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5화 (325/425)
  •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다 (3)

    “왜? 그런 표정이야?”

    내 얼굴을 보며 의외라는 듯 키도가 물었다.

    “아, 형이 가이낙스 멤버와 가족이라는 게 놀라워서.”

    “가이낙스가 뭐라고. 나는 오히려 가이낙스를 알고 있는 네가 더 놀랍다. 다이콘3 때문에 TV에 나오기는 했지만, 뭔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설쳐대는 요즘말로 오타쿠 녀석들일 뿐인데.”

    그 오타쿠들이 나중에 큰일을 내니까 그렇지.

    그것도 엄청난 대형 사고들을.

    “그런데, 이름이 뭐야?”

    “처남이름?”

    “어.”

    “아스카 마사키라고. 골통 녀석이 있어.”

    아스카 마사키라······.

    모르겠다, 그런 이름은.

    실제로 중요한 멤버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니.

    그나저나 부인의 원래 성은 아스카였구나.

    지금은 계속 키도부인이라고 불려서 몰랐는데.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만날 수 있어?”

    “만나게 할 수는 있지, 그런데.”

    전방을 보며 핸들을 툭툭 두드리던 키도가 피식 웃었다.

    “그 녀석, 그림이랑은 별로 안 친하니까 큰 기대는 안하는 게 좋아.”

    “별로 기대 안 해. 그냥 다리역할만 해주면 되니까.”

    “다리?”

    “응.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내 말을 이해했는지 키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왜, 뭐 좋은 일 있어?”

    “좋은 일 있지.”

    “뭔데?”

    “이거.”

    키도가 운전석과 보조석 가운데 있는 콘솔박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확인했더니, 전에 없던 물건이 놓여있다.

    커다란 손잡이와 많은 버튼들.

    요즘 꽤 자주 보이는 물건인 차량용 전화기다.

    “어? 전화기네.”

    내가 깜짝 놀라자,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말했다.

    “얼마 전에 달았지. 요즘엔 이게 유행이라고 하더라고.”

    돈 있는 인간들 사이에 유행하는 거겠지.

    그보다 스마트폰에도 익숙한 내게는 별 감흥이 없는 물건이다.

    오히려 너무 불편하게 생겼다.

    특히 콘솔박스 쪽은 이것저것 있는 게 많아서 오히려 지저분해 보이고.

    버튼 저건, 먼지 쌓이면 청소하기 귀찮을 것 같아 보이는데.

    마치 전화기 위에 붙어있는 키보드 같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도는 전화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이거 있으니까 굉장히 편하더라고. 괜히 사람들이 환장하는 게 아니었어. 역시 신기술은 좋은 거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다. 그리고는 곧장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힐끔거리며 번호를 누른다. 그리고는 곧장 귀에 전화기를 가져갔다.

    곧 키도가 웃으며 말했다.

    “어, 나요. 그래, 유난이랑 써니랑 같이 가고 있어.”

    그렇게 말하더니 날 돌아보며 물었다.

    “밥 안 먹었지?”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다시 앞을 보며 말했다.

    “안 먹었다고 하는군. 그래. 좀 준비해 주시오. 금방 도착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끊었다.

    “이야, 역시 감도가 좋단 말이야. 신형은 이래서 좋아. 이거 구형 갖고 있는 친구를 알고 있는데 말이지······.”

    키도가 열심히 자랑 질을 하고 있던 그때 내가 선희를 불렀다.

    “아까, 거기 전화번호 뭐였어?”

    “호텔에서 전화 건 곳?”

    “어.”

    그러자 반사적으로 선희가 전화번호를 불렀다. 그것을 듣자마자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떠들던 말을 멈춘 키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응? 너도 어디 전화하게?”

    “가이낙스.”

    “가이낙스?”

    “어. 형의 처남이 거기서 일한다며, 약속 잡아줄 수 있지?”

    “아, 뭐. 그야 그렇지.”

    응?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뭔가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뭐, 내가 잘못 본거겠지.

    곧장 신호가 가자마자 키도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차를 근처에 세운 키도가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곧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는지 키도가 입을 열었다.

    “아스카 씨 부탁합니다.”

    잠시 후.

    “마사키냐? 나다 매형.”

    - ······.

    “무슨 일이긴, 매형이 전화도 못 거냐?”

    - ······.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서둘러? 용건? 아 그래. 내가 말이지 친한 동생이 있는데 너희 사무실에 좀 가보고 싶은······. 어이, 야, 마사키!”

    버럭 소리를 지르던 키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슬쩍 날 돌아봤다.

    “아, 여기 위치가 안 좋나? 통신이 영 안 좋네. 전화기는 참 좋은데.”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냥 끊어진 건지, 아니면 상대방이 끊어버린 건지 애매한 느낌이긴 한데.

    그렇다고 대놓고 묻기는 좀 그렇고.

    뭐, 두 번째 단추도 잘못 끼워진 건가?

    뭔가 계속 꼬이는 기분이긴 한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키도의 처남이라도 바쁘다는데 어쩌겠어.

    “자자, 일단 우리 집에나 가자. 너희들 온다고 집사람이 맛있는 거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키도가 서둘러 대충 얼버무리더니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잠시 후.

    차가 키도의 집 앞에 도착했다.

    키도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자, 키도부인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머, 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폐를 끼치는 군요.”

    “폐는요.”

    그렇게 말하더니 선희를 보고도 반긴다.

    선희도 키도부인에게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실로 들어가 어시들과도 인사를 했다. 특히 어시들은 선희의 깜짝 방문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써니 선생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 인간들, 나는 눈에도 안 보이는 지 모두 선희만 쳐다보고 있다.

    한국에선 경희랑 선희를 헷갈려 하면서도 기쁨이 두 배니 어쩌니 하며 헛소리들을 하더니.

    아무튼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오신 김에 사인이라도.”

    어시 중 한명이 그렇게 말하자 키도가 버럭 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장 받았잖아!”

    “에이, 그건 그거구요.”

    “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훔쳐갔다고요. 어떤 놈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그냥 콱!”

    “전 액자를 하나 더 만들려고요.”

    “저도.”

    그 말에 선희가 테이블 위에 있던 매직을 들어 올리자 어시들이 작업을 멈추고 각자 종이나, 책들을 집어 들고는 서둘러 선희 앞에 줄을 섰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쯧쯧 하며 혀를 찼다.

    “아무튼, 오타쿠 녀석들.”

    “형이 오타쿠를 무시하면 안 되지.”

    “그, 그러냐?”

    조촐한 사인회가 끝나자 모두 기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키도부인이 우리를 불렀다.

    “음식 준비되었어요.”

    “자, 먹자.”

    “어시 분들은?”

    그러자 어시들 중 한명이 연신 싱글거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희는 밥 먹은 지 얼마 안됐어요.”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은 좀 지났구나.

    아무튼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화려했다.

    평소에도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오늘은 정말 화려하구나.

    양은 적지만, 종류는 많다.

    이정도면 진짜 호텔 부럽지가 않네.

    선희도 식탁위에 놓인 음식에 정신을 놓고 있다.

    “많이 드세요.”

    키도는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신다.

    그때 내가 입을 열었다.

    “가이낙스에 가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 곳을 좀 알아볼까?”

    그때 키도가 움찔하고 놀랐다.

    동시에 부엌을 왔다 갔다 하던 키도부인이 자리에 멈칫했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가이낙스에 용무가 있나요?”

    “네. 선희문제로 메카닉일러스트레이터 중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키도 형이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바쁜 모양이라.”

    “어머, 전화를 걸었던가요?”

    “네.”

    “그런데 바쁘다고 해요?”

    “네.”

    “어머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응? 그럴 리가 없다고?

    내가 알기로도 지금은 바쁜 시기가 맞을 텐데.

    그런데 맞은편에 있던 키도의 표정이 좀 묘하게 변했다.

    응? 왜 저런 표정이래?

    그때 키도부인이 식탁 근처 벽에 붙어있는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곧 입을 열었다.

    “어머, 오카다 군. 응. 나야. 그래, 응. 잘 지내지.”

    오카다?

    설마 오카다 토시오?

    오타킹이라 불리던 가이낙스의 현재 사장이랑 아는 사인가?

    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여전히 웃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는 금방 본론을 이야기했다.

    “우리 마사키 있니? 응. 그래. 고마워.”

    그렇게 말하더니 곧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는지 다시 말했다.

    “응. 지금 우리 집에 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응?

    뭐야, 너무 짧아.

    뭐지?

    내가 눈알을 굴리다가 키도를 돌아봤더니 이 양반은 그냥 차만 홀짝거리고 있다.

    이번엔 다시 키도부인을 쳐다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뭐지?

    뭐가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식사를 끝내고 난 뒤 거실에서 키도부인이 만들어준 조각케이크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키도가 대문 버튼을 눌렀다.

    몇 초 뒤 거실 문이 열리고 젊은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헉헉.”

    비틀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긴 한데.

    “어서와 처남.”

    “누, 누나는 요?”

    “나 여기 있단다.”

    그렇게 말한 키도부인이 부엌에서 나왔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벽시계를 보며 말했다.

    “5분 늦었네?”

    “아, 그게. 차가 좀 막혀서.”

    “아까, 우리 키도 씨에게 들었는데······.”

    “저기, 그건.”

    “우리 동생, 언제부터 누나 말을 끊고 그랬니?”

    “아, 미안.”

    뭐지?

    고양이 앞에 생쥐 꼴이라니.

    그보다 키도부인이 저런 포스가 있었나?

    잘은 모르지만, 이 실내의 공기는 키도부인이 완전 장악한 기분인데.

    선희도 그런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키도부인을 보고 있다. 그런데, 쟤 눈이······, 뭔가 동경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바쁘다며? 매형이 말해도 외면할 만큼.”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럼?”

    “······.”

    “······?”

    “······미안.”

    머리를 푹 숙인다.

    그러더니, 키도를 보며 풀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매형.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하하.”

    그런 모습을 보던 키도부인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들어가자 눈알을 데굴거리던 남자가 키도와 우리를 힐끔거리더니 곧 우리가 있는 소파로 와서 키도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휴. 누나 지금 기분이 어때요?”

    “뭐? 좋지.”

    “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나와 선희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쪽 분들은······?”

    “아, 아까 전화를 얘기했던 아는 동생들.”

    “······아.”

    그제야 전화를 했던 내용이 떠올랐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이쪽은 써니, 이쪽은 유난. 아, 유난은 일본에서 텐겐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

    “일본인이 아니에요?”

    “그래. 만화가들이야.”

    “아.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다시 끄덕인다.

    그러다가 곧 멈칫하더니 다시 우리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어? 텐겐? 써니?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텐겐이랑 써니요?”

    “그래. 전에 처남이 샀던 일러스트 책, 그거도 써니 거잖아.”

    “······.”

    “왜?”

    감자기 얼음땡이 된 키도의 처남.

    이름이 마사키라고 했지?

    아무튼 마사키가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어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요!”

    왜 이렇게 반응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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