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00화 (300/425)
  • 데빌 바이러스 (2)

    도도한 느낌을 가진 젊은 여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야, 실력이 있다고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닌가?”

    상대방의 반응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리는 여자.

    그녀는 요즘 천재 만화가로 불리는 나카야 이즈미였다.

    평소 자존심이 강한 그녀로서는 방금 써니가 보인 반응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그런 이즈미를 쳐다보던 지로가 물었다.

    “써니 선생님 말씀이신가요?”

    “그럼 누구겠어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냉정한 음성으로 ‘네. 알겠어요.’ 이러더라니까요!”

    “······별말 안하신 것 같은데.”

    그 말에 이즈미가 지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다고요. 내가 우습다는 거잖아요. 이런 반응을 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외부엔 굉장히 성실한 만화가로 알려졌는데 실상은 자신을 숨긴 거잖아요. 얘도 연예인들처럼 이미지 관리하나?”

    “별로 숨기신 적이······.”

    “아무튼, 이런 거만한 여자애에겐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특별히 거만하다고는······.”

    지로가 더 이야기 하려 했지만 이즈미는 들을 생각도 없는지 몸을 휙 돌리더니 근처에 있던 정장차림의 노인에게 말했다.

    “구로다! 돌아가요!”

    “네, 아가씨.”

    구로다라고 불린 노인이 그렇게 대답하며 앞장서는 이즈미의 어깨에 고급 외투를 어깨에 슬쩍 얹어주며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러자 그녀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서둘러 길을 비켜준다.

    그런데 편집부 밖으로 나가려던 이즈미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며 삐딱하게 머리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건 편집장님에게.”

    “가요, 구로다!”

    “네, 아가씨.”

    이즈미가 다시 앞장을 서며 걸어가자 노인이 서둘러 그녀 뒤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로가 머리를 긁적이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근처에 있던 야지마가 후다닥 다가왔다.

    “어이, 아카기 팀장. 무슨 일인데?”

    “뭐, 별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꼬박꼬박 그 팀장이라는 말 안 붙여도 돼요. 괜히 부담스럽게.”

    “야, 너도 선배라고만 부르지 말고, 나처럼 부르면 되잖아.”

    “······.”

    지로가 빤히 쳐다보자 실실 웃었다.

    야지마도 지로와 같은 날 팀장으로 승진했었다. 그래서 요즘엔 주변에서 팀장이라고 불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던 야지마였기 때문에 그런 그를 보며 지로가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이전처럼 부를 랍니다. 너무 어색해서.”

    그 말에 야지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 그렇게 불리니까, 좀 멀어지는 기분이라 별로더라.”

    “그럼 평소처럼 부르면 되는데.”

    “알았어. 그나저나 이즈미 선생이라고 했나? 저 선생?”

    “네. 나카야 이즈미예요.”

    “그래.”

    그렇게 말하며 이즈미가 나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보며 야지마가 말을 이었다.

    “굉장한 부잣집 아가씨라며?”

    “네. 나카야그룹 회장님의 외동딸이라더군요.”

    “나카야그룹?”

    “네. 화학회사가 중심인데, 요즘엔 다른 분야에도 진출한 모양이더군요.”

    “흐음, 재벌그룹의 아가씨라······, 그런데 왜 만화를 그린데? 돈도 안 될 텐데.”

    “그건 저도 모르죠.”

    “몰라?”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 모습을 보던 야지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뭘 부탁한다는 거야?”

    “······그게. 절 자신의 담당으로 하고 싶다더군요.”

    “뭐? 넌 써니, 텐겐 선생님 담당이잖아. 그것만으로도 엄청 바쁘지 않냐? 너 욕심이 많구나.”

    “누가 욕심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럼 왜 저래?”

    “그것도 모르죠. 편집장님이랑 얘기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에요.”

    그 말에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거, 재미있는 아가씨네.”

    “······피곤합니다만.”

    “그나저나 편집장님이 허락하시면 어쩔 건데?”

    “아닐걸요.”

    “하긴, 평소의 너 모습을 보시고 있으니. 널 과로사 시키지 않으려면 그런 결정은 안하시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뭐가 재밌습니까?”

    “당연히 재밌지. 저렇게 대단한 아가씨가 써니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도 그렇고, 널 담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도 그렇고.”

    “전 재미없는데요.”

    “내가 재밌어,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계속 웃는다.

    그런 모습을 보던 지로가 야지마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지금 선배가 느긋해 보여서요.”

    “느긋하면 안 돼?”

    “저 부잣집 아가씨가 연재를 시작하면 중원요리왕의 순위가 더 밀릴지 모르잖아요. 요즘 몇 계단 떨어지셨던데.”

    그 말에 야지마의 웃던 표정이 금이 쩍 가기 시작했다.

    “아직 안정적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비수를 그런 편안한 얼굴로 던지다니, 너무하는 거 아니냐?”

    “저는 바빠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지로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가방을 챙겨 편집부를 빠져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야지마가 피식 웃었다.

    “하여튼, 부러운 녀석이라니까.”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부러워요?”

    “여자가 많이 꼬이잖아, 여자가. 그것도 미인들만.”

    “아.”

    야지마의 말에 직원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부럽네요.”

    야지마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이번엔 투덜거렸다.

    “그렇지? 젠장, 생각하니까 더 짜증나네.”

    * * *

    요즘 들어 평화의 댐에 대한 뉴스가 많아졌다.

    북한에서 금강산댐을 만들어 서울을 가라앉히려 한다는 건데, 그 때문에 12월 1일부터 평화의 댐 건설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문에 화실에서도 요즘은 계속 댐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소년 히어로에선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천재 나카야 이즈미의 만화가 연재를 시작했다.

    그녀의 신작 제목은 ‘데빌 바이러스’

    외딴 시골의 산중턱에서 폭발과 함께 생겨난 구멍을 시골사람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 있던 검은 꽃에서 발생한 꽃가루에 중독된 그는 얼마 후 발작을 일으키며 광폭하게 변하고,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결국 경찰에 의해 사살되긴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림체가 이전에 비해 더 어두워졌으며, 디테일도 더 발전한 느낌이다.

    하지만, 특유의 흔들거리는 펜선이 기괴함을 더 줘서 묘한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초반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사건들이 빠르게 진행되는 탓인지 상당히 몰입감이 강하다.

    평소 공포 쪽은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이 적은데, 이건 별로 거부감이 없다.

    다른 어시들도 나와 비슷한 반응이다.

    마침 화실에 놀러왔던 이대봉도 신작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데빌 바이러스를 읽고 나더니 입을 열었다.

    “재밌네, 이거. 류타니, 넌 어때?”

    “재밌어요. 평소 알던 느낌의 공포물과는 상당히 달라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아니, 공포물이라고 하기엔 모험액션 영화의 느낌도 보이고요.”

    그렇게 말한 류타니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이런 스타일은 나도 익숙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이토준지의 스타일에 오토모 스타일이 섞였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소용돌이의 기괴함과 아키라의 연출력과 디테일함이 섞인 느낌이다.

    그런데 아직 이토준지가 활동하던 시절은 아니니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일 것이다.

    “그러니까, 얘가 전에 너에게 전화했던 그 싸가지라는 거지?”

    그때 부엌에서 커피 잔을 들고 나오던 경희가 끼어들었다.

    “어머, 싸가지라니? 누구 말하는 거야?”

    “너 못 들었니? 1위를 하겠다며 큰소릴 뻥뻥 쳤다더라고. 여대생이랬지 아마?”

    “뭐?”

    깜짝 놀란 경희가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흥분하며 내게 말했다.

    “오빠, 정말이야!”

    커피를 든 채로 흥분해 있는 경희 때문에 이대봉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야야, 경희야. 흥분은 하더라도 일단 커피는 내게 주고.”

    그렇게 말하며 경희가 들고 있던 쟁반 위의 커피를 빠르게 받아간다.

    경희가 여전히 흥분한 채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오빠는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하고 자시고도 없어. 전화는 선희가 받았으니까.”

    “뭐, 선희에게?”

    경희가 인상을 팍 썼다.

    그러더니 이번엔 선희가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선희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핀다. 마치 어디서 얻어맞고 온 사람이라도 보는 듯이.

    “넌 괜찮아?”

    하지만 이제까지의 대화는 전혀 듣지 못했는지 선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뭐가?”

    “걔, 말이야, 걔! 싸가지!”

    “싸가지?”

    “너에게 1등을 빼앗겠다고 했다며.”

    “······아.”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머리를 숙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던 경희가 곧 안심한 듯 한숨을 쉬더니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경희에게 물었다.

    “그게 끝이야?”

    “응? 뭘?”

    “아니, 선희에게 뭔가 더 물어볼 것 같더니.”

    이대봉의 질문에 경희가 편안한 미소로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이젠 상관없어. 선희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니까.”

    “······?”

    이대봉이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돌아본다.

    나는 그런 이대봉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선희 걱정이야 경희가 가장 많이 하고 있으니, 아마 그런 이유정도라고 생각이 되긴 하지만.

    경희가 이번엔 류타니에게 물었다.

    “어떤 만화야?”

    한국어로 대화한 덕분인지 대화의 내용을 전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류타니가 깜짝 놀라더니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네, 데빌 바이러스요.”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소년 히어로의 책을 뒤적거리며 페이지를 찾아 그것을 경희에게 내밀었다.

    “데빌······ 바이러스라. 제목이 재밌네.”

    “네. 재밌어요.”

    “흐음. 그래?”

    그렇게 말하며 만화를 읽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여전히 황당하다는 듯 보던 이대봉이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더니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거 곤란한데.”

    “곤란하다니.”

    “그렇잖아. 가뜩이나 요즘 소년 히어로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한데, 이렇게 괴물 같은 애들이 들어오면 더 치열해질 거 아니야. 잡지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 우리 중원요리왕도 힘을 내야겠어.”

    “순위는 안정적이잖아.”

    “안정적은 무슨? 너는 너무 상위권에 두 작품이나 연재하니까 아랫것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모르는구나.”

    “아랫것들? 무슨 신분제 사회냐?”

    “신분제 사회랑 다를 게 뭐가 있어? 만화잡지는 인기가 전분데.”

    하긴, 이대봉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소년 히어로도 소년점프와 비슷한 구조라, 하위권의 인기가 지속되면 결국 연재중단결정이 내려지니까.

    그래서 하위권 작품들은 수시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중위권이라고 해도 외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참에 우리 무카이 선생에게 전화나 걸어볼까?”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번엔 실버가 그 모습을 보며 버럭 했다.

    “야, 국제전화를 왜 여기서 걸어! 네 녀석 집에 가서 걸라고!”

    그 말에 이대봉이 화들짝 놀라더니 인상을 팍 썼다.

    “전화요금을 네가 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난리를 치냐?”

    “헛소리 하지 말고, 손 떼라.”

    “쳇, 너무하네. 그래, 안 건다, 안 걸어. 됐니?”

    이대봉이 그렇게 말하며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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