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2화 (322/425)

의외의 명소 (3)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서 슬쩍 다가갔다.

키도의 어시들도, 재미있는지 인근에서 인터뷰 중인 키도를 구경하고 있다.

물론 니시다도 마찬가지.

그런데 인터뷰는 끝이 났는지 리포터로 보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또 다른 일본인을 쫓아갔다.

“무슨 인터뷰였는데?”

내가 다가가서 물었더니, 키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소감을 묻더라.”

“올림픽? 그래서?”

“그래서는 뭘, 원하는 대답을 해줬지. 한국이 이렇게 많이 발전했다니 정말 놀랐다. 시민의식도 좋다. 올림픽을 기대한다고.”

그 말에 니시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니, 관광의 목적을 정확하게 말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

“애초에 그렇게만 묻는데, 그럼 뭐라고 대답하라고. 삼사라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눈치던데.”

“그래도 이참에 한국에 삼사라라는 만화를 홍보해도 되잖아요. 일본에서 이렇게 유명한 한국인의 만화가 있다고.”

그 말에 잠시 동안 눈을 껌뻑거리던 키도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그렇게 말할걸 그랬나? 우리 윤환이 위신도 좀 세워 줄 겸.”

“아니, 됐어. 그냥 모르는 게 나아. 아직은 한국이 만화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고, 거기다 삼사라가 괜히 폭력적이라고 말이 나오면 그것도 곤란해. 잘못하면 나 때문에 엄한 만화책들이 화형식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고.”

아직은 삼사라 같은 만화가 한국의 일반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만화가들이나 만화동호인 활동하는 쪽에선 좀 알려지긴 했다.

그쪽은 뭐 같은 만화 쪽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나저나 정말 평범한 아파트주변에서 지금 뭐하는 건지.

어시들 말대로 볼 거 정말 없는데.

그나마 니시다나 키도의 어시들은 삼사라에 등장했던 소소한 건물을 발견하면 ‘오오’하면서 사진도 찍고 즐거워한다.

키도는 그런 어시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날 빤히 쳐다본다.

“왜?”

“너 심심해 보여서.”

“아, 뭐. 그렇지.”

“우리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돌아가도 괜찮다.”

“아니, 나도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지 뭐.”

“그럼 나는 고맙지.”

그때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어시 중 한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점심인데 식당에 가야하지 않을까요?”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계를 본 키도가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을 슥 둘러봤다.

일반 아파트단지 치고는 식당이 많은 편이지만, 키도는 한국인이 아니라 판단이 어려워 보인다.

“그럼 뭘 먹지? 유난, 추천할 만한 곳이 혹시 있냐?”

그러자 니시다가 키도를 나무랐다.

“텐겐 선생님이 관광가이드입니까?”

“물어볼 수도 있지, 넌 참 이런 문제는 꽉 막혀있다니까.”

“그래도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 괜찮아요.”

“······.”

“거봐라 괜찮다잖아. 괜히 총대 메고 난리야.”

그렇게 말하더니 날 돌아봤다.

“어때, 유난?”

“내가 이 동네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도 한국음식은 네가 잘 아니까, 네가 안내를 해주면 안 되겠냐?”

“그래, 알았어.”

뭐, 부대찌개나 먹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들을 둘러보는데, 그때 적당해 보이는 부대찌개 식당이 보인다.

일단 식당 주변에도 사람이 많아 보이는 걸 보면 최소한 맛이 없지는 않겠지.

“저기로 가자.”

“저기? 뭐 맛있는 거 있냐?”

“부대찌개. 먹어보면 나쁘지 않을 거야.”

“오, 그래?”

“텐겐 선생님이 추천해 주시니까, 기대가 됩니다.”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너, 아까 관광가이드냐고 나에게 승질부리지 않았었나?”

“······승질을 부린 건 아닙니다만.”

“아닌데, 부렸는데.”

“아닌데요.”

날 따라오면서도 저렇게 어이없는 걸로 다투고 있다.

아무튼, 식당 앞으로 갔더니 여자애들의 웃음소리가 커진다. 중간 중간에 들리는 말을 들어보니 일본인이기는 한데,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거지?

여자애들이 몰려있는 곳 사이에 보니, 키 큰 남자가 한명 보인다.

옷을 보니, 식당 종업원인지 남색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그런데.

“어? 대봉이 형!”

누군가 했더니 이대봉이다.

아무튼 내 반응에 깜짝 놀란 이대봉이 날 휙 돌아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네가 여기 어쩐 일이니?”

“형이야말로 여기서 뭐해?”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자신의 앞치마도 내려다본다.

그리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여기, 며칠 전부터 하루에 잠시 동안 일을 돕고 있지. 내가 그래도 부대찌개랑 인연이 많지 않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경기도에 있는 부대찌개 식당에서 알바를 하던 이대봉을 만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일하는 거 맞아?”

키도 앞에서 조잘거리며 떠드는 여자들을 힐끔거리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대봉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 식당손님들. 식사하시고 나가시는 거 배웅 중.”

“뭐?”

배웅이라니, 그런 서비스도 있나?

그러고 보니 여자들은 이대봉에게 맛있었다느니 다음에 또 오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며 즐거워한다.

몇 명은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이름은 뭐냐, 그렇게 묻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 모습을 보던 키도의 어시들이 자그맣게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와, 엄청 부럽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아.”

“연예인 아니에요? 얼굴이 미남이잖아요.”

“일본어도 엄청 잘해.”

“와, 한국은 식당 종업원도 이런 미남을 쓰는 건가? 뭐지 이 패배감은?”

“부러워요.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어시들이 헛소리를 하고 있던 그때 이대봉은 여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음에도 놀러와 줘.’라며 친근하게 인사한다.

여자들이 ‘꺄’ 하며 좋아하고는 곧장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그 모습을 내 곁에 있던 키도와 니시다도 황당해하며 바라보고 있다.

이내 우리 쪽을 돌아본 이대봉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어? 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

“아, 키도 형이랑 니시다 씨. 그리고 키도 형네 어시 분들.”

그렇게 말하자 이대봉이 깜짝 놀랐다.

“어? 정말?”

그렇게 말하더니 키도와 니시다를 커다란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더니 일본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키도 선생님. 니시다 선생님. 전 제임스라고 합니다.”

그 말에 키도와 니시다뿐만 아니라, 어시들까지 다함께 놀랐다.

키도가 이대봉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럼 중원요리왕의 그 제임스 선생?”

“네. 맞아요. 무카이 하지메 선생님이 작화를 맡고 있는.”

“반갑소. 그 동안 유난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저도요.”

그때 니시다도 끼어들었다.

“반갑습니다. 중원요리왕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도 에스퍼 존 재밌게 보고 있어요.”

이대봉이 키도와 니시다에게 인사를 한 뒤, 어시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사실, 전에 키도가 한국에 왔을 때도 이대봉이 없었으니, 따로 만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를 통해 서로에 대해서 들은 건 많겠지만.

그렇게 어시들과도 인사를 간단하게 나눈 이대봉이 곧 뭔가 알겠다는 듯 손뼉을 짝하고 쳤다.

“아, 여기 단체로 오셨구나. 삼사라 때문에 유명해져서.”

“어? 형은 알고 있었어?”

“나도 며칠 전에 알았어. 여기, 전에 일하던 가게 아줌마 동생분이 하시는 곳이거든. 갑자기 일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연락 와서 왔는데, 일본인 많더라고. 그래서 물어봤더니 삼사라 때문에 여기가 관광지가 되었다고 하더라고. 아차, 여기서 이러고 서 있을 게 아니다. 식사 때문에 온 거지?”

“어.”

“그럼 안으로 내가 안내할게.”

그렇게 말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으며 말했다.

“저를 따라 들어오세요.”

그렇게 식당 안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잠시 후 식사를 하고 다들 처음 먹었지만, 만족한 표정이 되자 어시들이 궁금함 때문인지 나를 보며 말했다.

“텐겐 선생님. 제임스 선생님이 왜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거죠? 요즘 중원요리왕 제법 많이 팔리지 않나요?”

“맞아요. 그 정도 팔리면 스토리작가도 괜찮을 텐데.”

“혹시, 한국에선 세금을 많이 떼는 겁니까?”

어시들의 질문에 키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너희들은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네?”

“공부중이잖아. 공부. 중원요리왕이 무슨 만화야?”

“그야······.”

“요리만화······.”

“아.”

그제야 어시들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요리 공부를 위해서······.”

“과연 어쩐지 중원요리왕의 전문적인 지식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네요.”

“제 친구들 중에선 중원요리왕에 있는 요리 몇 개는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기도 했다더라고요. 뭐, 실패를 해서 최악의 요리였다고는 했지만.”

“그래. 맞아. 자로고 프로는 저래야지. 항상 갈고 닦아 정진해야 하는 거야.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라고.”

“과연, 그렇군요.”

“저희도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그런 반응에 만족했는지 키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리고 잠시 후 키도가 지나다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쁜 거 아니야?”

“아니. 지금은 손님도 별로 없고, 주방에 있는 누님들이 알아서 하실 거니까.”

그때 어시들이 이대봉에게 말했다.

“존경합니다, 제임스 선생님.”

“네. 늘 정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 말에 이대봉이 웃었다.

“아름답다니까, 기분은 좋은데······. 뭘 정진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일하시는 거요. 공부때문이시죠?”

“공부요?”

“네. 중원요리왕 때문에 하시는 거잖아요. 거기 요리 고증도 많이 하신 것 같던데.”

“맞아요. 제 친구는 그거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해요. 엄청 팬이거든요.”

그 말에 이대봉이 화들짝 놀랐다.

“네? 그걸 만들어 먹어요?”

“왜 그러세요?”

“그거, 그냥 이론으로 만든 음식들인데. 실은 저도 어떤 맛이 날지 몰라요. 그냥 멋지게 표현하려고 재료도 좀 과격하게 배합하고.”

“······.”

“······.”

“······.”

갑자기 테이블 주변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잠시 동안 정적 때문에 주변에 우리 테이블 주변에 있는 몇 명의 손님들 대화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거랑, 중원요리왕은 관계없어요. 거기는 중원이라서 중국요리가 주가 되니까. 중원요리왕에 부대찌개가 등장하면 이상하잖아요.”

그때 어시들 중 한명이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그, 그럼 여기서 일하시는 이유는.”

“돈도 많이 주고, 공짜로 많이 먹을 수 있고, 또 일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으니까. 뭐 남자는 별로 사귀지 못했어요. 죄다 여자들만.”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수첩하나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간간히 주소 같은 것도 보인다.

“일본가면 공짜로 재워주고 밥도 준다고 하더라고요.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일본전체를 일주해보고 싶거든요. 여기서 일하니까 완전 이득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애처럼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보던 어시들이 묘한 눈빛으로 키도를 돌아봤다. 그러자 키도는 그들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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