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 (1)
몇 주후 두 번째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된 메갈로폴리스 인 캣의 반응은 뜨거웠다.
첫 번째 이야기와 달리, 음산한 분위기가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특히 공포물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더 열광했다.
SF적인 요소와 공포의 묘한 분위기가 잘 섞여 있던 덕분에 만화연구회 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얘깃거리였다.
“결국 그 실험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었네. 그냥 사신이 낫 조각을 얻기 위한 거였어.”
“맞아. 나도 처음엔 그냥 죽음에서 부활하는 그런 얘긴 줄 알았어. 그 때문에 죽음이라는 성역을 건드린 대가로 사신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애초에 그 젊은 연구원들은 제물이었다는 거네.”
“맞아. 사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시체를 사용했고, 사신의 낫에 피를 먹이려고 준비한 제물이지. 마지막에 등장한 그 노인이 진짜 악마 같았어.”
“윽, 그거 생각하니까 지금도 막 전신에서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아.”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내용이긴 하지만, 완벽한 연출과 그림의 퀄리티가 아니었다면 느낌이 반감했을 거야. 확실히 그림은 진짜 두말할 나위 없는 최고라니까.”
“맞아. 얼마 전에 오토모 선생도 인정했다니까.”
“그런데 사신의 낫 조각을 왜 얻으려 한 걸까?”
“야,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현세에 없는 금속인데, 그것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잖아. 당장 지구에 떨어진 운석도 값어치가 있는데.”
“하긴. 명계의 물건이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겠다.”
“난 말이야, 아까 야마데라가 한 말이 일리 있는 것 같아.”
“뭘?”
“그러니까, 악마 같았다는 말. 그런데 어쩌면 진짜 악마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악마?”
“그래,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리고 그 악마가 원하는 게 바로 사신의 낫 조각이고. 그 것으로 뭔가를 하려는 목적이라는 거지.”
“야야, 너무 나가는 거 아니냐?”
“맞아. 쟨, 항상 과하게 해석하는 버릇이 있다니까.”
“그러게.”
“그래도 꽤 재미있는 예상이잖아. 역시, 기발해.”
“맞아.”
그렇게 말하며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 분위기는 기성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비슷했다.
만화가들이 모이는 카페나 호텔에서도 메갈로폴리스 인 캣의 이야기가 자주 대화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 모임에 다녀온 니시다도 키도의 화실을 찾아와서는 그 얘기를 했다.
“이젠 만화도 영화 같은 연출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모양입니다. 몇 년 전에 오토모 선생님의 작품이 주목을 받더니, 요즘엔 써니 선생님이 그 뒤를 이어 일본만화 역사에 획을 그었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까요.”
“새삼스럽게. 써니의 그림이야 처음부터 대단했잖아.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도 다른 만화가들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니시다를 키도가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런데서 쓸데없이 수다 떨지 말고, 원고나 열심히 그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요?”
“써니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아직은 가시권이니까, 좀 더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따라는 갈수 있지만, 이 이상 차이가 벌어지면 이젠 뒷모습도 볼 수 없게 돼.”
그 말에 니시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 일이세요? 그런 생각을 다 하시고.”
“평소에도 하고 있어. 그냥 말하지 않을 뿐이지. 써니가 좋은 동생이긴 해도 어쨌든 경쟁하는 관계잖아.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열혈만화라서 상관없다더니.”
“맞아. 상관은 없어. 지금의 위치에 만족한다면 말이지.”
“그럼, 지금 위치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맞아. 써니와 유난이 저렇게 앞을 향해 달려가도 있는데, 형으로서 어느 정도는 따라가 줘야지. 이번 작품을 보고 생각한 게 많아.”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다시 원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키도 선생님의 이런 모습을 다 보게 되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요?”
“평소에도 이랬어.”
“아닌데.”
그렇게 말하다가 근처에 있던 어시의 작업하는 모습을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는 다른 어시들의 작업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니시다에게 말했다.
“작업방해 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저기, 키도 선생님.”
“······왜.”
“마감이 내일 아닙니까?”
“그, 그게 왜?”
“저기, 아직 절반도 안 하신 것 같은데. 맞죠?”
키도가 자신을 바라보는 니시다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어쩐지······.”
대충 사정을 파악한 니시다가 팔짱을 끼며 실실 웃었다.
“나, 바쁘니까. 할 일 없으면 그냥 돌아가.”
“저도 좀 도와드릴까요?”
“그래주면 고······, 아니. 그냥 돌아가.”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어시들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원고작업에 몰두한다. 보나마나 오늘도 철야를 해야 할 분위기였다.
그런 어시들을 보며 애처롭다는 표정을 지었던 니시다가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고 보니 오늘 사모님이 보이지 않네요. 혹시 친정에라도 가셨습니까?”
“그거? 뭐 누굴 좀 만나느라고.”
“아, 친구 분들 모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건 아니고.”
그때 마침 키도부인이 문을 열고 돌아왔다.
푸른색의 겨울코트와 흰색 목도리, 그리고 흰색치마의 차림으로.
묘하게 그녀와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다녀왔어요.”
“안녕하세요, 사모님.”
“어머, 안녕하세요, 니시다 선생님.”
“오랜만에 외출이신 모양이네요.”
“아, 네. 나카야 씨 댁에요.”
그 말에 니시다가 잠시 멈칫했다가 깜짝 놀랐다.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요?”
“네. 맞아요. 전에 좋은 소파도 선물로 주셔서 답례품이라도 전해드리려고요. 그런데 나카야 씨가 좀 더 놀다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오래 걸렸어요. 모두 차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의외군요.”
“의외라니, 뭐가.”
“그 재벌 아가씨 말입니다. 담당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 집사람이 담당은 아니니까.”
“보통은 반대죠. 담당도 못 만나는데, 사모님은 그 아가씨랑은 남이잖아요. 거기다 순위를 다투는 만화가의 아내고.”
그 말에 바쁘게 움직이던 키도의 펜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가 인상을 썼다.
“이봐, 누가 그 여자랑 순위를 다툰다는 거야? 데빌 바이러스 순위 중위권 아래로 추락한 거 몰라? 오히려 자네랑 순위가 더 가깝지.”
키도의 말대로 현재 순위에선 키도가 더 높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키도의 말을 니시다가 듣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사모님이 친화력이 높은 모양이군요.”
“······이봐, 그러니까 순위는 자네 쪽이······.”
“뭐, 여자들끼리는 원래 친화력이 높을지도. 거기다가 사모님 차가 맛있으니 차 끓이는 법을 배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니시다!”
* * *
써니의 신작이 일본에서 반응이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비정기 연재라는 것과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순위는 중위권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구회 쪽이나 만화가들 사이에선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써니도 두 개의 에피소드를 내고 나서는 좀 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으니 원은 풀었던 거겠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선희에게 물어봤었다.
‘마지막에 등장한 노인은 누구야? 그리고 그 쇳조각으로 뭘 하려고 한 건데?’
‘뿔이 세 개 달린 악마. 그런데 그 뿔 중 하나가 잘려버렸어. 그거 고치려고. 그거 안 고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하거든.’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황당해 했었는데.
도대체 머릿속에선 어떤 이야기를 그리며 그렸을지 감도 안 잡힌다.
애초에 이야기의 배경 설정이 꽤나 많이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그냥 단순하게 떠오르는 대로 막 그리는 건 아니었구나.
그나저나, 쌍둥이들과 누나가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경희는 대학을 동경하고 있던 터라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가 커서, 요즘엔 매일같이 싱글벙글 이다. 선희도 고등학교시절보다 시간이 더 많다며 반기는 분위기고.
68년생들의 활기찬 20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누나도 61년생, 27살의 늦은 대학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원래의 난 1994년생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긴 하다.
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가끔 들르는 다방의 창가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혼자 여기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세요?”
아, 깜짝이야.
하마터면 커피를 쏟을 뻔했다.
“어머, 죄송해요.”
누군가 했더니, 미네였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웃었다.
“주간 루머의 기자잖아요. 윤환 씨 찾는 거야 뭐, 일도 아니랍니다.”
“경희에게 들었어요?”
“어? 아시고 계시네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뭐, 평소에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는 모양이라서요.”
하긴 내 생활 동선이야 뻔 하긴 하지만.
“이번에도 취재차 오신 겁니까?”
“아뇨. 그냥 쇼핑삼아, 여행 삼아 왔어요. 이번에 큰 건을 잡아서 보너스도 두둑하게 받았거든요. 거기다 요즘 엔고라 외국여행이 붐이죠.”
“아.”
“한국이 가깝기도 하고, 물가도 싸고······.”
“그렇군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
“아무튼 요즘 일본은 경기가 좋잖아요.”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거품이 일고 있던 시기니까.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90년까지 계속 되는 걸로 기억하는데.
뭐 정확한 건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경제 쪽엔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이런 지식 대부분이 만화에서 얻은 거라서, 내용도 제한적이고.
“한국도 요즘 경기가 좋다면서요?”
“뭐,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별로 아는 게 없어서.”
“하긴, 윤환 씨야 워낙 부자시니까, 늘 경기가 좋겠군요. 저는 뭐, 월급쟁이라 고만고만해요.”
“이 참에 도쿄 인근에 집이나 사 두세요.”
“네? 갑자기 왜요?”
“요즘 일본 경기 좋잖아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크게 올라서 돈을 많이 벌게 될지.”
그 말에 미네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 아닌데.
“요즘엔 일본 부동산에 대한 것도 공부하세요?”
“뭐, 그냥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서요.”
내 말에 미네가 다시 웃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음, 저도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조금한 집이라도 사둘까? 안 그래도 엄마랑 아빠도 최근 돈을 좀 버셔서 근처에 사무실을 새로 하나 얻으려고 하던데. 이참에 구입하라고 할까?”
그렇게 중얼거린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냥 하는 말인데.”
“그래도 윤환 씨가 하는 말이라 농담처럼 들리지 않네요.”
“아. 그런가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작품을 뭐로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