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90화 (290/425)

삼사라 멀티버스 (3)

오랜만에 화실을 찾아온 미치코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저희 외삼촌, 아니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고요?”

“네.”

내 대답에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린다.

어째 동공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놀란 건가?

미치코는 잠시 동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곧 나를 돌아보며 눈치를 보더니 곧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겠지.

“뭐, 제가 새로운 일을 구상한 것이 있어서, 의논을 좀 하려고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는 곧 안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바라봤더니, 움찔하며 놀란다. 그리더니 곧 눈치를 보며 설명을 했다.

“실은, 선생님께서 폭탄선언이라도 하실까봐 그랬어요.”

“폭탄선언? 무슨 폭탄선언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더니 다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에, 그러니까 뭐, 더 이상 미쯔다쇼텐에서 활동을 안 하시겠다는······, 뭐.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요.”

“네?”

이게 뭔 황당한 소리야.

미쯔다쇼텐에서 활동을 안 하겠다니.

물론 언젠가는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아무튼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녀가 서둘러 설명을 시작했다.

“아니, 실은요. 얼마 전부터 출판사에 이런저런······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요.”

“이런저런 소문이라뇨?”

“저기, 그러니까 써니 선생님이 다른 출판사로 옮겨갈지도 모른다. 뭐 그런 거요.”

“다른 출판사라뇨? 어디요?”

“뻔 하죠. 이 업계 대장.”

“소년점프?”

“······네. 그런 소문이 알게 모르게 돌고 있었거든요.”

황당하네.

이제는 소년 히어로도 잘 나가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거길 왜가?

딱히 무슨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물론 접촉을 했다고 해서 갈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최근 선생님의 작품들이 연속 히트를 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소문들이 갑자기 돌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최근 출판사 내에서 돌았다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소문이 처음 돌기 시작한 시점이 절망의 페르소나가 한참 연재가 되던 시점이란다.

그때 소년 히어로가 아닌 다른 만화잡지의 편집부 내에서 ‘써니와 슈에이샤가 따로 만났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들려왔었단다.

그렇지만 대부분 말도 안 된다는 분위기라며 그냥 넘어갔는데, 얼마 후 다른 편집부에서 또 다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직원들 사이에서는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결국 알게 모르게 쫙 이야기가 퍼진 모양이었다.

가짜뉴스도 자꾸 돌다보니, 그게 진짜라고 여기게 된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미치코가 저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지로는 그 얘기를 내게 하지 않은 걸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자 미치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진짜에요? 소년점프랑 만나셨어요?”

그 말에 잡념을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방금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 죄송해요.”

내가 버럭 한 덕분인지 미치코가 움찔하며 거북이처럼 목을 쏙 밀어 넣는 시늉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그런 소문이 돌았다면 왜 아카기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미치코가 머리를 쏙 빼더니 서둘러 대답했다.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해요. 그런 소문이 막 돌기 시작할 때, 제가 선배에게 물었거든요. 정말 이냐고.”

“그랬더니 뭐래요?”

“그럴 리가 없데요, 나 참.”

그렇게 말하며 코평수를 크게 확장시키며 흥분했다.

“자신이 담당하는 만화가를 믿는 건 좋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태평한지 이해를 할 수가 없더라니까요. 그래서 막 따졌죠. ‘선배는 정말로 걱정이 안 돼요? 없는 사실도 사람들이 자꾸 떠들면 진실이 될 수도 있는데.’ 라고 했더니. 어이없게도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지.’라며 답답한 소리를 하더리니까요. 답답해서.”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친다.

그러다가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는지 다시 목을 어깨 밑으로 쏙 넣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선생님을 못 믿었다는 게 아니라요.”

“이해했어요.”

“네?”

“그런 소문이 돌았다면 저라도 카와다 씨처럼 그랬을 거 같으니까요. 제 담당이긴 하지만, 아카기 씨는 좀 고지식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 말에 미치코가 볼을 부풀렸다.

“아카기 선배가 좀 그런 면은 있지만, 그래도 믿음직하긴 하잖아요. 선생님도 그래서 믿고 있으실 테고.”

뭐야, 내가 한 말에 화가 난건가?

의외로 알기 쉬운 성격이라 웃음이 나온다.

“왜 웃으세요?”

“아니요. 그냥, 뭔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

미치코가 머리를 갸웃하고 있을 때, 경희가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내게 커피 잔을 내려놓고, 다음으로 미치코 앞에도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카와다 씨, 삼삼삼 맞죠?”

“어머, 네. 삼삼삼 맞아요. 감사합니다.”

경희가 내민 커피를 받아들며 미치코가 웃으며 말했다.

미치코도 어느새 삼삼삼 다방 커피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하기야 그동안 수없이 들락거리면서 먹었으니, 당연하겠지.

그런 그녀가 커피를 홀짝거리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해한다. 그리고는 경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센터시험이라면서요.”

“센터시험이요?”

“대학교 입학입시시험이요.”

그제야 이해한 경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 저희는 학력고사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렇군요. 아무튼 지금 굉장히 바쁘시겠어요.”

그 말에 경희가 물 만난 물고기 같은 표정으로 미치코의 옆자리에 아예 자리를 잡고 털썩 앉아버린다.

아, 이거 불안한데.

“그러니까요. 제가 요즘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쭉쭉 빠지고 있어요. 고3이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더니 본격적으로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자신은 그렇게 머리가 좋은 게 아닌데, 선희 때문에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라거나. 검정고시로 같이 시험을 치는 언니가 공부를 더 잘해서 그것도 부담이라는 둥.

아무튼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정말 주절주절 잘도 떠들고 있다.

그 때문에 화실에 있던 어시들이 쿡쿡 거리며 웃고 있다.

어시들도 요즘엔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제법 일본어를 잘 알아듣는 모양이다. 다만 아직 김달부는 일본어를 잘 모르는 탓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조만간 김달부도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모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모양이니까.

아무튼 그런 경희의 성향과 잘 맞는 미치코다보니 맞장구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도 이해해요. 일본도 센터시험 정말 치열하거든요. 저희 엄마도 학벌에 대한 집착이 강하셔서 고등학교 시절이 엄청 힘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어머나, 그러셨어요? 저 보다 더 힘들었겠어요.”

덕분에 오히려 경희가 미치코를 위로하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떠들더니, 그제야 경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두 분 이야기 잘 나누세요.”

“네.”

커피가 식어버렸다.

아주 차갑게.

진짜 폭풍수다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구만.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경희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미치코가 날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튼 어떤 일이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사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어휴, 이제야 먼 길을 돌아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네. 그래주세요.”

그런데 뭐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미치코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어? 그런데 그런 부탁을 갑자기 왜 저한테 하신 거예요? 아카기 선배가 담당인데.”

이상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건가?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야, 카와다 씨가 사장님 조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그 말에 미치코가 화들짝 놀랐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아키기 선배한테 들으셨어요?”

“아뇨. 아카기 씨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그럼요?”

“제가 자주 만나는 정보통이 있거든요.”

“정보통요? 스파이 같은 건가요?”

“스파이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이쪽 관련 정보를 많이 다루는 사람이에요.”

“누구요?”

“그건 비밀이라서.”

주간 루머의 미네 아츠코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아무튼 미치코가 미쯔다쇼텐의 사장 조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굳이 지로에게 부탁할 필요는 없었다.

특히나 일본식 보고라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단계별로 보고하는 방식을 취하면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끼어들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미치코는 감탄했다며 손뼉을 쳤다.

“우와, 역시 텐겐 선생님은 다르시네요. 아직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좀 허술해 보이긴 하던데.

아까도 외삼촌이라고 하려다가 사장님으로 급하게 바꾸더니.

그런데 정말로 회사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모락모락 떠오르는데, 그때 미치코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볼게요. 저만 믿으시면 돼요.”

“네. 고맙습니다.”

*

집 인근의 한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원래는 직접 일본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미쯔다쇼텐의 사장이 우리 집 근처 식당까지 찾아오겠다고 해서 의외였다.

그래도 출판사의 대표인데, 그저 만화가 일뿐인 내가 그와의 만남을 요청했을 뿐임에도 굳이 한국까지 찾아오겠다고 했을 땐 좀 놀라기도 했었다.

어쩌면 미치코가 예쁨을 많이 받는 조카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와의 약속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갔다.

조그마한 식당이고, 마침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손을 드는 중년의 사내가 보였다.

전에 사진에서 본 적이 있던 미쯔다쇼텐의 사장 미쯔다 히로유키와 비슷한 외모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미쯔다 히로유키라고 합니다, 텐겐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그와의 손을 잡으며 그를 바라봤다.

듣기론 40대 후반이라고 하던데, 나이보다는 젊어 보인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얼굴인데, 카리스마도 있어 보인다.

어쨌건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대구탕을 시켰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네. 좋아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지로에게 듣기론 임원들 사이에선 호랑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편안한 스타일 같아보여서 의외였다.

“그동안 한번은 봬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러질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셔서 제가 더 죄송하죠.”

“아닙니다. 마침, 한국에 볼일도 있고해서 오려던 참이라.”

그렇게 인사를 하다 곧 내가 본론을 꺼냈다.

“삼사라 단독 만화잡지를 만들고 싶은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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