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19화 (319/425)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 (3)

며칠 후.

졸업식 이후 지로가 처음 찾아왔다.

신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직접 보기 위해서다.

데생으로 3회분이 완성된 시점이었다.

데생이 된 원고를 세 번 정도 정독한 지로가 드디어 원고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스토리가 꽤······ 파격적이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라.”

저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로는 일본인이니까.

실제로 쓸데는 몰랐는데, 쓰고 나서 어디선가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오래전에 비슷한 일본소설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지금의 시대로 보자면 아직 만들어진 소설은 아니지만, 아무튼 거기서도 북한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한다는 얘기라서 꽤 흥미로웠었다.

물론 내가 그것을 읽은 건 아니라 내용상으로는 상당히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 책이 나왔을 당시에도 꽤 충격적이었다고 했었다.

그게 2000년대였으니, 아직 80년대인 지금으로서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라면 상당히 관심을 많이 받을 겁니다. 일본인의 입장이 아닌 담당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이런 작품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만큼 이슈가 될 여지가 많거든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대봉이 끼어들었다.

“이거 솔직히 욕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아카기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 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하긴 지금 시절은 대충 40년 전의 일이니까, 50대 중반이 넘는 나이의 일본 사람들이라면 거의 기억하고 있겠지.

“중장년층은 불편하게 생각하겠다는 거죠? 감히 네놈들이 어쩌구하면서.”

이대봉이 미묘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번엔 실버가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두 사람 대화에 네가 왜 자꾸 끼어들어?”

“너나 끼어들지 마. 어차피 이런 문제는 언젠가는 크게 터질 일이야. 자꾸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없어진데? 지금은 좀 닥치라는 거지. 네가 왜 이렇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지랄이야!”

보통은 실버가 무겁게 만들고, 이대봉이 가볍게 만드는데, 오늘은 평소와 반대였다.

그런 것을 느꼈는지 이대봉이 혀를 찼다.

“쳇.”

사실 이대봉이 이 문제에 대해 좀 날을 세우는 이유는 있다.

전에 얼핏 들은 얘긴데, 이대봉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강제징용으로 사할린 쪽에 동원되었고, 그 뒤로 돌아오지 못하셨다는 모양이다.

지금 집에서 의절 당한 이대봉이지만 그래도 집안의 역사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만화 때문에 일본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문제에 대해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기는 하다.

늘 웃는 이대봉의 미소 속에도 아픔은 있는 것일까.

아무튼 방금까지 날을 세웠던 이대봉이 금방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카기 씨. 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평소처럼 실실 웃었다.

“너 아무생각 없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굳이 설명 안 해도 돼.”

“야, 실버! 너!”

* * *

소년 히어로 편집부 회의실.

중앙테이블에는 데생 원고 복사본이 여러 장 놓여있다.

팀장 이상들이 모여 써니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 논쟁이 뜨거웠다.

아니, 논쟁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연재에 대해 반대 입장이었다.

“이건, 좀 그런데요. 차라리 점령한 쪽이 미국이나 소련이면 모를까, 한국이나 북한은 좀······.”

“맞습니다. 그리고 저희 소년지입니다. 차라리 좀 야한 거라면 모를까, 이런 식의 이야기는 문제가 많습니다.”

“청년지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써니 신작이라면 두 손, 두 발 벌리고 환영할 사람들이지만, 이런 내용이라면 그쪽도 비슷한 반응일 것 같은데.”

“이번 신작은 독자층도 안 맞을뿐더러, 그나마 맞는 사람들이라 해도 불편하게 생각할 겁니다. 당장 저도 이 만화 엄청 불편하거든요.”

그때 부편집장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자네 입장을 묻는 게 아니야. 좀 생각해서 말해.”

“아, 네.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부편집장이 중앙에 앉아있던 편집장을 돌아보았다. 편집장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쨌건, 이번 신작은 제 생각에도 좀 껄끄럽습니다. 그냥 청년지나 성인지 쪽에서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소재고. 특히 지금처럼 저희 소년 히어로가 한창 성장 중에 이런 만화를 연재하는 것도 좀······.”

그 이야기를 듣던 편집장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지로 쪽을 쳐다보았다.

지로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바라봤다.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 생각이 이렇다고 하는데, 자네는 어때?”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지로가 편집장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담당으로서 해볼만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충격은 클 테지만, 이런 작품도 하나쯤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자 다른 팀장들이 끼어들었다.

“이건 단순한 충격이 아니야. 자존심이라고, 자존심. 아까도 얘기했지만, 차라리 식민지가 된다면 그쪽을 납득하지, 한국이나 북한은 아니야. 그래서 만화가 독자들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불편한 만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그것을 굳이 써니 작가가 해야하느냐하는 거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겁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때 부편집장이 나섰다.

“자자, 진정들 해. 그리고 자네는 왜 나서고 그래? 지금 편집장님이 아카기 팀장에게 물었잖아.”

“······죄송합니다.”

그가 머리를 살짝 숙이자 부 편집장이 다시 편집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편집장은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다시 지로에게 물었다.

“아카기 팀장, 만약에 말이야, 자네가 담당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편집장의 질문에 지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네.”

“하긴 나도 그렇긴 한데.”

그때 모두의 시선이 편집장에게 쏠렸다.

“그래도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쉽게 결론을 내리기 애매하구만.”

그렇게 말한 편집장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 * *

며칠 후 지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신작에 대해 편집부내에서 말들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은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시끄러웠단다.

- 배경 설정이 너무 과격하다며 팀장들 사이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편집장님이랑 부편집장님의 의견도 갈렸구요. 아무래도 이런 것은 아직 받아들이기엔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내려졌습니까?”

- 네.

“어떻게요?”

내 질문에 잠시 뜸을 드린 지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연재는 곤란하고, 단편으로만 해보자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그나마도 반대가 많았지만, 편집장님이 결정하신 일이라 그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단편요?”

- 네. 그리고 반응을 본 이후에 결정을 내리자는 내용입니다.

단편을 결과가 좋게 나오면 연재를 결정하자는 말이군.

하지만, 내용의 배경설정만으로도 당장 편집부 내에서 그런 분위기였는데, 이게 연재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그냥, 단편 하나로 만족하는 게 어떻겠냐, 이 말이다.

“그럼 이 만화는 반려된 거군요.”

- 반려라기보다는······.

그렇게 말하던 지로가 멈칫하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만화를 단편으로 만들어서 연재를 결정한다는 건······.

“뭐, 상관없어요. 신작이 모두 받아들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 ······.

물론 이렇게 거부당하니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직은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다는 건 잘 알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 면목 없습니다.

“아카기 씨가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솔직히 이런 일을 제대로 예상하지 않았던 제가 문제였지.”

-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은 뒤,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잘나가는 만화가라 해도 한계가 많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실버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그런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군.”

“그렇겠지. 아무래도 한때 자기들의 식민지였던 국가에도 지금도 경제력이든 뭐든 절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존심 문제로군.”

“그런 것도 있을 테지.”

어쨌건 일본 독자들이 보는 만화니 그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분식집 주인이 찾아오는 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 만들어서는 곤란하지.”

“맞아. 내가 너무 오만했던 모양이야.”

내 말에 실버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오만까지야.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역시 민감한 부분이라 솔직히 한편으로는 좀 꺼림칙하기는 했다. 만약 이런 만화가 연재되고 나서 한국에 알려지면, 그것도 걱정이었으니까.”

실버의 걱정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가끔 잊기도 하지만 분명히 80년대, 그리고 지금의 한국은 반공사회다.

학교에서도 반공교육을 받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간첩신고는 3천만 원, 각종 반공 포스터 그림이 붙어있고, 불온 삐라를 발견하면 파출소로 연락하라는 스티커들도 종종 보인다.

거기다 TV에서도 ‘배달의 기수’라고 마치 군대에서나 볼법한 군 홍보용 드라마 같은 것이 방영되고 있으며, 영화관에서도 영화 시작 전에 이런 걸 보여주고 시작하는 시기다.

그런 곳에서 북한과 남한이 손을 잡고 일본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만화를 만들려고 했으니.

물론 한국에 연재할 내용은 아니지만, 이게 또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남벌 같은 만화도 90대 중반쯤에 나왔으니, 아직은 이런 생각자체가 이르다 못해 위험할 수 있는 시기였으니까.

아무튼,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파토가 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용가리통뼈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연재를 하고 있지만, 한국인이고, 한국이라는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불가능하니까.

후, 2018년의 정신이 80년대의 현실을 겪으니 어쩔 수 없는 좌절감이라는 것도 있구나.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푹 파묻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도 며칠 동안 구상했고, 선희랑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런 식으로 끝나니까 허무하기도 해서.

그런 날 백설기가 멀뚱거리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요즘 백설기를 신경 써서 본적이 없는데, 그동안 살도 참 토실토실해졌구나.

하기야, 경희가 그렇게 맛난 걸 먹이니 당연하겠지만.

어쨌건 방금도 충분히 잘 먹었는지 조그마한 덩치에도 배는 꽤나 불룩하다.

꺼억.

“얼씨구.”

트림까지 하는 거 보소.

그것도 경희에게 받아먹은 밥이 만족스러웠는지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그런데 실버는 그런 백설기를 보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쟤도 네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저 눈빛 봐라.”

저게 어딜 봐서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이냐고.

그냥 아무생각 없어 보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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