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20화 (320/425)

의외의 명소 (1)

“오, 이거 나가 속편이야?”

류타니의 콘티노트를 읽으며 물었다.

“네. 다음번 삼사라월드에 들어갈 내용이에요. 편집자랑 이야기는 끝났어요.”

류타니는 화실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콘티작업은 계속 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단편 위주에다 그나마 연재도 비정기가 많은 실험적인 잡지인 잡지에 따로 담당이 있을 리도 없다.

그냥 몇 명의 편집자가 원고를 받아 읽어보고 간단한 의견교환을 한 뒤 잡지에 기재하는 식이다.

솔직히 이런 잡지를 발행하는 것도 잡지사에서 삼사라가 크게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고, 팬들도 그만큼 많아서이지, 돈을 벌기 위한 대중적인 잡지는 아니라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나름 판매량은 준수하다는 걸 보면 역시 오타쿠의 나라, 아니지. 그것보다 만화와 관련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겠지.

“이번에도 콘티 그대로 들어가는 거야?”

“네. 하지만, 원고를 그려줄 사람이 있다면, 작업해서 보내줘도 괜찮다고 했어요.”

“아니, 그런 건 출판사에서 해줘야지, 그걸 너한테 하라고 하냐?”

“아시겠지만, 편집자가 몇 명 없어서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뭐, 저희들이야 원고료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요.”

하긴, 만화가 지망생에 비해 잡지는 턱없이 부족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연재하는 만화가들도 소수의 상위 인기 작가들이나 벌이가 좋지, 나머지는 뭐 뻔 한 일이고.

그나마 아마추어인 류타니 같은 애들에겐 이런 잡지도 꽤나 도움이 되고 있으니.

“그래? 그럼 그려줄 사람은 알아봤어?”

그 말에 류타니가 멈칫했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리고 원고료도 얼마 되지 않는데, 누가 그려주겠어요.”

“전에 활동하던 연구회는 없어?”

“있기는 한데, 그때 친구들 대부분 사회생활로 넘어갔어요.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만화 쪽이 아니라, 밀리터리나 모형 쪽이 대부분이라.”

“너 이제 겨우 20살이잖아. 그런데 벌써 대부분 연구회 은퇴 한 거야?”

그 말에 눈을 껌뻑거리던 류타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저, 18살······ 인데요.”

“아, 참. 한국나이랑 헷갈렸다. 아무튼 사회 진출이 너무 이른 거 아니냐?”

내 말에 류타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가장 어렸어요. 대부분 저보다 서너 살 이상 많은 형들과 누나들이었으니까요.”

하긴, 연구회모임이 꼭 비슷한 나이들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언젠가 저도 인정을 받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출판사에서 작화를 맡아줄 만화가를 붙여주겠죠.”

양손을 불끈 쥐며 말하는 폼이 그래도 대견하네.

그래, 아직 어리고 기회는 많이 있으니까.

“바라는 퀄리티의 만화가는 있어?”

“······있기는 해요.”

“그래? 누군데?”

잠시 머뭇거리던 류타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꿈은 언젠가······.”

그렇게 말하더니 선희를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써니 아가씨가 제 스토리를 만화 화 시켜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했다가 저 혼자 깜짝 놀라며 날 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표정으로.

“저, 저기 그렇다고 선생님을 밀어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 건 아니고요.”

이 자식 귀엽네.

뭘 그렇게 놀라는 건지.

“내가 아닌 사람의 스토리로 만화를 그릴 수도 있지. 내가 만능도 아니고, 선희도 다른 스타일의 만화를 그려보는 게 좋은 경험이 될 테고.”

“아니, 싫어.”

갑작스러운 선희의 음성에 류타니가 다시 깜짝 놀랐다.

“난 오빠 작품 아닌 건 싫어.”

무표정한 말에 류타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멋대로······!”

그렇게 말하며 선희에게 머리를 꾸벅 숙인다.

그 모습을 보던 선희가 곧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어시들이 그 모습을 보며 킥킥거렸다.

“류타니, 우리 작은 선생님이 어떤 분인데. 지금 일본에서 잘나가는 스토리작가들이 아카기 씨한테 스토리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 못 들었니? 네가 작은 선생님에게 간택 받으려면 우선 큰 선생님부터 이겨.”

박소미의 말에, 작업하던 선희가 다시 머리를 번쩍 들었다.

볼이 살짝 부어오른 것 같은데?

“오빠 절대 안 져요.”

“아하하. 그, 그야 그렇겠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희의 반응 때문인지 박소미도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선희 저 녀석.

지금 나 일부러 부담 주는 거 같은데.

선희야 절대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란다.

“그런 일은 없어.”

“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머리를 끄덕거리고 나서야 선희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 선희의 완강한 반응에 놀랐는지 류타니는 반쯤 울상이 되어있었다.

선희의 말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나?

사내자식이 마음이 이렇게 약해서야.

스토리작가는 멘탈도 강해야 하는데,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스토리나 쓰겠나싶다.

아무튼 분위기라도 바꿔보자는 생각에 류타니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류타니, 너. 나가 말고는 다른 콘티는 안 만들어? 언제까지 삼사라 외전 같은 거만 만들 수는 없잖아. 진짜 네 작품도 만들어야지.”

내 물음에 또 깜짝 놀란다.

이 녀석은 뭘 이렇게 잘 놀라는 건지.

“······쓰고 있는 게 있기는 해요.”

그때 화실에 들어온 이대봉이 불쑥 다가와 물었다.

“뭔데, 뭔데. 류타니 너 뭐 재미있는 거 있니?”

그 때문에 다시 또 놀란 류타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전에 톱크레프트에서 만든 ‘The Flight of Dragons’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만든 건데요. 마법세계로 현대인이 가서 마법사가 되는 이야기에요.”

“오, 그게 재미있다. 나도 보여줘.”

이대봉이 류타니의 말을 듣고 관심을 보였다.

그나저나······.

이거······, 이세계물 아닌가.

The Flight of Dragons의 경우, 한국에선 지금 기준으로 몇 년 전인 1984년 휴일 아침에 방영했었다.

제목은 ‘공룡아 불을 뿜어라’

아무리 드래곤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시기라 그랬다고는 해도, 좀 뜬금없다는 느낌의 제목이기는 했다.

아무튼, 이 만화는 현대의 과학자가 마법세계로 넘어가서는 드래곤의 몸에 빙의하고 진행되는 이야기다.

아무튼, 아직은 이세계물이라는 용어도 없었고, 이런 종류의 이야기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인 건 분명하다.

지금 기준에선 이 애니 말고, ‘성전사 단바인’ 정도가 유명하다.

물론 90년대를 넘어가면서 많이 늘기 시작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장르소설을 통해 90년 후 반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게 된 분야이긴 한데. 아, 그러고 보니 고전 판타지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도 비슷한 부류인가?

소설로 따지면 은근히 오래된 장르이긴 하다.

내가 떠나오던 2018년에야 흔하디흔한 장르이기도 했고.

어쨌건 지금은 희귀한 시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류타니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노트 한권을 가지고 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저기, 여기 있습니다.”

류타니의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아무래도 삼사라의 외전이 아닌 오리지널 작품이라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겠지.

아무튼 초반 내용은 이렇다.

보드게임의 종류인 TRPG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마법사의 역할놀이에 심취해있던 주인공이 보드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단순한 설정임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드래곤도 등장하고 각종 요괴나 몬스터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도 재미있다.

마법사라고는 해도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마법사로서 기사를 만나 대륙을 여행한다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내용이다.

보드게임의 마스터가 주인공이다 보니, 이 세계의 설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깔려있다.

아무래도 애니 영향을 받았다더니, 좀 비슷한 형태다.

뭔가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장르소설, 그리고 미국영화인 ‘쥬만지’ 같은 게 섞여있는 것 같은데.

조금은 이야기가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괜찮은 내용이다.

뒤에 내용을 읽은 이대봉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현대 사람이 판타지세상으로 넘어가 마법사가 되어 활약한다니, 이거 너무 재밌는데.”

“정말요?”

“그래. 윤환이는 어때? 너도 괜찮지 않니?”

“어. 재밌어. 이정도면 주간소년지에서도 먹힐지 모르겠다.”

내 말에 류타니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정말로 그럴까요?”

“어, 얘 좀 봐? 내가 말할 땐 약간 긴가민가하더니, 윤환이가 말하니까 표정이 싹 달라지네. 너무하는 거 아니니?”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당연한 반응이지. 너는 또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실버가 그렇게 말하자 또 이대봉이 도끼눈을 한 채 실버를 노려봤다.

“뭐가 당연해!”

“그럼, 윤환이랑 네가 같은 레벨이냐?”

“뭐가 다른데, 같은 스토리작가잖아!”

“뭐, 동네 조기축구 아저씨나 국가대표 축구선수나 같은 축구선수이기는 하지.”

“뭐야! 그럼 내가 조기축구회 아저씨냐!”

“오 이해력이 높은데?”

“야!”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 사이에 끼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류타니를 보며 말했다.

“이거 조금만 더 다듬어봐라. 이거 괜찮은 느낌이니까. 언제 기회가 되면 아카기 씨한테도 한번 보여주자.”

내 말에 방금까지 당황하던 류타니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어쩌면 원래보다 좀 더 일찍 이세계물이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오랜만에 키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낄낄거리는 음성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 너 새롭게 준비한 신작 퇴짜 맞았다며?

이 인간이 시비를 거는 건가?

“그거 어떻게 알았어?”

- 어떻게 알긴, 소문이 쫙 퍼졌는데.

“소문?”

의외다.

그게 뭐라고 소문씩이나 나는 건지.

이젠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게 실감된다.

그런데 아까까지 낄낄거리던 키도의 음성이 갑자기 냉정하게 바뀌었다.

- 좀 파격적인 내용이긴 했지만, 그런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집부라니. 한심한 인간들. 너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일본은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으니까.

“실망은 안 해.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그런 것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내 실수이기도 하고.”

-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다행이지만.

“그런데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 이 형이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전화하든?

“대체로는.”

- 너 이 녀석.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고 웃는다.

- 그래, 네 말대로다.

“무슨 용건?”

- 이번에 우리 진심의 남자 원고 하루 쉬고, 집사람이랑 화실 어시들 모두 함께 서울에 갈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거기 좀 안내를 부탁할까 해서.

“거기라니? 어디?”

- 삼사라 시티 말이야.

“삼사라 시티? 무슨 소리야?”

- 어? 너 아직 모르고 있었냐?

“······?”

- 너 삼사라 시작할 때 나오는 아파트 단지 기억하지?

“당연하지.”

선희와 함께 처음 택시를 타고 배경 시찰을 돌다가 발견한 아파트단지니까.

- 거기 인근이 지금 삼사라 팬들 사이에서 삼사라 시티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관광지잖아. 몰랐냐?

그 아파트단지가 유명관광지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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