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91화 (291/425)
  • 삼사라 멀티버스 (4)

    내 말에 히로유키 사장이 깜짝 놀랐다.

    “삼사라······, 단독 만화잡지 말씀이십니까?”

    “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대답한 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삼사라의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싶어서요. 본편 이야기는 완결이 되었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편집자의 말로는 팬들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쉽다는 반응이라고 하더군요.”

    “네,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오, 그게 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구나.

    의외다.

    “하지만, 전 이미 다른 만화를 시작한 상황이고, 삼사라에 집중할 여유가 없습니다. 물론, 스토리보다도 만화 쪽이 더 그렇죠.”

    “지금도 파시엔시아나 다크 프린세스까지 연재하시느라 바쁘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이 알고 계시네요.”

    “아하하, 네. 저도 그렇지만 아들놈도 좋아하거든요.”

    “아.”

    “거기다가 선생님은 저희 출판사에서도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가님이라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첫인상이나 들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아무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쨌거나, 지금은 삼사라에 대한 요청은 있으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죠. 하지만, 삼사라를 계속 이어갈 방법은 있습니다.”

    “······?”

    “삼사라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거죠.”

    “다른 사람들요?”

    “네. 다른 만화가들이 삼사라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물론 이제까지 만들어진 세계관 을 확장시키는 거죠.”

    그 말에 히로유키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잠시 시선을 내리깐 채로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다.

    그러다가 곧 날 쳐다봤다.

    “그러니까, 삼사라의 이야기를 다른 만화가들이 만들어 간다는 겁니까?”

    “네.”

    “그렇지만, 그건 팬들이 원하는 삼사라와는 다를 건데요. 선생님이 만든 게 아니라면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삼사라라고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팬들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죠.”

    “직접······ 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이젠 혼란이 온 모양인지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보인다.

    “직접 그림을 그려 참여해도 좋고, 스토리로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건 엄정한 심사를 거쳐 뽑아야겠지만요.”

    “······엄정한 심사는 선생님이 직접 하시는 겁니까?”

    “네. 처음에는요. 하지만, 나중엔 삼사라에 대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직접 심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예상일뿐이지만요.”

    “······그러니까, 삼사라를 단순히 하나의 작품으로 끝내지 않고, 확장시키시겠다는 말씀이군요.”

    “네.”

    내 대답에 머리를 끄덕이며 또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제의라 복잡할 것이다.

    느닷없이 ‘삼사라의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싶은데, 잡지 하나 만들어줘.’라고 떼를 쓰고 있는 형국이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미쯔다쇼텐에서 받아주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내가 직접 할 생각도 있으니까.

    물론, 초기 자금이 많이 들것이고, 더불어 사람들도 모아야하기 때문에 처음엔 어려움에 봉착할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남아도는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히로유키 사장이 입을 열었다.

    “조금 모험이라고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요즘 출판사가 한번 정도는 도약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잘 되었군요.”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신기하군요.”

    “네?”

    “선생님은 제가 거절해도 별로 상관없었다는 느낌이라.”

    “그런가요?”

    “네. 제 생각엔 다른 출판사에 이 제안을 하시지는 않으실 거고, 당연히 2차 판권에 대한 권리는 가지고 계십니다만, 삼사라 만화에 대한 권리는 저희와 나눈 상태니까요. 직접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보통이 아닌 사람이네.

    역시 눈치가 빠르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꼭 하고 싶으니까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역시.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무조건 해야 할 일이네요.”

    “왜요?”

    “선생님과 계속 이어져 있는 게 저희로써는 무조건 이익이니까요.”

    뭐야, 이거 드래곤볼 완결한 토리야마 아키라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토리야마 아키라가 드래곤볼을 완결하고 난 뒤, 슈에이샤는 그에게 앞으로 매년 1억 엔 정도를 주는 대신 다른 출판물에 원고를 내지 말라는 계약을 했으니까.

    그건 일러스트도 마찬가지.

    물론 난 그렇게까지 묶일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볼보다 더 위대한 만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나저나, 이런 당돌한 요구를 잘도 받아주니 좀 얼떨떨하긴 하다.

    “돌아가면 바로 회의를 해서 편집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히로유키 사장이 그렇게 말하며 대화중에 나온 대구탕으로 숟가락을 뻗었다.

    *

    머신건 잭의 반응은 연재를 하면 할수록 상당했다.

    지로의 말로는 TV애니 제작하고 싶다는 곳도 있었던 모양이고, OVA 쪽도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연재분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다며 좀 더 기다리는 게 좋다는 게 편집부의 판단이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그런 와중에 새로운 삼사라 잡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로에게 전했더니, 그도 흥미 있어 했다.

    - 쉽지는 않겠지만, 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레이지버스 같은 세계관을 만들어 두면 만화의 생명이 길어지니까요.

    레이지버스는 마스모토 레이지가 직접 다 만든 것이고, 난 그것보다는 스타워즈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것을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만든 거대한 세계관.

    그것이 잘 된다면 내가 죽은 뒤에서 작품은 살아서 계속 세계를 확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얼마 후.

    미쯔다쇼텐에서 발행되는 만화잡지들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삼사라만을 위한 잡지 발행 임박.]

    [삼사라의 스토리와, 만화원고를 공모합니다.]

    [자격은 현역, 아마추어 관계가 없으며, 수상자는 잡지에 단편, 중편, 장편으로 실리게 됩니다.]

    [상금은······.]

    상금의 규모도 상당하다.

    다른 유명잡지들의 신인공모전 이상의 상금에, 기회도 더 많은 편이고.

    삼사라 하나 만을 위한 잡지임에도 제법 공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그곳에 실을 원고자체가 없으니, 편집자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테니까.

    이미 출판사 쪽에 이야기 해 두긴 했지만 ‘라바나’는 팀이 완성되었을 때 원작자의 재량으로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홍보가 나간 지 며칠 후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 * *

    “이거 어때?”

    카페 모임에 나온 사람들 중 한 여자가 자신의 노트를 본 친구들에게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좀 신통치 않아 보였다.

    “꽤 치밀하게 잘 만든 단편이긴 한데, 좀.”

    “왜? 제대로 말해봐.”

    “재미가 없어.”

    “뭐?”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가 다른 사람들도 돌아본다. 그러자 대부분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무슨 만화 분석자료 같아서, 우리 같은 광팬들이 아니면 아예 관심도 못 받을 걸?”

    “그 정도야?”

    “내 의견은 좀 그래.”

    다른 이들의 반응도 비슷해 여자가 실망했다.

    그런데 실망하긴 모두 매한가지.

    그 전에 자신들이 만들어 온 것들을 서로 돌려가며 의견을 교환한 이후였고, 그것들 역시 지금의 콘티노트와 비슷한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역시 재미있게 만드는 건 어렵구나.”

    “당연하지. 그게 쉽다면, 누가 머리 빠져가면서 이야기를 만들겠냐?”

    “그나마 야다가 만든 단편만화가 제일 낫네. 그림도 상당한 수준이고. 물론 10페이지라 너무 짧다는 느낌이지만.”

    “페이지 제한도 없다니까 상관없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일단 준비한 거니까 응모는 해볼 거지?”

    “난 다시 해볼래. 떨어질 것 같은 걸로 도전하고 싶지는 않아.”

    “나도. 여기서 이런 반응인데, 출판사로 보내면 뻔 하겠지.”

    “그나저나 이번 공모전은 정말 치열하겠는데? 우리 연구회에서만 도전하는 사람이 7명 이상이잖아.”

    “그러게. 경쟁이 장난 아니겠다.”

    그렇게 말했지만, 대부분은 흥분된 표정이다.

    대부분 잡지에서 하는 공모전은 만화가로서 데뷔하기 위함이라면, 이번 공모전은 삼사라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만화의 내용으로 각자 다른 아이디어, 그림으로 승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승부욕이 강한 사람도 있고, 그냥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건 팬들을 위한 축제라는 것이다.

    거기다 더불어 만화가로서의 데뷔기회도 있으니 더 좋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난 뒤 미쯔다쇼텐의 ‘삼사라월드’ 임시 편집 팀이 있는 곳에 엄청난 양의 원고와 스토리노트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아직 책상들과 각종 물품들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엄청난 양의 소포들로 편집부는 완전 마비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직 임시 편집부라 직원들도 열 명 남짓.

    그 숫자로는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만화잡지 부서에서 몇 명씩 지원을 받았다.

    물론 삼사라를 좋아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만화가도 몇 명이 나섰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니시다도 끼어 있었다.

    “선생님. 원고 바쁘시잖아요. 이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오오타케가 삼사라월드 편집부에서 원고를 보는 니시다에게 잔소리를 했다.

    “원고는 제날짜에 완성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 제날짜에 완성한 일이 거의 없으신 분이 무슨. 거기다 전에 코미케에서 저랑 하신 약속도 제대로 안지키시면서.”

    “지켰잖아.”

    “딱 한 주뿐이었잖아요. 한 주. 진짜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오오타케가 열불 터진다는 듯 따졌다.

    “아, 그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피는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반응에 오오타게는 더 화가 났다.

    “이건 편집자들이 하는 일이라고요. 만화가가 할 일이 아니고.”

    “다른 만화가들도 있잖아.”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오오타케가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모습을 흘끔 본 니시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도 도와주면 되잖아.”

    “아니, 저도 바쁜 사람이······.”

    그때였다.

    “어? 니시다! 너 여기에 있었냐?”

    갑자기 등장한 사내를 보고는 니시다가 깜짝 놀랐다.

    “어? 키도 선생님은 여기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우리 어시들이랑 같이 여기 일 도와주려고 왔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뒤쪽을 향해 슬쩍 턱짓했다.

    그러자 그의 뒤엔 키도의 어시들이 다크서클이 잔뜩 낀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하시네요. 어시들까지 이런 일에 끌어들이시다니. 그리고 여긴 삼사라에 대해 정통한 사람들이 와야 도움이 된다고요.”

    “그게 우리 어시들이지. 안 그래?”

    키도가 그렇게 말하며 뒤쪽으로 돌아보자 어시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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