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건 사람목숨 (2)
“실버형도 같이 가자.”
내 말에 실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내 행동에 다른 화실 식구들도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들이다.
이대봉도 눈을 데굴거리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불안하게 왜 그러는 건데. 대체 무슨 일이야?”
“일단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어서 날 따라와. 실버형도.”
실버는 별다른 질문도 없니 나를 따라나섰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류타니도 나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저도 갈게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곁에 있던 어시들에게 물어보고는 대충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다.
“그래, 너도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화실을 나섰다.
가장 먼저 류타니가 따라오고, 그 다음 이대봉과 실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 나온다.
서둘러 화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자 이대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대봉이 내게 말했다.
“어? 그쪽이 아닌데?”
“여기로 가면 좀 더 빨리 갈수 있어.”
일주일에 몇 번은 가볍게 산을 타는 편이라, 이곳 산으로 오르는 길에 대해선 훤한 편이다. 이대봉이 말한 길로 올라갔다면 중간에 길이 나눠지긴 하겠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은 뻔하다.
뒷산에 올라가는 길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뻔 한 길로 갔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야, 무작정 가지만 말고 얘기 해봐. 무슨 일인데 그래?”
이대봉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지만 난 대답대신 서둘러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내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다다랐다. 그때 뒤늦게 떠오른 것이 있어서 멈칫했다.
“대봉이 형은, 어서 119에 전화해.”
그 말에 이대봉과 실버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119는 왜? 불이라도 났어?”
“아니, 구급대말이야, 구급대.”
“구급대? 앰뷸런스?”
“그래.”
“생뚱맞게 그걸 왜 불러?”
“사람이 쓰려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뭐?”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 거야?!”
“확실하니까 얼른.”
“아니, 그보다 누구? 설마 아까 얘기했던 그 백무정 씨 말이야?”
“일단,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얼른 연락해!”
“불러서 아니면 어쩌려고?”
“그건 알아서 하고.”
그렇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야! 아니면 나 잡혀가는 거 아니야?’라고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욕을 좀 먹거나, 벌금을 물릴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런 거야 큰일은 아니니까.
아무튼 이대봉이 뒤에서 뭐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바쁘게 산으로 뛰다시피 하며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며 뒤를 슬쩍 돌아봤더니 실버는 내 속도에 맞춰 잘 따라오고 있다.
물론, 류타니는 비틀거리며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처지고 있다.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덕분에 언덕이 시작되자마자 저질체력이 금방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류타니를 신경 쓸 정신은 없다.
다리가 더 빨리 움직였다.
본체의 몸 자체가 가진 체력적 능력이 뛰어난 탓에 큰 무리 없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육방이라니, 사기지, 사기야.
원래의 내 몸이었다면 벌써 저 밑에서 푹 퍼져 버렸을 거다.
군대 시절에도 구보랑 산타는 건 정말 쥐약이었으니까.
군대생활 할 때 이런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꽤 재미있었을 텐데.
어쨌거나 실버는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뒤따라 쫓아오고 있다. 평소에도 틈틈이 운동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본체의 체력에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본체는 그렇다고 쳐도, 진짜 실버도 괴물은 괴물이다.
그런데 그때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면 괜찮은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다면 어쩌지?
내가 응급관련 일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졌다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더 서둘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이미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때 서너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과 그 앞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늦었으면 어쩌지?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쫓아오던 실버가 먼저 끼어들었다.
“비켜요!”
실버의 큰 소리에 움찔하고 놀라던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커다란 덩치를 보고 한 번 더 놀라는 모습이다.
실버는 그런 그들 사이에 쓰러져있던 남자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다 뒤늦게 헥헥 거리며 뒤따라 올라와 바닥에 널브러진 류타니를 보며 일본어로 소리쳤다.
“너는 아래로 다시 내려가서 구급차 오면 이쪽으로 안내해.”
“네?”
“어서!”
“아, 네!”
그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비틀거리며 헐레벌떡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흘깃 보면서 실버는 쓰러진 남자의 가슴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저거, 심폐소생술이던가.
굉장히 능숙하게 누르며 ‘하나, 둘, 셋······.’ 그렇게 말하며 빠른 속도로 압박했다.
그러더니 나중엔 입술을 가져가서는 숨을 불어넣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실버를 보며 꽤나 놀랐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방송이나, 인터넷 따위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해서.
실버를 데려온 건 정말 잘한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속으로 여러 번 했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계속 남자를 확인하고 다시 똑같은 걸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산 입구부분이라 일찍 발견하긴 했는데.
그때 산 아래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류타니, 그리고 이대봉이 같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류타니가 다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마을 아주머니가 괜찮냐고 물어보자, 어설픈 한국어로 ‘괜찬스무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에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일본인이네?’라고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 주변에 모여들더니 ‘참 장한 젊은이들이야’라고 말하며 음료수도 가져다준다.
그것을 받아 마신 이대봉이 근처 평상에 가서는 풀썩 드러눕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삭신이야. 진짜 이러다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머리만 살짝 들어서는 날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윤환아, 앞으로는 이런 거 나 시키지 마. 나 보기보다 유리 같은 몸이야. 살살 다뤄줘.”
저런 미친.
이상하게 들리잖아.
“산이 많은 곳에서 GOP 생활을 했다더니, 얼마나 올라갔다고 죽는다니, 엄살은.”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머리만 들어 올린 애매한 자세로 도끼눈을 뜨며 째려봤다.
불편해 보이는데.
“흥, 전역한 지가 언젠데?”
그렇게 말하고는 세웠던 머리를 다시 떨어뜨린다.
그러더니 이번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었다.
“휴우, 그래도 사람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119 부를 때만 해도 이게 무슨 황당한 짓인가 했는데, 류타니가 내려와서 진짜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깜짝 놀랐다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실버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그나저나 실버는 만능이야, 못하는 게 없어. 역시 우리 실버 최고!”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엔 일어나서는 실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러자 실버가 인상을 팍 쓰며 어깨에 얹힌 이대봉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치운다.
“어따 대고 헛짓이야!”
“아얏! 살살 해. 팔 부러져!”
이대봉이 치워진 자신의 팔을 붙들고 호들갑을 떨자 실버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한번만 더 손을 올리며 정말로 부러뜨릴 거야.”
“너무하네, 진짜.”
“아무튼 난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실버가 몸을 돌려 화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류타니도 나섰다.
“저도 실버 형님 따라 갈게요.”
“그래.”
류타니는 실버 뒤를 서둘러 따라가더니 아까 받은 캔 음료수를 내밀었다. 그러자 실버가 그것을 받아 마신다.
그렇게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실실 웃었다.
“실버는 어딜 데려가도 든든하다니까.”
“그러게.”
그렇게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대봉이 이번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윤환이 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이고, 올게 왔구나.
이럴 땐 잡아 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뭐라고 핑계를 댈까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이대봉이 황당한 소리를 했다.
“난 처음에 네가 무정이 형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었네. 뭐 사람이 살았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순간 깜짝 놀랐다.
뭐? 백무정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야?
내가 황당해하며 놀라던 그때, 누군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반갑다는 듯 말했다.
“제임스. 또 보네?”
그 말에 내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때 이대봉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무정이 형, 벌써 내려온 거예요?”
이 사람이 백무정?
그러고 보니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느니.
“하도 아래가 시끄럽길래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온 거야.”
우리 때문에 올라가던 길을 돌렸나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괜찮은 건가? 아니면 오늘이 아닌가?
“아, 그래서 이렇게 일찍 내려오셨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대봉이 상황을 대충 정리해서 알려주자 백무정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나도 올라가다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쉬고 있다가 사이렌 소리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냥 내려온 거야.”
“형도 조심해요. 갑자기 추운 날에 산에 올라가다 죽는 사람도 더러 있다니까.”
“그래야겠다. 지금도 속이 울렁거려서.”
“자자, 형. 여기 앉아요. 어서.”
그렇게 말한 이대봉이 백무정을 평상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에게 물었다.
“산은 자주 가시는 거예요?”
“아니, 원래 산은 잘 안가. 그냥 기분 전환삼아 올라가보려고 했는데, 힘들구나.”
역시 오늘이 그 날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만 살린 건 아니었던 것이다.
“에이, 그러다 큰일 나. 가벼운 운동부터 해요.”
“알았어.”
그렇게 대답한 백무정이 날 돌아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 분은?”
내가 머리를 숙이고 인사하자 그도 같이 인사했다.
“이 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생, 이윤환.”
그 말에 뭔가 떠올랐다는 듯 백무정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 전에 전 선생님의 스토리를 썼다는 그 사람?”
“네. 알죠? 평발 스트라이커랑 경영의 왕.”
“당연히 알지. 나도 엄청 재밌게 봤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날 돌아보며 말했다.
“반가워요. 백무정이라고 합니다. 무명의 만화가에요. 잘 부탁합니다.”
“네.”
“남는 스토리 있으면 저에게도 줘요. 전 선생님처럼 떠보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형은, 윤환이 몸값이 얼마나 비싼데.”
“아,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백무정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알고 있을까?
원래는 오늘 죽을 팔자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