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14화 (314/425)

메갈로폴리스 인 캣 (4)

지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 만화연구회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두 가지 인기 있는 버전을 따로 구해서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한번 보시고, 느낌을 말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실은 선생님의 반응을 연재분 뒷면에 담당편집자 후기로 넣었으면 해서 그렇습니다.

“그거야, 알아서 하시면 되죠.”

- 네, 감사합니다.

지로와 통화한지 이틀 후, 그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그게 뭐야?”

이대봉이 일본에서 온 소포에 관심을 보인다.

보통 때라면, 소년 히어로의 신간이겠거니 했을 텐데, 엊그제 신간이 왔고, 자신도 이미 신간은 받았으니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테니까.

“설마, 소년 히어로에서 따로 보내주는 새해 선물이라거나······.”

이대봉의 말에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은 달력도 안 봐? 벌써 2월이야, 2월. 무슨 새해 선물을 이제야 줘!”

“그럼 역시 민속의 날 선물?”

“그건 1월 29일이었잖아. 벌써 지나갔지.”

“그럼 역시 졸업이네, 졸업. 이번에는 출판사 차원에서 따로 선물을······.”

“아니야. 무슨 선물 못 받아서 죽은 귀신이 있나, 뭔 선물타령이야.”

“응? 그럼 선물 아니야?”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대봉은 내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써니 신작 시작했잖아. 우리 담당이 그러던데, 반응이 엄청 좋아서 난리 났다며? 그래서 감사의 선물을 보낸 게 아닌가 했지.”

반응이 좋다는 건 들었지만, 난리가 났다는 것 까지는 잘 모르겠다.

뭐, 담당인 지로 성격상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대봉이 오버하는 건지도 모르고.

아니지, 이런걸 보내 줄 정도면 난리가 난 상황은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반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물 종류는 아니야.”

“그럼 뭔데?”

“소포 풀어보는데, 몇 초 안 걸려.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봐.”

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흠칫하던 이대봉이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실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저 녀석은 남의 일에 저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건지. 한심해서.”

“우리 윤환이 일이 내 일이지, 왜 남이야?”

“웃기는 소리, 네가 윤환이랑 형제야, 아니면 친척이야? 당연히 남이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형제랑 다름없어. 도원결의만 안했을 뿐. 아, 맞다. 윤환아 이참에 도원결의라도 할래?”

내게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말했지만 커터로 소포 테이프를 제거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니.”

“하자. 응? 내가 복숭아 좀 구해올까?”

“싫어.”

그러자 이번엔 선희 쪽을 보며 소리쳤다.

“선희야, 내가 구해올 테니까 도원결의 할래?”

“아니.”

선희도 거부한다.

그 반응에 이대봉이 실망했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실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복숭아? 지금이 여름이냐? 그리고 삼국지에선 복숭아나무잖아, 이 멍청한 놈아.”

“그게 뭐가 중요해. 열매만 있으면 되지. 거기다 요즘엔 약식이 유행이라고.”

“그게 뭐가 약식이야, 그냥 가라지. 복숭아 음료수나 마시고 정신 차려.”

“야!”

그때 소포를 싸고 있던 종이를 다 제거하고 나자 책자 몇 부가 들어있다. 같은 책으로 두 권씩, 총 네 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네 권이 다 같은 만화이긴 하지만.

실버와 다투던 이대봉이 소포 쪽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어? 뭐야? 이거 써니 신작만화잖아. 메갈로폴리스 인 캣.”

이대봉이 실망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대봉의 말대로 책은 이번 신작의 복사본이었다. 책처럼 묶어둔 건데, 표지를 보면 단순히 복사한 것이라도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책을 한권 집어 들고는 곧바로 펼쳤다.

그랬더니 지로의 말대로였다.

분명 대사 한줄 없는 만화인데, 이 복제만화는 일부러 말풍선까지 만들어 넣었고, 거기에 마치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대사가 적혀있다.

너무 감쪽같이 잘 집어넣었다.

“어? 대사네? 이거 원래 대사 없는 만화 아니었어?”

그제야 대사를 확인한 이대봉이 놀라며 물었다.

“맞아.”

“그럼 이건 뭔데? 따로 만들어 둔 거야? 단행본용으로 특별하게 만들어 놓은.”

“그런 걸 왜 만들어? 독자들 뒤통수 칠 있냐?”

“그럼 이건 뭔데?”

“일본 만화연구회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더라고.”

“유행?”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어. 대사 넣기. 그리고 이건 만화연구회 사람들이 넣은 것들이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가지 버전이고.”

내 말에 이대봉이 깜짝 놀랐다.

“엥? 진짜? 그런 게 유행이라고? 그럼 이거 말고도 많이 있다는 거야?”

“어. 나도 아카기 씨한테 들었을 땐 뭔가 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까 좀 신기하긴 하네.”

그렇게 말하며 대사를 읽어봤다.

일단 첫 인상은 대사가 엄청 많다는 것.

일본인 특유의 빽빽하게 채워진 대사들.

덕분에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내용이 중요한 거니까.

천천히 대사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보통 그림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구체화 시킨 느낌이다.

여자가 맞은편 건물을 관찰하면서 어려운 용어들을 막 쏟아내고, 건물과 건물사이에 줄을 연결할 때도 이 총의 원리라든가, 줄이 왜 이렇게 강한지하는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고강도 신형 탄소섬유가 몇 년도에 개발되었다느니, 실처럼 가늘지만 몇 십 톤의 무게를 견딜 정도로 튼튼하다는 등 구체적인 제원까지 말해서,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그렇구나.’를 중얼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쪽 전문가는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가상의 제원이라면 정말 그럴 듯 하게 설명되었다는 건 인정해야 할 정도였다.

아무튼 여자가 건물 안에 침투하고 나서도 이것에 왜 침투했는지에 대한 나름 그럴듯한 이유도 여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보자면 미친 여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것들을 혼자 계속 중얼거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독자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다못해 기계의 개발자 이름도 나온다.

물론 일본인.

이 인간들은 작가가 한국인인데, 왜 지들 멋대로 일본인 과학자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가 독수리 5형제에 등장하는 박사가 남 박사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그런 사소한 설정까지 직접 넣어뒀더니 이야기 자체는 엄청 입체적이고 이야기 밖의 사정까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무튼 이번 편은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대사로 인해 꽤나 한참동안 봐야 할 정도였다. 물론 재미있기도 했으니, 불만은 없지만.

물론 진짜 원고에 이렇게 전문적인 대사를 많이 넣었다가는 폭망일 게 뻔 하지만.

두 번째 책은······, 이것도 대사가 있다는 건 같은데, 좀 많이 다르다.

원본이 고양이 시점으로 진행돼서 그런지 대사도 고양이가 하고 있다.

첫 대사부터 여자를 발견한 고양이가 ‘에! 나랑 같은 색의 인간이네.’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고양이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대사들이 이어지고, 고양이가 왜 여자의 등에 매달렸는지에 대한 이유도 등장한다.

물론 이유도 별거 없다.

그냥 아까 거기에 두고 온 생선 깡통이 생각났을 뿐.

그러니까, 고양이는 여자가 하는 행동 따위엔 애초에 관심이 없고, 화면과 상관없이 오늘 하루 재미있었던 일이라든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 그리고 자신에게 재롱을 피우던 인간이야기를 떠올리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한발 떨어져서보면 아무런 이야기꺼리도 되지 않는 바보 같은 내용이지만, 대사의 센스가 너무 좋아서 꽤나 재미있다.

덕분에 고양이의 성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귀여운 외모에 앙증맞은 대사까지 나오니 여자들에게 더 반응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덕분에 같은 만화이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이라, 두 편의 다른 작품을 본 기분이랄까.

그리고 지로가 어째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가지 버전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정도로 다 재미가 있다.

“이야, 이거 진짜 센스가 있다. 이런 식으로 대사를 넣으니까 완전 다른 만화 같잖아.”

이대봉도 다 읽었는지 두 번째 책을 내려놓으며 감탄했다.

그때 선희도 다가와 한권 집어서는 읽고 있었다.

어시들도 이대봉의 반응 때문인지 일하다말고 다가와 책을 기웃거렸다.

다른 어시에게 책을 넘겨준 이대봉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게 진짜 유행이라고?”

“어. 듣기론 만화연구회들끼리 모였을 때 연구회사람들이 고심해서 만든 것들을 서로 교환하는 것도 있다더라고. 이건 아키기 씨가 얼마 전에 만화연구회에서 얻은 인기버전을 따로 복사한 거고.”

“야, 일본 애들은 이런 걸로 놀기도 하는 모양이네. 확실히 재미난 애들이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야마토나 건담의 경우엔 얼마나 마니아들이 많은데. 거기다 그런 만화들의 설정을 서로 연구하는 모임도 많고.”

“이런 건 확실히 재미있는 문화네. 코스프레인가 뭔가 하는 것도 재미있던데. 그나저나······.”

떠들던 이대봉이 말을 멈추며 고양이 중심의 대사로 만들어진 버전을 보고 있는 선희를 힐끔거렸다. 그러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선희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네. 화를 내거나 하진 않을까?”

“형이라면 어떨 거 같은데?”

“글쎄, 대사가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본 건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역시 재미있을라나?”

“선희도 비슷한 모양인데, 표정 보니까.”

“그래?”

이대봉이 내 말을 들으며 선희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눈엔 선희의 표정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머리를 갸웃거렸다.

“역시, 모르겠는데.”

“어머, 선희 너, 기분 좋아 보이네. 뭘 보는 건데?”

부엌에서 커피를 가지고 나오던 경희가 선희를 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나와 경희를 보다가 다시 선희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곧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핏줄만 알아보는 모양이네. 묘하게 신기하다.”

그런 모양이다.

같이 지내는 화실식구들 중 누구도 아직 선희의 표정을 읽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튼 선희는 고양이 파트 부분만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내용과 비슷해서 일까? 아니면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그런 걸까?

아무튼 밝은 표정으로 몇 번을 더 읽더니 갑자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리던 머신건 잭의 데생 원고를 치워두고는 새로운 원고용지를 꺼냈다.

아마도 신작의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 모양인데, 역시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애초에 기분가는 대로 그리는 것이니 콘티 따윈 만들지 않고 곧바로 원고작업에 들어갔다. 데생도 어시들에게 넘기는 게 아니라 그런지 자신만 알아볼 정도로 대충 그리기 시작했다.

선희는 자신이 마무리하는 데생에 대해서는 정말 성의 없어 보이는 연필데생을 한다.

그럼에도 펜으로 마무리할 땐 명확한 느낌으로 그려낸다.

이쯤 되면 데생은 그냥 윤곽 잡는 정도로만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아무튼 슥슥 그려가던 데생을 마무리하고는 펜선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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