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1화 (321/425)

의외의 명소 (2)

이게 뭔 황당한 소린가 싶다.

삼사라시티라는 용어도 생소한데.

아니, 애초에 그게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인지 조차 모르겠다.

“그 아파트단지가 어떻게 일본에 알려진 거야?”

내 말에 키도가 다시 낄낄거렸다.

- 너는 삼사라의 원작자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주변에 좀 관심을 가지고 살아라.

“애초에 주변엔 삼사라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 아, 그렇지. 네 만화가 한국에서는 전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듣기론 올림픽 때문에 다 묻히는 모양이고.

의외로 이쪽 소식에 대해서도 제법 알고 있는 모양이다.

- 어쨌건, 나도 어시들에게 들은 얘긴데. 음, 서울에서 관광을 하며 돌아다니던 사람이 우연하게 발견했다나봐. 그 사람이 또 엄청난 삼사라 광이라, 아파트 단지가 눈에 익었던 모양이고.

“······.”

- 그 사람이 찍은 사진이 팬들 사이에서 좀 나돌았던 모양이더라. 그런데 그게 또 어떤 만화연구회의 동인지에 실렸고, 코미케에서 다시 팔리고······. 뭐 이런 순이지.

그러니까, 삼사라 팬이 한국에 왔다가 익숙한 지형을 발견해서 시작된 얘기였구만.

황당한 과정을 거치고 그게 다시 유명관광지가 되었다니, 신기한 느낌이다.

*

며칠 후.

정말 오랜만에 키도가 찾아왔다.

화실에 들어오며 그가 소리쳤다.

“여어, 유난. 형이 왔다.”

“어서와.”

“어서 오세요, 키도 선생님.”

“오, 안녕들 하신가.”

그렇게 말한 키도가 실버를 슬쩍 보더니 히죽 웃었다.

“자네도 잘 있었나? 존 실버.”

하지만 실버는 불편한 표정이다.

“보시다시피. 그리고 존 실버라고 하지 마쇼. 조심봉이라니까. 아니면 그냥 실버로 부르든지.”

키도는 실버의 그런 투덜거림에도 별다른 대응 없이 느긋하게 웃었다.

“자네가 보기엔 요즘 내 만화가 어때? 요즘 괜찮지 않은가?”

“열혈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만화의 힘이 빠져 있던데. 스토리는 산을 넘어 바다로 가는 모양이고.”

“역시 여전하구만.”

그렇게 말하며 뭐가 좋은지 한참을 웃는다.

그런데 키도 뒤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텐겐 선생님.”

“아, 니시다 선생님.”

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키도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억지로 따라 온 거야. 폐를 끼치는 줄도 모르고, 눈치도 없이.”

“괜찮아. 형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는데 뭐.”

내 말에 키도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나는 형이잖아. 형. 그러니까 괜찮지. 하지만, 저 친구는 다르잖아. 남이라고 남.”

“키도 선생님도 따지고 보면 남이죠. 거기다 국가도 다르고.”

“우린 특별하니까 괜찮아.”

또 억지를 부린다.

이런 거 보면 이대봉이랑도 비슷한 것 같고.

그때 특유의 우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화실이 너무 좋아요.”

뒤따라 들어온 키도부인이 화실을 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바깥에서 보면 익숙한 형태인데, 안은 또 현대적이라 세련되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들어와서는 모두와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키도부인을 가장 반겨하는 이는 경희다. 마치 친자매가 오랜만에 상봉하는 것처럼 두 사람이 껴안고 좋아한다.

그동안 서로의 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더니 경희가 그녀의 팔을 이끌었다.

“저희 부엌 구경 하실래요? 재료도 엄청 많은데.”

“당연히 환영이랍니다.”

키도부인이 좋아라하며 경희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간다.

역시 부엌 마니아들.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키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파트단지엔 오늘 갈 거야?”

“아니, 내일. 오늘은 그냥 호텔에서 쉴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참에 여기 화실사람들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

“뭐, 벌써 나 빼곤 대부분 다녀왔어. 형 전화 때문에 모두 궁금해서 말이지.”

어시들도 삼사라시티라는 말을 듣고 거길 다녀왔는데, 듣기론 아파트단지 주변엔 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서, 별로 재미는 없었단다.

당연히 그랬겠지.

그저 평범한 아파트단지일 뿐이니까.

다만, 팬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말을 들은 키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키도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네 어시들은 지금 어디에 있어? 시내관광?”

내 물음에 키도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호텔에 있지. 밤샘 작업을 하고 넘어와서 모두 피곤한 모양이거든.”

“어휴, 그럼 좀 쉬고 여유 있을 때 올 일이지.”

“여유라니, 우리같은 만화가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어시들도 당연한 거고.”

그 말에 니시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무슨 소립니까. 그게 결국은 작업 중이던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작업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잖아요.”

역시 키도 때문에 그런 거군.

“그러는 자네는 어시들 왜 안 데려왔는데?”

“아니, 본인들이 오고 싶어 해야 데려올게 아닙니까? 그냥 하루 쉬게 놔뒀죠. 그리고 저희 화실은 선생님 화실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작업하지 않구요.”

“막무가내라니, 열정이 있는 거지.”

“열정은 무슨, 아까 비행기에서 보니까, 다 골아 떨어져 있는데다가 몰골도 말이 아니던데.”

“원래 만화를 그릴 땐 기합이 중요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티격태격, 잘도 싸우는 구나.

이 두 사람도 이대봉이랑 실버관계랑 비슷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키도부인은 남다른 친화력을 보인다.

아까부터 부엌에서는 경희와 키도부인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부엌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갑자기 그곳에서 입맛을 돋우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화실 사람들은 작업을 멈추고는 모두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에요? 엄청 고소한데.”

“빵 같은 거 아니에요?”

“와, 갑자기 배가 고파져 와요. 입에 침도 막 고이고.”

그리고 잠시 후.

부엌에서 쟁반을 든 경희와 키도부인이 나왔다.

두 사람의 쟁반위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빵이랑, 컵들이 놓여있다.

갓 구운 빵, 특유의 강력한 비주얼이 식욕을 돋우는 느낌이다.

“자 모두 이거 드시면서 얘기들 나누세요.”

그렇게 말하며 키도와 니시다가 있는 소파에 컵과 빵이 놓인 접시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어시들의 자리에도 빵과 컵들을 내려놓았다.

컵에 든 건 경희의 특기인 다방커피인 모양이다.

그런데 커피와 빵들에게서 풍겨오는 냄새 때문에 화실의 분위기가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어시들이 빵을 입에 한입 베어 물었다.

곧 사방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엄청 부드럽고 맛있어요.”

“난 이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이에요. 너무 행복해.”

나도 먹자마자 키도의 집에서 먹었던 빵이 떠올랐다.

정말 이 시대에선 맛보기 힘든 수준의 맛이다.

“사모님이 직접 손수 만드신 건가요?”

박소미가 한국어로 묻자, 키도부인이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죄송해요.”

그렇게 말한 박소미가 다시 일본어로 말하자 키도부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어서, 즐겁게 만들었답니다. 특별히 커피와 어울리는 것으로요.”

“언니 오신다는 소식 듣고 준비해 둔 거예요. 이번에 좀 배워두려고. 모처럼 오셨는데, 죄송해요.”

경희의 말에 키도부인이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휘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답니다. 뭔가 또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또 얘기해 주세요.”

그때 여자어시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도 그거 배우고 싶은데, 괜찮아요?”

“저도요.”

그런 반응에도 키도부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요. 음식 종류는 만드는 것도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즐거우니까.”

그 말에 여자들이 모두 환호했다.

하긴, 여기서는 저런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없을 테니까.

아무튼 그런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이런 분위기.”

그 말에 키도도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

다음날,

화실 식구들이랑 삼사라시티라고 불리는 그 아파트단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키도일행과 만나서는 어시들과도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니시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써니 선생님은요?”

“경희랑 같이 화실에 남아있어요. 다른 여자 어시들도.”

그때 키도가 말했다.

“집사람도 얘네 화실로 갔어. 오늘 여자들끼리 뭉친다는 모양이야.”

“여자들끼리요? 왜요?”

“어제 화실에서 안 봤어? 무슨 요리를 배운다고 그러는 거지.”

“아.”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니시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 아침에 화실을 나설 때 나도 그 얘기를 경희에게 들었었다.

‘오늘 일본 언니랑 모여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어.’

‘선희도?’

‘선희는 그냥 먹기만 할 거고.’

‘아.’

하기야, 선희가 먹는 건 좋아해도 만드는 건 관심이 없으니까.

그나저나 이곳, 몇 년 사이에 동네가 꽤 많이 변해있었다.

특히 음식점이나 슈퍼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있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뭉쳐 다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와, 저거. 저 건물 처음에 등장할 때 그거지?”

“어, 맞아. 역시 실제로 보니까 저런 느낌이구나. 사람들이 벽을 쌓고 싸우던 그 장면이 막 떠오른다.”

“저 쪽에서 좀비들이 막 몰려오고 그랬잖아요. 저 위쪽에서 그것을 내려다보고. 저 위에 올라가면 안 되려나?”

“아무래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폐가 될 테니까.”

같이 온 어시들은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이리저리 찍어대며 신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녀석들. 저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보네.”

“모두 삼사라를 좋아하는 팬이라서 그런 거잖아요. 저런 모습을 보니, 키도 선생님이 부럽군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왜 부러워?”

“어시들 말이에요. 저희 어시들은 안 그렇거든요. 대부분 직업의식이 강해서 그런지, 거의 기술적인 대화뿐이라서 재미없거든요.”

“오타쿠 어시가 부럽다고?”

“어? 선생님도 오타쿠라는 말 아시네.”

“당연하지. 쟤들 때문에 배운 말인데.”

“저는 만화에 대해 어시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까요.”

“그럼 다음엔 그런 애들을 뽑으면 되지.”

“그럴까요?”

그렇게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휴일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평범한 아파트 단지 주변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 돌아다니고 있다. 딱 복장만 봐도 한국인과는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띈다.

키도의 어시들처럼 이곳저것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삼사라의 팬들이 주로 젊은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어쨌거나 우리 어시들 말대로 별로 볼 건 없다. 그냥 일본인들만 신나하고 있을 뿐.

그나저나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에 왜 이렇게 일본인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어디를 가도 삼사라 그림은 보이지 않으니, 특별히 그것으로 홍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있다.

뭐,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그것을 구경하는 관광객의 모습을 보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때 키도가 양복차림의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남자의 곁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저거······.

인터뷰하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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