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로폴리스 인 캣 (3)
아니 정확히 1, 2화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뒷내용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대로 끝이 나도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묘한 엔딩이라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 보고나서 물었다.
“이대로 내용이 끝나는 거야?”
“응. 그냥 생각이 이어진 곳까지 그린 거니까.”
후편이 떠오르면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군.
뭐가 되었건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아무래도 여자가 만졌던 기계는 타임머신종류인 모양이고, 처음 발생했던 파동은 타임머신이 미치는 공간의 범위일 수도 있다.
그 공간 안에서는 계속 같은 인간들이 만들어지는 중이고, 검은 고양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의 정체도 아마 같은 고양이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유의 에피소드는 대체적으로 미국의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에서 많이 보이는 스타일인가?
그쪽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미드들을 본 기억은 있다.
아무튼 애매한 시점에 마무리가 되니까 아쉬움도 있지만, 그만큼 여운도 있어서 나쁘지 않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데?”
내 질문에 선희가 검지로 자신의 턱을 지그시 누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본인이 만든 이야기임에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음······.”
무슨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한숨을 쉬고는 손을 휘적거렸다.
“아니, 됐다. 설명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마도 머릿속에서 순차적으로 그려진 장면을 특별한 고민도 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린 모양이다.
결국 창작자인 선희도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거니까, 만약 진짜 내용을 알고 싶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번 에피소드는 그리 복잡한 내용도 아니니까 그만한 고민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화실식구들도 이번 선희 만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애초에 선희 그림에 대해선 누구보다 많이 보고 그려왔던 사람들이라,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스토리였다.
모두 원고를 돌려보고는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이거 작년에 시작한 그거 있잖아요, 환상특급. 그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그러네. 사이버펑크에 환상특급을 섞어놓은 것 같고.”
“대사가 없다는 게 이렇게 묘한 느낌을 주는 지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대사가 없으니까, 그림을 더 자세히 보는 순기능도 있고.”
김기철의 말에 대부분 공감하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대사가 없으니, 번역의 문제도 없고, 그러니까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봐도 번역의 문제가 있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자세한 배경 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운 것도 있지만요.”
류타니도 나름 자신의 생각을 일본어로 말한다.
아무튼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작업 장면을 본 경험들이 있는데다가 같은 화실식구들이니,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이 원고는 완성되자마자 지로와 통화 후 일본으로 보냈다.
* * *
며칠 후, 소년 히어로 편집부의 회의실.
그곳엔 지로와 부편집장, 그리고 편집장이 원고를 가운데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써니 선생님의 단독 스토리?”
부편집장의 물음에 지로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어쩐지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더라니. 거기다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고. 하지만, 이런 식의 작품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은 모르겠지만, 일단 비정기 연재니까요. 써니 선생님도 해보고 싶어서 하시는 거라서.”
“하긴,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야. 거기다 다른 작품들이 확실한 히트작이었으니, 나름 팬 층도 형성되어 있을 테고. 이정도면 마니아들도 좋아할지 모르겠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부편집장의 물음에 그동안 둘의 대화를 팔짱을 낀 채로 듣고만 있던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써니 선생님의 작품이라면 어떤 식의 작품이라도 편집부에선 환영이지. 안 그래도 최근 파시엔시아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엔딩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입장이라. 물론, 이번엔 SF면서 환상문학 스타일이라서 팬들이 겹치진 않겠지만. 어쩌면 부편집장 말대로 요즘 오타쿠라는 만화연구회 사람들에겐 꽤나 먹힐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비정기 연재라서 다른 편집부에 넘겨야 할까요?”
“무슨 소리! 기존의 파시엔시아 자리도 비어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되는 거지.”
편집장의 말대로 그 자리는 연재중인 기성작가들이나 신인들의 단편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언제든 써니의 작품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리라는 건 편집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비정기 연재라도, 반응이 좋으면 계속 연재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우리 잡지에 이런 스타일의 만화도 있으면 더 좋고. 일단 바로 연재를 시작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
써니의 신작 ‘메갈로폴리스 인 캣’의 연재는 기존 써니 작품과 달리 홍보 없이 기습적으로 시작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진행된 연재였지만, 기존의 독자들은 오히려 이런 생각지 못한 연재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기존에 연재하던 것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SF사이버펑크 만화.
거기다가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만화판 같은 배경과 분위기.
그럼에도 전혀 어렵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
디테일한 그림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검은 슈트의 여자 등에 고양이가 매달려 가는 모습은 꽤나 코믹스럽지만, 액션의 연출은 영화를 보는 듯 멋들어졌다.
그렇게 창문을 향해 날아가며 1화가 끝이 났다.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디테일한 그림과 꼼꼼한 연출 덕분에 20페이지가 다 소모되었다.
이야기 자체가 특별한 느낌이 없음에도 압도적인 연출과 그림만으로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주 2화가 연재되었다.
그런데 첫 화에서 보여주었던 평범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결말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각종 만화연구회 사람들은 모이면 십중팔구 신작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써니의 신작인데, 이번엔 텐겐과 함께 한 게 아닌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기존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야. 대사가 전혀 없고 오로지 그림의 퀄리티와 연출에 모든 것을 건 것 같은.”
“그래도 2화는 정말 대단했어. 대사가 전혀 없는데도 혼이 싹 빠질 것 같더라니까. 특히 고양이도 묘한 느낌을 주고. 역시 고양이가 주인공이려나?”
“제목에 나오잖아. 고양이가 주인공이라고.”
“아, 그렇지.”
“그런데 그 기계장치는 타임머신이겠지?”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여자와 고양이가 들어갔던 그 방은 뒤틀린 시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 그 공간에서만 같은 시간이 무한 반복되는 것도 그렇고. 음, 역시 전문가는 아니라 설명하기 어렵네.”
“그 공간을 계속 놔두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여자가 계속 늘어나겠지. 하루에도 수백 명 이상은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애초에 그 여자가 그 곳에 침투한 이유는 뭐였을까?”
“뭐, 대사가 없으니 정확한 건 알 수 없지. 아마 써니 작가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특정한 시간의 무한 반복이라······. 여자 한명도 엄청 강해보이던데, 그런 여자가 계속 생겨난다면 다른 나라와 전쟁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 여자 수만 명이 쳐들어가면 뭐, 버텨낼 나라가 없을지도.”
“야, 무슨 중세전쟁이냐. 사람 수로 전쟁하게. 요즘 첨단 무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여차하면 핵무기로 꽝!”
“그런 유능한 여자가 무식하게 우르르 몰려다니겠냐? 마치 수만 마리의 바퀴벌레가 벽속에 숨어있는 것처럼 외부엔 전혀 눈에 띄질 않겠지. 그리고 핵무기 발사하는 사람도 순식간에 암살당할걸.”
“와, 이거 계속 뒷이야기를 생각하니까, 감당이 안 되네. 역시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낸 건가?”
“아무튼, 꽤 재미있는 작품이야. 이야깃거리도 많고. 써니가 이번엔 새로운 작품으로 또 다른 즐거움을 주네.”
“이거 단행본 나오면 꼭 사야해. 이런 건 두고두고 봐야 거든.”
“야, 머신건 잭도 장난 아니지. 잭이 괴물급 업그레이드를 해서 그것 때문에 초인기잖아.”
“어쨌거나, 비정기 연재라는데, 다음 주에도 나올까?”
“그건 모르지.”
“난 보냈어.”
“뭘?”
“엽서 말이야, 엽서. 앙케이트에도 1순위로 올리고, 꼭 빠짐없이 연재해 달라고. 너희들도 보내. 많은 독자들이 원하면 또 모르잖아. 써니가 열심히 작업해줄지도 모르고.”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당장 엽서 오려서 보내야겠어.”
“나도.”
*
“역시 써니 선생님은 대단해요! 이걸로 그림만 잘하시는 게 아니라는 게 밝혀졌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림에만 특화된 천재라고 했는데. 역시 제가 존경할만한 분이라고요.”
니시다가 소파에 앉아 ‘메갈로폴리스 인 캣’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장면장면을 확인하며 읽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인상을 썼다.
“다, 좋은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뜸을 드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아침부터 찾아와서 시끄럽게 해. 일하는데 방해되잖아.”
키도의 말대로 니시다는 아침 일찍부터 키도의 화실에 찾아와서는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어시들이 오지 않는 날이잖아요. 그래서 한가하거든요.”
“그건 네 사정이고. 난 바쁘잖아.”
“무슨 소리예요. 바쁜 건 선생님의 어시들이지. 데생은 진즉 마무리하셨다면서요.”
“머릿속은 바쁘다고. 새로운 얘기를 구상중이니까.”
“아, 그러세요?”
“뭐야, 그 비아냥거림은?”
그때 화실로 키도부인이 들어왔다. 그녀가 차를 니시다의 앞에 내려놓자 니시다가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아침식사 너무 맛있었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키도부인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별일 없으시면 점심도 같이 하세요. 오늘 마침 좋은 고기도 사왔거든요.”
“아,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 신세 지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소파는 정말 괜찮네요.”
그 말에 키도부인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고급소파라 그런지 촉감도 좋고, 정말 편안해서 너무 좋아요. 너무 귀한 걸 받아서 괜찮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즐겁게 놀다 가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은 키도부인이 웃으며 다시 부엌 쪽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키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째 너, 예전보다 넉살이 더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가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지 않습니까? 선생님과 사이도 더 좋아진 것 같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사이가 왜 좋아져?”
“아무튼 이번 써니 선생님의 신작을 보니까, 자극이 되더군요.”
“아무튼은 뭐가 아무튼이야. 왜 어물쩍 넘어가고 그래?”
키도의 그런 불만에도 니시다는 계속 자기 할 말을 했다.
“아마 저처럼 생각하고 있는 만화가들이 상당히 많을 겁니다. 키도 선생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야 그렇지.”
자신도 모르게 니시다에게 말린 기분이 들자 다시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