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94화 (294/425)
  • 삼사라 멀티버스 (7)

    화실 어시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무작정 찾아온 일본남자애가 신기했던 모양이지.

    나도 뭐, 마찬가지고.

    느닷없이 일하고 싶다며 도게자를 시전 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결국 안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 그런 요란을 떨던 녀석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저 눈만 멀뚱멀뚱 거리며 소파에 앉아 있는데, 정지화면인가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긴장한 건가?

    그나저나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이 생겼다.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왔어요?”

    그 말에 움찔 놀라더니 내 시선을 슬쩍 피한다.

    뭔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알게 된 게 아니라는 건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류타니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저기 사실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선 때문에 삼사라월드의 편집부로 간 일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간단한 시상식 이후에 돌아가는 길에 아래층을 간 일이 있었거든요.”

    “아래층?”

    “네. 아래층이 소년히어로의 편집부에요.”

    “아.”

    소년히어로가 위층이 삼사라월드 편집부인 모양이다.

    “그런데 거긴 왜 갔어요?”

    “제가 삼사라의 팬이라, 담당이신 분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물론 약속은 안 되어 있어서, 만나주실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저도 모르게······.”

    “그래서 만났어요. 아카기 씨는?”

    “아뇨. 자리에 계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돌아 나오려고 했는데······.”

    “······?”

    “자리에 눈에 띈 것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게 뭔데요?”

    “주소 메모였어요. 한국의 주소.”

    “아.”

    이제야 알겠네.

    어떻게 여길 찾았는지.

    “그래도 한국에 오려면 시간이 좀 걸렸을 텐데. 여권이나 비자문제도 있으니.”

    “그건 평소에 만들어 둔 상태였습니다.”

    “네?”

    “언제 한국에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요. 전 항상 두 분 선생님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려왔거든요.”

    “늘 준비를 했다는 말입니까?”

    “······네.”

    사생팬은 아니어야 할 텐데.

    아무튼 대단하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찾아오려고 했다니.

    그나저나 궁금한 건 더 있다.

    “그런데, 나이는 어떻게 돼요?”

    “얼마 전에 17살이 되었습니다.”

    그럼 한국나이로 18살.

    고등학교 2학년 나이다.

    “학교는?”

    “중학교 2학년 때 그만뒀어요.”

    “······왜요?”

    “그게······.”

    머뭇거리던 류타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지메 때문에······.”

    “······.”

    대충 알만하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결국 학교를 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결국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아이들.

    눈앞에 있는 류타니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겠지.

    류타니가 자신의 일을 조금씩 풀어놓게 되어 알게 된 건데, 그렇게 집에 있다가 우연히 접한 삼사라에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한다.

    처음엔 세상이 망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삼사라와 관련된 책자도 부모에게 부탁해 구입해 읽고, 다크 프린세스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외전격 만화인 암흑왕도 읽고.

    그렇게 삼사라에 대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다가 얼마 전 삼사라가 완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충격에 빠졌었단다.

    “한 달 동안은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삼사라 때문에 소년 히어로가 나오는 날을 기다리고, 단행본이 나오는 전날엔 잠도 못잘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거든요. 물론 사오는 건 엄마였지만요.”

    “······.”

    할 얘기가 없다는 이유로 연재를 종료했는데, 내 결정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좋아했던 만화가 갑자기 연재를 끝내버린 충격, 그리고 후속편 이야기는 소문만 무성하고 기약 없어서 속이 탔던 그런 기억들.

    그러니까 몰랐던 게 아니라, 아예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삼사라 관련된 잡지가 나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결국 제가 상상하던 이야기를 만들어 보냈는데, 그게 운이 좋아서 당선이 된 거고요.”

    “운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재능이 있었던 거지.”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대해서 류타니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재능이라뇨. 오히려 저는 네임을 만들면서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한계만 느꼈어요. 덕분에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새삼 알게 되었고요.”

    그 말을 들은 실버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첨도 할 줄 알고, 대단한 꼬마네.”

    “아, 아첨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 꼬마 아닙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흥분하긴. 그래 꼬마라고 한 건 내가 사과하지.”

    그렇게 말하며 히죽거린다.

    그 모습을 보던 류타니가 표정을 굳혔다.

    그런 류타니를 보니 나도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삼사라를 좋아하는 팬이라는 거고, 그래서 일하고 싶다는 거니?”

    “삼사라의 팬은 맞지만, 여기서 일하고 싶은 이유는 선생님 곁에서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쌓이고, 선생님께 인정받을 만큼 성장한다면 그때는 제가 그 삼사라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 말에 실버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저놈 저거 맹랑한 놈일세. 네가 삼사라를 이어가?”

    하지만 실버가 한국말로 떠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뜻은 이해 못한 표정이지만, 대충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뉘앙스는 눈치 챈 모양인지 인상을 팍 썼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는 누구나 해. 그것만으로 삼사라를 쉽게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 삼사라가 만만해?”

    류타니가 움찔했다.

    “그, 그건 아니지만.”

    “네가 그동안 삼사라를 좋아했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는 건 어시인 내 입장에서도 뿌듯한 일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깟 공모전에서 콘티, 아니 네임이 합격했다고 해서 네가 무작정 찾아오면 어떻게든 받아줄 것이고, 거기다 삼사라를 이어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순진한 생각이야. 세상이 그렇게 물렁하지 않거든.”

    그 말에 류타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니, 충격에 빠진 얼굴이다.

    실버의 송곳 같은 말이 류타니의 멘탈을 사정없이 휘저은 모양이다.

    “반 친구들의 이지메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혔던 네가 수많은 삼사라의 팬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삼사라의 이야기에 불평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허다해. 그런 팬레터도 상당하고. 이런 건 평소에 생각해본 적 있어? 없지?”

    “······.”

    “너는 단순히 네가 좋아하니까 어떻게든 될 거라고 낙관하고 있는 거다. 네임도 당선이 되었으니 실력도 인정받았겠다, 이참에 원작자를 찾아가 도게자든 바짓단을 붙들고 늘어지든 간에 어떻게든 매달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어떠냐, 내 말이 틀려?”

    실버의 날카로운 말에 류타니가 입을 앙다물더니 버럭 했다.

    “아, 아니에요!”

    “아니면 뭔데? 그럼 네가 한 각오를 얘기해 봐.”

    그 말에 류타니가 멈칫했다.

    “······.”

    “거 봐. 애초에 각오가 없었으니 갑자기 생각하려고 해도 나올 턱이 없지.”

    그 말에 류타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와중에도 실버의 독설은 멈추지 않았다.

    “텐겐, 써니가 한국인이라는 불리함을 뚫고 일본에 진출하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인에 대한 편견, 우려. 너는 그런 것도 생각해 본적 없지?”

    “······.”

    “그런데, 넌 그런 건 다 집어치우고 그냥 팬으로서 알량한 실력에 자만해서 여기까지 찾아와 떼를 쓰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린애라고 말하는 거고.”

    “······.”

    실버의 이야기를 들은 류타니가 잠시 동안 부르르 떨더니 입을 꾹 닫고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앉았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나와 화실 어시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늘은 폐가 많았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돌아서서 화실을 빠져나갔다.

    축 처진 어깨로 걸어가는 류타니의 뒷 모습을 보던 어시들이 이번엔 실버 쪽으로 돌아봤다.

    하지만 실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고작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어시들이 다시 밖을 쳐다보다가 조그마한 음성으로 수군거렸다.

    “쟤, 저대로 일본으로 그냥 돌아가겠지?”

    “아마 그럴 것 같은데요. 제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실버 오빠 상당히 심한 말 하신 것 같던데.”

    “애가 너무 불쌍하더라. 나라면 바로 울어버렸을 걸. 실버 오빠는 너무 철면피 같다니까.”

    “누가 철면피야!”

    실버가 버럭 하자 박소미가 움찔하며 놀랐다.

    “어머, 깜짝이야. 왜 화를 내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오빠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건 맞잖아.”

    “뭐가, 심해! 틀린 말, 하나도 없었는데. 오히려 어린 녀석이 어설픈 정신으로 타국까지 와서 일하겠다는 걸 보니까 어이가 없던데.”

    “어린 게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말하면 써니 선생님은? 우리는 그런 써니 선생님 밑에서 어시를 하고 있는 입장이잖아.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쉬웠겠어?”

    “너는 왜 갑자기 걔 편을 들어?”

    “편드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지.”

    “너······.”

    와 박소미도 상당히 무섭다.

    저 괴물 실버가 꼼짝을 못하네.

    이거, 꽤 재미있네.

    팝콘만 있으면 딱 인데.

    그나저나, 류타니 그 녀석이 괜히 신경 쓰이네.

    나도 솔직히 실버의 생각과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걔가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뭐 현실이 그런 거니, 인생의 선배에게 들은 교훈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는데.

    *

    다음날.

    그 이야기를 들은 이대봉이 실버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저 괴물은 십대의 섬세한 감정을 전혀 모른다니까. 하긴, 저 녀석에게 십대가 있었겠냐마는.”

    “너 그러다가 사지가 뒤틀리는 수가 있다.”

    “저거 봐, 저거. 툭하면 폭력이나 쓰려고 하고. 야만인이라니까.”

    “······.”

    그때 듣고 있던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무작정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찾아온 거라면 그렇게 돌아가는 쪽이 좋을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가 무슨 악덕기업주도 아니고, 무작정 어린애를 데리고 일을 시킬 수도 없잖아.”

    “에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국에 있는 화실에 십대에 시골에서 올라와 일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대부분 제대로 된 급여도 받지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해.”

    그 말에 실버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그게 맞는 거냐?”

    “누가 맞데?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 말 잘했다. 나도 현실을 그 녀석에게 깨우쳐 주려 했던 거야, 알겠냐?”

    “모르겠거든.”

    “뭐야!”

    또 둘이서 그렇게 투닥거리는 동안 초인종이 울렸다.

    또 손님이 왔나 싶었는데, 나갔던 성준희가 화실에 들어오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누군데?”

    “어제 걔인데, 데리고 들어왔어.”

    그렇게 말하며 뒤를 슬쩍 돌아보자 류타니가 미간에 힘을 팍 주며 따라 들어왔다.

    그러더니 우리 쪽으로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네. 밤새 생각하고 결정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생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

    모두 류타니의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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