 없어서 잘 모른다.
- 거기서 지금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의 만화가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될 만화? 그게 뭐죠?”
- 혹시 전에 소년매거진에서 연재했던 좀비 사무라이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써니의 그림을 똑같이 복제해 그렸던 만화가 아닌가.
사인회에서 불쑥 끼어들어 물을 흐렸던 그 여자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혹시, 또 그 사람이 연재를 시작한 겁니까?”
- 네. 그렇습니다.
아, 진짜. 끈질기네.
“이번에도 삼사라 그림을 흉내 냈습니까?”
- 아뇨, 삼사라는 아니고요. 이번엔 머신건 잭입니다.
“하, 이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머신건 잭은 삼사라와 상당히 다른 그림체다. 거기다 분위기도 다르고.
그런데도 굳이 이번에도 머신건 잭의 그림을 흉내 냈다니.
하지만, 그림체를 흉내 냈다고 해서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용이 같지만 않으면 표절이라고 따질 수가 없는 구조니까.
특히나 지금 시대라면 더욱 더 그렇다.
- 그런데 이번엔 방식이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뇨? 무슨 말입니까?”
- 머신건 잭만이 아니라, 데빌 바이러스의 그림도 흉내 냈기 때문입니다.
이건 또 뭔 황당한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