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9화 (329/425)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다 (7)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내 대답에 잠시 멈칫하던 이즈미가 다시 물었다.

“당신, 후카미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어제부터요.”

“어제?”

“그러는 그쪽은요?”

내 말에 그녀가 눈썹을 찌푸린다.

“그쪽? 제 이름 몰라요?”

“알아야 하는 겁니까?”

물론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별로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저렇게 시비조로 말하니까, 썩 내키지도 않고.

아무튼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물었다.

“제 이름은 뭔데요?”

“그야, 당연히 텐······, 나도 당신 이름 따윈 몰라요!”

갑자기 버럭 소리친다.

방금 말하려 했던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게 왜 소리를 지르는 건지.

본인도 그건 좀 그랬는지,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보인다.

그러더니 곧 화제를 돌렸다.

“뭐, 그런 이야기는 관두죠. 그나저나 어떻게 후카미 선생님이랑 알게 된 거예요?”

이 여자는 계속 질문만 던지나?

“취조라도 하는 겁니까? 아, 여기서는 사전청취라고 하나?”

“후카미 선생님이 아무하고나 친해지는 건 아니니까 하는 소리에요?”

아무나라니.

말하는 본새가 정말.

“그럼 그쪽이랑은 친해요?”

“당연하죠. 전 후카미 선생님의 제자나 다름없는데.”

“제자?”

제자면 제자지, 제자나 다름없다는 건 또 뭐야.

“당신, 아직 후카미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군요?”

“대충은 아는데요.”

“대충?”

그러더니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뭐야? 대충이라니.’라고 중얼거린다.

진짜 이런 행동을 보면 후카미라는 사람의 별난 성격은 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제자라는 건가?

어쨌건 묘한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그쪽이랑 친한 거 보니까 아무하고나 친해질 것 같은데.”

내가 툭 던지듯 말하자, 웃고 있던 이즈미의 얼굴에 금이 간다. 그리고는 다시 인상을 썼다.

“됐으니까, 비켜요! 나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날 밀치고는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또다시 화들짝 놀랐다.

“어? 왜 이렇게 깨끗해?”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뒤로 홱 돌고는 날 노려봤다.

“도대체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뭘 말입니까?”

“여기요, 여기.”

그렇게 말하며 거실 쪽을 가리켰다.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깨끗하잖아요.”

“그게 이상한 겁니까?”

“이상해요, 너무 이상해.”

역시 평소와 달랐던 거군.

하지만, 난 여전히 모른 채 하며 말했다.

“글쎄요. 전 그쪽 말대로 아무나라서 친하지 않아 잘 모르겠군요.”

“······.”

내 말에 인상을 쓰더니 위층을 슬쩍 올려다보며 물었다.

“2층에 계신 거 맞죠?”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이즈미가 서둘러 계단위로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계단 주변을 둘러보며 여전히 놀라워한다.

하긴, 저기도 원래는 엄청 더러웠으니.

그때 다시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누군가 했더니, 이즈미를 따라다니는 정장차림의 노인이었다.

그가 날 보더니 평소처럼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텐겐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만······.”

“······?”

“이것을 대신 가지고 올라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종이봉투 몇 개를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여기 계시는 후카미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간식들입니다. 유명 양과점에서 특별히 주문한 겁니다.”

“안으로 안 들어오세요?”

“전 여기까지만 허락이 되어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문밖에서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허락이라니, 나 참.

이즈미의 허락인지, 아니면 후카미의 허락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잣집의 별난 아가씨 비서역할을 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닐 것 같다.

아무튼 그에게서 종이봉투를 받아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뭐, 간식이 있으니 굳이 내가 나가서 사올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갔더니 후카미의 방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리고 문 안으로 이즈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즈미는 그 상태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하다.

다가가서 봤더니 이즈미 어깨너머로 선희와 후카미가 열심히 뭔가를 대화하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까 나올 때랑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즈미가 들어왔음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

주변을 살피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집중상태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모습에 이즈미가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인데.

“뭐합니까?”

내 말에 그제야 이즈미가 움찔하고 놀란다. 그리고는 슬쩍 날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변해있었다.

뭔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알겠는데, 설마 선희랑 후카미의 저런 모습 때문인가?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대번에 표정을 관리한다. 그리고는 곧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후카미 선생님. 저 왔는데.”

“······.”

“후카미 선생님, 간식······. 아. 깜빡했네.”

그렇게 말하더니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가 내 손에 쥐어진 종이봉투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빼앗듯이 가져가더니 다시 후카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 간식 가져왔어요. 선생님.”

간식이라는 말에 반응한 걸까?

선희가 먼저 이즈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후카미가 머리를 들어 이즈미를 돌아본다.

“아, 왔어.”

그렇게 대답하더니 선희를 한번 보고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탁탁 쳤다.

집중하라는 것처럼.

그러자 다시 선희가 시선을 거두고는 그림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림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쪽은 샤샤삭 하는 느낌으로. 그렇지. 그런 느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이즈미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표정도 다시 심각해진다.

하지만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스스로를 자제하고 있다.

후카미의 제자라더니, 스승 앞에선 승질을 부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네.

아니 그보다 진짜 제자 맞아?

아무튼 두 사람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던 이즈미가 곧 방 중앙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당신도 여기 앉아요. 서 있지 말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곧 나도 자리에 앉았다.

이즈미는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종이봉투를 올려놓고는 안에서 뭔가를 잔뜩 꺼낸다.

하나하나 낱개로 잘 포장되어 있는 양과자다.

그것을 테이블위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두었다.

그런데 그런 부스럭거리는 비닐소리에 선희가 움찔거리더니 이쪽을 슬쩍 돌아본다.

저 녀석.

또 식탐의 본능이 살아났구나.

아무튼 계속 테이블 위를 힐끔거리자, 후카미도 신경 쓰였는지 곧 ‘후’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세우며 말했다.

“일단 여기까지 하지.”

그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후카미도 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서는 앉았다.

그 모습 때문일까.

그제야 이즈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리고는 후카미에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집이 굉장히 깨끗해졌네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나도 힘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힘내야겠다니······, 왜요?”

“끝을 알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나도 뭔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으니까.”

“그럼,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이즈미가 기대 섞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선희를 가리키며 말하자 곧 실망하는 눈치다.

“여기 이 친구.”

“······.”

“아, 자네는 알고 있어? 써니라고 유명하다는 모양이던데.”

“······알고는 있어요. 거기다 같은 출판사에서 연재하고 있기도 하고.”

“역시 그런가?”

그렇게 말하더니 과자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선희를 돌아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선희는 과자를 노려보다가 날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먹어도 돼?”

한국어로 물어봤지만, 후카미는 그 뜻을 이해했는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먹고 싶으면 먹어. 괜찮지?”

“아, 네. 괘, 괜찮아요.”

이즈미의 표정은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선희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열심히 봉지를 까서는 입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치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그 모습에 이즈미의 표정이 더 찌푸려진다.

하기야, 이 특별히 주문한 과자라던데, 이런 걸 눈치 없이 선희가 먹어치우고 있으니.

하지만 내가 굳이 이즈미를 이해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그건.”

과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그런 날 의식했는지 이즈미가 잠시 머뭇거리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면 안돼요?”

“뭐, 그래. 모처럼 왔으니까, 불편한 얘기는 할 필요 없지.”

“······.”

“어쨌거나 오늘은 나도 피곤하네. 이렇게 가르치는 걸 쑥쑥 빨아들이는 사람을 보니까 신나서 집중했더니. 혹시, 내일도 시간이 있어요?”

날 보며 묻자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럼 나머지는 내일 하도록 합시다. 대충 내일정도면 필요한 건 거의 다 가르칠 수 있을 것도 같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대단한데요. 일주일 이상은 가르칠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리도 금방 이해하고 상상력도 좋아서,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라, 따로 연습을 시킬 필요도 없고. 집중력도 엄청나고. 내가 체력만 받쳐줬으면 오늘 모두 다 가르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정신없이 과자를 흡입중이 선희를 보며 혀를 내두른다.

그런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짝 표정이 찌푸려졌던 이즈미가 이내 웃으며 슬쩍 끼어들었다.

“저기, 선생님. 실은 따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여기서 말해도 돼.”

“네? 하지만, 좀.”

“그럼 하지 마.”

“······아뇨. 할게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날 힐끔 봤다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일은 제가 죄송했어요. 그러니까,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 여자가 자기 입으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다니 별일이네.

확실히 후카미라는 남자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거지? 자네를 불타게 만든 라이벌이라도 생긴 거야?”

“······.”

“정말 그런 건가? 나도 관심이 가는데. 누구지?”

후카미의 말에 이즈미가 선희를 슬쩍 돌아본다. 그러자 선희가 과자를 먹다가 이즈미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녀를 바라봤다.

“······?”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보던 후카미가 깜짝 놀랐다.

“뭐야, 설마 이 친구?”

그 말에 이즈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네.”

“히야, 이거 재밌는데.”

“왜요?”

“솔직히 자네 실력으로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좀 과하다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즈미가 당황했다.

“······서, 선생님.”

“뭐, 그래도 라이벌의 실력은 높을수록 좋은 거지.”

“그러니까 선생님의 도움이.”

“열심히 해보게. 목숨을 걸면 혹시라도 이 친구의 라이벌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그 순간 이즈미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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