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18화 (318/425)
  •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 (2)

    그날 저녁.

    낮에 다방에서 미네와 대화하면서 메모해 두었던 종이를 살피며 구상에 들어갔다.

    이번에 구상한 이야기는 절망의 페르소나와 달리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이야기를 만들어 볼 참이다.

    절망의 페르소나는 아무래도 한국도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이라도 생각하라는 차원이었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바로 점령역전 만화다.

    과거의 우리가 겪었던 일을 똑같이 일본이 겪는다는.

    때는 2011년.

    북한에서 모종의 일로 미사일이 발사된다.

    그게 어떤 이유인지는 후에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바로 후쿠시마.

    본래는 도쿄를 노렸던 모양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후쿠시마가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덕분에 후쿠시마를 포함한 인근지역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대량의 방사능이 퍼져서 도쿄 인근은 완전히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그 일로 수십 년간 평화에 젖어 있던 일본은 그 일로 나라 전체가 아비규환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서로 적이라고 생각했던 한국군과 북한군이 함께 일본에 상륙하며 일본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제대로 된 훈련과 경험이 부족한 자위대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놀란 일본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미국도 무슨 일인지 일본을 돕지 않았다.

    러시아나 중국은 당연히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일본의 자위대는 무장해제가 되었고,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반으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위쪽은 북한이 아래쪽은 한국이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혼란스러운 일본은 예전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일본인들은 저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나자 다시 일본은 조용해졌다.

    큰 도시의 경우 빠르게 한국 업체들이 진출해 빠르게 복구해서 겉으로 보기엔 예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대부분 소규모 공장 중심으로 취업이 많아졌고, 그나마도 대부분 한국에 납품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활에도 일본은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과거의 영광 따위야 오래전의 이야기로 치부되었고, 지금은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이니까.

    어쨌건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 때에 한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도쿄의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내아이가 주인공이다.

    그곳은 수도와 달리 마치 시대의 느낌은 한국의 6-70년대를 떠올릴 정도로 낙후되어있다.

    석탄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치품일 정도.

    그런 곳에서 미래의 자동차와 스마트폰 비슷한 휴대용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부유층의 모습이 대비되기도 하는 묘한 분위기다.

    자연히 계급사회로 변해버린 탓에 일본인과 한국인은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다.

    재미있는 건, 그런 계급을 나누는 존재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그런 일본에서도 가장 하층민이고 가난에 허덕이는 집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근에서 가장 부자인 한국인 저택에서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는 그곳으로 들어가 건물 외벽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건물 난간에서 떨어질 뻔 한 남자애를 구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그는 그 남자아이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의 집에 있는 가상체험 컴퓨터를 접하게 된다.

    일단, 이야기의 첫 화는 대충 이정도로 구상했다.

    기본적으로 2011년은 실제 후쿠시마 사건이 생기게 된 해라서, 그렇게 설정했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역전시켜본 것이다.

    한국인이라서 생소한 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고, 일본도 반대의 입장에서 경험시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튼 이야기는 일본의 독립이야기 같은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일본이 한국과 북한에 점령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성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도 있지만, 주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가상체험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해 가상공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강한 존재가 되어 현실에서도 인정받게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가상체험의 경우엔 이미 미국영화나 소설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 적이 있는 만큼 이 시대에도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다만, 선희의 그림으로 인해 이제까지 나왔던 그 어떤 매체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제까지 묘사되었던 미래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 어떻게 독자들이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꼭 만들어보고 싶었으니까.

    내일부터는 선희와 의논을 해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

    “와, 어쩐지 시원한데. 정말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대봉이 정리된 스토리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사실, 실버도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좀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게 다르다.

    “조금 더 설득력 있으려면 한국과 북한에 대한 군사력도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손을 휘적거렸다.

    “뭘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설정 하냐? 그렇게 따지면 만화의 95%는 사라져야 할 걸?”

    “써니와 텐겐의 신작이야. 무작정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진행시키면 안 되지. 그리고 한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불만도 생길 테고.”

    “창작을 하는 사람이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해서 어쩌자는 거야! 뚝심 있게 밀고가야지. 그리고 이건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물론 최종적으로 선희의 콘티와 데생을 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프로가 그런 식으로 만화를 그리면 곤란하지. 너는 매사가 그렇게 감정적이니까, 순위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야!”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야! 내 순위가 뭐 어때서! 그만하면 일본에서도 꽤 인정받아. 그리고 이번에 단행본도 꽤 팔렸고. 넌 얘네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쓸데없이 눈만 높은 거야!”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곧장 류타니 쪽을 휙 돌아보며 일본어로 물었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네?”

    류타니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이제는 생활에 필요한 언어는 대충 알아듣기도 하고 말도 제법 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빠른 속도의 수다를 떨며 싸운 덕분에 대부분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자 이대봉이 내가 쓴 이야기를 친절하게 일본어로 요약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류타니는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류타니에게 물었다.

    “왜 그래? 역시 일본인이라 거북해서 그러니?”

    “아, 아뇨.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럼?”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서 좀 놀랐거든요.”

    그렇게 말하더니 곧 말을 다시 이었다.

    “실은 저도 지금의 일본은 나사가 좀 풀린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았거든요. 너무 일이 잘 풀리니까, 그냥 나라전체가 흥청망청 거리는 것 같아서.”

    오, 이 녀석 감각이 좋은데.

    지금 슬슬 거품이 차오르는 시기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이네.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보면요, 대형 스크린에 일본의 게이샤 모습이 보이고, 광고판에도 일본색이 짙어요. 확실히 미국도 일본을 경계하는 분위기라는 게 그런 영화를 통해서도 보이잖아요. 그리고 전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도 미국 노동자들이 일본에게 화가 나있는 내용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이대로는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잘나가는 사람도 있으면 그걸 또 시기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

    “그럴지도요. 아무튼, 저도 일본이 무작정 미래에도 이런 호황을 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오토모 선생님의 만화 속 아키라처럼 일본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의외다.

    평소에도 삼사라 외전의 이야기가 절망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하긴 그렇겠지.

    멸망의 미래를 그렸다고 정말 멸망하길 바라는 작가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류타니를 보며 이대봉이 실실 웃었다.

    “왜, 왜 그러세요?”

    “평소엔 말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선희나 경희가 시키는 일만 충성스럽게 하고 있길래, 별로 생각이 없다고 여겼는데. 의외네.”

    “저기, 저도 스토리 작가를 꿈꾸고 있는데요.”

    “그러게.”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이 웃었다.

    그러자 실버가 류타니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현역 스토리 작가도 멍청한 놈이 있으니까, 그런 걸로 안심하면 곤란해.”

    “아, 네.”

    “뭐? 멍엉처엉? 야, 실버 너! 그거 나보고 하는 소리야?”

    “특별히 누군가를 콕 집어서 얘기한 건 아닌데, 도둑이 제발저리다면이야.”

    “야!”

    *

    다음날부터는 선희가 본격적으로 콘티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콘티에 등장하는 자동차라든가, 미래의 도시, 그리고 사용하는 전자제품의 설정을 내가 직접 체크했다.

    선희는 내 설명을 들으면서 따로 설정집용 연습장에 그림도 그린다.

    막상 콘티 작업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이야기를 좀 더 디테일하게 만들어야하겠단 생각도 들어서 몇 군데를 조금씩 다시 고치기도 했다.

    특히 과거의 장면으로 등장하는 전투씬이라든가, 아니면 군인 복장 같은 거.

    선희가 미래라는 생각 때문에 너무 기괴한 스타일의 자동차를 그리려고 하면 좀 더 현실적으로 수정하게끔 도와주었다.

    최대한 내가 기억하는 미래와 가깝게.

    그렇게 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몇 곳은 상상력을 더하기도 했다.

    덕분에 선희도 배경 설정들을 따로 내게서 배워야 할 정도였다.

    등장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설정들까지.

    그러면서도 일본답게 파칭코 오락실도 많다는 현실적인 것도 그려 넣었다.

    콘티작업과 함께 설정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의외로 손볼 곳이 상당히 많다.

    나야, 당연히 경험한 미래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시대 사람들에겐 전혀 생소한 것도 많을 테니까.

    특히나, 컴퓨터가 윈도우 위주고, 폰도 스마트폰이라.

    거기다 가상세계라는 건 들어는 봤지만, 어떤 식으로 된다는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그래서 최대한 그 부분은 미래적으로 만들었다.

    내가 살던 시절에 봤던 가상체험을 소재로 한 영화를 기반으로.

    그렇게 열심히 콘티와 설정을 잡아가는데, 선희가 한 번씩 날 힐끔거린다.

    “왜?”

    “역시 오빠는 대단해. 난 이런 식으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데.”

    나도 원래라면 그렇지.

    이건 그냥 경험한 게 많으니까.

    그래도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웃고 말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한편의 콘티와 전체적인 설정이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선희의 속도를 생각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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