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8화 (328/425)
  •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다 (6)

    “이거······.”

    선희가 완성한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보던 후카미가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보던 그가 머리를 들더니 선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하지만 후카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선희가 멀뚱거리며 있자, 그가 답답했는지 이번엔 마사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사람, 진짜 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만화가 써니 선생님이라고······.”

    “만화가가 이렇게 정밀한 기계그림, 그것도 공간을 제대로 인지하며 그린다고요?”

    “뭐, 오토모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잖아요.”

    “······그 양반은 그냥 천재인거고.”

    “이분도 그런데요.”

    “······.”

    혼란에 빠진 얼굴이다.

    그리고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있더니 다시 물었다.

    “이런 사람이 날 왜 찾아와?”

    그 말에 이번엔 선희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림, 배우려고······.”

    “그림을 배워? 당신이?”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잡아내지 못하는 대칭도 잡아내면서. 그림을 배워? 그것도 나한테?”

    “메카닉 그림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찾아온 겁니다.”

    내 말에 후카미가 날 돌아봤다.

    “그쪽은······?”

    “오빠입니다.”

    “아, 보호자시군.”

    “스토리 작가 선생님이시기도 해요. 아까 말씀드린 써니 선생님의 작품 스토리를 맡고 계시죠.”

    마사키의 보충설명을 들은 후카미가 머리를 끄덕였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메카닉 그림에 대한 감각이라면, 이정도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 같은데요.”

    “아뇨. 원래그림은 좀 달랐어요. 그렇지만, 타마노 씨에게 배운 탓에 좀 많이 나아진 거고요.”

    그렇게 말하고는 선희를 돌아봤다.

    “네가 처음 그렸던 머신건 디자인을 보여줄래?”

    내 말에 선희가 곧바로 구형(이라고 해봐야 몇 시간 전의 모델이지만) 디자인을 즉석에서 그려 보인다.

    후카미는 그것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확실히, 조잡해 보이기는 하네요. 그러니까, 아까 그건 타마노의 도움으로 바뀐 그림이라는 거군.”

    “네.”

    “그럼 신형 디자인으로 다른 것을 그려볼래요?”

    그 질문에 선희가 멀뚱거린다.

    “어떤 거?”

    “아무거나.”

    그 말에 곧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인바이크인데,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어있다. 과연 타마노에게 배운 것을 바로 응용한 모양이다.

    “오, 괜찮네. 타마노의 느낌이 상당히 많이 나고. 역시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군요. 얼마나 배웠어요? 석 달? 반 년? 아니면 일 년?”

    “······한 시간.”

    그런 선희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번엔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그런 얼굴로 마사키를 돌아봤다. 그러자 마사키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후카미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괴물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선희가 그린 그림을 쳐다보더니 곧장 자신도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선 따기를 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선이 없이 바로 그려낸다.

    이런 건 선희와 비슷한 느낌이다. 속도도 상당히 빠르고.

    아무튼 그가 빠르게 완성한 그림은 방금 그렸던 선희의 그림을 전혀 다르게 그렸다.

    타마노에게 영향을 받은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인데······, 물론 이쪽이 훨씬 세련된 느낌이다.

    과연 타마노가 추천할 만한 실력이다.

    즉석으로 이만한 퀄리티의 디자인을 뽑아내다니.

    그가 선희를 보며 말했다.

    “이런 느낌이라면 어떨까싶은데.”

    와, 싶을 정도로 멋진 바이크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런 디자인은 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흔하디흔한 바이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보스 급의 신형 디자인에 어울리겠지.

    어쨌건 새롭게 만들어진 디자인을 보던 선희가 눈을 반짝거린다.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마음에 드나 봅니다.”

    내 말에 후카미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가 그리는 과정을 뚫어져라보던 선희가 곧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선희가 그리는 그림에 쏠렸다.

    그리고 그림은 금방 완성되었다.

    바로 잭 일행이 타고 다니는 소형장갑차.

    방금 후카미가 그렸던 그림 스타일을 바로 응용한 느낌.

    덕분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멋진 디자인의 장갑차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을 보던 후카미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스타일로 그렸구만. 대단하네. 이렇게 금방 응용하다니. 하루 만에 타마노의 스타일을 배웠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네.”

    “한 시간.”

    “아, 그래요. 실수. 한 시간.”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인상을 쓰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내 그림은 그렇게 쉽지 않을 거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에 있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검은색 파일을 하나 꺼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펼쳐보였다.

    파일 안에는 연필, 혹은 펜으로 그려진 수많은 로봇, 비행기, 미래형 기지 등의 그림들이 있다.

    “내가 이제껏 그렸던 파일들 중 가장 최신이에요. 자세히 보면 디자인을 조금씩 다르게 해왔거든. 딱 보이죠?”

    난 전혀 모르겠다.

    어디가 어떻게 다른 스타일이라는 건지.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선희는 금방 이해하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실력이 출중하네. 내 말을 금방 이해하는 걸 보면.”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람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다니, 좀 유별난 사람이긴 하구나.

    그런데 그가 곧 생각을 끝냈는지 선희에게 말했다.

    “좀 더 가르쳐보고 싶은데. 어때, 생각 있어요?”

    “배우고 싶어요.”

    선희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다시 올래요? 나도 준비를 조금 해야 하거든.”

    의욕에 넘치는 표정이다.

    선희가 날 돌아보자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오죠. 그런데······, 왜 갑자기 가르치고 싶으신 겁니까?”

    처음 왔을 땐 귀찮아하더니, 라는 말을 빼고 말했다.

    “왜라니, 재능 있는 사람을 봤는데, 당연하죠. 타마노도 재능 있어서, 가르쳤던 거고. 그리고 혹시 모르겠는데, 돈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재능 있는 사람을 보니 열정이 끓어오른다는 건가?

    일반적인 오타쿠와는 다른 사람이다.

    외모나 사는 모습으론 히키코모리에 가깝지만, 남을 가르치는 걸 즐기는 스승 타입의 사람인 모양이다.

    무협으로 치면 은둔고수 쯤 될까.

    그러니까 선희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쪽은 기연 쯤 될지도.

    *

    다음날.

    선희와 난 키도의 집을 나섰다.

    그런 우리를 키도가 졸졸 따라 나왔다.

    “내가 데려다 준다니까 그러네.”

    “괜찮으니까, 원고나 좀 해. 이번 주도 마감이 빠듯하다며.”

    내 말에 키도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라니까.”

    그때 키도의 뒤를 따라 나온 테고시가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지금 마감 빠듯하잖아요.”

    그 말에 멈칫한 키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돌아서며 테고시를 쳐다봤다.

    “나 못 믿어?”

    “믿게 해주세요.”

    “이러기야?”

    “전에도 마감에 늦어서, 인쇄공장 직원들 늦게까지 작업했다고요.”

    어이구, 저 민폐.

    그럴 줄 알았다.

    “택시 정도는 타고 찾아갈 능력 되니까, 그림이나 그리셔.”

    “야, 윤환.”

    또 따라 나오려는 키도를 테고시가 콱 붙들었다.

    “선생님, 제발요.”

    “넌 좀 가만히 있어.”

    “안됩니다. 저를 밟고 가십시오.”

    “정말 밟고 간다?”

    “윽!”

    쇼를 하고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키도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집 앞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곧장 후카미의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택시에서 내린 뒤 그의 집 앞으로 갔다.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후카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 어?”

    후카미의 모습이······, 어제와 상당히 달라 깜짝 놀랐다.

    일단 어제처럼 길고 떡 졌던 머리가 짧고 단정한 머리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어제처럼 너저분한 옷도 말끔해졌고.

    “왜요?”

    “아니,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

    “뭐, 기분전환이죠. 그리고 어설픈 정신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어설픈 정신?

    단단히 준비라도 했다는 건가?

    아무튼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외모만 변한 게 아니었다.

    거실 입구부터 계단, 부엌 쪽까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마치 어제와는 전혀 다른 집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렇게 좋은 집을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살았다니.

    선희도 변한 집이 놀라운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돌아본다.

    그렇게 후카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이곳도 상당히 달라져 있다.

    그런데 이쪽은 아까 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오히려 깔끔했던 방이 더 지저분해져 있었다.

    방 안에는 온통 메카닉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

    황당한 표정으로 실내를 바라보고 있는데, 선희는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특히나 바닥에 깔려 있는 그림 중 몇 가지 그림에 더 집중하는 눈치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앉더니 종이를 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그 모습을 보던 후카미가 피식 웃었다.

    “역시 그게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요.”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후카미가 곁에 앉았다.

    “또 마음에 드는 그림은 없어요?”

    그 말에 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후카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후카미가 그림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음, 이제 알겠네.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원하는지.”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에 있던 그림들을 몽땅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림들을 한쪽에 정리해 두고는 책상으로 가서 그림들을 살펴보더니 선희에게 말했다.

    “자, 이제는 속성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도 머리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뭘 그리는가 했더니 그냥 기계가 뭉쳐져 있는 알 수 없는 그림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며 그가 떠들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표면은 부드러운 느낌을 줄때. 이건 거친 느낌. 기계를 복잡하게 보이고 싶다면 이런 식이 좋아요. 이렇게, 이렇게.”

    그 말에 선희는 계속 머리를 끄덕인다.

    내가 보기엔 그냥 기계덩어리 일뿐인데도 선희는 잘 이해가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렇게 슈웅 하는 느낌이랑, 타캉 하는 느낌을 합치면 결과물은 이렇고.”

    뭐야, 그건?

    그걸 또 선희는 알아듣고 머리까지 끄덕이니, 이건 뭐 저세상의 대화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대략 두어 시간 동안이나 저런 황당한 말만 들려오자,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루하기도 했고, 뭐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곧장 방에서 빠져나와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찾아온 건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문을 왜 이렇게 늦게······. 어?”

    상대방이 날 보며 화들짝 놀랐다.

    나도 마찬가지고.

    문밖에 있는 사람은 데빌 바이러스의 나카야 이즈미였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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