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31화 (331/425)
  • 라이벌로 전직 (1)

    선희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종이에선 새로운 기계들과 이제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상위 급 기계마을이 그려진다.

    그리고 각종 신형의 차량들과 무인바이크들이 만들어진다.

    이전과 달리 세련된 디자인들이라 어시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설정 그림들이 하나 둘 완성되어 가고, 종이들이 한쪽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어시들은 내게 허락을 받은 후,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그리고는 그림을 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이거 조크의 신형 조라탱이에요? 와, 멋지다.”

    “그러게. 구형 조라탱이 폭발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 신형 보니까, 어쩐지 성장한 기분이라 좋네요.”

    “저도요. 조크는 이거 운전할 맛, 나겠다.”

    “어? 여기 이 커다란 건 뭐죠? 제트엔진인가?”

    김기철이 신형 조라탱의 후미에 붙어있는 커다란 엔진을 보며 물었다.

    “어. 그거 작동하면 탱크 밑에서 타이어 바퀴가 튀어나오는 형식이래. 선희 아이디어.”

    “오, 역시 일본에 다녀오시더니 그림의 레벨이 훅 올라버렸군요.”

    “과연 일본물이 좋긴 좋네.”

    “일본물이 좋아서 그런가? 작은 선생님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거지.”

    “아, 그렇긴 하네요.”

    “이 참에 조라탱에 비행 능력을 부여하면 어때요? 그럼 전투력도 올라갈 텐데.”

    “에이, 그건 좀 그렇지. 가뜩이나 무거운 장갑차인데. 그냥 속도만 올리고, 늪에 빠지지 않는 성능 정도로만 업그레이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사막엔 개미지옥 같은 거도 있지 않아요. 모래 늪, 그런 거. 그거에 빠지지 않으려면 호버크래프트인가 그런 걸로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좋은······ 생각 같은데요.”

    이젠 제법 한국어를 잘 알아듣는 류타니도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게 대부분 어시들이 그림을 보며 즐거워한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 어시들끼리 이렇게 모여 서로 이야기도하며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중 괜찮은 의견이 나오면 그것을 차용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선희가 그때그때 디자인을 다시 바꾸기도 한다.

    물론 당사자가 그림을 좋아하는 탓에 오히려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설정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이번 일본 방문으로 선희의 그림 실력이 한 단계 올라서 새롭게 그려내는 대부분의 디자인들이 이전에 비해 세련된 느낌이다.

    그걸 어시들도 느낀 모양인지 모두 꽤 놀라는 모습이고.

    그림을 그리는 선희도 이전에 비해 기계그림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나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예상보다 성과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설정들을 대충 만들어 두고, 본격적으로 콘티 작업에 들어갔다.

    원래 새로운 에피소드에서 잭이 처음으로 신형의 양팔 머신건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머신건을 디자인하며 선희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다녀 온 뒤, 드디어 최종으로 결정된 양팔 머신건이 완성되었다.

    일본에서 몇 번 그렸던 머신건에서 자잘한 것을 삭제하고, 좀 더 심플하게 디자인 되었다.

    오히려 이전에 비해 그림 자체는 단순해져서 그리기는 더 좋은 느낌이다.

    어느 정도의 변화냐면.

    월E와 이브의 차이 정도랄까.

    그러고 보니, 머신건 무기도 이브의 무기와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신형 조라탱과 머신건의 변화도 그렇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사막의 도적단도 상당히 멋진 디자인의 공격무기 많이 등장한다.

    덕분에 전체적인 전투도 이전에 비해 더 화려해졌다.

    아, 그리고 일본의 장난감 회사와 캐릭터 계약을 했는데, 이번 신형 조라탱도 아마 새로운 프라모델로 등장할지 모르겠다.

    구형 조라탱도 꽤 디테일하게 만들어졌고, 그게 또 화실에 딱 전시되어 있긴 하지만.

    어시들도 머신건에 등장하는 각종 기계머신들의 프라모델을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하여튼, 신형도 반응이 좋아야 할 텐데.

    기존의 구형 디자인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어떻게 어필될지 모르겠다.

    * * *

    머신건 잭의 새로운 설정집을 본 편집부 직원이 지로에게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와, 팀장님. 이거 새로운 조라탱디자인이에요?”

    직원의 질문에 지로가 그림들을 살펴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조라탱 엄청 좋아해서 프라모델도 갖고 있는데. 이번 건 더 멋지네요. 나오면 사야겠다. 그런데 이 많은 그림이 다 새로운 설정인가요?”

    쌓여있는 그림들을 보며 놀라 묻자 지로가 피식 웃었다.

    “응. 이번에 써니 선생님께서 보내신 거야.”

    “그럼, 이거 다음호에 설정자료를 싣는 건가요?”

    “너무 많아서 곤란해.”

    “하긴······. 그럼 남은 이 많은 그림들은 어떻게 해요?”

    “나머지는 책자로 만들 계획이야. 전에 그렸던 설정 디자인이랑 이번 것 모두. 그리고 써니 채택되지 못한 디자인도 넣을 참이야.”

    “공개되지 않은 디자인 말이군요.”

    “그렇지.”

    지로의 대답에 직원이 들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나도 꼭 사야겠다. 직원 할인은 없나?”

    “아마 될 거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판매부 쪽에 가서 문의해봐.”

    그때 다른 직원들도 끼어들었다.

    “새로운 에피소드 공개하면, 머신건 잭 연구회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겠는데요? 안 그래도 이전부터 조라탱이나, 각종 무기들 보면서 좀 아쉬워했는데. 솔직히 요즘 애니메이션 수준이 많이 올라가서 어지간한 디자인으로는 안 먹히잖아요. 머신건 잭도 그것 때문에 디자인은 좀 안 좋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렇게 말하며 지로의 눈치를 슬쩍 본다.

    하지만 지로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쪽에 아는 애들이 좀 있는데, 그러더라구요. 써니 선생님 만화에 등장하는 기계는 좀 미국스타일이라 리얼하기는 한데, 디자인은 좀 그렇다고요.”

    그때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미국스타일이라도 꽤나 멋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그야 그렇지. 거기다 스토리도 가벼우면서 꽤 재밌잖아. 덕분에 조라탱이나 무인바이크 프라모델은 제법 많이 팔리기도 했고.”

    “진짜 마니아들에게 어필할 정도는 아니었죠. 대부분 만화 팬들이 구입한다는 조사도 있고요.”

    그 말에 지로도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디자인은 좀 먹힐 것 같은데. 세련된 느낌도 좋고. 만화 반응이 좋으면 고가모델이 나올지도 모르고.”

    “저도 이런 게 고가모델로 나온다면 사고 싶긴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역시 만화의 인기가 중요하겠죠.”

    “그야 그렇지. 만화가 인기 없으면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묻히니까.”

    지로의 말에 직원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후 발행된 소년 히어로의 반응은 뜨거웠다.

    신형 디자인이 공개되고, 그것이 꽤나 이슈가 되면서 머신건 잭 관련 팬들이 즐거워했다.

    특히나 곧 발간될 거라는 설정집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관련 팬들이 자주 몰려든다는 도쿄시내의 유명 카페에도 머신건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머신건 잭에 등장하지 않은 일러스트도 공개된다며?”

    “잡지엔 그렇게 쓰여 있던데. 그리고 비공개 구형조라탱 디자인도 한 장 나왔잖아. 조그맣게 등장한 그림인데, 그것도 나름 괜찮던데.”

    “그래도 이번 디자인은 엄청나던데. 뭐랄까, 제타건담 디자인보다 더 멋지더라. 팔에 저런 멋진 게 달려있으니까 잭이 더 멋져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초반보다 외모도 더 멋져지긴 했지. 처음엔 좀 산 도적 같았는데, 지금은 꽤나 멋진 스타일이잖아.”

    “그건 써니의 그림 실력이 상승해서 그런 거고.”

    “그야 그렇지.”

    “그런데 이번엔 좀 재밌는 것도 있던데.”

    “뭐가?”

    “데빌 바이러스 말이야.”

    그 말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아’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최근 관심을 끊고 있었는데, 이번엔 꽤 멋진 로봇이 등장하는 바람에 좀 놀랐어. 이야기가 좀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는 건 맞는데, 그래도 등장신이 너무 멋져서, 혹하더라고.”

    “또 써니 때문에 등장한 거라던데.”

    “정말? 진짜 그 소문 사실이야? 나카야 이즈미가 써니에게 라이벌 의식 가지고 있다는 거.”

    “뭐,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년 히어로 쪽에 아는 형이 있는데, 그 형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

    “출판사에서 하는 말이면 맞겠지.”

    “그럼, 역시 이번 이야기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겠구나.”

    “뭐, 그렇겠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웃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하얀 모자를 쓴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문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났던 여자가 떠들던 사람들을 쭉 돌아봤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검은 안경 속에서 레이저 광선이라도 쏘아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여자가 갑자기 혀를 툭 찼다.

    “쯧, 여긴 왜 이렇게 커피 맛이 엉망인지 몰라.”

    그렇게 말하더니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자리에 있던 양복 입은 노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를 따라 나갔다.

    “누구지?”

    “글쎄?”

    “그나저나 엄청 예쁘다. 저런 여자 친구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서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메카닉만 사랑해야 돼. 저런 아가씨들은 절대 상대 안 할걸?”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때문에 말을 꺼냈던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쓸데없는 말을 해서.”

    *

    카페를 나서던 여자, 이즈미가 화난 얼굴로 크게 말했다.

    “구로다!”

    그러자 뒤따라 나오던 노인이 허겁지겁 대답했다.

    “네, 아가씨.”

    “빨리 차를 대기시켜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더니, 근처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던 이즈미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카페를 휙 돌아봤다.

    “흥, 뭘 안다고 아무렇게나 지껄여.”

    그렇게 말하더니, 팔을 허리에 툭 올렸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는 않았는지 계속 씩씩거리고 있는데, 그때 남자 한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저기 아가씨, 예쁘게 생겼네. 어디 가요?”

    날건달처럼 생긴 남자가 접근하자, 이즈미가 인상을 팍 썼다.

    “좋은 말로 할 때 다가오지 마요.”

    “오, 역시 예쁜 여자에겐 가시가······.”

    “콱!”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자 흠칫 놀란 남자가 휙 물러났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극진 가라데 맞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물러나시지.”

    “쳇. 정신 나간 여자였군. 얼굴만 예쁘면 뭐해!”

    그렇게 투덜거리던 남자가 슥 물러났다.

    여자의 표정을 보니 진짜 촙을 날릴 기세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멀어지는 남자를 보던 이즈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갑자기 자신이 한 행동이 한심해서 더 비참해졌다.

    그리고 그때 그녀 앞에 고급 세단이 멈춰서더니 곧장 운전기사 노인이 내려 뒷문을 열어준다.

    그러자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뒷자리에 탔다.

    그리고 곧 차가 출발하려는데 그때 그녀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팬시가게 앞에서 하얀 털옷을 입은 채 토끼머리 탈을 벗고 앉아 있는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이즈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곧 눈을 크게 떴다.

    “구로다!”

    “네, 아가씨.”

    “차 좀 세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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