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16화 (316/425)

메갈로폴리스 인 캣 (6)

미치코의 반응에 지로도 덩달아 놀라며 인상을 썼다.

“뒤에서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 어떡해!”

“아, 저, 그······. 죄송해요. 워낙 놀라서.”

“놀라다니.”

“저기, 저거 검은색 옷 입은 남자가 커다란 낫을 들고 거꾸로 내려오잖아요. 마치 뒤집힌 세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런데 저거, 사신 맞죠?”

“낫 모양을 보니, 그런 것 같네.”

“와, 써니 선생님 작품 중 가장 소름 돋았어. 봐요 여기.”

그렇게 말한 미치코가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지로에게 보여준다.

얼떨결에 미치코의 하얀 팔을 들여다보던 지로의 눈에 살짝 우둘투둘해진 피부가 보인다.

“닭살 돋았잖아요, 닭살.”

“예전에 삼사라도 초반엔 꽤 공포스러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땐 제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생한 원고를 직접 볼 리도 없고. 지금의 써니 선생님 그림은 예전에 비해 더 리얼해졌으니까요. 거기다가 대사도 없어서 그림에 더 집중하니까 더 무섭고.”

“난 잘 모르겠는데.”

“감정이 메말라서 그래요. 선배는 공포영화 안 무서워하죠?”

“맞아.”

지로의 말에 미치코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난 무서운데. 그럼 역시 같이 볼 땐 멜로나 액션물이 좋으려나?”

“뭐?”

지로가 되묻자 화들짝 놀란 미치코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번 에피소드는 저번이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글쎄, 공포라는 거 말고는 기괴한 현상이라는 건 비슷해 보이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음, 써니 선생님 머릿속엔 저런 이야기들이 잔뜩 들어있는 건가? 아니면 그동안 그림만 계속 그려서 쌓인 게 많았을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남매는 남매인 모양이에요. 이야기 센스도 있고.”

“다크 프린세스는 써니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절반 이상이야. 애초에 스토리에도 재능이 있었어.”

지로의 말에 미치코가 깜짝 놀랐다.

“정말요? 그럼 다크 프린세스에 숨은 설정들도요?”

“그건, 거의 다 써니 선생님 아이디어고.”

“와, 역시. 천재.”

그렇게 말하더니 곧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왜 그래?”

“써니 선생님은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는 나이에 그런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전 지금 뭐하나 싶어서요.”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고는 버럭 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회의실 비어있으니까 소포들이나 옮겨! 난 이 원고 식자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엑! 선배님이랑 둘이서 함께 하는 거 아니에요?”

“난 편집자용 원고 마무리 식자 끝내고나서 인쇄공장에도 가봐야 해.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한국으로 가야하고.”

“써니 선생님 졸업식요?”

“그래.”

“저도 같이 가요!”

* * *

쌍둥이들의 졸업식.

가족, 화실식구, 그리고 일본 지인들인 키도와 니시다, 그리고 담당 편집자인 지로와 미치코도 찾아왔다.

중학교 때보다 훨씬 많은 수가 졸업식에 와준 덕에 꽤나 떠들썩하다.

아마도 졸업식 손님 중에선 우리 쌍둥이들이 가장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여고생들의 졸업식이다 보니 눈물 흘리는 애들도 많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도 많고.

이젠 모두 성인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쌍둥이들도 이젠 진짜 어른이구나.

고등학교 가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경희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가족들과의 첫 만남 이후,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젠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나저나······.

[······그리 하야, 모두 사회를 나가서도 항상 견디며······.]

교장 선생님, 축사가 엄청 길다.

같이 온 이대봉이나 실버도 지루한지 하품을 쩍 하고 있고.

얘기를 듣던 미치코도 지로에게 수군거리고 있다.

“이런 건 일본이랑 비슷하네요.”

“조용히 있어. 폐가 되잖아.”

“칫, 다른 사람들도 떠들잖아요.”

그 모습을 보던 키도도 한마디 거든다.

“역시 졸업식에는 이런 지루한 축사도 있어야지. 나도 어릴 적 졸업식이 생각나는구만. 교복을 입지 않아선지 좀 느낌은 다르지만.”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슬쩍 끼어들었다.

“키도 선생님도 이젠 늙으셨나봅니다. 저런 게 좋아 보인다니. 내용은 모르지만, 사람들 반응 보면 누구도 원치 않는 축사인 것 같은데. 그냥 ‘축하합니다. 이곳을 나가고 나서도 열심히 사세요.’ 이런 내용일게 뻔 할 텐데.”

“이 시절만의 낭만이잖아. 너는 그런 것도 없냐?”

“다른 좋은 낭만 놔두고 이런 것에 목을 맬 필요는 없죠.”

“그래, 잘났다.”

키도가 투덜거린다.

어째선지 키도가 끌려 다니는 것 같네.

힘의 균형이 깨진 건가?

아무튼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저 교장선생님은 정말 쓸데없는 말은 너무 길게 하시네.

뭐, 내가 살던 시절보다 더 고지식한 시대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연설도 어느 순간 끝이 나고 마지막 행사인 졸업가를 부른다.

여자애들이라서 그런지, 눈물도 글썽거리는 모습들도 많이 보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쌍둥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래도 나이또래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을 테니.

그러면서 서로의 전화번호를 적고, 울고불고 난리다.

그 모습을 보던 실버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연락할 틈도 없을 거다.”

그 말에 이대봉이 인상을 쓰며 핀잔을 줬다.

“야, 모두 너 같은 줄 아니?”

“그래서, 넌?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연락은 하고?”

“그, 그건······.”

마당발인 이대봉이 저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그래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착실하게 만나고 있잖아.”

“그러니까, 너도 안하면서 왜 불만이야.”

“······.”

사람이 많으니 무척이나 시끄럽다.

아무튼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모두 화실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갔더니, 미리 먼저 돌아온 엄마들이랑 동네 아줌마들이 마당에서 전도 붙이고, 요리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제부터 엄마랑 누나가 음식재료를 미리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시끄럽더니, 이거 때문인 모양이네.

이정도 규모면 거의 동네잔치 수준인데.

맛있는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하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우리 집을 기웃거릴 정도다.

우리들은 먼저 화실로 들어가 비워진 큰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음식이 금방금방 안으로 들어온다.

모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몇 명은 서로 언쟁을 벌이기고 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간 늦은 저녁.

써니 작업실 앞 소파에 지로와 미치코가 앉아 있었다.

“저희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으실까요?”

미치코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말하자 지로가 머리를 끄덕였다.

“뭐, 써니 선생님이 기다리라고 하셨으니까.”

“정말 다 완성이 될까요? 어시 없이 혼자서 10페이지 이상 작업해야 하는데.”

“혼자라도 속도는 충분해.”

“정말요?”

“그래. 하지만 문제는 스토리지.”

그 말에 미치코가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 스토리도 문제죠. 하지만, 역시 무슨 얘기로 진행될지 엄청 기대가 되요.”

“넌, 공포물 같아서 싫다며.”

“그렇긴 한데, 그래도 궁금해서요.”

그 말에 지로가 피식 웃었다.

“나도 그래.”

지로가 웃자 그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미치코가 같이 웃었다. 그리고는 곧장 작업 중인 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곁엔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윤환이 있다.

별 말없이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있던 그가 가끔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그러다가 선희가 멈칫하며 펜대로 볼을 긁적이자 뭐라고 한마디씩 거든다. 그럼 선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 작업을 이어간다.

표정만 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오빠는 큰 힘이 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잠시 후.

결국 작업이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윤환이 먼저 원고를 신중한 표정으로 살피고 있다.

그 모습을 지로와 미치코가 긴장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 곧 윤환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선희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하지만 선희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자리를 정리한다.

윤환은 원고를 들고 지로와 미치코가 있는 소파로 다가왔다.

“다 완성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원고를 받은 지로가 그 자리에서 원고를 조심스럽게 한 장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궁금했던 미치코도 곁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지로와 함께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뒤집힌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신모양의 존재부터 시작되었다.

기괴한 형상의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가 커다란 낫을 들고 거꾸로 등장하자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진다.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을 두드려보지만 여전히 소용없는 일.

아직도 사신의 모습을 한 존재는 천장의 소용돌이에서 거꾸로 드러낸 모습을 한 채로 내려오다 곧 멈춘다.

거대한 그의 크기에 사람들이 압도당한다.

지금껏 드러낸 상체만으로도 거의 2미터는 될 것 같은 크기.

그가 들고 있는 낫은 지금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게 내려져 있고, 휘어진 낫의 칼날만 사람크기 만하다.

살벌한 예기가 흐르는 날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모두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그때 암흑처럼 어둡던 로브 속에서 붉은 빛이 두 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빛이 사방을 돌아보듯 그 안에서 좌우로 천천히 움직인다.

그 순간 실내에 피가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그때까지도 조금씩 움직이던 시체가 그제야 멈춘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멈춘 채 사지를 크게 떨어대며 공포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모두 그가 사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곧 그의 낫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고 있지만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 다음은 사람들의 그림자와 피가 난무하는 장면, 그것을 쳐다보는 고양이의 모습이 교차된다.

그리고 화면은 바뀌고 바닥을 뒹구는 시체만 보인다.

이번에는 사신의 눈동자가 고양이에게 향했다.

고양이가 털을 세우며 이빨을 드러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신이 이번엔 어쩐 일인지 시선을 거두었다.

곧 실내에 있던 안개가 천장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고 동시에 사신도 그 소용돌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벽에 붙어있던 커다란 모니터에 빛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그곳에서 복잡한 문양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 그런 그림.

바로 부적 같은 곳에 그려진 그림과 비슷한 모양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천장의 소용돌이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그곳으로 들어가던 사신도 마치 당황한 듯한 모습.

그리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하지만, 방금 생겨난 그림 때문에 쉽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후 사신이 거의 다 사라졌을 때쯤 소용돌이가 급하게 닫힌다. 그런데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감추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신의 낫.

완전히 안으로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것이 닫혀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피 묻은 낫의 조각 일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실내의 바람과 안개가 모두 사라지고 나자 그곳은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

닫혀있던 유리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아까 먼저 그곳을 빠져나갔던 노인들이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 양복을 입은 중년이 장갑을 낀 손으로 그 낫 조각을 들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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